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녕대군의 행동은 기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도 문제가 있을 만큼 이상했습니다. 특히 드라마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준 모습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죠. 어떻게 자신의 친형제처럼 자란 조카들을 죽이라할 수 있을까요. 태종도 살육에 미친(?) 왕이지만 그 정도까지의 바라진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죽이라 바람을 넣어도 대충 안 죽여도 된다며 책임을 떠넘겼죠. 그렇게 풍전등화처럼 유지되던 목숨인데 조정 대신들의 부추김으로 상황은 역전되어 이제는 죽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됩니다. 어릴 때 조카들 손에서 자랐던 양녕대군(이태리)은 평소의 의리를 봐서라도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되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살펴보니 비슷한 일이 몇 차례 있었더군요. 도대체 왜 조카를 돌본 죄 밖에 없는 신하들을 괴롭혔을까요. 정말 미친놈 같은 선택이었죠.
이 일은 민무구(김태한), 민무질(노상보) 사이의 일이 아니라 민무휼(이규영)과 민무회(강태우) 사이에 벌어진 일입니다. 사실 중간에 다른 일이 더 있긴 했으나 아마도 양녕의 성향이 그랬던 걸로 대충 넘길 모양이네요. 무슨 사이코 패스도 아니고 어린 시절 자신과 놀아주던 조카가 엄청난 배신을 한 셈인데 실제로 관련된 일 때문에 민무회와 민무질은 고문을 당하고 나중에 큰 화를 입게 됩니다(태종 16년 1월 10일). 뭐 그전에도 마냥 친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서 무엇 때문인지 심사가 많이 꼬여 있었습니다. 주상의 강요로 정사에 나가게 된 두 사람은 드라마 속 상황보다 한참 뒤에 화를 당합니다.
나중엔 아무 상관없던 민무휼, 민무회까지 송사에 휘밀리는데 원래 그 일은 곤장 50대를 맞으면 끝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충녕대군(김민기)에게 일렀고 충녕대군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또 거기에선 곤장 50면 끝날 일이었는데 두 처남이 곤장 맞은 일을 두둔하다 역린을 건드렸습니다. 이때 양녕대군(이태리)은 한 번 더 원경왕후의 일을 일러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죠. 한마디로 별것도 아닌 일로 형제를 모두 죽인 것입니다(교수형으로). 이 뒤에 덮어주기로 했던 효순왕후(이주은)의 일이 들통나서 원경왕후는 엄청난 곤욕을 치르게 되죠. 나중엔 민씨에 대한 욕으로 페이지를 덮어버릴 정도였습니다. 역사에 죽을 때까지 욕먹을 일을 한 사람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종사(宗社)는 오로지 전하의 종사만이 아니니, 죄인을 바로잡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민무휼(閔無恤)과 민무회(閔無悔)를 법대로 처치함이 옳겠습니다(태종 16년 1월 10일)." 결국 그렇게 민무구, 민무질, 민무휼, 민무회 이 네 사람의 형제가 모두 죽는 일은 전무후무한, 역사상 가장 잔인한 차사 중 하나가 일어납니다. 다른 형제들을 위해 자결한다고 했지만 더 이상 살아남은 형제도 없고 목숨을 구걸할 형제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원경왕후는 피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습니다. 대체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것일까요. 어떤 핑계를 대도 용서가 되지 않을 일입니다. 이건 뭐랄까 원래부터 사이가 안 좋았다고 쳐도 따로 저런 교육을 시키기 전에는 나올 수 없는 말이죠. 문제는 저런 '놈'을 누군가는 오냐오냐 했다는 것입니다.
충녕대군과 양녕대군의 갈등이 어느 정도였길래
대부분 사극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래도 그리 슬프지 않습니다. 그런데 민무구, 민무질의 죽음과 원경왕후의 기절은 너무 슬프고 비통하더군요. 아무리 드라마 속의 감정을 실어봐도 민무구, 민무질이 불쌍하단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태종이 외척을 등에 업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그전에 외척을 단속하여 조정에 나서지 않게 하면 그만인 일이었습니다. 입을 모아 등용시키고 입을 모아 '극형에 처하라' 단속하니 살아남을 사람이 별로 없었죠. 양녕대군 파트는 글로 읽기도 싫을 정도입니다. 워낙 못나고 사이코 같은 인물이라 양녕은 그동안 살아남은 게 기적이죠. 태종이 양녕의 편을 들까 봐 일부러 그런 건지 어떤 건지 몰라도 아무튼 덕분에 충녕대군과 양녕대군은 사이가 극도로 나빠졌습니다.
어제 방송을 살짝 보니 효빈 김씨(이주은)이 화면에 등장하더군요. 아마도 왕실의 누군가가 효빈에게 원한을 품은 모양이에요. 그때쯤 궁중의 누군가가 임신을 하니 원경왕후(박진희)를 위로하기 위해 궁에 간 걸 수도 있고 궁중 여관(김미라)이 악에 바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효빈은 그때의 일을 쪼르르 일러버립니다. 덕분에 효빈과 민경 왕후 사이의 일은 조금 늦게 알려졌습니다. 그때 사무친(?) 원한을 계집종 삼덕(三德)이 기록하였고 그때 태어난 아이가 이비(裶)입니다. 조선왕조 실록에서 핏덩이를 괴롭혔느니 어쩌니 하면서 꽤나 세세하게 민씨 모자의 죄를 적습니다. 누군가의 협력없이는 공개 자체가 불가능한 내용이죠.
태조는 모두 12남 17녀(18남 19녀)를 낳았습니다. 그중에 첫째는 귀하고 둘째는 아니고 그런 게 아니라 자기 자식은 다 귀하게 여긴 것입니다. 왕손을 해친일도 당시에 엄청난 파장이 일어 민무질과 민무회는 일로 결국 처결(정확히는 민무구의 죄까지 거슬러 가지만 아무튼)을 당합니다. 어떻게 보면 양녕대군이 어떻게 했든 간에 태조는 민씨 형제들을 다였을지 모릅니다. 그 정도로 외척을 경계했다는 것인데 그러면서도 이화(이원발)의 형제들이나 정화 공주(貞和公主) 같은 사람들은 일부러 목숨을 끊지 않았던 것입니다. 뭔가 역모를 저지른 핏줄이라도 죽이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운 건지 진짜 반역을 저지른 사람들이 더 '나쁜 놈' 일 텐데 말아죠.
어쨌든 양녕대군 형제들은 그 뒤로도 크게 싸우게 됩니다. 막내 아들 종(褈)까지(아직 태어나지 않은 듯합니다) 불렀던 것으로 보아 나름 형제들 간의 설전이 벌어진 것만은 분명한 듯합니다. 실록에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세자(世子) 이제(李禔)·효령군(孝寧君) 이보(李𥙷)·충녕 군(忠寧君) ·작은 아들 종(褈)을 불러 형제간의 화목(和睦)의 도리를 효유(曉諭)하고, 말을 마치자 마침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대개 민씨(閔氏)가 일찍이 전제(剪除)할 뜻을 가졌던 데에 마음이 상하였던 까닭이다. 황희(黃喜)에게 이르기를, ' 뭐 고어라 정확한 뜻은 파악이 안 되지만 전제린 '악인이나 나쁜 세력을 잘라서 정리하다'란 뜻입니다.
들어오는 소식에 따르면 나중에 입궐하는 소헌왕후 역할에는 김비주라는 배우가 맡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소헌왕후가 등장하면 그때부터는 정말 태종의 시기는 거의 말군요. 그때는 이미 소헌왕후의 아버지 심온도 처형되었을 시기이니 태종의 이상한 숙청도 거의 끝나갈 때입니다. 그 시기를 거쳐만 소헌왕후와 원경왕후에겐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아참 묵묵히 양녕대군(이태리)과 충녕대군(이민기)은 계속 서로 경계하는 동안 조용히 지내는 줄 알았던 효령대군(정시훈)은 종사에 벼슬을 부탁한 일 때문에 쫓겨납니다(왜 그랬니 효령). 형제간의 경쟁을 할 때 나설 수 없었다고 보는 게 옳지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궁중의 이야기는 그렇게 태종 시기를 마지막으로 일단 정리됩니다(그러고 보니 어리는 결정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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