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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가 신분제 사회였다는 것은 드라마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제도적으로는 양천제로 양인과 천민 두 신분만 존재했지만 실제로는 양반층 이외 나머지 신분들이 세분화된 반상제가 조선의 질서였습니다. 양반은 대과를 비롯한 각종 과거에 응시할 수 있고 상인과 중인은 무과를 비롯한 각종 잡과에 응시할 수 있었고 노비는 자격이 없었습니다. 노비는 사유재산이고 종문서가 존재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백정같은 천민과 더불어 대표적인 하층민이 노비였습니다.

어제 방영된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밀본 정기준(윤제문)은 세종 이도(한석규)의 계략을 알아내고 저지하려 합니다. 재상제를 실시하고 집현전을 없애는 조건으로 세종이 만들었다는 문자를 반포하도록 허락할 생각이었는데 한가놈(조희봉)이 알아낸 한글의 비밀은 너무도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개파이(김성현)같은 외국인이나 연두(정다빈)같은 어린아이도 이틀 만에 자유롭게 읽고 쓰고 사람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옮길 수 있는 글자는 사회에 큰 파란을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했습니다.

한글 반포를 둘러싼 세종과 밀본의 치열한 싸움.

재상이 되어 현대의 총리와 같은 권력을 누릴 것이라 믿었던 이신적(안석환)이 반발해도 가리온은 한글이 전파되면 어떤 영향이 있을 지 알기에 극렬하게 반대합니다. 500년 후의 조선이 어찌되든 알 바가 아니라는 그들의 말에도 사대부와 유학이 버려진다는 사실을 정기준은 견딜 수가 없는 듯합니다. 그는 이신적을 시켜 과거 문제를 빼돌린 뒤 반촌 노비 서용(이승기)에게 대과를 보게 합니다. 서용은 유출된 과거 문제로 장원을 했지만 스스로 노비임을 밝혀 유배를 갑니다.

또 어린 성균관 유생 박세명(이다윗)은 노비들이 감히 글을 배운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서용을 죽이고 자신도 투신하여 죽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밀본 가리온이 글자가 반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저지른 악랄한 짓입니다. 그만큼 사대부들이 쉬운 문자가 반포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노비에게 과거 응시를 하게한 것입니다. 신분제가 무너진다는 경고같은 것이라 봐도 되겠죠. 그러나 신분을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고 조선시대에 종종 노비가 대과에 응시한 사례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노비 출신이지만 신분세탁을 한 반석평과 이만강

신분제가 있긴 했어도 조선 초기에는 그나마 신분이 유동적이었다고 합니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서얼이나 노비가 관직에 등용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지만 세종 때만 해도 장영실이 등용되었고 정도전이나 황희도 따지고 보면 서얼 신분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또 임진왜란 이후 신분을 사고팔 수 있는 수단이 생겨 양반층이 급격히 늘어나고 타고난 신분 보다는 재산이 또다른 신분 유지의 수단이 되었지만 노비는 여전히 벗어나기 힘든 신분이었습니다. 과거는 커녕 상민 대우를 받기도 힘들었던 것입니다.

조선 중종 때의 반석평은 반기문 유엔총장의 조상으로 유명합니다. 형조판서까지 올랐던 반석평은 본래 노비였지만 주인집 아들 이오성이 글공부할 때 옆에서 몰래 글을 배웠다고 합니다. 참판이 주인은 그의 재주가 아까워 노비문서를 없앤 뒤 아들없는 집에 양자로 들어가게 해주었고 신분이 들통난다며 연락까지 끊어버렸다고 합니다. 후에 재상이 된 반석평은 길에서 자신과 함께 글공부하던 이오성이 거지꼴인 것을 보고 가마에서 냉큼 엎드려 절을 한 뒤 왕에게 '자수'를 합니다. 내가 원래 노비이니 자신은 벌주고 이오성에겐 벼슬을 내리라 청한 것입니다.

조정백관이 보는 앞에서 자신이 노비임을 밝힌 장원급제자 서용.

반석평은 노비가 감히 과거에 응시를 했다는 이유로 탄핵을 당했지만 주인이던 이참판이 노비문서를 없애 양인 신분이 된데다 과거에도 정정당당히 합격을 한 케이스이기 때문에 왕에게도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조선 영조시기에 신분을 속여 대과에 응시했던 엄택주, 본명 이만강이란 노비는 자신의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발버둥쳤지만 결국 들통이 나 다시 노비가 되고 고통스럽게 죽습니다.

예전에 MBC에서 방송된 드라마 중 '일출봉(1992)'이란게 있습니다. 또 KBS에서 방영된 '사모곡(1987)'이란 드라마도 있구요. SBS에서 방영된 '만강(1996)'이란 드라마는 모두 임충 작가의 극본으로 만들어진 드라마입니다. 이 세 드라마의 주인공은 모두 실존인물인 '이만강'을 모델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숙종 시기에 과거에 합격한 그는 본디 아전의 자식이었고 어머니는 노비였는데 선비에게 글을 배우고 도주한 후 '엄씨'로 신분을 위조하여 과거를 보게 됩니다. 세탁된 신분으로 멀쩡히 벼슬을 하다 은퇴 후 잘 살던 그는 노비임이 발각되어 결국 흑산도로 유배를 떠납니다.

MBC '일출봉(1992)'과 SBS '만강(1996)

그 뒤로도 이만강은 흑산도를 벗어났다는 이유로 다시 유배를 가고 최후에는 윤지와 이하징 등이 일으킨 '나주벽서사건'에 연루되어 모진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숨을 거둡니다. 드라마는 그의 이야기를 양반 신분이던 아이가 노비로 전락한 것으로 묘사했고 못난 양반에 비해 똑똑하고 지혜롭던 노비 만강이 갖은 고초를 겪게 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창작했습니다. 결국 이후에는 신분제에 반기를 들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사람들의 이야기로 연결시키기도 합니다. 글을 배워 어떻게든 면천을 하고 싶었던 한 인간의 욕망이 잘 드러난 드라마였습니다.

워낙 재주가 뛰어나 선비가 글을 가르치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였고 간신히 출신을 속여 관리가 되었다는 것. 처분을 받은 뒤에도 꾸준히 경계를 받고 옥고를 치러야 할 만큼 주목받은 인물 이만강. '왕후 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는 옛말을 그대로 실천한 한 인물의 이야기는 신분제의 불합리를 아주 잘 보여준다 할 수 있습니다. 이만강의 기록은 그 시대 지배계층에게는 기득권에 대한 도전이자 왜 사대부들이 애써 한글의 존재를 부정하고 한자를 칭송하며며 글자를 아랫 계층과 공유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서용을 죽이고 투신한 박세명, 강채윤은 새삼 글자의 무서움을 느낀다.

극중 강채윤(장혁)이 고민하는 것처럼 백성이 글자를 안다는 것이 이렇듯 큰일이며 안된다며 반대를 하다 목숨을 끊고 살인까지 저지를 정도로 엄청난 일일까요. 물론 드라마 속 내용은 많이 과장된 것이었겠지만 신분제를 뒤집을 만한 일이 일어날 때 마다 사대부들이 난리를 친 것은 사실입니다. 박포(신승환)의 말처럼 자신들의 밥그릇에 밥숟가락을 얹는 행위였으니 말입니다. 반대하는 사람 하나 없이 서용의 처벌을 주장하고 나선 조정 분위기가 그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신분제는 부족한 인간의 한계를 메꾸기 위한 방편이었는지 몰라도 신분제 타파는 아주 자연스러운 사회적 욕구라 할 수 있습니다. '글'과 '지식'은 그를 위한 한가지 방법이 되었던 것이구요. '글 좀 배웠다는 것들이 신분을 바꾸겠다고 나서면 어쩔 것이냐'는 가리온 정기준의 질문을 보며 양반네가 한글를 무시한 이유를 몸소 느낄 수 있을 것도 같단 생각이 들더군요. 그 어려운 한자를 배워 신분제를 위협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한글을 배우면 더욱 양반층을 무시할 것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그 오랜 세월 동안 한글을 언문이라 낮춰 불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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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라라
    2011.12.01 16:21

    근데 왜 전 정다빈양이 이틀만에 깨우친 한글을 배우는데 이틀보다 훨씬 더 시간이 걸린걸까용??? 다빈양은 천재고 전 바보라서??아님 다빈양은 12살이고 저는 6살이라서(제가 한글을 깨우친 나이가 6살 )???

  2.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12.01 20:01

    오~ 제가 아는 블로거 중에 역사에 대한 조예가 이렇게 깊은 분은 세인님이 처음입니다.
    대부분 인터넷에서 그때그때 필요한 부분만 검색한 느낌이 받는데 세인님의 글은
    언제나 몰랐던 부분까지 알게된다는요.

    평소 사극 드라마가 은근히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하나봅니다.
    원래 티비를 그리 즐겨보지 않아서 언급한 드라마는 잘 모르겠네요.

  3. ^^
    2013.01.26 01:49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1/22/2013012202512.html

    도움이 되실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