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Inside/오락가락

'나주 성폭행 사건' 이번에도 어김없이 '피해자 신상털기'

Shain 2012. 9. 3. 12:43
728x90
반응형
예전부터 성폭력 관련 사건이 일어나면 신문과 방송에 피해자의 성과 거주지, 나이, 학교, 가족환경을 모두 거론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론 정확한 실명이나 사진을 싣는 것은 아니지만 피해자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피해자가 누구인지 또 누구로부터 어떤 일을 당했는지 낱낱이 알 수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 대표적 사건이 '밀양성폭행' 사건으로 당시 가해자 수십명의 신상은 해당사건에 분노한 네티즌이 폭로했지만 피해자의 신상정보는 언론에서 공개되어 전국적으로 널리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미성년자 성폭행이나, 아동성범죄 사건 발생하면 어김없이 경찰의 늑장대응이나 매뉴얼이 도마에 오르곤 합니다. 2009년 발생한 조두순 사건의 경우에도 담당 경찰이 아동섬범죄 매뉴얼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문제로 비난을 받았습니다. '조두순 사건' 이전에는 수사도중 아동에게 차마 해서는 안되는 질문을 하는 경우도 많았고 피해자의 최초 증언을 녹음, 보관하지 않아 피해자에게 반복적으로 당시 상황을 떠올리라 추궁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즉 경찰수사 자체가 아직 어린아이들에게 2차 피해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것입니다.

이번 '나주 사건' 역시 경찰의 초기 대응은 많은 부분 실망스러웠습니다. 집근처에 유기된 피해 아동을 찾지 못해 시간을 허비하는가 하면 발견한 아동을 단순가출했다고 언론보도하고 또 피해자에 대한 심리치료나 안정을 우선하지 않는 등 아직까지 아동성범죄가 발생하면 경찰은 허둥지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외국의 경우 특정 연령 이하의 아동이 3시간 이상 소재가 불분명하면 일단 '유괴'로 판단하고 해당 지역의 경찰이 총동원되어 그 어떤 사건 보다 해당 아동 수색에 전념하게 합니다. 이를 '앰버경고시스템'이라 하는데 유괴범은 보통 3시간 안에 유괴 아동을 살해한다는 조사 결과에 근거한 조치입니다.

'나주 사건'에 대한 언론보도는 '피해자 신상털기'다 (이미지 출처 :MBC 뉴스)


이런 초기대응도 중요하지만 '아동성범죄' 관련으로 두번째 유의해야할 것은 2차피해의 발생입니다. 아동성범죄를 당한 피해자는 반드시 심리치료와 재활훈련 등을 받아야합니다. 많은 국가들이 피해 아동에 대한 무료 상담이나 가족지원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고 우리 나라 역시 자주 활용되진 않지만 유사한 서비스가 있습니다. 아동성폭력 휴우증은 평생 지속되는 상처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심을 주고 적극 치료하는 것이 무엇 보다 중요합니다. 피해 당사자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이런 치료가 일단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2차 피해 중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누가 뭐래도 언론에 의한 신상 노출입니다. 조선일보가 엉뚱한 사람을 가해자라며 사진을 게시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지만 조선일보 뿐만 아니라 각종 방송, 언론 모두가 피해자에 대한 정보를 아무 꺼리낌없이 여기저기 퍼트리고 있습니다. 최근 보도된 성폭력 관련 기사를 보면 아동성범죄라는 극악무도한 범죄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이야기거리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 같습니다. 과연 해당 언론들의 '피해자 신상털기'가 피해자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이번 '나주 사건' 역시 피해자에 대한 정보가 무분별하게 공개된 대표적 사례입니다. 피해 아동의 이름만 알려지지 않았을 뿐 그 아이의 가정환경과 경제적 형편까지 모두 국민들에게 알려져 보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어느 지방에 살고 집안의 구조는 어떻게 되며 형제가 몇이며 아버지는 어떤 일을 하고 기초생활수급자라는 점까지 공개되었습니다. 특히 사건에 대한 최초 보도는 한밤중에 아이들을 재우고 PC방에 간 어머니에게 집중 할애되었습니다. 마치 가해자와 어머니가 특별한 사이라도 되는 듯 여기저기 보도가 퍼져나갔지만 알고 보면 피해자 가족과 가해자 가족은 서로 알던 사이라 합니다.

특히 어제는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어떤 일을 당해 어느 어느 곳에 상처가 났으며 피해자가 심리치료를 받아보니 어떻더라는 정보까지 공개되어 보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기자들은 이게 '알권리'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피해자에 대한 2차 폭력에 지나지 않습니다. 도대체 왜 그 아이의 가정환경과 어려움이 언론에 공개되어야하는 것일까요. 지금도 피해자가 사는 집주변에는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고 아무나 붙잡고 관련 인터뷰를 시도하는 바람에 동네 여기저기 먼곳까지 피해자가 어느 학교 누구누구라는 소문이 쫙 퍼졌다고 합니다.

아이의 거주지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낱낱이 공개하는 언론. 이게 알 권리인가? (MBC 뉴스)


안 그래도 아이 때문에 심란한 가족들은 어찌 할 줄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비난으로 이미 이 가정은 붕괴 직전의 고통을 겪었을 것이고 학교에 다녀야하는 피해아동의 형제들은 사람들의 눈총을 고스란히 받아야할 것입니다. 이 문제로 인해 가족의 치부가 모두 공개되었으니 이대로 가족이 붕괴되기라도 하면 피해 여아는 그 죄책감까지 느껴야할 판입니다. 그나마 지금은 성범죄가 어떤 일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마련이지 나중에 나이가 들어 자기가 겪은 '나쁜 일'이 어떤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면 그 충격은 가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에 대한 기사와 선정적인 기사는 몇년뒤에도 검색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피해 아동에 대한 2차 피해는 심각합니다. 가해자에 대한 욕설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역감정을 유발시키는 댓글을 대거 작성해 해당 기사 댓글난을 싸움판으로 만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피해아동 부모에 대한 욕설이 지나쳐 그 부분을 두고 아이가 상처받지 않을지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언론이 그 피해자 부모의 재판관도 아니고 옳고 그름을 따져줄 주체도 아니건만 피해자 가정에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인 결과입니다.

원초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욕설을 배설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피해자에 대한 관심이고 애정입니까? 왜 아동성범죄가 발생하는지 정말 막을 수는 없는지 그리고 후속조치와 보호는 적절했는지 충분히 따지고 연구하고 관심을 가져야할 언론이 이렇게 직무유기를 해도 되는 것일까요. '나주 사건' 관련 기사를 볼 때 마다 숨이 컥컥 막혀서 살 수가 없습니다.

성범죄가 발생할 때 마다 언론의 '피해자 신상털기'는 관행처럼 벌어지던 일입니다. 지난 '통영 초등생 살해사건' 때도 언론은 피해자 가족의 동의없이 해당 사건을 'XXX 사건'으로 명명하는 뻔뻔함을 보인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실종되었다 살해된 아동이라 할 지라도 가해자 이름도 아니고 지역이름도 아닌 피해자 이름으로 사건을 명명한다는 건 비난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외국에 아무리 '메건법'같은 피해자 이름을 딴 법령이 있다 해도 그는 어디까지나 다른 아동성범죄 피해자를 막기 위한 존중의 의미이지 기자들이 편하라고 피해 아동의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잘 모르고 있지만 '아동성범죄에 대한 미디어 지침'을 연구하고 논의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습니다. 모든 보도에서 피해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하고 아동의 인권 침해를 부각시키며 정확한 사실만을 보도하고 이 보도로 인해 피해 아동이나 잠재적 피해자들이 이익을 볼 것인가를 따지고 선정적으로 다루거나 과장하지 말 것이며 경찰 당국의 조치도 함께 보도하라. 또 피해자가 겪은 사건을 재현함으로서 피해자를 희생시키지 말고 피해자의 신분을 드러낼 수 있는 어떤 행동도 하지 마라 등. 언론이 신경써야할 보도 지침을 권장하는 인권단체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무심하게 읽고 있는 '나주 사건' 관련 보도가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주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피해자 신상털기'를 멈춰야합니다.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해야할 일 아닐까요?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