한국 드라마 이야기/뿌리깊은 나무

뿌리깊은나무, 군나미욕과 집현전 학사들의 숨겨진 비밀

Shain 2011. 10. 2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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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전 학사들이 이유도 모른채 살해당하고 왕을 죽이려 하는 젊은 겸사복이 그 미스터리를 뒤쫓는다. 한글 창제를 둘러싼 세종대왕의 비밀을 묘사한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가 드디어 본격 범죄 추리극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강채윤(장혁)이 박포(신승환)와 함께 집현전을 감시하는 모습은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비밀을 한눈에 보여주는 장면이라 최고의 구성이라고 밖에 할 수 없더군요. 평범한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는 집현전의 비밀을 몰래 훔쳐보는 겸사복, 그리고 그 안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이라니.

세종(한석규)은 정인지(박혁권)를 불러 비밀스럽게 추진중이던 자신의 계획을 논의하고, 최만리(권태원)와 우의정인 이신적(안석환)은 모여 윤필의 시신에서 나온 사자전언을 두고 고민합니다. 집현전 젊은 학사인 성삼문(현우)과 박팽년(김기범)은 자신들의 비밀계인 천지계가 더 있었음을 알고 시신을 탈취합니다. 마지막으로 집현전의 직제학인 심종수(한상진)가 조용히 집현전을 떠나 모처로 갑니다. 강채윤은 사건의 비밀을 감춘 모든 사람들을 집현전에서 만난 셈입니다.


한글 창제 과정에 대한 기록을 살펴 보면 흥미로운 부분을 매우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후대에서 한글을 창제한 건 집현전 학사들이다 아니면 세종 자신이다를 두고 많은 설이 분분했지만 확실한 건 세종이 웬만한 언어학자 보다 탁월한 능력을 갖춘 학자였다는 것이고 집현전 학사들 중에는 어느날 갑자기 만들어진 한글을 두고 나라의 글로 삼을 수 없다며 핏대 높여 반대한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조선을 건국하며 유학을 국가 이념으로 삼았던 그들의 한계가 한글 창제에서 드러나기도 했던 것입니다.

원작소설 '뿌리깊은 나무'도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도 한글이라는 너무도 독특한 우리 고유의 문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일어난 각 분야 사람들의 반응을 집약해서 창작된 내용입니다.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을 자신의 친위대처럼 경연에서 활용하며 늙고 고지식한 재상들을 설득했지만 집현전 역시 유학자들이기에 재상들과 더불어 한글을 반대할까 싶어 자신의 비밀조직에게 임무를 나누어주고 그들끼리도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게 합니다. 성삼문이 윤필 역시 천지계원이었음을 모른 건 그때문입니다.



비밀조직들의 대립, 천지계과 밀본

집현전 학사들 중에서도 최고로 뛰어난 능력을 갖추었던 인물들은 아직까지 그 이름이 전합니다. 물론 그들 중 몇몇은 수양대군의 쿠데타에 관계되어 아직까지 비난받고 그의 업적까지 폄하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가 극중에 등장하는 정인지이고 또다른 하나는 극중에서 얼굴을 비춘 적 없는 신숙주입니다. 신숙주는 한글 창제에 깊이 관여한 인물이라 평가되기도 하고 한글 창제 후 한글로 만들어진 각종 서적을 편찬할 때 활약한 학자라고도 합니다. 확실한 건 뛰어난 언어 능력을 갖춘 자라 국내외를 두루 돌며 자료 조사도 했고 외교 쪽으로도 활약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쩐일인지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는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는 신숙주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소설에서도 초반부 살인사건이 일어날 때 신숙주는 일본으로 간 것으로 처리했습니다. 역사적으로 기록이 뚜렷한 인물에 속하는 신숙주를 이야기에 아귀맞추기 힘들어 그랬을 것으로도 보이지만 실제로도 한글을 만들어 반포하기 전 신숙주는 명나라 등을 돌며 음운에 대한 자료를 모집하던 중이었다고 합니다(정인지나 이개 등과 같이 가야 정상이겠지만). 소설에서는 살인이라도 당할까 싶어 세종이 멀리 보내버린 것으로 처리합니다.

자신의 학사들이 살해당하자 세종은 괴로워한다

성삼문과 박팽년들도 세종이 총애하는 집현전 젊은 귀염둥이들인데 세종이 윤필이 남긴 사자전언, 즉 '곤구망기(丨口亡己)'를 두고 밀본'이란 한글 글귀를 알아낼 동안 그들은 그 글귀의 뜻이 신씨이니 기씨이니 엉뚱한 소리만 해댑니다. 즉 한글 창제 프로젝트를 모르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영리하게도 삼문이 시신의 문신을 보고 천지계원들이 생각 보다 많았다는 걸 알아내고 허담과 윤필이 그 비밀을 알기 때문에 죽었음을 추측할 뿐입니다. 삼문은 자신이 우러르는 직제학 심종수가 밀본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습니다.

심종수의 정체는 확실히 그가 정기준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도담댁(송옥숙)이 명을 내리던 윤평(이수혁)은 정기준의 호위무사였습니다. 그들과 건익사공을 잘 알고 있던 반촌 가리온(윤제문)의 관계도 알 수는 없으나 심종수가 정기준이거나 그들 중 하나가 정기준인 것 만은 분명한 듯합니다. 정도전의 밀본지서를 근본으로 만들어진 밀본들은 세종의 비밀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어떻게든 방해하려 하는 것입니다. 세종도 곧 조말생(이재용)과 더불어 그들의 비밀이 담긴 동굴로 가게 될 것입니다.

살인 사건 수사를 맡은 겸사복 강채윤, 무휼(조진웅)이 채윤이 똘복임을 알아냈으니 그에게도 많은 어려움이 생기겠지만 채윤이 알아내야할 비밀은 천지계원과 밀본 양쪽 모두의 미스터리입니다. 밀본은 세종의 한글 창제를 막으려 집현전 학사들 중 세종의 비밀조직에 해당하는 인물들을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고인설, 허담과 윤필 등은 각각 흙, 물, 불 등의 음양오행으로 살해당했습니다. 밀본은 세종에게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선 채윤은 '누가 살인자인가' 보다  '누가 죽임을 당할 것인가'를 알아내야 합니다.

죽은 윤필이 남긴 수수께끼. 천지계원, 군나미욕, 밀본

'곤구망기'를 '밀본'이라고 풀어냈기에 이미 세종은 한글을 만들어 그 실용성을 평가하고 과학적으로 풀이하는 과정 중인듯하고 윤필 등이 한글창제의 과정을 많은 부분 공유했음이 분명합니다. '군나미욕(君那彌欲)'이라는 단어는 한자 그대로는 약간 해석이 애매합니다만 '어찌 임금이 욕심을 내는가' 쯤이 됩니다. 그러나 이 한자들을 따로따로 검색해보면 '훈민정음 해례본'에 실려 있는 한자라는 걸 알게 되실 것입니다. 윤필 등은 한글을 반포하기 전에 한글의 용례와 자음, 모음의 뜻풀이를 책으로 펴내기 위한 작업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한글 창제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다른 인물은 누가 있는걸까요. 세종과 소이(신세경), 허담, 윤필, 정인지 등은 프로젝트의 많은 부분을 알고 있는 듯합니다만 허담과 윤필은 이미 죽었습니다. 정인지는 후대에까지 살아남는 실존인물이고 세종의 최측근이기에 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또다른 천지계원, 성삼문이나 박팽년도 모르는 장성수가 다음 밀본의 목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워낙 미스터리한 인물들이 많아 나중에 결과가 나오면 허망해질 것 같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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