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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 14

정도전, 경처 신덕왕후 난 이성계의 첩이 아니다

풋내기 정치인 정도전(조재현)의 좌충우돌은 어떤 면에선 불편한 느낌도 줍니다. 극중 서른 네 살의 정도전은 수련하는 학생이 아닌 한사람의 성인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하면 젊다기 보단 장년층입니다. 10대 중후반에 결혼하는게 당시 풍습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인의 환갑을 축하하는 등 평균수명이 지금 보다 한참 짧았던 걸 생각하면 40대 중반의 현대인과 비슷한 위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19살에 큰아들을 낳았으니 벌써 자식도 많이 자랐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안정을 찾고 일가를 이루기 시작할 나이에 정치인들과 거칠게 충돌하는 모습을 보면 실제로도 보통 성격은 아니었던 것같습니다. 정도전을 그 나이까지 끊임없이 분노하게 한 동력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정도전이 시대를 앞선 학자이자 과격하고 개혁적인..

새 폴더 2022.09.17

태종 이방원, 태조 이성계의 죽음과 흔들리는 양녕대군

KBS 사극의 출연배우들은 외부 교체 인력으로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물론 자체 제작이라고 해도 내부 인원들이 출연하는 건 그대로라 변화가 없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약간이나마 제작비는 절감할 수 있을 것이고 덕분에 배우들이 좀 바뀌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답니다. 사극 촬영 현장은 대부분은 그 배우가 그 배우다 하는 분위기가 있었어 한두 명 정도만 새로운 배우를 써도 티가 나죠. 물론 믿고 보는 배우들이야 이번엔 무슨 역할을 맡을까 하는 기대도 할 수 있지만 새 역할을 맡길 만큼 능력이 되는 배우가 드뭅니다. 배우 이태리를 보니 확실히 약간의 물갈이를 느끼겠군요. 어떤 분은 임호가 양녕대군을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내놓았지만 아무리 임호라 해도 이제 50대죠. 거기다 안성부원군 역의 정태우도 아무리 아역 전..

태종 이방원, 경신공주와 경선공주는 대체 어떻게 죽은 걸까

(경신 공주와 경순 공주를 같이 쓰고 있지만 동일인물로 일단 간주합니다) 예전 역사서에 기록되었으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공주들이 많았죠. 그중 한 명이 수양대군의 딸로 짐작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 가칭 '세희 공주'가 실존인물인지 아닌지는 역사가들도 긍정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정사 속에서 묘지에 이름이 지워진 공주가 한 명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하죠. 이 세희 공주의 이야기는 당시 전후 사정을 딱하게 여겨 누군가 꾸며낸 여겨집니다. 실제로 '금계필담'에 전하는 이야기와 시기적으로 맞지 않기도 하구요. 공주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근거도 사실도 희박한 경우가 많죠. 아마 어디서 같은 이름으로 경신 공주의 이야기를 만든다면 '공주의 남자'처럼 가상의 판타지가 탄생할 확률..

태종 이방원, 정도전의 죽음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태조 이성계는 결혼 후에 신덕왕후와 결혼했지만 알다시피 이방석은 그리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신덕왕후가 오래 살았더라면 이성계의 권력과 신하들의 권력에 기대 어찌어찌 생명유지를 할 수 있었겠지만 신덕왕후는 오래 살지 못하고 죽고 맙니다. 왕자의 난이 일어나 왕위찬탈을 당한 것이죠. 이방원은 극 중에서 동생인 이방원 때문에 고민한 것으로 그려집니다. 어쨌든 형제이고 친가족처럼 가까이 지냈으니 당연히 그런 고민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친형제라 해도 갈등이 있고 반란을 꿈꾸는 마당에 이복형제인 이방석을 살려두었을 것 같진 않습니다. 신덕왕후의 속앓이가 그렇게 현실이 된 것이죠. 죽을 사람을 어떻게 붙잡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권력의 향배는 정도전을 향하게 됩니다. 정도전(이광기)은 똑똑한 인물이었지만..

드라마와 문화 2022.02.14

태종 이방원, 신덕왕후의 죽음과 왕권을 노리는 이방원

이방원의 형제들은 잘 알려진 대로 첫째 방우가 정치에 뜻이 없어 조정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둘째 방과는 원래 정치 무인으로써의 재능에 더 몰두한 편이고 셋째 조용히 중립을 지키던 방의는 조정의 일에 입을 닫았습니다. 넷째 방간은 이방원에 대한 질투가 심해 오래 속을 썩였지만 즉흥적인 그의 성격답게 일을 빨리 처리하곤 했죠. 문제는 다섯째 이방원입니다. 아버지 이성계를 닮아 불같은 성정도 있고 공부하던 유자 집안의 성격을 닮아 공부하기도 즐겼던 이방원은 꽤 유능하면서도 탁월했습니다. 그런데 성공의 절반은 '중전'의 몫이라던 집안사람들의 말은 사실일까요. 무장이었던 이성계는 장군으로써는 굉장히 탁월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유능한 편이 아니었습니다. 이성계의 성공은 무인으로써의 능력과 더불어 여러 신하들의 도움이 ..

드라마와 문화 2022.01.27

태종 이방원, 강씨의 경처의 배신과 이방원의 분노

태조 이성계가 받아들인 숙명은 무엇일까요. 이미 아주 오래전에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여 왕이 되기로 결심한 삼봉 정도전(이광기)과 그의 무리들 - 기세 좋던 처음과는 다르게 '자신은 나약한 혁명가'일뿐이라며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성계(김영철)가 기세 좋게 치고 나가며 이젠 기력이 쇠한 공양왕(박형준)을 쳐내겠죠. 지난번에 이성계는 이방원이 정몽주(최종환)를 습격하자 정몽주는 한마디 말도 못 남기고 철퇴에 맞아 죽었습니다. 삼봉 정도전의 죽음을 두고 극 중 이방원(주상욱)과 정도전은 매우 안타까워하지만 결국 그게 끝이었습니다. 조금 있으면 고려는 완전히 무너지고 새로운 나라가 들어설 것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갈까요. 이성계가 말한 숙명에는 그들의 죽음도 포함되어있을까요. 아..

드라마와 문화 2022.01.09

태종 이방원, 얼치기 유자 이방원 철퇴로 정몽주를 내려치다

예전부터 철퇴란 무기는 있었습니다. 빙빙 돌려서 그 힘으로 휘두르는 형태의 무기였죠. 정확한 이름은 '플레일'이라고 하는데 원래는 이런 형태가 아니었다고 하네요. 휙휙 돌리는 형태는 고구려 시대에 존재했고 그 뒤에 나온 철퇴가 빙빙 돌리는 형태의 무기였겠죠. 예전에 각종 전쟁 드라마에서 빙빙 돌리는 형태의 철퇴를 본 것 같은데 그 형태의 철퇴는 요즘 보기 힘듭니다. 아무튼 굳이 이 무시무시한 철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정몽주(최종환)가 휘두른 당사자이기 떼문입니다. 정몽주가 포은의 앞길을 막아선 것은 이성계(김영철)에게는 적잖이 충격이었나 봅니다. 원래 당시의 이성계는 빠른 정권 탈환보다 천천히 개혁하는 길을 가고자 했습니다. 그것이 백성들에게는 충격이 덜 심하고 무력으로 백성을 도륙하는 것을 조금이나마 ..

태종 이방원, 다시 돌아온 태종 이방원 나는 역적이다

시작 전에 부월을 들고 호령하는 최영(송용태)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보는가 했는데 이렇게 고려 시기들 잘라낸 드라마를 보게 될 것은 생각 못했네요. 이제는 위화도 회군도 없고 고려시기의 서사는 조선 왕조 때까지 없을 것 같습니다. 최영 장군은 고려 최고의 명장이지만 이성계의 죽음은 아주 간단하게 처리되겠네요. 이대로라면 정도전(이광기)과 하륜(남성진)의 서사도 줄어들 테고 많은 부분이 잘리겠죠. 드라마는 시기상 고려말 조선 초기부터 조선이 안정화된 후기의 이야기를 다룰 것 같군요. 태종 이방원 그러면 역사상 가장 인기가 없는 시기 아니었나 해요(물론 개인 의견입니다). 죽고 죽이는 전쟁터에서 누굴 잘 죽였하는 건 의미 없지만 대혼란의 시기니 어쨌든 조선이 혼란은 사실이니까요. 뭐 보니까 드라마상 등장인물들..

드라마와 문화 2021.12.18

뿌리깊은나무, 모순덩어리 정기준 세종의 적수가 못 되는 이유

이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의 원작, 소설 '뿌리깊은 나무'는 한글창제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흥미롭게 묘사한 작품으로 음양오행과 유학 이론까지 잘 접목시킨 편이지만 몇가지 납득가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실존 인물과 소설을 접목시키면서 생긴 오류인 셈인데 소설 속 성삼문과 이순지의 나이가 기록과 맞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소설과 드라마의 배경은 세종이 한글을 창조하고 공개한 해인 1443년입니다. 사육신으로 유명한 성삼문은 1418년생으로 스물 여섯 정도이고 동료로 등장하는 박팽년은 1417년생으로 27살입니다. 소설의 시기적 배경을 일부 조정했다쳐도 성삼문의 나이는 많아야 서른입니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성삼문은 노인처럼 희끗희끗한 머리를 가진 인물로 묘사되며 젊은 강채윤에 비해 늙은 듯 행동합니다. 아무..

뿌리깊은나무,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세종의 한글창제

비인간적인 상민(常民)과 천인들의 삶과 기형적으로 비대해진 양반층의 횡포, 부패한 조정관리들과 권신이 늘어갈수록 무력해지는 왕권, 이런 조선 후기의 풍경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조선 초기 유학을 건국 이념으로 삼고 신분제도를 명시할 때는 후손들의 삶이 그렇게 피폐해지리란 건 생각도 못 했을 것입니다. 본래 고려 시대에도 직업별로 신분을 나눈 구분은 있었지만 조선 초기까지는 그렇게까지 신분 문제로 갈등이 심각했다고 보긴 힘듭니다. 중기 이후엔 좀 더 강력한 신분제를 추구하게 되어 후기에는 그런 폐단을 낳게 된 것이죠. 조선은 법적으로는 양천제를 추구했지만 사회적으로는 사농공상의 구분이 엄격한 반상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초기에는 국역에 종사할 양인들이 필요해 천민들을 면천하고 양인의 신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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