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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한글을 무시하던 가리온 정기준(윤제문)은 너무도 뛰어난 한글의 실체를 알고 경악합니다. 그는 백성이 글을 읽고 쓰게 되면 사대부가 무너진다고 이야기합니다. 드라마 속 그의 통찰은 정확한 것으로 때로 인간은 유용한 수단을 계급을 유지하는 무기로 삼곤 합니다. 문익점이 그토록 위험하게 목화씨를 들여온 것도 통신을 간섭받는 나라에서 언론을 지키려는 것도 수단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세종이 한글을 백성에게 배포한다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인터넷이 주어진 것 만큼이나 엄청난 일입니다.
한글의 무서움을 알게 된 가리온은 집현전과 한글 반포를 맞바꾸려는 세종을 막으려 한다.
조선 시대 양반층이 한자를 자신들의 수단으로 고수한 이유 중 하나는 온종일 고된 일에 시달리는 백성이 배우기엔 너무 어려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문자가 어렵고 함부로 범접하기 힘들다는 건 특정 계층의 이익 보호에 상당히 유용한 수단이 됩니다. 드라마 '추노'에서 겨울날 기생을 끼고 개울가에서 노닥거리는 양반네가 한문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해외유학파가 흔치 않던 시절엔 유창하게 떠드는 영어가 자랑거리였듯 그들은 노비들 앞에서 시시껄렁한 잡담을 어려운 말로 주고받으며 자신들의 지위를 뽐내는 것입니다.
얼떨결에 한글을 배운 두번째 백성이 된 개파이와 연두, 한가놈은 경악한다.
정기준을 비롯한 사대부들은 세종의 한글을 그닥 신통치 않은 장난감 정도로 생각했다가 크게 놀라고 맙니다. 어린아이나 개파이(김성현)같은 외국인까지 단 이틀 만에 쉽게 배우고 쓰는 한글은 한자라는 수단을 뒤엎을 정도로 강력한 잠재력을 가진 문자였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하고 원치 않는 세상은 상것들도 노비들도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세상입니다. 세종 이도를 비웃으며 집현전을 타파하고 재상제를 성사시키려던 정기준과 한가놈(조희봉) 등은 세종과 한글의 무서움을 깨닫고 재상제를 두고 협상하려던 이신적(안석환)을 막으려 합니다.
한글 창제를 두고 벌인 혜강과 세종의 백분 토론
한글 창제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한글 창제를 원하는 사람들의 대립. 이 문제를 두고 여러 부분에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큰 부분 현대적인 해석을 가미하자면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라 할 수도 있고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갈등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기득권과 소외계층', '사대주의자와 민족주의자' 등 여러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극중 이신적을 비롯한 주요 양반층에게는 '한글 창제'가 자신들에게 어떤 이익을 주느냐 그리고 명나라를 비롯한 권력층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밀본 본원 정기준은 어릴 때부터 다소 급진적인 신권 중심의 개혁을 꿈꾸던 자이지만 밀본의 편에선 혜강(권성덕)은 보수적인 학자에 불과합니다.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권태원)은 그 보수주의자 중에서도 '수구' 세력이 아닌 편협한 유학의 이념에 기초해 한글 창제를 반대하는 학자라 볼 수 있습니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같은 유학을 공부했어도 학자별로 그 해석을 두고 다른 입장을 취하기 마련이고 세종은 '음양오행'을 들어 한글을 창제했지만 밀본은 '음양오행'을 이용해 살인을 저지른 것처럼 유학자들이 한글을 받아들이 건 해석하기 나름입니다.
혜강을 비롯한 유학자들과 토론을 벌이는 세종
이미 머리 속에 나름대로 논리정연한 하나의 체계를 구축한 사람들은 설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밀본이나 이신적같은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말이나 힘으로 이길 수 없으면 자신의 뜻을 접겠지만 문제는 최만리처럼 '문자란 자고로 역사와 의미를 담아야한다'는 주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밀본과 다르게 최만리는 진짜 보수주의자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갈고 닦은 학문을 위해 세종에게 반기를 든 고집쎈 인물입니다. 그들 모두의 주장에 일일이 응대를 해주는 세종의 노력은 '장면'은 다르지만 유사한 기록이 있습니다.
재상제가 자신에게 이익이 될 거라 믿는 이신적, 보수적인 학자 최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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