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뿌리깊은 나무

뿌리깊은나무, 상것도 노비도 모두 글을 읽고 쓰는 세상

Shain 2011. 11. 25.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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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있었다는 집현전이 폐지된 건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고 난 후입니다. 또 한글이 반포된 것도 공개 후 3년이 지난 1446년입니다. 단종이 쫓겨나자 성삼문 등의 학자들은 '사육신의 난'을 일으켰고 그를 계기로 수양은 집현전을 없애버립니다. 지금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같은 세종의 학사로 등장하는 성삼문(현우), 박팽년(김기범)은 사육신으로서 죽고 세종 이도(한석규)의 오른팔인 대제학 정인지(박혁권)와 천문학사 이순지(천재호)는 서로 사돈을 맺으며 수양대군의 편에 섭니다. 이러한 집현전의 운명과 별개로 한글은 반포되기까지 꽤 시일이 걸렸습니다.

세종의 한글을 무시하던 가리온 정기준(윤제문)은 너무도 뛰어난 한글의 실체를 알고 경악합니다. 그는 백성이 글을 읽고 쓰게 되면 사대부가 무너진다고 이야기합니다. 드라마 속 그의 통찰은 정확한 것으로 때로 인간은 유용한 수단을 계급을 유지하는 무기로 삼곤 합니다. 문익점이 그토록 위험하게 목화씨를 들여온 것도 통신을 간섭받는 나라에서 언론을 지키려는 것도 수단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세종이 한글을 백성에게 배포한다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인터넷이 주어진 것 만큼이나 엄청난 일입니다.

한글의 무서움을 알게 된 가리온은 집현전과 한글 반포를 맞바꾸려는 세종을 막으려 한다.

한글 창제 이후에도 한자는 꽤 오랫동안 기득권층의 문자였습니다 . 일제강점기 때 나이가 어렸다는 할아버지는 일본어도 배웠지만 동시에 문중 어른들로부터 한자도 교육받았다고 합니다. 꽤 오래 공을 들이셨기 때문에 어떤 한자서적이든 막힘없이 술술 읽어내고 드라마 속 옛날사람들처럼 한문으로 모든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 어린 호기심에 한자를 몇자나 알고 있냐고 여쭤보았더니 배워도 배워도 늘어나는 한자라 잘 모르겠다고 하시더군요. 한글은 누구나 아는 글이라 배웠다고도 못하고 한자를 모르면 까막눈이라 했답니다.

조선 시대 양반층이 한자를 자신들의 수단으로 고수한 이유 중 하나는 온종일 고된 일에 시달리는 백성이 배우기엔 너무 어려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문자가 어렵고 함부로 범접하기 힘들다는 건 특정 계층의 이익 보호에 상당히 유용한 수단이 됩니다. 드라마 '추노'에서 겨울날 기생을 끼고 개울가에서 노닥거리는 양반네가 한문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해외유학파가 흔치 않던 시절엔 유창하게 떠드는 영어가 자랑거리였듯 그들은 노비들 앞에서 시시껄렁한 잡담을 어려운 말로 주고받으며 자신들의 지위를 뽐내는 것입니다.

얼떨결에 한글을 배운 두번째 백성이 된 개파이와 연두, 한가놈은 경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최초의 한글 소설이라는 '홍길동전'을 비롯한 많은 문학 작품이 한글로 제작되었으며 한글은 여러 계층에서 의사소통 수단으로 이용되었습니다. 특유의 우수함과 편리함 때문에 보급이 되지 않았을 때는 몰라도 일단 배우면 쉽게 여러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문자가 한글었습니다. 양반층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많은 백성들이 한글을 통해 자신들의 생각과 지식을 전파하게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문해율이 높은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한글 덕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정기준을 비롯한 사대부들은 세종의 한글을 그닥 신통치 않은 장난감 정도로 생각했다가 크게 놀라고 맙니다. 어린아이나 개파이(김성현)같은 외국인까지 단 이틀 만에 쉽게 배우고 쓰는 한글은 한자라는 수단을 뒤엎을 정도로 강력한 잠재력을 가진 문자였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하고 원치 않는 세상은 상것들도 노비들도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세상입니다. 세종 이도를 비웃으며 집현전을 타파하고 재상제를 성사시키려던 정기준과 한가놈(조희봉) 등은 세종과 한글의 무서움을 깨닫고 재상제를 두고 협상하려던 이신적(안석환)을 막으려 합니다.



한글 창제를 두고 벌인 혜강과 세종의 백분 토론

한글 창제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한글 창제를 원하는 사람들의 대립. 이 문제를 두고 여러 부분에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큰 부분 현대적인 해석을 가미하자면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라 할 수도 있고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갈등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기득권과 소외계층', '사대주의자와 민족주의자' 등 여러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극중 이신적을 비롯한 주요 양반층에게는 '한글 창제'가 자신들에게 어떤 이익을 주느냐 그리고 명나라를 비롯한 권력층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밀본 본원 정기준은 어릴 때부터 다소 급진적인 신권 중심의 개혁을 꿈꾸던 자이지만 밀본의 편에선 혜강(권성덕)은 보수적인 학자에 불과합니다.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권태원)은 그 보수주의자 중에서도 '수구' 세력이 아닌 편협한 유학의 이념에 기초해 한글 창제를 반대하는 학자라 볼 수 있습니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같은 유학을 공부했어도 학자별로 그 해석을 두고 다른 입장을 취하기 마련이고 세종은 '음양오행'을 들어 한글을 창제했지만 밀본은 '음양오행'을 이용해 살인을 저지른 것처럼 유학자들이 한글을 받아들이 건 해석하기 나름입니다.

혜강을 비롯한 유학자들과 토론을 벌이는 세종

세종은 10년을 함께 산 부인이 바가지 긁듯 닥달하는 정인지에게 그들을 '글로 모조리 베어버릴 것'이라고 합니다. 글을 칼로 친다면 내 무공이 어느 정도냐고 무휼(조진웅)에게 묻자 무휼은 세종이 천하제일검이라 응수하지요. 조말생(이재용)의 의견처럼 세종은 그 누구 보다 뛰어난 유학자입니다. 언로를 틔우라는 유학의 덕목, 수신제가를 최고로 여기는 유학이념을 실천하려면 당연히 글자가 필요하다는 그의 이론은 단한마디 틀린 곳이 없고 말로는 세종을 이길 자가 없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논리의 다툼이 아니라 이익을 앞둔 세력다툼의 양상을 띄게 된 것입니다.

이미 머리 속에 나름대로 논리정연한 하나의 체계를 구축한 사람들은 설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밀본이나 이신적같은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말이나 힘으로 이길 수 없으면 자신의 뜻을 접겠지만 문제는 최만리처럼 '문자란 자고로 역사와 의미를 담아야한다'는 주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밀본과 다르게 최만리는 진짜 보수주의자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갈고 닦은 학문을 위해 세종에게 반기를 든 고집쎈 인물입니다. 그들 모두의 주장에 일일이 응대를 해주는 세종의 노력은 '장면'은 다르지만 유사한 기록이 있습니다.

재상제가 자신에게 이익이 될 거라 믿는 이신적, 보수적인 학자 최만리.

민주적으로 표현되는 세종에 비해 고집스레 기존 세계관을 고집하는 유학자들이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러나 왕권국가라는 한계 때문에 한 명의 천재적인 왕으로부터 배포된 한글의 특수함을 생각하면 그런 유학자들의 반응도 이해할만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특수계층 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차별이지만 그런 나라에서는 일부만 누릴 수 있는 '무엇'이 있음을 '아랫것들' 조차 당연히 생각하니 말입니다. 이런 엄청난 반대를 무릎쑤고, 상것들과 노비들도 모두 읽고 쓸 수 있는 수단, 마치 현대의 인터넷과도 같은 한글을 배포했음에도 그 백성들이 충분히 장점을 누리지 못한 것은 아닐까 때로 부끄러워지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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