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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를 읽어보면 세종이 유학의 원리를 몸소 구현한 최고의 유학자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유학 이론을 잘 담고 있습니다. 음양오행에 따라 소리의 이치를 설명한 구절을 읽으면 무릎을 탁 치며 감탄하게 될 정도입니다. 굳이 문자를 창제할 때 유학 이론을 인용할 까닭이 있었을까. '어린백성이 니르고져 할빼있어도 비로서 제뜻을 시러 펴디 못할노미'란 글귀를 통해 백성을 위해 글을 만들었음을 추측할 수 있지만 굳이 그 문자를 유학에 맞추어 해설한 이유는 사대부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아닐까 싶습니다.

잘 알고 있는대로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반포하기까지 3년이 걸렸습니다. 1443년 창제 사실을 알렸음에도 훈민정음 해례를 비롯한 각종 서적을 편찬하며 문자로 공표한 건 1446년입니다. 세종이 한글을 개발하기 시작한게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꽤 오랜 세월 공을 들인 것에는 틀림이 없고 한글이 반포된 세종 28년엔 웬만한 정사는 문종에게 이양한 상태였습니다. 당뇨병 환자였다는 세종이니 쉽게 피로를 느꼈을 것이란 점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공을 널리 알리지도 못하고 죽을 수 있을 만큼 건강이 악화된 상황에서 왜 3년씩이나 기다렸던 것일까요.

문자를 반포하는 것이 이리 어려울 줄은 몰랐다. 세종을 다시 보게 된 강채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도 묘사된 것처럼 세종은 한글이 조정에 알려지자 그들의 반론에 하나하나 반박하며 신하들을 설득합니다. 최만리처럼 긴 상소문을 올린 사람들을는 때로 꾸짖고 때로는 설명하며 신숙주를 비롯한 집현전 학자들에겐 훈민정음을 해설하고 널리 이용하게 하기 위한 서적을 펴게 합니다. 반포와 함께 편찬된 서적이 '훈민정음 해례' 즉 한문으로 편찬된 훈민정음 설명서이고 정인지가 그 서문을 썼습니다. '유학'을 숭상하는 유학자들에 유학의 원리에 맞춰 한글을 설명한 점이 참 특이하고, 또 놀라운 그런 책입니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의 뜻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입니다. 드라마에서 극적으로 묘사된 것처럼 사대부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기는 했지만 한글이 창제된 후 3년 동안 세종은 그들을 설득하고 또 이론적으로 학문적으로 한글을 뒷받침할만한 연구자료들을 편찬하려 노력합니다. 결국 한글 창제 후 반포에 3년씩이나 걸린 이유는 거센 기득권층의 반발을 잠재우려한 것이 주된 이유이고 한글을 널리 알릴 명분과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서적 편찬이 두번째 이유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글 한글의 험난한 세월이 시작되다

아무리 사대부의 나라이고 유학의 나라라지만 명색이 왕권국가의 왕이고 그 왕이 직접 만들어낸 문자라는데 반포에 3년씩이나 걸렸다는 건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다는 뜻이 되겠죠. 최만리같은 학자는 '물고 늘어졌다'는 표현이 딱 알맞을 정도로 꾸준히 세종에게 반대를 했던 듯합니다. 극중에서도 최만리(권태원)이 끝없이 긴 종이에 한글로 줄줄 적어내려가는 장면이 묘사되었을 정도인데 약간의 과장은 있다 쳐도 아마 세종은 여러 사람들에게 엄청난 분량의 상소문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을 거라 봅니다.

한글이 창제되고 난 후 극중 여러 인물들의 예상대로 많은 계층이 한글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양반층도 한글을 간단한 서간문 같은데 이용하는 경우가 있었고 글을 배울 수 없었던 부인네들도 한글로 의사소통을 했습니다. 중인층이나 노비층도 이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한글로 대중 통속소설이 창작하게 됩니다. 한글에는 여러 명칭이 있는데 양반층에서는 한글을 멸시한다는 뜻으로 '언문', '암클'이란 표현까지 썼다고 하더군요. '훈민정음', '정음', '반절'같은 한자 명칭도 있었지만 천시하는 문자였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갑오개혁 때는 잠시 '국문'이란 표현도 썼지만 그 세월이 짧습니다.

한글 반포에 대한 격렬한 반대. 드라마 속 유생들은 죽음을 불사한다.

결국 '한'과 '글'을 합쳐 '한글'이란 명칭을 사용한 것은 근대기인 1910년대입니다. 한글학자 주시경이 '크다', '바르다' 등의 뜻을 가진 고유어인 '한'은 '훈민정음'의 뜻인 바른 소리란 뜻도 함축하고 있는 아주 적절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배달글같은 표현도 있었지만 그 뒤로는 널리 '한글'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드라마속 정기준으로 등장하는 가리온(윤제문)이 수백년 뒤의 일을 예측한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맞는 말이었습니다. 백성이 문자를 가진다는 건 이렇게 놀랍고 대단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니 말입니다.

드라마 속에서 성균관 어린 유생의 자살 등으로 약간 과장된 경향은 있지만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신분은 타고났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입니다. 자질을 갖춘 자가 글을 배워야하고 그들의 문자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태도는 아마도 공통적인 양반의 입장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또 가리온처럼 어리석고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는 백성에게 어린아이에게 칼자루 쥐어주듯 '문자'란 무기를 주게 된다면 세상은 혼란스러워진다는 그런 관점도 일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신분제가 무너지고 있던 조선 후기까지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흔히 찾아볼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런 사대부들 앞에서 세종은 한글의 장점을 널리 퍼트리기 위해 꾸준히 서적을 편찬합니다. 조선의 개국을 찬양하는 대서사히 '용비어천가'는 훈민정음을 사용해 최초로 편찬된 책입니다. '삼강행실도' 역시 국문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고, 이외에도 '동국정운',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등을 공개합니다. 한 나라의 왕으로서 남부러울 것 없던 세종이 백성에게 이로운 글자 하나를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이렇게 많은 노력을 했다는 점. 민주주의 국가라는 우리 나라의 지도자들은 이런 왕의 노력을 얼마나 본받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최소한 군왕 보다는 민의를 더 잘아야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말입니다.

노비 서용의 문제를 두고 세종을 비난하고 싶은 조정 대신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는 왕, 신하, 백성 각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캐릭터가 대립구도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세종 이도(한석규)와 백성 똘복(장혁), 그리고 소이(신세경)가 한편을 이루어 한글 창제를 옹호하고 정인지(박혁권)같은 진보적 학자가 그에 동참합니다. 극단적인 사대부인 밀본 정기준과 사대부의 특권을 믿어의심치 않는 심종수(한상진), 이익을 위해서는 못할 것이 없는 정치적인 재상 이신적(안석환) 등이 한편이 되어 세종과 대립하고 있습니다. 최만리같은 집현전 학자는 한글 창제에는 반대하고 있긴 하지만 고집불통 순수한 학자의 입장일 뿐이죠.

역사에 길이 남을 엄청난 문명의 이기가 탄생하는 그 순간, 그 대단함을 칭송하기는 커녕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업적을 사장시키려 하는 그런 태도는 요즘에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그 수단이 학문적인 아집일 때도 있고 때로는 그것이 이념이나 사상이 될 때도 있습니다. 한글의 수난사를 생각하면 세종대왕의 노력을 헛되이한 것같아 안타깝기만 할 뿐이죠. 참고로 북한에도 한글날은 있습니다(그들은 조선어라고 부른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한글 반포일을 기준으로 10월 9일을 한글날로 삼았지만 북한은 창제일을 기준으로 1월 15일이 한글날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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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acegolf.tistory.com BlogIcon 한솔골프
    2011.12.01 14:20 신고

    한글창제의 역사와 아픔을 담고 있는 글 잘보고 갑니다..12월에도 좋은 포스팅 부탁드립니다. 힘내십시요..^^

  2. 익명
    2011.12.01 19:51

    비밀댓글입니다

  3. Favicon of https://valetta.tistory.com BlogIcon 하늘이사랑이
    2011.12.02 09:46 신고

    오랜만입니당^^
    역시 개혁과 혁신은 힘듭니다. 그 틀을 깨기위해서는 엄청난 저항에 직면하죠. 그렇지만 그러한 과정이 있었기에 역사가 발전하는 거겠죠..세종대왕 우리나가 군주중에 가장 으뜸입니다. 요즘 정치인들이 배워야 하는데..맨날 싸움만 하고있으니 배울시간이 없겠죠..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