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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의 원작, 소설 '뿌리깊은 나무'는 한글창제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흥미롭게 묘사한 작품으로 음양오행과 유학 이론까지 잘 접목시킨 편이지만 몇가지 납득가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실존 인물과 소설을 접목시키면서 생긴 오류인 셈인데 소설 속 성삼문과 이순지의 나이가 기록과 맞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소설과 드라마의 배경은 세종이 한글을 창조하고 공개한 해인 1443년입니다. 사육신으로 유명한 성삼문은 1418년생으로 스물 여섯 정도이고 동료로 등장하는 박팽년은 1417년생으로 27살입니다.

소설의 시기적 배경을 일부 조정했다쳐도 성삼문의 나이는 많아야 서른입니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성삼문은 노인처럼 희끗희끗한 머리를 가진 인물로 묘사되며 젊은 강채윤에 비해 늙은 듯 행동합니다. 아무리 조선시대에 일찍 죽는 사람들이 많다지만 노인 행세를 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입니다. 더욱 재미있는 건 강채윤이 소설에 등장하는 이순지에게는 '아재'라는 표현을 쓰면서 삼문은 '어른'이라고 부릅니다. 이순지는 1406년생으로 성삼문 보다 12살이나 많습니다(참고로 이순지의 사돈 정인지는 1396년생입니다).

최만리를 비롯한 집현전 학자들과 사찰에 모인 성삼문, 이순지, 박팽년.

드라마는 이 점을 바로 잡아 박팽년과 성삼문은 20대의 활달한 젊은이로 설정했고 이순지는 그들 보다 나이가 많아 보입니다. 그러나 드라마에도 소설과 비슷하게 의아한 부분이 있는데 바로 최만리(권태원)를 비롯한 집현전 학자들이 '사찰'에 모이는 장면입니다. 장성수(류승수), 성삼문(현우), 박팽년(김기범), 이순지(천재호) 등과 함께 학사 허담의 살인 문제를 의논하는 그들은 불상을 등에 지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태종과 세종이 불교 억압 정책에 앞장선 사람들로 세종 초기에 불교가 통폐합되고 전국에 사찰 36개만 남겨두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참 재미있는 장면입니다.

세종과 태종이 불교를 그렇게 억압한 건 고려의 잔존 세력인 불교인들을 억압하려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나치게 융성한 불교에 폐단이 많았던 까닭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종은 궁내에 내불당을 세우는 등 종교적으로는 불교적 성향이 있었고 그의 아들 세조도 불교에 귀의해 절을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조선사대부들의 불교에 대한 생각은 정도전의 '불씨잡변'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세종이 불교에 의존했던 것처럼 사대부들 역시 개인적으로 불교를 믿는 경우가 많았지만 공식적으로 그들은 불교를 배척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납치된 광평과 소이를 빼돌린 강채윤, 가리온은 그들을 찾는다.

밀본의 공격으로 한글 창제를 들킨 세종 이도(한석규)는 경성전 내의 모든 관련 자료를 숨기려 했지만 밀본이 소이(신세경)와 광평대군(서준영)을 납치합니다. 소이의 요청으로 현장에 나타난 강채윤(장혁)은 두 사람을 구해내고 백성을 위해 글자를 만들겠다는 세종을 비웃는 채윤, 광평대군은 아버지 세종이 백성을 위해 목숨을 걸고 글자를 만들었다며 '대의'를 위해 천한 목숨을 희생시키는 그런 왕이 아니라고 옹호합니다. 사대부 결사 조직인 밀본은 광평대군을 납치해 세종을 압박하려다 실패하고 소이와 광평을 찾아헤맵니다.

밀본 본원 가리온(윤제문)은 불교를 믿는 유학자들 만큼이나 이율배반적인 인물입니다. 누구 보다 긍지높은 정도전의 조카이자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는 사대부들이 받드는 인물이면서 자신은 '해부학'의 제 일인자이고 백정입니다. 집현전 학자들이 시신을 해부했다는 일에 극구 반대했듯 사대부라면 누구나 그런 일을 경시합니다. 더군다나 극중 세종의 말처럼 '겨우 폭력'으로 세종을 협박하는 그는 자신이 내뱉은 말 조차 지키지 못하는 암살자일 뿐입니다. 태종 이방원(백윤식)이 사람을 죽이는 공포정치를 비웃어놓고 이제는 자신이 '암살조직'의 수장입니다.



단호하지만 가슴아픈 세종의 반격, '겨우 폭력이라니'

이 드라마의 많은 자료나 논리들, 그리고 '군왕 세종'의 반응은 많은 부분 현대적입니다. 세종 이도의 백성을 대하는 태도는 역사적으로 사실관계에 부합한다기 보다 현대의 민주적 지도자들이 국민들을 대상으로 보였음직한 그런 자세입니다. 극중 시대적 배경이나 역사적 배경은 상당히 사실적인데 등장인물들의 설정은 현대적이라 정기준 가리온에 대한 인물해석은 많은 부분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는 현대사회에서 일종의 테러리스트이기도 하고 반군지도자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논리에서 가리온은 자신의 암살이 태종 이방원의 학살과는 다르다 강변할 것입니다. 왕의 권력이 지나치게 강하여 신하들이 눌리고 있음은 나라의 앞날을 위해 옳치 못하니 죽음을 통해서라도 막아야한다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즉 집현전 학사들을 살해한 것은 대의이고 명분이 있다고 하겠지요. 어쩌면 가리온은 그런 현대적인 논리로 자신이 사대부 이념에 반하는 백정 해부학자라는 점까지 변명하려 할지도 모릅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며 속으로 이도를 비웃는 정기준은 자신이 한수 위라고 생각하겠죠.

홀로 있을 때는 눈물, 신하들 앞에서는 가리온을 비웃으며 반격하는 세종.

경성전의 한글 자료를 모두 빼돌리는 광평대군을 납치하고 득의양양하게 한글을  포기하지 않으면 광평대군을 해하겠노라 방까지 붙인 가리온은 자신이 유리한 패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 고유의 글자를 만든다는 것은 밀본이 아닌 사대부라도 반대할만한 일입니다. 그것이 공개되면 대부분의 유학자들이 득달같이 일어날 것이고 왕의 위신은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 일로 왕자가 죽는다면 더욱 세종의 처지가 불리해질 수 밖에 없겠죠.

그에 대해 세종이 보여준 자세는 '테러리스트와 협상은 없다'는 원칙론입니다. 그는 한술 더떠 가리온이 내세운 이념과 그 행동의 모순점을 정확히 짚어냅니다. 어린 시절 세종의 아버지를 비난하며 어린 정기준이 비웃었던 그 말을 똑같이 밀본원들에게 되돌려주는 세종은 결연하고 단호합니다. '겨우 폭력이라니'. 세종은 밀본 정기준이 자신들의 정당한 명분을 세상에 알리는 방법이 기껏해야 살인과 협박과 납치라는 그 부분을 단 한마디로 비난한 것입니다. 정기준에 대한 컴플렉스를 30년 만에 날려버린 한마디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원칙을 어긴 정기준은 세종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세종의 편으로 돌아서며 간만에 순해진 똘복이, 가리온은 더이상 적이 아니다.

아무리 정기준이 이렇듯 모순덩어리이고 세종의 적수감이 못되는 사이코패스라 할 지라도 아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슬픔은 세종을 눈물짓게 합니다. 아무리 부정한 방법이라 한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픔은 그 무엇에도 비할 바가 없습니다. 강채윤이 '스물여덟자'의 비밀을 알고 세종의 편으로 돌아서지 않았다면 세종은 아들의 죽음을 보아야했을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야하는 세종의 고통은 이것이 끝이 아니지요. 너무도 아름답고 과학적인 한글을 탄생시키기 위해 사대부들의 비난과 고통을 견뎌낸 한 임금의 이야기, 그래서 이 드라마가 매력적인가 봅니다.

* 이 드라마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과 가상 조직인 밀본을 대립하도록 엮었고 실제 역사에서 한글을 반대한 사대부들이 다소 강력한 '악의 축'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는 '최만리'같은 집현전 학자가 다소 어리석은 이유를 들어 세종의 한글을 강력히 반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이전 포스트 :  외로운 임금 세종과 한글 창제를 반대한 사대부들). 가상의 인물인 밀본이 아닌 유학자는 왜 한글을 억압했을까 그 맥락을 알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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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1.24 13:41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shain.tistory.com BlogIcon Shain
      2011.11.24 13:45 신고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아, 마침 제가 있을 때 오셔서 다행이네요
      애드센스 계정에서 내광고, 거기에서
      고급필터를 누르면 라디오박스가 있는데
      운영중지, 숨김 두가지가 뜹니다
      그걸 체크하면
      이미 숨기거나 오래되서 운영되지 않는 광고까지
      다 보이게 됩니다
      그 상태에서 조정을 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