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Inside/오락가락

'넝쿨당'과 '골든타임'이 보여준 한드의 가능성

Shain 2012. 9. 12. 15:36
728x90
반응형
결국 드라마 '골든타임'의 연장방송이 확정되었나 봅니다. 그동안 '골든타임'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며 연장설이 솔솔 흘러나오긴 했지만 '시즌제'를 요구하는 의견이 빗발쳐 다음 기회를 엿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3회 연장'으로 최종 결정했나 봅니다. 한드의 최고 단점이자 장점이 어쩌면 이런 부분이죠. 처음부터 인기가 좋으면 연장을 염두에 두고 컨텐츠와 대본을 기획하기 때문에 2-3회 정도 추가 분량이 가능하다는 것 말입니다. 덕분에 한드는 현장에서 나누어준 쪽대본으로 어제 촬영한 분량을 오늘 편집해 방영하는 '생방송 드라마'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한드 시청자들 중에도 미드를 비롯한 외국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이 많고 또 케이블 일부에서 '시즌제'를 도입한 드라마가 있어 한국 시청자들도 '시즌제'라는 용어에 익숙합니다. 그리고 제가 기억하기론 한국 드라마 중 '골든타임' 만큼 시즌제 요구가 빗발친 드라마는 없었던 것같습니다. 제가 모든 드라마에 대한 반응을 일일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로 팬들이 '추가 시즌 오더'를 강력하게 외친 경우는 기억에 없습니다. 미드는 '시즌 오더' 결정이 떨어져야 다음 시즌이 제작되기 때문에 팬들이 드라마 방영 중간중간 시청률을 확인하는게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시즌제 요구가 빗발치고 있는 드라마 '골든타임'

공중파에서 실험적으로 시즌제를 기획했다 망한 건 몇번 보았고 스핀오프를 시즌제라 억지로 끼워맞춘 경우는 보았지만 '골든타임'처럼 요리조리 뜯어볼수록 시즌제의 조건을 갖춘 드라마는 본적이 없습니다. 미드 '하우스(House)' 만큼 선명하고 딱 부러지는 캐릭터에 갈등과 로맨스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인물 배치 그리고 수백가지의 에피소드 개발이 가능한 응급실이라는 배경까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대로 버리긴 정말 아까운 드라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만듭니다. 시즌제는 한회가 끝나고 이 다음에 또 다른 이야기가 이어질 것같은 기대감이 들게 만들면 일단 성공입니다.

특히 캐릭터 한명 한명의 사연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만큼 캐릭터 구축이 성공적인데 최인혁(이성민) 교수의 하루를 한 에피소드로 꾸려도 충분히 이야기거리가 될 것같고 조연급으로 출연하는 정형외과 박성진(조상기)이나 신경외과  조동미(신동미)를 중심으로 잡아도 한 에피소드는 충분히 채울 수 있을 것같습니다. 제작자의 말대로 중증외상센터와 트라우마 센터의 필요성 그리고 우리나라 응급의료의 현실을 비춰보고 싶었다는 당초의 의도 대로라면 이런 '시즌제'의 요구가 무리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시청자의 눈으로 보기엔 정말 버리기 아까운 캐릭터들입니다.

'골든타임'에 대한 이런 반응을 보며 가장 반가운 것은 우리 나라에서 등한시되던 '시즌제'의 가능성을 엿보았다는 점 외에도 한국 드라마 시청자들이 스스로 '좋은 드라마'를 추구하고 강력하게 시즌제 도입까지 주장할 정도로 적극적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한마디로 TV 드라마 컨텐츠를 수동적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제작 의견을 제시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기존에도 각종 갤러리나 시청자 게시판 또는 인터넷 댓글이나 리뷰 등을 통해 시청자 의견이 제시되긴 했습니다만 그 의견이 드라마의 제작과 품질 향상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골든타임'의 최대 장점으로 꼽히는 캐릭터. 주인공을 중심으로 배치된다.

가끔 인터넷 댓글을 보면 '한드'는 막장 드라마고 '미드'는 고품격 드라마라는 이분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자주 볼 수 있는데 사실 미드의 '시즌제' 역시 우리 나라 드라마와 똑같은 고질적인 병폐를 안고 있긴 합니다. 미국은 드라마 방영이 60년이 넘은 나라다 보니 소재의 한계 때문에 늘 리메이크를 하고 '공식'이라 할만큼 똑같은 포맷의 드라마를 반복 재생산하곤 합니다. 시청자도 제작자도 같은 소재에 질릴 만큼 질렸습니다. 덕분에 간만에 히트한 드라마는 단물이 다 빠질 때까지 시즌 제작을 합니다. 투자한 자본에 따라 스케일이 달라질 때는 있어도 컨텐츠는 거기서 거기입니다.

그런 미국이 '시즌제'를 도입하며 컨텐츠 제작에 열을 올린 반면 한드가 소위 '막장 멜로'에 열을 올린 건 우리 나라 드라마는 우리 나라 상황에 맞게 장점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입니다. 70년대에 TV 드라마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지만 당시는 드라마 제작환경이 열악해 적은 자본으로 많은 시청자를 끌어모으기엔 연기력으로 승부보는 자극적 멜로가 가장 적합했다고 합니다. 덧붙여 다음 제작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제작환경 속에서 시즌제같은 장기계획은 무리였다는 것이죠. 지난주 인기리에 종영한 '넝쿨째 굴러온 당신' 역시 그런 '막장' 드라마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아내만 사랑하는 고아 남편이라 시댁이 없다며 좋아했더니 어느날 갑자기 앞집에 사는 괴팍한 아주머니가 시어머니로 밝혀지고 그 집의 세 시누이는 갑자기 나타난 며느리를 경계한다는 내용은 '사랑과 전쟁'같은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막장 이야기입니다. 거기다 사돈과 사랑에 빠지는 겹사돈이라던가 재벌 아들과 우연히 사랑하게 되는 신데렐라 이야기 그리고 몰락했던 탑스타가 다시 인기가수가 된다는 내용까지 '넝쿨당'의 기본 모티브는 우리가 '막장'이라 부르던 드라마의 소재들을 모두 모아놓은 것입니다. 희한하게 '막장'인데도 눈쌀이 찌푸려지기 보다 유쾌하게 만드는게 이 드라마의 매력이었죠.

'막장'을 넘어 '가족드라마'의 새 가능성을 보여준 '넝쿨당'

40퍼센트가 넘는 시청률을 보였던 '넝쿨당'은 '막장 드라마'도 관점을 비틀면 충분히 즐겁고 건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평소에 무심하게 지나쳤던 사회문제를 가벼우면서도 날카롭게 풍자한 드라마라는 점에서 많은 호평을 받았습니다. 미국의 '소프 오페라(Soap opera)'의 주 시청자가 주부들이었던 것처럼 한국의 '막장' 드라마 즉 연속극이나 주말드라마의 주시청자도 주부들인데 주부들 역시 불륜이나 각종 치정살인이 난무하는 '막장' 보다는 나은 드라마를 원한다는 증거를 보여준 셈이기도 합니다.

또 '시집살이'하면 지독한 며느리나 심술부리는 시어머니부터 연상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던 시청자들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며느리와 시어머니를 관전할 수 있었다는 것도 이 드라마의 재미였다고 합니다. 특히 '넝쿨당'은 에너지 절약이라던가 '후들옷'같은 정부시책을 홍보한 PPL 드라마로도 유명했는대요. 자칫하면 시청자들을 훈계하는 듯해 짜증을 유발할 수도 있는 내용을 적당히 잘 섞어놓았다는 평을 듣기도 했습니다. 드라마 전체가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 교과서적인 내용임에도 무리없이 시청자들을 끌어들인 것도 이례적이라면 이례적인 일입니다.

남성 시청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던 캐릭터.

수입된 '미드' 중에는 공중파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인기작이 많아 '미드'의 제작수준이 높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미국 역시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소프' 중에는 눈뜨고 못볼 막장이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수준높은 막장'으로 평가하는 '위기의 주부들(Desperate Housewives)'은 '소프오페라'도 남성들과 함께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오락거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고 합니다. '넝쿨당' 역시 남성시청자들의 호응이 꽤 괜찮았다고 하죠. 고전적인 '막장'도 제작하기에 따라서는 고급 아이템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골든타임'과 '넝쿨당'의 인기에서도 알 수 있듯 한국 드라마는 과거 히트했던 아이템을 무작정 재탕한다고 성공하란 법이 없습니다. 무엇 보다 시청자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습니다. 이제는 시청자들이 '좋은 드라마'와 '나쁜 드라마'를 알아보고 전문적인 비평을 남기는 시대입니다. 단순히 화제가 될 주제를 엮고 '스타'를 출연시켰다고 해서 그 드라마가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시즌제'의 가능성을 보여준 '골든타임'과 '막장' 드라마의 업그레이드 가능성을 보여준 '넝쿨째 굴러온 당신'은 그런 의미에서 뜻깊은 드라마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