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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꽃, 파격적인 영상도 좋지만 TV 드라마의 특징을 살렸으면

Shain 2013. 7. 12.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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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꽃' 어제 방송분을 보니 주인공 연충(엄태웅)이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공주(김옥빈)와 태자(이민호) 그리고 연충의 동료들이 연충을 살리러 애썼으나 모두 실패하고 목이 졸려 괴로워하는 연충의 모습이 마지막 장면으로 방송되었습니다. 노비어머니를 둔 서자를 인정하지 않는 연개소문(최민수)에게 버려진 연충은 공주의 무사로 살아가려했으나 공주와 태자를 구하려다 그 정체를 발각당했고 영류왕(김영철)은 연개소문과의 관계를 고려해 연충에게 사형을 명령했습니다.


어제 방송된 4회는 '칼과 꽃' 방송분 중 가장 이해하기 수월한 에피소드였습니다. 주로 영상과 이미지로 끌고 나가던 전개방식을 대사 중심으로 개선했고 등장인물들의 마음을 대화로 주고받으니 훨씬 낫더군요. 초반엔 망나니가 춤을 추길래 참수형인줄 알았는데 장(온주완)이 갑자기 참수형을 교수형으로 바꾼 이유는 대충 연충의 목을 조르다 정신을 잃으면 시신을 버려 살리고 싶어서 그런 것같습니다. 영류왕의 지시인지 연개소문을 지지하고 싶어하는 장의 독자적인 행동인지 두고볼 일입니다.

영류왕의 명으로 교수형을 당하게 된 연충. 과연 어떤 방법으로 살아나나.


최근 시청한 드라마 중에 '칼과 꽃' 만큼 좋은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 작품은 드뭅니다. 주연급은 물론 조연급 배우들 하나하나까지 사극 베테랑들로 미숙한 사람들이 거의 없고 특별출연중인 영류왕 김영철이나 태자 이민호 그리고 자객 역으로 우정출연한 박주형 등 다른 무엇 보다 출연진 하나 만큼은 완벽합니다. 여주인공 김옥빈은 대사량이 늘어나면서 발성과 발음을 지적하는 시청자들이 많아졌으나 사극 출연 경험이 적은 어린 여배우치고는 잘 따라오는 편입니다. 여전히 TV 드라마에서는 보기 힘든 신선한 마스크가 장점인 것 같습니다.

덧붙여 이 드라마는 장면 하나하나를 꽤 꼼꼼히 처리해 보는 재미가 솔솔합니다. '칼과 꽃' 최고의 장점은 드라마가 꼭 영화같다는 것입니다. 부드러운 화면의 색도 특별하지만 고구려를 재현한 건축물과 동맹제가 끝나고 공연을 벌이는 장면 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가면극 공연 동안 춤을 추고 재주를 넘는 사람들을 어쩌면 그렇게 멋지게 표현했는지 저절로 눈길이 가더군요. 나무랄 곳없는 연기파 배우들과 이미지를 통해 전달되는 꼼꼼한 묘사는 확실히 기존에 볼 수 없던 새로운 시도입니다.

'칼과 꽃'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대부분 사극 베테랑으로 연기 하나는 절대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칼과 꽃'은 TV 드라마의 특징을 전혀 모르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한국 드라마 팬들 중에는 영상이 아름다운 드라마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화면 만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시청자도 많습니다. 이 드라마는 공주(김옥빈)와 연충(엄태웅)의 사랑이 깊어지는 과정을 특별한 대사나 에피소드로 묘사하지않고 처음 만났을 때 흘러나오는 음악, 두 사람의 눈빛 교환 등 간접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아버지 연개소문에게 인정받고 싶어했던 연충이 공주의 무사가 되는 과정도 비슷했죠.

눈을 떼지 않고 계속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라면 추가 설명 없이 등장인물들의 그런 마음을 캐치할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한자리에서 계속 시청했다는 사람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국도 미국처럼 '카우치 포테이토' 시청자가 늘어 TV 드라마에 영화처럼 집중하는 사람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침대 머리맡에서 TV 시청하는 사람들도 있고 다른 일하는 틈틈이 TV를 보거나 온라인으로 시청하는 사람도 다수입니다. 잠깐씩 힐끔힐끔 보는 사람들은 이미지 중심의 파격적 연출이 이해하기 힘들고 불편합니다.

두 사람은 언제 그렇게 죽고 못사는 사이가 된 걸까. 힐끔 봐서는 이해하기 힘든 전개.


특히 아버지 연개소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자객을 죽였던 연충이 아버지 연개소문과 영류왕의 복잡한 감정대립을 뻔히 알면서도 왜 김옥빈과 태자에게 충성을 다하게 되었는지 그 '눈치없는' 행보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공주와 연충의 사랑이 뜨겁기 때문에 두 사람의 감정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시청자들은 둘의 눈빛 외에는 딱히 불꽃이 튀는 걸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공주와 연충을 열렬히 사랑하는 연인으로 봐야하는지 아니면 아직까지 호감을 주고받으며 간보는 사이로 봐야하는지 헷갈립니다.

아무래도 TV는 영상 보다는 이야기와 대사 그리고 연기로 몰입하게 되는 컨텐츠입니다. 순간순간 보여주는 장면 보다는 전체적인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고 배우의 표정 보다는 대사를 통한 감정표현을 훨씬 빨리 알아듣습니다. 이야기가 헷갈릴 정도로 대사량이 지나치게 많아서도 안되지만 내용을 금방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대사량이 적어도 따라가기 힘든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알듯말듯한 표정으로 상황을 이어가기 보다 약간은 과장된 표정으로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정확한 대사와 함께 표현해야 대다수의 사람들이 오해없이 상황을 받아들입니다.

계속 해서 한 드라마나 영화에 몰입해서 보는 사람들이라면 뜬금없이 나타난 사람과 남주인공 연충이 눈길을 주고 받는 장면을 보며 '멋있다'고 생각할 법도 하지만 드라마의 이야기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상황에서 화려하게 분장한 자객과 액션이 등장하면 실속없이 겉멋만 들었다는 평을 면하기 힘듭니다. '아이리스2'가 이야기의 개연성은 불분명한데 의미없는 액션신만 연결시켜 시청자들의 혹평을 받았던 것처럼 전체적으로 '칼의 꽃'도 아름다운 장면에 치중해 이야기를 매끄럽게 연결시키지 못한 감이 있습니다.

충분한 장면을 넣지 않으면 과묵한 캐릭터의 행동이 오버로 느껴질 수 밖에 없다.


가끔 연기 잘하는 영화배우가 TV 드라마에서는 효과를 보지 못하는 모습도 보았고 TV 드라마에서는 최고였던 배우가 영화에서는 과장된 감정표현으로 어울리지 않는 모습도 본 적이 있습니다. 연개소문 역의 최민수도 지금처럼 무표정한 얼굴로만 연기를 할게 아니라 영류왕 김영철처럼 대화를 자주 나누고 움직일 필요가 있습니다. 첫회를 이끌었던 김영철 이외에 마땅히 대사가 없었던 배역들 대부분은 아무리 멋진 장면을 연출해도 존재감 자체가 미미해서 배우 이정신이 공주의 상대역으로 출연한다는 것 조차 간신히 기억날 정도네요.

영화같은 드라마는 많은 시청자들이 꿈꾸는 최고의 드라마이지만 그래도 TV 드라마는 영화가 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같은 드라마로 유명한 채널인 미국 HBO가 아무리 드라마 제작에 공을 들여도 드라마 특유의 서사를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요즘 영상이 괜찮다 싶으면 이야기가 엉성하고 이야기가 짜임새 있으면 자잘한 오류가 드러나는, 극과 극의 드라마들이 참 많네요. 어쩌면 그런 불균형이 한국드라마의 최대 단점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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