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

태종 이방원, 태조 이성계의 죽음과 흔들리는 양녕대군

Shain 2022. 4. 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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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사극의 출연배우들은 외부 교체 인력으로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물론 자체 제작이라고 해도 내부 인원들이 출연하는 건 그대로라 변화가 없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약간이나마 제작비는 절감할 수 있을 것이고 덕분에 배우들이 좀 바뀌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답니다. 사극 촬영 현장은 대부분은 그 배우가 그 배우다 하는 분위기가 있었어 한두 명 정도만 새로운 배우를 써도 티가 나죠. 물론 믿고 보는 배우들이야 이번엔 무슨 역할을 맡을까 하는 기대도 할 수 있지만 새 역할을 맡길 만큼 능력이 되는 배우가 드뭅니다. 배우 이태리를 보니 확실히 약간의 물갈이를 느끼겠군요. 어떤 분은 임호가 양녕대군을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내놓았지만 아무리 임호라 해도 이제 50대죠.

 

태조 이성계는 결국 왕으로서 태종을 용서하고 함께 하게 된다.

 

거기다 안성부원군 역의 정태우도 아무리 아역 전문으로 얼굴이 익숙하다지만 거의 동갑인 배우에게 시킬 배역은 아니죠. 사극 출연 배우들은 특유의 인맥과 연기자의 호흡 때문에 아무에게나 맡길 수도 없지만 아무나 시키지도 않습니다. 이태리의 나이가 지금으로써는 가장 알맞고 어울리는 것 같아요. 양녕대군은 첫회부터 적당히 게으르고 적당히 씩씩해서 여자 밝히고 아무나 와 어울리는 역할에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물론 이건 굉장한 칭찬입니다). 어릴 때 특별한 자리에 오른 아이들은 원래 책임감과 부담감 때문에 종종 게을러지기도 하고 고민하느냐 잠을 못 자기도 하죠. 뭐 그리고 이건 한 가지 부탁인데 한 번씩 짧게 출연하는 배우일지라도 엄청나게 부담이 될 것 같아요. 역할이 짧다고 그 고생하는 시간이 짧은 건 아니니 갈게 시간 배당해서 공들여 주시면 좋겠어요.

 

드라마 전체가 32회니 그렇게 많은 분량이 남지 않았어요. 좀더 오래 해도 좋을 것 같았지만 길어지면 오히려 잘릴 이야기도 많을 테니 더 이상 분량이 길어지는 것도 무리일 것입니다.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 것 같았던 태조 이성계는 세상을 떠납니다. 태조는 역사적으로 많은 분란에 시달린 왕입니다. 세상을 두렵게 만든 위대한 왕이기도 했죠. 직접 역모를 꾸며 왕을 둘이나 몰아내기도 했습니다. 1392년에 등극한 태조는 왕비 신덕왕후가 죽자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이방원이 일으킨 두 번의 난은 태조를 허수아비로 만들기 충분했죠. 그 뒤로 그래도 아버지라고 목숨은 살려두었지만 영 힘을 쓰지 못합니다. 결국 1408년 태조는 세상을 떠납니다. 역사적으로도 대단한 왕이었습니다.

 

만만치 않은 골치덩어리 양녕대군 이 사람도 참 사는게 파란만장하다.

 

조선에는 그해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해 봄 태상왕은 그 사이에도 종종 아팠으나 풍질(중풍, 신경 계통의 질병을 모두 이르는 말)에 걸립니다. 태상왕으로 인해 참형을 면하게 하기 위해 참형당할 죄수를 방면하고 풀어주는 일들을 합니다. 죽을 때가 다되어 은혜를 내린 셈이죠. 안개가 끼고 큰비가 내리는 등 조정 곳곳에서 상서롭지 못한 징조를 여러 사람이 보게 됩니다. 경순공주가 죽었을(1407) 때쯤 태종도 거의 같이 몸이 아프고 고통을 당했던 것 같습니다. 같은 기에 풍질이 걸렸으니 그렇다고 보는 거죠. 사실 왕권 양위 소동을 벌였을 때쯤(1406) 이미 태종(주상욱)의 왕권을 인정했다는 평입니다. 그 사이에도 민무구(김태한)을 처벌하는 일, 민제(김규철)를 벌주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병에 걸린 민씨 형제가 정말 안쓰러운 모습이었죠. 사실 죄랍시고 태종이 지적한 일들은 거의 핑계에 가까웠는데 저라면 굉장히 억울했을 것 같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죽음과계속문제를 일으키는 양녕대군

 

왜 계속해서 누군가를 죽여야 태종은 안심할 수 있었던 걸까요. 트집을 잡거나 핑계를 대서라도 죽이고 싶을 만큼 큰 잘못을 한 걸까요. 아무리 봐도 효순 궁주(이주은)와 경녕군 이비(裶)의 일을 제외하면 큰 잘못을 한 것 같진 않습니다. 때의 일을 덮는다고 해놓고 쪼르르 이르게 사람들이 놀라운 일이죠(아마 그 일을 늙은 여종이 알려준 것 같은데). 사실 아이가 거의 인질인 셈이라 왕자들 역시 눈치를 보고 편안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몇 차례 원경왕후가 태종의 병문안을 위해 밖을 오고 간 기록이 있고 민제도 병문안을 받은 기록이 있죠. 당시의 상황이 태종은 아프고 형제들은 목숨이 위험했기 때문에 도저히 그럴 상황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글그막에 민제는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민씨 형제가 죽기전 사망한다.

 

양녕대군은 어릴 때부터 문제가 있는 왕자는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성격이 이방원을 닮아 그랬는지 망나니처럼 말을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았죠. 양녕이 어머니를 위하면서도 말을 안 들은 이유는 아마도 아버지의 행동이 못마땅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도 자신이 맏이고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생각했는데 왕실에서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죠. '연려실기술'에는 그런 왕자의 행동의 이유를 설명하는 글귀들이 많습니다. 일종의 왕자의 변명같은 것인데 '양녕대군은 일부러 미친 척했다'는 내용입니다. '연려실기술'에 실린 내용은 대부분 정사가 아니고 야사지만 굳이 양녕은 감싸고돌지 않아도 될 만큼 이상한 행동을 많이 했습니다.

 

양녕은 활쏘기와 매 사냥을 즐겨 평소에도 늘 놀러 나갔고 한로의과 결혼한 후에도 나아지지 않고 계속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악공들과 어울려 비파를 치고 치며 놀러 간 죄로 구종수(박정상), 이오방의 목이 달아나기도 합니다. 덕분에 사통한 조 죄 까지 드러나죠. 반성문도 남이 쓰게 하고 완전히 망나니처럼 행동합니다. 그중 가장 기막힌 일은 남의 첩을 빼앗은 일입니다(경정 공주가 일렀다는군요 - 나중에 아이의 유모까지 들여줍니다). 첩의 이름은 어리 -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데 궁에 끌려온 아리는 무슨 죄인가 싶지만 아리는 두 번이나 궁에 끌려갑니다. 태종의 말을 잘 들어보면 이것은 후궁을 함부로 들인 원망 같기도 합니다.

 

어차피 양녕대군에겐 '믿을 만한' 동생이 둘이나 있는데

 

"전하(殿下)의 시녀(侍女)는 다 궁중(宮中)에 들이는데, 어찌 다 중하게 생각하여 이를 받아들입니까? 가이(加伊)를 내보내고자 하시나, 그가 살아가기가 어려울 것을 불쌍히 여기고, 또 바깥에 내보내어 사람들과 서로 통(通)하게 하면 성예(聲譽)가 아름답지 못할 것이므로, 이 때문에 내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지금에 이르도록 신(臣)의 여러 첩(妾)을 내보내어 곡성(哭聲)이 사방에 이르고 원망이 나라 안에 가득차니, 어찌 스스로에게서 반성하여 구하지 않으십니까? 선(善)함을 책(責)한다면 이별해야 하고, 이별한다면 상(祥)스럽지 못함이 너무나 클 것인데, 신은 이와 같은 일이 없었던 까닭으로 악기(樂器)의 줄을 끊어 버리는 행동을 차마 할 수가 없었고, 장래 성색(聲色)을 마음대로 할 계책을 오로지 뜻에 따르고 정(情)에 맡겨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태종 18년 5월 30일)

 

뭐 본문을 다 옮긴 것이긴 하지만 궁에서 가장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왕에 대한 원망을 드러내는 입니다. 불경도 그런 불경이 없지요. 태종은 궁인들이 보는 가운데 자신의 치부를 드러낸 것입니다. 아무리 귀한 왕손이라도, 아무리 감싸주고 싶어도 그런 행동을 눈감아 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양녕대군은 그대로 종사에서 물러나고 어차피 동생은 그래도 둘이나 더 더 있습니다(효령대군, 충녕대군). 태종은 뒤를 이어 고민하다 그해 11월 왕위에서 물러납니다. 그때 1년쯤 원경왕후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했던 말대로 아무리 자식농사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지만 그리고 대단한 군주였지만 양녕대군의 일만은 자신의 뜻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왕위는 충녕대군에게 넘어갑니다. 늘그막에 태종은 관절염으로 고생했다고 하더군요. 원경왕후(박진희)는 말라리아로 추정되는 병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태종 이방원은 끊임없이 누굴 처형할지 고민했던 것 같다.

 

이태리는 양녕대군 역할로 확실히 자신의 역을 해낸 것 같습니다. 거만하면서도 태조와 꼭 닮은 왕이었던 양녕을 제대로 그려냈지요. 양녕대군은 그 뒤로 자기 멋대로(?) 살게 됩니다. 왕위를 노리는 다른 왕세자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게 그때는 왕자들이 제법 늘어나서 더 이상 안중에 없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뭐 그 뒤로 사병도 혁파돼서 관군이 치고 들어올 염려도 없어졌고요. 어린 시절에 직접 키우지 못해서 안쓰러웠던지 태종은 쓰던 물건들까지 모두 챙겨주며 양녕을 보살펴 줍니다. 그 사이 가장 안쓰러운 쫓겨난 어리는 그 사이 사라진 양녕대군 때문에 화가 나서 김한로의 첩과 함께 아리를 구타합니다. 너 때문에 이 꼴이 되었다고 - 그 때문에 자살했습니다. 아리의 팔자는 정말 가장 억울할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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