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사극의 장점은 실제 역사와 인물들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점입니다. 시대적 배경은 실제에서 모티브를 얻으면 그만이고 인물들은 창작하면 그만이니 사극 분위기를 내면서 훨씬 흥미로운 연출이 가능합니다. 대신 단점은 성공하면 '대박'이고 실패하면 본전도 건지지 못하는 허황된 이야기가 되버린다는 점이죠. KBS의 '성균관 스캔들'은 실제 역사에서 일부 소재를 끌고 오긴 했지만 달콤한 로맨스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최고의 판타지 로맨스가 됩니다. '해를 품은 달' 역시 같은 작가의 작품으로 기대를 한몸에 받았습니다.
'해를 품은 달'은 방영전부터 주연배우를 두고 말이 많았습니다. 주연 배우 김수현은 상당히 젊고 어린 이미지인데 여주인공 한가인이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고 기존 성공한 사극을 재탕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런 우려를 깨고 어제 첫방영에서 무려 18%의 시청률로 3개 방송사 중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수목 드라마 경쟁작인 '부탁해요, 캡틴'이나 '난폭한 로맨스'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수치였다고 하는군요. MBC로서도 이런 성공은 아주 간만입니다.
사극도 아닌 그렇다고 정통 멜로물도 아닌 판타지 로맨스, 이 드라마의 관점 포인트는 고증도 왜곡도 아닙니다. 이 드라마에서 시대적 배경의 역할은 캐릭터들의 제약과 한계를 주기 위한 것입니다. 절대로 거스를 수 없는 왕이 있고 그 왕을 사랑하는 여인이 있고 권력을 꿈꾸는 신하가 있고 그 때문에 주인공들은 괴로워하고 갈등합니다. 그러나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나 삼각관계는 현대물과 그리 다름이 없다는 뜻입니다. 가상의 임금 성조(안내상)와 대왕대비 윤씨(김영애)는 멜로물을 찍기 아주 좋은 밑바탕입니다.
거기다 MBC 드라마들은 유독 아역들이 출연하면 초반에 대히트를 한다는 징크스같은 것이 있습니다. '사극'은 아역들의 성공이 극의 전체 시청률을 결정한다고 할 만큼 프로급 아역들을 잘 활용해왔고 또 기대 만큼 성공을 거두곤 했습니다. 여주인공 허연우 역의 김유정이라면 남녀 팬을 고루 가진 '대박' 아역 스타입니다. 거기다 '성균관 스캔들' 4인방을 연상시키는 어린 이훤(여진구), 어린 양명(이민호), 어린 허염(윤시완), 어린 운(이원근) 등은 성인 못지 않은 내공을 가진 아역들로 벌써부터 눈도장을 찍은 팬들이 많습니다.
아역들은 성공적이지만 6회에서 결판난다?
'해를 품은 달(해품달)'의 첫회 반응은 생각 이상으로 뜨겁습니다. 김유정을 비롯한 아역들의 활약도 활약이지만 워낙 출연하는 배우들이 하나같이 베테랑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무녀 아리 역으로 신기들린 듯한 연기를 멋지게 해낸 장영남의 거열형은 최고의 장면이었다고 입을 모아 칭찬합니다. 허연우를 죽어서도 지키겠노라 다짐하는 아리의 예언을 시작으로 허연우와 이훤, 양명의 엇갈린 사랑이 시작됩니다. 궁에는 무시무시한 세도가 출신의 대왕대비 윤씨가 자리잡고 있고 그 가문의 윤대형(김응수)는 권력에 목마른 듯 모든 걸 가지려 합니다.
이외에도 도무녀 장녹영 역의 전미선, 성조대왕 역의 안내상, 대비 한씨 역의 김선경, 정경부인 신씨 양미경, 허영재 역의 선우재덕, 형선 역의 정은표, 희빈 박씨 역의 김예령 등 대부분 연기라면 빠지지 않는 배우들이 젊은 주인공들을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젊은 주인공들이 로맨틱하고 애틋한 사랑과 슬픔을 연기할 배우들이라면 이들 '베테랑'들은 그들의 가벼움을 받쳐주고 극의 심각한 분위기를 이끌어갈 사람들입니다. 즉, 전체적으로 드라마를 완성시킬 구성요소는 꼼꼼하게 잘 채워준 셈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출연진들 중 몇명은 매번 비슷한 배역을 맡던 사람들이란 점입니다. 즉 기존 이미지의 반복 연출입니다. 김응수는 이미 '추노' 등에서 권력을 노리는 재상 역을 맡았던 적이 있는데 이번엔 더욱 탐욕스러워졌다는 점이 달라진 셈인듯 합니다. 김영애는 '로열 패밀리'의 공순호 회장과 상당히 유사한 권력자이지만 이번엔 유순한 궁중 여인 말투를 쓴다는 점이 약간 다릅니다. 안내상은 '한성별곡'의 예민해보이는 정조 임금과 흡사한 느낌을 줍니다.
조연급 배우들 중에 장영남처럼 신선한 느낌을 주는 배역은 '김선경'과 희빈 역의 '김예령' 정도인데 그동안 TV 안에서 카리스마 있는 악역을 자주 맡았던 김선경의 사극 도전은 상당히 성공적인 듯 합니다. 온화한 성품이지만 때로 아들 이훤을 위해 대왕대비 윤씨와 맞설 수 있는 강단있는 대비로 거듭날 지 기대가 가더군요. 전미선, 김영애, 안내상은 드라마 '로열패밀리'에서 연출자 김도훈과 함께 열연했던 배우들인데 이번에도 함께했습니다. 드라마 연출을 맡은 김도훈 PD도 '환생(2005)'같은 드라마로 깊은 인상을 남긴 제작자 중 하나입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꽃같은 아역들의 출연은 6회까지라고 합니다. 아역들이 워낙 남달라 전체 20부작의 첫파트는 무리없이 성공할 수 있을 것같습니다. 특히 어린 양명역의 이민호는 '순풍산부인과'의 정배이고 이훤 역의 여진구는 '뿌리깊은 나무'에서 '중간 똘복' 역을 맡았던, 김유정 만큼은 아니라도 나름 유명한 아역들이죠. 성인 배우들이 연기할 이훤, 허연우, 양명의 삼각관계는 아역들이 완성해놓을 것입니다. 문제는 팬들이 성인 이훤 역의 김수현과 나이차이가 난다며 우려하는 한가인의 등장입니다.
배우 한가인도 동안이고 충분히 미인이지만 '해를 품은 달'이 아니라 '조카를 품은 이모'라는 평까지 받곤 하지요. 원작을 모르기 때문에 그녀가 연기할 '허연우'가 얼마나 내공이 필요한 역할인지 모릅니다만 분명 '나이'가 연기자의 필수 조건은 아닙니다. 대신 탁월한 연기력으로 역할을 커버하고 드라마의 분위기를 장악해야 팬들의 그 걱정을 씻어낼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그 만큼 강렬하고 인상적인 등장으로 드라마를 휘어잡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한가인의 최대 난관이 아닐까 싶습니다. 뻔하고 공감가지 않는 사랑타령이 될 것이냐 멋진 로맨스 판타지 사극이 될 것이냐. 한가인의 어깨가 무거울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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