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빛과 그림자

빛과그림자, 재일교포와 슬롯머신 그 정치자금은 누가 다 먹었을까

Shain 2012. 4. 25.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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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과 국가 간의 지원 또는 기업과 한 국가 간의 투자에 있어 '감정'이 개입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호적 차원에서 혹은 인도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후원이나 빈민 구제도 때로는 국가 이미지 상승을 위한 연출인 경우가 있습니다. 개인들 간의 일이라면 몰라도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단체의 후원을 한 개인의 사적인 감정으로 처리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지원을 했다면 가시적인 효과가 있어야 하고 투자를 했다면 이익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6.25 이후 산업화를 꿈꾸던 우리 나라는 투자할 자본과 기술이 매우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전쟁고아가 많고 배곯는 사람들이 많은 '불쌍한 나라'라는 이유로 자본을 끌어들이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투자가치가 있다 해도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았을 것은 당연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구요. 60년대 정부에서 산업화의 밑거름이 된 자본과 인력으로 끌어들인 소위 '애국자본' 중 많은 부분은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동포들이 제공한 것들이었습니다. 투자에 감정이 개입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지만 어쩔 수 없이 떠나야했던 조국, 그 조국의 발전을 위해 투자한다는 자부심은 많은 사람들을 움직였습니다. 반대로 일부 재일동포들은 한국에 기업을 세워 장기적으론 기업에 큰 부를 이루기 했습니다.

차수혁이나 장철환도 꼼짝하지 못하는 재일교포 김풍길.

재일교포가 설립한 코오롱, 롯데같은 기업은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 뚜렷한 기업 외에 당시 재일교포들이 한국에 투자한 돈이 전부 얼마인지 정확히 수치는 가늠할 수 없습니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을 통한 투자 액수만 해도 대략 3조 2600억원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그들의 '투자'는 단순히 이익 만을 위한 것이라고 하기엔 많이 애틋했습니다. 88서울올림픽 때도 40만 재일동포가 무려 120억엔의 성금을 희사했다고 할 정도니 모국을 위한 그들의 정성은 과거 유대인들의 애국심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그 외에도 수재의연금을 비롯한 각종 성금을 꼬박꼬박 한국으로 보내오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 등장한 김풍길(백일섭)은 재일동포 사업가로 파친코(슬롯머신) 사업으로 큰 돈을 모은 인물입니다. 파친코 사업을 허가받기 위해 한국방문한 김풍길은 주인공 강기태(안재욱)를 아들처럼 여긴다고 합니다. 조태수(김뢰하)와 기태는 일본에 밀항해 김풍길의 주먹 노릇을 했습니다. 엄청난 자본을 들고 80년대 한국을 찾은 김풍길은 강기태에게 60년대에 장철환(전광렬)이 한국에 귀국한 아버지 재산을 빼앗고 일본으로 되돌려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정치인들과 재일동포, 과연 무슨 관계가 있었을까요.



닥치는대로 긁어모은 정치자금, 재일교포의 돈까지

1996년, 검찰은 5공화국 전두환이 모두 7천억원의 돈을 정치자금 명목으로 모았다고 발표했습니다. 7년 재임 기간 동안 일년에 천억원씩 긁어모은 것입니다. 극중 유채영(손담비)과 강명희(신다은)이 연출하는 옷로비를 비롯한, 각종 굵직한 로비 사건과 뇌물 사건에 집권층 친인척이 연루되지 않은 것이 없고 기업들을 쥐어짜 긁어모은 돈이 많으니 실제 액수는 그것 보다 더 많았을 지도 모릅니다. '빛과 그림자'에서 차수혁(이필모)가 정치자금 때문에 국보위 위원장 정장군의 호출을 받고 신군부가 중앙정보부의 예산까지 끌어다 쓸 지경이니 '돈줄'이 급하기는 급했던 모양입니다.

드라마에서도 언급된대로 5공화국의 주축이 된 신군부는 많은 면에서 5.16 군사정권을 그대로 모방했는데 심지어는 정치자금 모집 수단까지도 유사한 방법을 이용했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4대 의혹 사건 즉, 새나라 자동차 사건, 파친코 사건, 워커힐 사건, 증권 조작 사건 등 각종 이권에 개입해 많은 액수의 정치자금을 긁어모읍니다. 집권 18년 동안 각종 국가 사업에서 '리베이트'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는 일본 쪽에서 밝혀진 자료로 그 금액이 상당합니다. 5공화국 신군부는 압력으로 김종필, 김대중, 김영삼의 발을 묶어놓고 막대한 자금으로 여당, 야당 창당을 지시합니다. 일명 호텔 창당입니다.

김풍길의 아버지는 귀국하려다 돈을 빼앗기고 출국당한다. 고생해서 모은 돈을 앗아간 장철환.

60년대까지는 남한 보다는 북한의 경제적 상황이 풍족한 편이었습니다. 재일교포의 절대 다수가 북한 출신이 아닌 남한 출신이었음에도 조총련의 홍보활동과 일본과 북한사이 이루어진 모종의 협약에 의해 많은 재일동포들이 이념과 상관없이 북송되었습니다. 광복 이후 남한은 일자리도 충분치 않고 또 귀국할시 1천엔 이상 재산을 반입할 수 없도록 제약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재일동포들이 바로 귀국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다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많은 교포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국내로 유입시키기 시작했고 정부는 그 재일교포 재산 유입과정에서 또 정치자금을 마련합니다.

'재일교포의 재산'으로 위장해 불법으로 들여온 천여대의 자동차를 그 두 배 가격에 팔기도 하고 마찬가지로 회전식 당구대를 몰래 들여와 영업하려다 적발됩니다. 당시 회전식 당구대는 허가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기업, 커미션, 뇌물, 공공시설, 재일교포 등 가리지 않고 정치자금을 모집한 박정희 정부. 그 수단을 그대로 답습한 신군부는 60년대의 선례를 기반으로 합법적으로 '슬롯머신' 사업을 허가해주고 사업 주도권을 잡고 정치자금을 받고자 한 것입니다. 국내 슬롯업계의 대부 정덕진 형제에게서 정치권으로 흘러간 돈은 대략 이백억 정도라고 합니다.

슬롯머신 사업은 '땅짚고 돈먹기' 정치권과 장철환 모두가 솔깃한다.

구슬을 이용하는 일본식 '파친코'와 한국의 슬롯머신은 약간 다릅니다. 80년 2월 이전 한국에서 허가된 슬롯머신 사업장은 40개였으나 5공 정권에선 190여개, 6공 정권에선 148개로 몇배 이상 늘어납니다. 실제 80년대 당시 호텔 등을 중심으로 설치된 슬롯머신 업소는 엄청난 호황을 누리며 돈을 긁어모았습니다. 업체 주변엔 자연스럽게 폭력배들이 모여들고 승부 조작을 비롯한 각종 불법이 자행되었지만 검사 책임을 맡은 경찰, 안기부 정치인 등에 뇌물을 주어 처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93년 정덕진의 비리가 밝혀지며 '슬롯머신 사건'으로 비화된 것입니다.

재일교포 파친코 사업자가 정치권에 뇌물을 주었다는 주장이 재기된 적도 있습니다. 1994년 재일교포 나카야마 야스지(한국이름 박영수)는 89년부터 3년간 정관계 인사들에게 50억엔(당시 4백억원 쯤)을 송금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경륜, 경정 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로비자금이었다는 것입니다. 자금의 제공처를 정확히 밝히지 않은 나카야마 야스지는 자신의 부인이 5공화국 대통령과 친척관계인 점을 이용해 로비했다고 했습니다. 당시 정부 관계자와 경륜사업본부는 관련성을 부인했지만 한때 '박영수'가 한국을 다녀간 것은 사실입니다.

권력 주변에 연루되는 사람들. 깡패와 옷로비 사건의 디자이너.

한국 정부는 재일교포들을 경제적으로 이용하기만 한 측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단지 모국이라는 이유로 사업을 하러 왔다 재산을 모두 날린 재일교포도 있고 일부 교포들 중에는 조작된 간첩혐의로 잡혀가 옥살이를 하거나 돈을 빼앗긴 사람도 있었습니다. 2007년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조사한 재일교포 관련 간첩사건 4건 중 3건이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 시대 재일교포 간첩 사건은 모두 73건인데 대부분은 자료가 미비해 조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드라마 속 김풍길이 장철환이 나의 원수라며 흥미롭게 이야기하지만 한국에 투자하거나 돈을 대준 대부분의 재일동포들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어렵게 재산을 모은 사람들입니다. 마땅히 장사할 것이 없어 파친코 사업을 했고 그 사업이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듣고 있자면 가슴아픈 성공신화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모은 돈을 검은 돈으로 빼돌리고 혹은 그들에게 커미션이나 리베이트를 요구했다는 게 약간은 부끄럽기도 하지요.

돈과 권력 주변에서 휘둘리는 사람들.

간첩조작 사건은 돈줄 때만 같은 한국인이고 악용할 때는 일본인이라는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고생고생하며 모은 자본까지 뜯어 정치자금을 조성한 사람들. 강기태와 조태수가 시원시원하게 처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치자금'은 어찌 보면 80년대 역사에서 가장 추악한 장면입니다. 일억, 이억도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가도 만질 수 없는 수백억, 수천억의 돈을 주무르며 돈과 로비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회를 만든 사람들. 강기태는 그들 안에서 자신의 사랑과 꿈을 지킬 수 있을까요. 조폭과 도박, 강기태가 진흙탕에 제대로 빠진 것같단 생각이 듭니다.



(43회) * 장철환이 유채영의 사교클럽에서 종업원과 대화를 나눌 때 흐른 곡은 'A Day in the Life of a Fool'입니다. 원곡은 그 유명한 'Manhã de Carnaval'으로 영어로 번역하면 'Morning of Carnival' 이란 뜻입니다. 프랭크 시나트라를 비롯한 많은 가수들이 이 곡을 영역하여 부르기도 했지만, 이 음악은 누가 뭐래도 마르셀 카뮈 감독의 영화 '흑인 오르페(Orfeu Negro, Black Orpheus, 1959)'의 곡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기타 반주에 맞춰 부른 노래가 참 몽환적이고 아름다웠던 곡이기도 합니다.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이 영화는 카니발을 배경으로 이뤄지는 사랑이야기입니다.

* 새서울나이트클럽에서 홍진영이 부른 곡은 계은숙의 '노래하며 춤추며'(1980)방미의 '날보러와요'(1980)입니다. 계은숙은 한국에서 활동하다 일본으로 건너가 활발한 활동을 한 가수로 유명하고 MBC 코미디언 출신인 방미는 닐 세데타(Neil Sedaka) 원곡의 One way ticket을 당시 Eruption와 Boney M. 등이 리메이크하여 인기를 끌자 한국어로 번안해 불렀습니다. 방미는 현재 사업가로 큰 돈을 벌고 있다고 합니다.

'노래하며 춤추며'의 계은숙, '내가'의 김학래, 임철우.

* 유채영이 홀로 피아노로 치고 있던 곡은 배인숙의 노래로 유명한 '누구라도 그러하듯이'(1979)입니다. 이 곡 역시 번안곡으로
원곡은 프랑스의 Alain Barriere가 부른 'Un Poete(시인)'입니다. 1968년 데뷰한 펄시스터즈 멤버로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과 결혼했던 배인순의 쌍둥이기도 한 배인숙은 원곡 보다 더 낫다는 평가를 받곤하는 이 번안곡을 자신의 대표곡으로 남깁니다. 같은 멜로디임에도 원곡 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는 건 계절을 연상시키는 듯한, 아름답게 번안된 가사 때문이겠지요.

* 차수혁과 정혜가 카페에서 듣던 곡은 Good bye yellow brick road(1973)로 영국 출신 싱어송라이터인 Elton John의 노래. 엘튼 존의 곡 중 가장 인기를 끈 곡 중 하나입니다. 늘 피아노를 치며 밴드와 함께 하는 엘튼존은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1970년 미국으로 건너가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소설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따라 걷던 'Yellow brick road(노란길)'에서 착안한 이 노래는 도시에 염증을 느껴 자연과 벗삼아 살아가고 싶다는 내용입니다.

* 강명희와 순양댁이 간 다방에서 들리던 곡은 김학래, 임철우의 '내가'(1981)입니다. 두 사람은 1979년 열린 MBC 제 3회 대학가요제에서 '내가'라는 곡으로 대상을 탔습니다. 당시 명지대 재학생이었던 두 사람은 김학래 작사작곡의 이 노래로 큰 인기를 끌었지만 가수활동을 계속한 것은 김학래입니다. 79년 대학가요제 사회를 본 사람은 지금은 연예기획사 사장으로 더 유명한 이수만, 배우 임예진이었습니다. 김학래는 88년경 스캔들로 인해 가수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44회) * 조태수와 이정자가 룸에서 투닥거리며 듣던 노래는 레이프 가렛(Leif Garrett)의 'I was made for dancin'(1979)으로 내한공연을 가졌던 대표적인 팝가수 중 한명입니다. 어린 나이에 개구장이같은 앳된 외모로 활발하게 공연을 펼치곤 하던 레이프 가렛은 요즘엔 흔하디 흔한 10대 미소년 가수들이지만 당시에는 파격적인 아이돌 가수였습니다. 80년대는 가요 보다는 팝을 즐겨듣던 젊은이들이 많았는데 그 분위기에 일조한 가수이기도 합니다. 1980년 6월 22일 내한공연을 가진 레이프 가렛은 공연장을 열기로 가득 메웠음은 물론 팬들이 졸도하고 속옷을 집어던지고 벗어 흔드는 등 당시 사회적인 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2010년경 한번 더 한국을 찾았지만 그간 많이 망가진 모습을 보였던 까닭인지 큰 반응을 얻진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마고 클럽에서 김부장, 안도성 검사, 차수혁이 듣던 곡은 너무도 유명한 베사메무초(Bésame mucho)입니다. 영어로는 'Kiss me much'란 뜻으로 1941년 멕시코 출신 피아니스트 콘수엘로 벨라스케스가 작곡한 곡입니다. 1943년 영어로 번안한 곡이 발표되어 더욱 더 유명세를 탔고 여러 가수들에게 리바이벌 되어 민요처럼 불려지고 있습니다. 어떤 가수가 불러도 그 감성이 약해지는 것 같지 않지만 안드레아 보첼리의 목소리로 추천해봅니다.

Leif Garrett과 Robert Palmer

* 빅토리아에서 김풍길과 빛나라 기획 사람들 앞에서 이정자가 부른 곡은 남진의 '가슴 아프게'(1967)입니다. 당시 인기작곡자였던 박춘석의 곡으로 이 노래를 남진의 라이벌인 나훈아가 녹음하기도 했습니다. 떠나간 연락선이라는 가사가 남다르게 들리지요. 연락선은 가까운 바다나 호수 등을 오가면서 사람을 실어나르던 배입니다. 멀게는 부산항과 시모노세키항을 오가던 연락선되 있겠죠. 타향살이 하는 재외국민들이나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헤어지는 사람들에게는 '연락선'의 의미가 다양했겠지요. 그래서 그런지 당시 가요 가사들 중엔 '연락선'이나 '항구'가 등장하는 노래가 많습니다.

* 빅토리아 나이트에서 이정자와 홍수봉이 대기실에서 기다릴 때 흘러나온 팝은 Robert Palmer의 Bad Case Of Loving You(1978)입니다. 'Hot summer night~'로 시작하는 신나는 팝음악으로 '당신을 사랑하는 나쁜 병'에 걸려버렸어요'란 가사가 익살스럽게 들리기도 합니다. 박력있고 매력적인 보컬과 흥겨운 연주가 매력인 이 노래는 로버트 팔머를 세계적으로 널리 알린 대표곡이기도 합니다. 2003년 54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 아까운 뮤지션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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