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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시기적 배경을 일부 조정했다쳐도 성삼문의 나이는 많아야 서른입니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성삼문은 노인처럼 희끗희끗한 머리를 가진 인물로 묘사되며 젊은 강채윤에 비해 늙은 듯 행동합니다. 아무리 조선시대에 일찍 죽는 사람들이 많다지만 노인 행세를 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입니다. 더욱 재미있는 건 강채윤이 소설에 등장하는 이순지에게는 '아재'라는 표현을 쓰면서 삼문은 '어른'이라고 부릅니다. 이순지는 1406년생으로 성삼문 보다 12살이나 많습니다(참고로 이순지의 사돈 정인지는 1396년생입니다).
최만리를 비롯한 집현전 학자들과 사찰에 모인 성삼문, 이순지, 박팽년.
세종과 태종이 불교를 그렇게 억압한 건 고려의 잔존 세력인 불교인들을 억압하려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나치게 융성한 불교에 폐단이 많았던 까닭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종은 궁내에 내불당을 세우는 등 종교적으로는 불교적 성향이 있었고 그의 아들 세조도 불교에 귀의해 절을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조선사대부들의 불교에 대한 생각은 정도전의 '불씨잡변'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세종이 불교에 의존했던 것처럼 사대부들 역시 개인적으로 불교를 믿는 경우가 많았지만 공식적으로 그들은 불교를 배척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납치된 광평과 소이를 빼돌린 강채윤, 가리온은 그들을 찾는다.
밀본 본원 가리온(윤제문)은 불교를 믿는 유학자들 만큼이나 이율배반적인 인물입니다. 누구 보다 긍지높은 정도전의 조카이자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는 사대부들이 받드는 인물이면서 자신은 '해부학'의 제 일인자이고 백정입니다. 집현전 학자들이 시신을 해부했다는 일에 극구 반대했듯 사대부라면 누구나 그런 일을 경시합니다. 더군다나 극중 세종의 말처럼 '겨우 폭력'으로 세종을 협박하는 그는 자신이 내뱉은 말 조차 지키지 못하는 암살자일 뿐입니다. 태종 이방원(백윤식)이 사람을 죽이는 공포정치를 비웃어놓고 이제는 자신이 '암살조직'의 수장입니다.
단호하지만 가슴아픈 세종의 반격, '겨우 폭력이라니'
이 드라마의 많은 자료나 논리들, 그리고 '군왕 세종'의 반응은 많은 부분 현대적입니다. 세종 이도의 백성을 대하는 태도는 역사적으로 사실관계에 부합한다기 보다 현대의 민주적 지도자들이 국민들을 대상으로 보였음직한 그런 자세입니다. 극중 시대적 배경이나 역사적 배경은 상당히 사실적인데 등장인물들의 설정은 현대적이라 정기준 가리온에 대한 인물해석은 많은 부분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는 현대사회에서 일종의 테러리스트이기도 하고 반군지도자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논리에서 가리온은 자신의 암살이 태종 이방원의 학살과는 다르다 강변할 것입니다. 왕의 권력이 지나치게 강하여 신하들이 눌리고 있음은 나라의 앞날을 위해 옳치 못하니 죽음을 통해서라도 막아야한다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즉 집현전 학사들을 살해한 것은 대의이고 명분이 있다고 하겠지요. 어쩌면 가리온은 그런 현대적인 논리로 자신이 사대부 이념에 반하는 백정 해부학자라는 점까지 변명하려 할지도 모릅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며 속으로 이도를 비웃는 정기준은 자신이 한수 위라고 생각하겠죠.
홀로 있을 때는 눈물, 신하들 앞에서는 가리온을 비웃으며 반격하는 세종.
그에 대해 세종이 보여준 자세는 '테러리스트와 협상은 없다'는 원칙론입니다. 그는 한술 더떠 가리온이 내세운 이념과 그 행동의 모순점을 정확히 짚어냅니다. 어린 시절 세종의 아버지를 비난하며 어린 정기준이 비웃었던 그 말을 똑같이 밀본원들에게 되돌려주는 세종은 결연하고 단호합니다. '겨우 폭력이라니'. 세종은 밀본 정기준이 자신들의 정당한 명분을 세상에 알리는 방법이 기껏해야 살인과 협박과 납치라는 그 부분을 단 한마디로 비난한 것입니다. 정기준에 대한 컴플렉스를 30년 만에 날려버린 한마디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원칙을 어긴 정기준은 세종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세종의 편으로 돌아서며 간만에 순해진 똘복이, 가리온은 더이상 적이 아니다.
* 이 드라마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과 가상 조직인 밀본을 대립하도록 엮었고 실제 역사에서 한글을 반대한 사대부들이 다소 강력한 '악의 축'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는 '최만리'같은 집현전 학자가 다소 어리석은 이유를 들어 세종의 한글을 강력히 반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이전 포스트 : 외로운 임금 세종과 한글 창제를 반대한 사대부들). 가상의 인물인 밀본이 아닌 유학자는 왜 한글을 억압했을까 그 맥락을 알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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