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에서 일어난 일은 보고도 못 본 척하라는 표현이 있죠. 작서의 변(灼鼠之變) 사건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한 일을 어떻게 남들이 아나 싶지만 곳곳에서 볼 사람은 많고 들을 사람도 많죠. 됩니다. 어떻게 봤지 싶은 곳에서 증언이 등장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곤 하죠. 어리(임수현)의 일을 발설하지 말라고 일러도 어디에선가 목격담이 등장합니다. 양녕(김태리)은 세자 자리에서 물러난 후 깜쪽같이(남들에게 감시는 당하는 상황) 사라진 일이 있는데 덕분의 양녕의 아내 숙빈 김씨와 장인 김한로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양녕대군 때문에 화가 난 김한로와 숙빈은 찾아도 보이지 않자 어리에게 화풀이를 했고 그때 어리는 자결을 합니다. 숙빈도 속이 터지고 김한로도 화가 날만 하고 - 어리만 불쌍한 노릇이었죠.
뭐 감시당하고 남들이 찾던 그날 양녕대군은 비파를 치며 나타납니다. 아무 일 없는 듯이 - 불쌍한 어리의 생사는 확인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양녕은 어리를 귀하게 여기지도 않았고 이제는 첩도 아니라서 갈 곳이 없어진 어리는 임신 해서 (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이는 낳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김한로 옆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맞아 죽든지 말든지 상관도 안 했던 것 같아요. 백성이 다 귀하다고 누가 그래요? 적어도 억울하다고 울던 어리의 목숨은 귀하지 않았던 게 분명합니다.
태종은 쫓껴나는 양녕이 뭐가 그리 안타까운지 잃어버린 건 없나 싶어 후궁의 살림살이까지 다 싸서 보냅니다. 뭐 세종이 왕위에 등극하고 난 이후에도 비슷한 일은 있어서 세종(충녕대군, 이민기)은 야단을 친 적이 있습니다. 세종 2년의 일이니 양위받은 지 얼마 안 된 후의 일입니다. 양녕대군은 모든 행사에서 소외되지 않고 여러 번 왕의 잔치 자리에 등장하고 때로는 같이 격구(擊毬)도 칩니다. 이 자리에는 세종과 함께 경녕군 같은 인물(그래 봬도 양녕은 경녕군의 제자입니다 - 글씨도 잘 쓰고 가족끼리는 그럭저럭 잘 지낸 듯)도 함께 하는데 뭐 경녕군은 한때 양녕대군을 찾으러 간 적이 있죠. 양녕은 어기 저기 도망 다니다 아차산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신이 헤지고 발이 나온 상태였습니다. 한마디로 거지꼴이었죠.
어딜 그렇게 헤매고 다닌 건지 - 어쨌든 돌아는 왔으니 상황은 동생들(내시들 경녕군, 효령대군)을 상왕에게 보내 맞이하게 합니다. 부끄러워 얼굴은 피하면서도 마주 보긴 한 모양이에요. 상왕(태종의 마지막 골치 덩어리가 된 양녕)이 된 태종은 그 무서운 왕의 자태를 잊은 것인지 울면서 뭐라고 합니다. '네가 도망했을 적에, 주상이 듣고 음식을 전폐하며 서러운 눈물이 그치지 아니했다. 너는 어찌 이 모양이냐. 너의 소행이 너무도 패악하나, 나는 특히 부자의 정으로써 가련하게 여기는 것이다.' 뭐 그렇게 설교 듣는 중에도 다 듣고 나서 회개하는 기색도 없이 여전히 혼자 잘 놀았다고 합니다. '천성(天性)의 고치기 어려운 것이 이와 같다.' - 본문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양녕대군의 기행같은 여러 행적들
아무리 군왕무치(灼鼠之變)라지만 아직까지 양녕대군은 군왕이 아닌 세자에 불과합니다. 분에 넘치는 태종의 장자로 대접받고 있어도 쥐도 새도 모르게 사건을 덮을 입장은 아닌 양녕대군이었죠. 양녕대군의 여러 기행 중에 아오방과 구종수가 가장 유명한 사건 중의 하나일 것 같습니다. 구종수는 영악하게도 외나무다리를 만들어서 밤마다 다리를 넘어가서 나쁜 짓을 일삼곤 했는데 어리 와의 일은 구종수와 어울릴 때 벌인 짓입니다. 구종수는 협박을 하고 어르며 어리를 끌어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구종수는 무리를 만들어 깡패 같은 일을 한 것 같은데 태종은 양녕이 저지른 그 일들을 다 덮어주거나 '꼬임'에 넘어가서 한 짓이라며 덮어줍니다. 구종수는 어떻게 세자와 인연이 닿았는지 몰라도 세자와의 인연이 끊이면 많은 걸 잃는 처지였습니다.
어리(於里)의 추문은 꽤 오래 갔는데 이 간통 사건은 나중에는 이숙번(정태우)의 무리도 연결됩니다. 영의정 유정현(임호) 그를 직접 심문하죠. 나중에는 구종수의 사건엔 심온 사건과도 관련이 있었고 이 문제로 조정이 발칵 뒤집어집니다. 사실 구종수는 세자에게 여자만 대주는 인물이 아니라 여러 여인들과 얽힌 엄청난 여성이었는지 알고 보니 초궁장(초궁장은 이방과의 후궁이란 말도 있습니다) 같은 인물도 어리와 알고 지내는 사이였습니다. 어리와 구종수의 문제는 꽤 오래 조선왕조에서 회자된 문제였죠.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문제 이후 다소 문란했다는 고려 왕조에 대한 평가는 많이 달라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때부터는 좀 '점잖아진' 조선 사회가 등장한 것입니다.
한 명의 첩도 거느리지 못하게 했던 당시 조선 사회의 분위기가 양녕대군에겐 싫었던 것일까요. 그렇게 여러 인물들과 관계를 가지던 양녕대군은 그런 분위기를 달라지게 하는 데는 일조한 게 틀림없습니다. 세자와 어울리던 여성들이 모두 몇인지는 몰라도 대충 10남 17녀라고 합니다. 어리같이 과거와 이력이 모두 적혀있는 인물도 있으니 초궁장(속칭 약방 기생이란 말도 있습니다), 정향, 봉지련, 칠점생 같은 사람들이 모두 첩으로 들어온 인물이었고 걔 중에는 이름도 안 알려지고 추문의 당사자가 된 인물들도 많습니다.
소문이 좋지 않고 어러 사람의 첩이었던 인물 중에 봉지련 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인물도 있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양녕대군과 어울렸다고 하는데 천출은 아니지만 집안이 어려워져 기생이 되었다고 하죠. 태종에게 두어 번 내쳐지기도 하고 뭐 그러지만 결국 돌아왔습니다. 불쌍한 어리의 팔자 - 일점홍(一點紅)이라 불리던 수많은 미인들 중에 사연 없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어리 결국 궁으로 돌아와서 첩으로 살며 종종 울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뒤로는 조용히 첩살이(?)를 했는데 양녕대군의 어떤 점에 반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일종의 스톡홀름 신드롬 상태였나 싶기도 하고 - 첩으로 들어왔는데 납치돼서 혼인하는 그런 상황이면 서글퍼서라도 울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튼 민무구 4형제에게 압슬형을 내리게 만든 아무튼 양녕대군 나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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