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빛과 그림자

빛과그림자, 칼라 TV 보급과 쇼무대의 몰락 본격적인 대중문화의 시대로

Shain 2012. 5. 6.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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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팝음악의 수퍼스타 보니엠(Boney M)이 지난 4월 내한공연을 가졌습니다. 전세계적으로 히트한 그들의 디스코는 80년대 후반까지도 꾸준히 인기를 끌어 30대 이상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쯤 들어보았음직한 유명한 곡들이 많습니다. 보니엠은 탈북자 북송 반대 촛불시위에 동참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내한공연 출연료 전액을 탈북자 강제 북송 반대 집회장에 기부한 그들은 자신들의 노래 철학이 탈북자 인권 문제와 맞물려 있다며 북송 북한이들에게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보니엠의 인기 히트곡은 우리 나라에서 자주 번안되어 불리기도 했습니다. 세계 10대 히트곡 중 하나라는 'Rivers Of Babylon'은 들고양이의 '강변의 추억'으로 'One way Ticket'은 방미의 '날보러 와요' 등으로 바뀌었습니다. 80년대 국내 팝인기에 일조한 그룹이기도 합니다. 아직까지 드라마 '빛과 그림자' 속 배경이 1980년에 머물러 있어 다양한 80년대 초반 음악들이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디스코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발전하던 그 시대 팝은 가끔씩 TV에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대마초 파동 이후 주춤하던 가요계도 팝의 유입과 함께 활기를 찾곤 했지요.

보니엠의 'Sunny'를 부른 유채영은 고급 사교클럽을 운영중이다.

50회로 종영되기로 했던 드라마가 14회 늘어난 까닭인지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많이 헐거워진 느낌입니다. 작가를 비롯한 제작진이 모아둔 자료가 고갈된 것인지 아니면 시대적, 정치적 사건을 자세히 묘사하지 말라는 모종의 압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주인공들의 사랑이야기에 비해 시대적 묘사는 많은 부분 섬세함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지난주 방영분은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에 많이 치중해 일부 팬들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드라마는 몇몇 장면에서 5, 6공화국 최대 스캔들 중 하나인 슬롯머신 사건이나 노드롭 사건에 대한 미끼만 몇가지 뿌려놓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80년대는 소위 '3S 정책'이라 불리던 대중문화가 장려되던 시대입니다. 1983년 한 언론은 군대가 시민들을 학살한 무시무시한 시대상에도 불구하고 프로 스포츠를 비롯한 각종 오락거리가 인기를 끄는 현상을 보며 스포츠(Sports), 스크린(Screen), 섹스(Sex) 또는 스피드(Speed)에 지배받는 현대사회라 지적합니다. 사회적 관심을 엔터테인먼트에 돌리는, 일종의 '우민화 정책'이면서도 대중문화가 폭발적으로 터저나온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의 힘으로 멈출 수 없는 기차에 올라탄 사람들 처럼 주인공들 역시 시대의 흐름에 몸을 맡깁니다.

최고 인기배우 이정혜는 국보위 고위간부에게 납치당한다.

젊은 여성들과 함께 흥청망청 술을 마시는 룸살롱과 한껏 폼을 내며 소수의 사람들끼리 비밀스런 고급 정보를 주고받던 사교클럽. 젊은 사람들이 유쾌하게 술을 마시던 나이트 클럽에서 시간은 그렇게 흘러갑니다. 점점 더 괴물이 되어가는 차수혁(이필모)과 돈 밖에 모르는 탐욕스런 브로커 장철환(전광렬), 재일교포 재벌이라는 엄청난 뒷배를 갖게 된 강기태(안재욱)와 정치인과 연예계를 양면의 어두움을 몸소 느끼고 있는 이정혜(남상미), 여전히 돈과 권력의 단맛에서 벗어나지 못한 유채영(손담비) 등 이야기는 점점 더 흥미로워지고 있습니다.



어두운 정치의 그늘을 감춰준 칼라 TV

1992년 4월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은 제 14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합니다. 재계의 거물이자 입지전적인 전설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그룹 '현대'를 일궈낸 장본인이 무엇이 아쉬워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성공한 그가 정치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을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했지만 결과는 실패하고 말았지요. 공식적으로 밝힌 故정주영 회장의 출마 이유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가 정치인들의 횡포가 더럽고 치사해 직접 권력을 잡고 싶어한 게 아니겠느냐 입을 모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마음먹은 일은 뭐든지 해내고 돈이라면 남부럽지 않은 기업 회장이 대통령 출마를 결심할 만큼 괴롭힘을 당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참기 힘든 모욕을 겪거나 자존심을 다쳤던 것일까요. 노회장의 속마음은 알 수 없어도 확실한 건 80년대 정치권이 상당히 많은 양의 돈을 기업들에게 요구했으며 정권이 물러난 뒤에는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몇몇 기업이 청문회 자리에 불려나가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명패를 던진 것으로 유명해진 그 때, 88년 5공 청문회에서 정주영 회장은 '힘있는 사람에게 괴로움 당하지 않으려 돈 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대기업을 상대로 정치자금을 뜯어내는 차수혁과 안도성.

80년대 정권을 잡은 그들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하지 않으면 기업을 빼앗길 수 있다는 건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습니다. 국제그룹은 부실경영을 이유로 1984년 와해되고 그룹 경영자는 일선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그들이 친족 중심의 방만한 경영을 했기 때문이라 했으나 속사정은 권력이 정권에 밉보였기 때문이라 합니다. 실제 국제그룹이 족벌 경영을 하고 그룹의 투자 다각화로 많은 영역에 사업을 확장한 건 사실이었으나 이는 전형적인 80년대 대기업들의 고질적인 문제로서 국제그룹 보다 상황이 좋지 않은 기업은 얼마든지 있었다는 것입니다.

'왕자표 고무신'을 성공시키는 등 남다른 사업감각을 가진 국제그룹의 양정모 회장은 정치권의 강제로 고스란히 모든 것을 빼앗기면서도 어떻게든 기업이 잘 경영되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물러났습니다. 당시 5공 핵심인사들은 '군기가 빠진 국제 그룹을 날려버렸다'고 공공연히 발언하고 다닐 정도였다고 합니다. 정권이 바뀌고 대법원 판결로 기업 강탈의 부당함은 인정받았어도 기업 반환도 실패하고 그룹 재건은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결국 재계 7위의 기업이 한순간에 공중분해되는 불운을 겪었던 기업인 양정모는 2009년 사망했습니다.
 

칼라 TV의 등장으로 능력있는 제작사만 살아남을 거라는 강기태.

드라마 속에서는 아직까지 국제그룹이나 현대그룹 또는 그들의 비자금이 투여된 일해재단 등이 본격적으로 등장하지 않고 또 일부 언급만 된 수준입니다만 'K-공작' 계획의 일환으로 언론을 통제하던 정권은 이런 억울한 '사연'을 들키지 않고 정치적인 야심을 실현시킬 수 있었습니다. 겉보기엔 평화로운 개발도상국이었던 대한민국. 1980년 칼라TV 판매가 공식 허용되고 12월 1일엔 본격적으로 칼라 방송이 송출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던 쇼와 드라마는 더욱 화려지고 많은 사람들이 안방에서 오락거리를 즐길 수 있게 됩니다.


송미진(이휘향) 사장이 칼라 TV의 등장으로 영화계가 타격을 입는 것 아니냐 걱정했듯 80년대 영화계는 바뀐 영화법과 자본 부족으로 곤란을 겪게 됩니다. 쇼무대를 겸하며 운영되던 극장 대부분은 낙후된 시설 때문에 문을 닫기 시작했고 일년에 일정 편수 이상 국산 영화를 제작해야 외국 영화 배급권을 준다던 영화법이 자유 제작형식으로 바뀌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위기이지만 극중 강기태의 말대로 영화계는 새로운 도전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TV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을 보여주는 제작사 만이 살아남는다는 뜻입니다. 80년중반에는 소위 '대작' 한국 영화들도 제작되기 시작합니다.

쇼무대의 몰락과 칼라 TV의 등장. 그 변화의 시작.

반면 신정구(성지루)와 노상택(안길강)같은 쇼단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펼쳐지던 극장쇼는 호텔에서 열리는 디너쇼, 야간 업소나 밤무대를 중심으로 그 명맥이 유지되었고 개인 리사이틀이나 콘서트로 형태가 변화되어 갑니다. 어찌 보면 순양극장 오프닝쇼에서 보여준 유채영의 공연은 70년대를 마무리하는 공연인 셈이 되겠네요. TV가 화려하게 반짝일수록 정치권의 암울함과 부정 부패는 점점 더 그 덩치가 커져갔지만 국민들이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가 늘어난 그 시대. 시대의 '빛과 그림자'는 영원히 그렇게 함께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45회) * 노상택과 신정구가 있는 녹음실에서 가수들(50키로)이 부른 노래는 '사랑의 진실'(1973)입니다. 임창제와 이수영이라는 두 멤버로 구성된 어니언스가 부른 노래였죠. 극중 신정구와 노상택의 말처럼 어니언스의 이수영은 상당한 미남형 얼굴이었고 호남형 임창제는 보는 사람들을 빠져들게 만드는 남다른 입심을 자랑하는, 완벽한 듀오였했습니다. 동시대에 활약하던 '투에이스'의 오승근 역시 잘생긴 타입이었습니다. 72년 TBC 방송국에서 개최한 신인 공개오디션에서 1위를 차지했고, 73년 데뷰 앨범에서 '사랑의 진실'을 비롯한 다수의 곡이 히트하면서 어니언스는 인기가수가 됩니다. 데뷰 앨범에 실린 곡들은 발표 당시에는 임창제의 자작곡이라 기록되었지만 실제는 임창제와 친하던 가수 故김정호가 만든 곡들이었다고 합니다. 한때는 여성멤버도 있었지만 그녀가 결혼하면서 결별하고 두 남성 중심의 포크 듀오로 활발하게 활약하게 됩니다.

어니언스(이수영, 임창제), 로버타 플랙.

* 클럽마고에서 순애, 유채영이 듣던 노래는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1973)으로 로버타 플랙이 'Lori Liebrman'의 원곡을 재발표하면서 유명해진 곡입니다. 원곡과 아주 다른 느낌으로 재탄생해서 전세계적인 히트곡이 되었죠. 70년대 초반 활발한 활동을 이어간 로버타 플랙의 대표곡이기도 합니다. 이 노래는 가수 돈 맥클레인(Don Mclean)과 관련이 있습니다. 돈 맥클레인은 화가 반고흐에게 감명을 받아 빈센트(Vincent)를 만들었고 돈 맥클레인의 공연을 보고온 Lori Lieberman이 느낀 감동을 작곡자가 노래로 표현했다고 하지요. 그 노래를 R&B의 명곡으로 표현해낸 사람은 로버타 플랙이니 뮤지션들의 감성 도미노는 놀랍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빅토리아 대기실에서 조태수가 나타났을 때 흐른 곡은 방미의 '날 보러 와요'(1980)입니다. MBC 코미디언이던 방미는 70년대 후반 히트한 보니엠의 '원 웨이 티켓(One way ticket)'을 번안해 앨범으로 발표합니다. 보니엠은 닐세다카의 원곡을 디스코 풍으로 발표해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 빅토리아 무대에서 홍진영이 부른 노래 나미의 '미운정 고운정'(1979)입니다. 미군부대 출신의 나미가 '해피돌즈' 멤버로 활약하다 79년 솔로 앨범을 냈고 그 앨범에 실려 있던 곡이 '미운정 고운정'과 '영원한 친구'입니다. 전에도 설명했듯 나미의 데뷰 앨범은 트로트면서도 밴드와 함께 작업한 독특한 분위기의 작품이었습니다. '나미와 머슴아들'이란 앨범 표지가 눈길을 끌죠. 그후 나미는 81년 삼호기획의 도움을 받으면서 현재 남편인 최봉호씨와 인연을 맺게 됩니다. 전에도 포스팅했듯 그 최봉호씨가 강기태의 실존 모델이라 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 룸에서 양태성, 노상택, 허문도가 함께 있을 때 흐른 곡은 'Surfin' USA'(1977)로 극중 나온 곡은 레이프 가렛이 부른 버전입니다. 원곡은 1963년 Beach Boys가 발표했던 곡이지만 당시 큰 인기를 끌던 레이프 가렛이 리메이크합니다. 강렬한 태양과 거친 파도, 그 파도를 넘나드는 스포츠 서핑.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미국 서부 해안을 중심으로 서핑이 대표적인 스포츠의 하나로 자리잡자 거친 파도와 서핑을 표현하는 음악이 인기를 끌게 됩니다. 'Surfin' USA'는 1960년대부터 발전한 대표적인 '서프 뮤직(Surf Music' 중 하나입니다.

Johnny Mathis와 Mamas & the Papas.

* 순애와 유채영이 마고클럽에서 대화할 때 흐른 곡은 'Unforgettable'(1951)입니다. Irving Gordon이 만든 이 노래는 냇 킹 콜의 대표곡 중 하나이기도 하죠. 90년대에 냇 킹 콜의 딸인 나탈리 콜이 아버지와 듀엣으로 부른 것처럼 편집해 재발매하기도 했습니다. 이 곡 역시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한 고전 중의 고전입니다.

* 기타와 유채영이 클럽 마고에서 듣던 노래는 Johnny Mathis의 My Funny Valentine(1959)입니다. 'My Funny Valentine' 역시 많은 아티스트에 의해 리메이크되는 대표적인 곡 중 하나로 원곡은 1937년 뮤지컬 'Babes in Arms' 중 한 곡입니다. 당시 최고 브로드웨이 스타였던 미키 루니, 주디 갈란드 등이 공연한 이 뮤지컬도 인기작이었습니다. 'My Funny Valentine'은 그 뒤 쳇 베이커, 프랭크 시나트라, 마일 데이비스 를 비롯한 여러 가수들이 애창하는 노래가 됩니다.

* 클럽 마고에서 유채영과 신정구가 대화할 때 흐른 곡은 'Dream a Little Dream of Me'(1931)입니다. 원곡은 Ozzie Nelson과 그 오케스트라가 녹음했다지만 한국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버전은 아무래도 Mamas & the Papas가 1968년 발표한 곡과 맥 라이언 주연의 영화 'French Kiss(1995)에서 OST로 이용된 'The Beautiful South' 버전이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누가 불러도 아름답고 달콤한 가사 때문에 호소력있는 노래이기도 하죠.

(46회) * 순양극장 '숙향전' 개봉 오프닝쇼에서 댄서들이 춤출 때 흐르던 음악은 Glenn Miller의 In The Mood(1939)입니다. 대규모 재즈나 댄스 음악 악단을 빅밴드라 부르는데 대표적인 빅밴드 장르의 곡으로 뮤영합니다.

* 유채영이 순양극장에서 부른 노래는 Boney M의 'Sunny'(1976)입니다. 원곡은 Bobby Hebb이 발표한 'Sunny'(1966)입니다. 보니엠은 의외로 많은 곡을 리메이크해서 불렀습니다. 그 어떤 노래라도 보니엠의 경쾌한 목소리로 재탄생하면 최고 히트곡이 되는가 봅니다. 한국에서는 얼마전 개봉한 영화 때문에 이 노래가 인기를 끌기도 했지요.

Bobby Hebb과 김세환, 트윈폴리오(윤형주, 송창식)

* 보리수 다방에서 순양댁과 강명희가 함께 듣던 곡은 계은숙의 '기다리는 여심'(1980)입니다. 허스키한 목소리의 가수 계은숙은 '노래하며 춤추며'와 이 곡을 히트시키고 그해 MBC 10대 가수가요제 여자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합니다. 계은숙은 80년대 중반까지 원미경 등과 더불어 출연금지 연예인이었으나 84년 해제되고 일본에서 활동하다 귀국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출연금지 대상자들은 80년 9월 사회정화차원, 방송사의 자율 출연금지, 요정출입설 등 언론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고 적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뚜렷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최후를 목격한 심수봉도 당시 출연금지 대상이었습니다.

* 대기실에서 홍수봉, 조태수, 지혜, 양동철이 함께 듣던 곡은 '떠나야할 그 사람'(1969)입니다. 펄시스터즈와 김추자, 트윈폴리오, 신중현이 각각 불렀습니다. 신중현의 노래는 여러 가수들이 리메이크하고 싶은 대표곡이라고 할 만큼 인기가 있었던 것같습니다(떠나야할 그 사람 잊지못할 그대여 / 하고싶은 그 말을 다 못하고 헤어져 / 사무친 이 가슴 나혼자 나혼자서 / 숨길수 없어요 숨길수 없어요 / 오~ 붉은태양 변함없이 뜨겁게 타고 / 푸른 하늘엔 흰구름도 흐르는데 / 보내야할 내 마음 잊어야 할 내 마음 / 맺지못할 그 사람 눈물만이 가득해 / 사무친 이 가슴 나혼자 나혼자서 숨길 수 없어요 숨길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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