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천명

천명, 역전의 키를 쥔 홍역귀와 다가오는 김치용의 최후

Shain 2013. 5. 2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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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대개 후궁들과 중전은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행여 후궁이 먼저 아들을 낳으면 중전 자리가 위태로웠고 중전이 후계를 튼튼히 하면 후궁이 쫓겨날 수 있습니다. 변심하기 쉬운 왕의 사랑에 모든 걸 내걸기엔 궁궐은 너무도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사랑에 죽고 사랑에 산다는 건 여염집 여성들에게나 가능한 이야기였죠. 인현왕후와 귀인 김씨, 숙빈 최씨처럼 같은 세력의 후궁들끼리는 서로 친하게 지낼 수 있었지만 연적이자 당파가 다른 장희빈과는 처음부터 친하게 지내기 힘들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정왕후가 중종의 후궁들을 친히 챙기고 단속한 건 대단한 배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이어린 계비로 들어와 쟁쟁한 후궁들을 평정한 것은 물론이고 중종 사망 후에도 궁궐에서 같이 살았다는 건 문정왕후가 평범한 여성은 아니었다는 뜻이죠. 드라마 '천명'의 문정왕후(박지영)는 자신에게 필요한 궁궐 여인들을 손수 목욕시켜주고 그들의 약점을 잡아 협박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편에 묶어둡니다. 세자 이호(임슬옹)의 담당의녀가 된 다인(송지효)도 문정왕후가 눈독들인 여인입니다.

문정왕후는 다인에게 눈독들이고 다인은 어쩔수없이 동궁전 담당 의녀가 된다.

드라마는 반전이 가능하지만 역사에는 반전이란 것이 없습니다. 드라마 '천명'의 이야기가 아무리 극적이고 역동적이어도 문정왕후와 윤원형(김정균)이 역사 속 최후 승자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습니다. 불쌍한 부녀인 최원(이동욱)과 랑(김유빈)이 살아남더라도 끝끝내 죽게 될 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바로 세자 이호입니다. 그리고 그 세자 이호 보다 먼저 죽어야할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이 바로 김치용(전국환)입니다. 굳이 최원과 대립하는 극악한 가상인물을 설정한 까닭은 제거(?)하기 편리하기 때문이겠죠.

동궁에 숨어 있던 구덕팔(조달환)이 죽고 그동안 민도생(최필립) 살인사건의 증인 덕팔을 중종(최일화) 앞으로 데려가려는 최원의 노력은 모두 헛수고가 되고 말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다인은 문정왕후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세자는 랑이가 가지고 있던 모란 그림을 보고 최원 역시 문정왕후의 사주를 받았노라 오해하고 말았습니다. 랑이의 모란 그림은 최원의 아버지 최형구(고인범)가 죽을 때 움켜쥐고있던 것이란 사실을 랑이 말고는 아무도 모르니 한동안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홍역귀는 곤오에게 죽을 뻔한 최원을 구해주고 최원은 그 틈을 타 산채로 도망친다.

그러나 홍역귀라는 별명의 이정환(송종호)이 숨겨진 비밀을 알아내고 곤오(김윤성)에게 죽을 뻔한 최원을 살려줌으로써 '천명'의 분위기가 이전과는 달라질 전망입니다. 이정환은 각종 수사를 조사해 민도생을 죽인 사람의 손엔 상처가 있다는 사실과 민도생이 죽은 자리엔 피로 쓰여진 글씨가 있었음을 알아냅니다. 또한 의금부 안에 자신의 수사 내용을 낱낱이 고해 바치는 스파이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지요. 그 스파이 때문에 궁녀였던 월하(정윤선)를 놓쳤지만 최원은 무사히 증거를 찾아냅니다.

물론 문정왕후와 윤원형, 김치용이 그리 호락호락 당할 사람들은 아닙니다. 지엄한 궁궐 내부에 살인자를 숨겨두고 자객을 투입할 정도로 기세등등한 그들 앞에 제 아무리 무서운 홍역귀라도 당장은 힘을 쓸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정환은 세자 이호와 문정왕후 사이의 권력싸움 그리고 도망자 최원의 진실을 파헤치고 살인사건을 만천하에 드러낼 최적의 인물입니다. 역귀같은 집요함과 같은 정보로 훨씬 더 많은 사실을 간파하는 수사 능력은 최원과 이호에게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가상인물 김치용을 뒤쫓을 최적의 인물 이정환. 이호와 최원에게 꼭 필요한 역할이다.

게다가 이 이정환이라는 캐릭터는 사건 해결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외골수면서도 희한하게 최원의 여동생 최우영(강별)에게는 실수 연발에 마음이 약해지는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지금까지는 최원이 범인이라는 믿음 하에 뒤를 바짝 쫓으며 독하게 윽박질렀으나 증거가 모이는대로 최원의 무죄방면에 큰 역할을 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 보다 세자 이호는 수사담당자인 이정환의 합류로 문정왕후와의 한판승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문정왕후를 배후로 둔 소윤파를 꺾으려면 그 선두인 김치용을 처벌해야합니다.


이전에도 포스팅했듯 문정왕후는 김안로가 죽기전까진 대윤파에게 밀리는 추세였습니다. 중종은 병들어 죽어가고 김안로의 사사로 윤임이 주춤하던 사이 조정을 휘어잡은 문정왕후는 그 기세를 몰아 세자 이호를 압박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네가 죽느냐 내가 죽느냐의 싸움이니 말입니다. 이 드라마는 민도생이라는 한 의관의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세자 이호가 무사히 왕위에 등극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때나마 세자 이호가 소윤파를 밀어내는 사건의 빌미가 김치용의 죽음이겠죠.

권력을 둘러싼 세자 이호와 문정암후의 암투. 홍역귀는 그들의 전투 일선에서 움직이는 새로운 말이다.

문정왕후와 세자 이호의 숨겨진 암투라는 점에서 '천명'은 꽤나 흥미진진한 이야기입니다. 극중 캐릭터 하나하나도 매력적이고 역사적인 모티브가 무궁무진한 인물들이죠. 반면 어디선가 본듯한 '프로토 타입'같은 캐릭터는 어떤 면에서 밋밋한 감도 없잖아 있습니다. 김치용이나 윤원형, 심지어는 천봉(이재용)까지 그런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나 매력이 모자라다기 보단 역사 속 인물들을 주변인으로 엮어 드라마를 전개시키다 보니 섬세한 묘사를 하기 힘든게죠.

임꺽정(권현상, 소백 따라다니는 이 캐릭터 참 멋지네요)이나 세자 이호는 실존인물이라는 한계상 행동 범위에 제약이 많습니다. 최원은 도망자 신세라 반전을 기대하기 힘든 면이 있는 캐릭터구요.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아이 아버지라는 부드러운 면이 약점이라면 약점일테니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최원 편으로 돌아선 가상 캐릭터 이정환에게 거는 기대가 큽니다. 어쩌면 후반부의 이야기가 급물살을 타게 된다면 그건 거침없는 홍역귀, 이정환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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