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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만만세, 이 드라마 차라리 시트콤이면 좋겠다

Shain 2011. 10. 10.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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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불륜을 저지르고 이혼하고 헤어지고, 또 다시 만나 갈등하고, 흔한 드라마 속 부부들 이야기입니다. 울며 불며 진을 빼고 하소연하는 배우들에게는 참 미안한 이야기지만 솔직히 때로는 그런 과정을 조금 더 깔끔하고 유머스럽게 풀어나갈 수는 없는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저는 서로 편하자고 '쿨해지자'라는 표현은 써도 진짜 '쿨한' 사이 따위는 없다고 믿는 사람이기에 자로 잰듯 정확하게 감정을 자르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과장된 감정 소비인 것처럼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더란 말이죠.

드라마 '애정만만세'는 꽤 복잡하게 얽히고 섥혀 있습니다. 강재미(이보영)의 아버지 강형도(천호진)가 젊은 변주리(변정수)와 바람나서 오정희(배종옥)와 이혼했고 변주리와 결혼해 딸을 낳았습니다. 강형도는 사치스운 주리 때문에 고달프고 힘겨운 결혼생활을 하다 최근엔 전처 오정희를 만나 위안을 얻곤 했습니다. 강재미는 한정수(진이한)와 결혼했지만 채희수(한여름)와 바람난 한정수 때문에 상처 뿐인 이혼을 하고 죽집까지 빼앗겼습니다. 한정수는 채희수에게 복잡한 과거가 있다는 걸 알고 변동우(이태성)와 사랑에 빠진 강재미를 해꼬지하는 중입니다.

복잡하고 다양한 관계로 얽혀 있는 주인공들

지나치게 독해 한정수의 전처가 어떤 상처를 입든 말든 신경쓰지 않는 채희수의 캐릭터, 한정수와 결혼하기 위해 조폭 오빠까지 동원하는 채희수나 지나치게 요란스러운 마마걸인 변주리는 가끔씩 눈쌀을 찌푸리게 합니다만 이 드라마 '애정만만세'의 캐릭터는 상당히 잘 만들어진 편입니다. 가난해서 고통스럽던 과거 때문에 자식 눈에 눈물나지 않게 하겠다는 극성 엄마 크리스탈 박(김수미)나 가정적이고 온화한 남편 변춘남(박인환) 등이 제법 익살스럽게 드라마를 채우고 있습니다.

종종 약을 먹고 고통스럽게 쓰러지는 강형도, 아무래도 강형도는 죽을 병에 걸린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버려둔 딸과 전처가 더욱 신경이 쓰이는 것인지 모릅니다. 오정희와 강형도의 사랑은 바람난 남자의 변명같으면서도 감정적으로는 충분히 이해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둘의 안타까우면서도 지지부진한 불륜 이야기는 이 드라마를 진지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반면 또다른 이야기의 한 축인 무좀걸린 사무장 남대문(안상태)와 이혼녀 오정심(윤현숙), 남다름(김유빈)의 이야기는 드라마를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코미디로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남대문와 남다름의 능청스런 사랑만들기

지나가다 한번쯤 쳐다보게 될 정도로 귀여운 곱슬머리 꼬맹이 남다름. 오정희의 동생인 이혼녀 오정심은 너무도 귀엽고 깜찍한 다름이 때문에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무좀에 걸린 남자, 발가락 양말을 신는 남대문과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남대문 역시 다름이를 너무도 귀여워하는 오정심을 좋아하게 되어 두 사람은 언제 커플이 될지 작가에게 날짜만 받으면 되는 사이입니다. 물론 무좀과 발가락 양말이라는 너무도 큰 장애물이 있기는 합니다만 최근 분위기로 봐서는 남대문의 복근으로 극복이 될 것 같더라구요.

남대문은 부인도 도망간, 아이를 혼자 키우는 홀아비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많이 무능한 편입니다. 옥탑방에 아이 혼자 두고 출근해야하니 오정심의 도움이 없을 때는 다름이는 늘 혼자 놀고 있어야 합니다. 멜로 드라마 주인공으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한없이 심각해지자면 심각해질 수 없는 커플이 이 커플이지요. 그렇지만 두 사람은 그런 외적인 문제는 아무것도 아닌듯 개의치 않습니다. 다름이가 워낙 귀여워 현실적인 고민을 다 잊게 만드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성질 사나운 아내 크리스탈 박이 사위를 응징하겠다며 뛰쳐나갈 때 은근슬쩍 생사람잡지 말라며 사위 강형도 편을 들어주는 남편 변춘남. 그는 주부우울증에 걸린 것처럼 자기 신세를 한탄하다가도 '남자들은 다 똑같다'며 자기가 남자란 사실은 잊은 듯 수다를 떨기도 합니다. 크리스탈 박은 변춘남이 동네 '여편네(?)'들이랑 어울려도 아는 언니와 동생이 노는 거라며 별로 불안해하지도 않습니다. 시장에서 어렵게 국수 장사를 하다가 빌딩 몇 채를 소유한 부자가 될 동안 남편은 집안일을 하고 가정을 돌봤습니다.

원래 남성성이라는 것은 타고나는 것도 일정 부분 있겠지만 사회적으로 길러진 것이라고도 합니다. 본래 변춘남의 성격이 타고나게 여성스럽고 섬세한 것인지 집안일을 하는 동안 그렇게 변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변춘남은 생계를 책임진 아내 크리스탈이 돈을 버는 동안 내조를 하며 군소리없이 자기 역할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다른 또래의 남자들이 노년의 위기라며 남편의 귄위를 두고 아내와 갈등하는 동안 그는 오히려 자식들을 건사하고 손녀의 간식을 챙겨줍니다. 주리의 친구 줄리앙(홍석천)도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돈 잘 버는 아내와 집안일하는 남편의 이야기 역시 가족드라마의 소재로 간간이 등장하는 내용입니다. 두 사람 역시 진지하게 다루자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부부인데 중간중간 영어를 섞어 말하는 코믹한 캐릭터 크리스탈 박 만큼이나 변춘남은 흥미롭게 드라마에 잘 섞이고 있습니다. 마치 미드 '모던 패밀리'의 일상인 듯 복잡한 관계와 나이를 초월한 장모와 사위 관계가 재미있게 엮어지고 있지요. 그런 가족이 변주리 부부의 일을 다룰 때만은 흔하디 흔한 신파극의 주인공이 되어버립니다.

이혼과 재혼, 그리고 불륜이라는 소재가 심각해지자면 한없이 심각할 수 밖에 없는 소재이지만 그만큼 보는 사람을 지치게 하는 감정 소모임에도 틀림없습니다. 자신을 배신한 배우자에게 적대적인 것이 비단 우리 나라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겠지만 예로부터 남편에게 버림받는다는 게 경제적, 사회적인 낙오를 뜻하던 문화 탓인지 더욱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코믹하게 접근해도 이 둘은 답이 없긴 하지만....

분명 요즘처럼 냉정한 감성을 요구하는 시대에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닐까요. 그렇지만 가족 드라마에서 한때 이혼녀를 특별한 사람으로 취급하던 시대가 있었듯 이혼과 불륜은 코미디의 소재로 쉽게 선택되지 않습니다. 예전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 등장했던 이민용(최민용)과 신지 커플처럼 아이 문제로 부딪히고 만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미안해하는 모습이 묘사될 수는 없는 걸까 싶기도 합니다.

자신이 바람피워 헤어진 전처를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자신은 새로 맞은 아내 때문에 머리가 하얗게 새고 경제적으로도 궁핍한데 전처는 이혼하고 나서도 여전히 차분한 안식처처럼 보기만 해도 위로가 된다면? 또 새로 결혼한 젊은 아내는 어쩐지 모자란 자신 때문에 전처에게 끌리는 것같은 늙은 남편에게 어떤 마음이 들까. 오정희와 강형도, 변주리처럼 울고 불고 난리를 칠 게 아니라 조금은 장난스럽게 그런 감정을 표현해도 좋지 않을까. 가끔은 시트콤을 보는 것처럼 이 드라마 속 커플을 만나고픈 생각도 듭니다. 어떤 면에선 '애정만만세'의 주인공들이 그런 시트콤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상태이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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