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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석씨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배우 중 한명입니다. 악역을 맡으면 악역대로 선한 역을 맡으면 선한 역 대로 설득력있는 연기를 선보이는 정보석씨는 '내 마음이 들리니(2011)'에서처럼 바보역 조차 좋은 캐릭터로 탄생시키는, 천상 연기자입니다. 그러나 정보석씨가 '불의 여신 정이'에서 맡은 선조는 국민들에게 그리 인기가 좋지 않은 왕이죠. 선조의 아들인 광해군이나 그 윗대의 왕인 명종을 동정하는 사람들은 있어도 선조를 좋다고 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전쟁 대비에도 허술했고 전쟁 중에도 명나라로 망명하려 하는 등 믿음직하지 못한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이 아니었으면 명종의 직계가 아닌 방계 출신 왕이던 선조가 광해군을 세자로 삼았을 리는 없었을 거라 합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선조가 평소 총애하던 인빈 김씨의 소생 신성군(일찍 죽지 않았다면)이나 새로운 중전에게서 얻은 영창대군이 선조의 다음 왕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광해군이 세자가 된 것은 평소 '미친 놈' 취급받던 형 임해군과 어린 동생 왕자들 보다 광해군이 훨씬 낫기 때문이었습니다. 전국에서 군사를 모으고 전쟁을 지휘하려면 멀쩡하고 나이많은 왕자가 필요했던 것이죠.
어제 방송된 '불의 여신 정이'에는 아버지 유을담(이종원)을 구하기 위해 그릇을 만들어 선조(정보석) 앞에 나서는 유정(진지희)의 이야기가 묘사되었습니다. 임해군(이인성)이 고의로 태조대왕의 그릇을 깨고 그 죄를 뒤집어쓴 동생 광해(노영학)는 그릇을 몰래 붙이려 정이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정이는 무사히 그릇을 붙였으나 분원난청 이강천(전광렬)과 그의 아들 이육도(오승윤)의 계략으로 유을담은 목숨이 위험해집니다. 선조는 유을담에게 죄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왕의 권위와 광해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유을담을 죽이기로 한 것이죠.
이에 정이는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신문고를 울리고 선조에게 그릇을 만들어오겠다 약속합니다. 선조는 조악하고 엉성하게 만들어진 정이의 그릇을 보며 타박하지만 아버지를 구하고자 하는 정이의 마음과 자신도 벌해 달라 나서는 광해를 보며 모두의 죄를 용서해줍니다. 어차피 모든 것이 자식을 구하고 싶어하는 부성애에서 시작된 일이니 명분이 있다면 대왕의 권한으로 사건을 무마할 수 있는 법입니다. 광해를 살리고 싶었던 선조가 딸을 살리고 싶어하는 유을담의 마음을 이해하고 정이의 효심도 납득했기 때문에 가능한 처결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 선조는 광해군에게 이런 부성애를 보인 적이 있었을까요. 상대적으로 다른 왕들에 비해 자기애가 넘쳤던 것으로 보이는 선조에게는 기록상으로 '미친 놈' 취급을 받던 두 아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극중에서 계속 광해군을 괴롭히는 임해군이고 또다른 하나는 삼십여명 이상의 사람을 죽인 것으로 알려진 순화군입니다. 진짜로 미쳤다 아니면 미친척한거다 말은 많지만 하여튼 임해군은 후에 광해군이 즉위한 후 죽임을 당합니다. 임해군은 거의 선조의 관심을 받지 못한 왕자입니다. 반면 순화군은 엄청난 죄에 비해 과분한 선조의 보호를 받았죠.
선조가 신성군과 영창대군을 사랑했다는 기록은 있으나 어떻게 보면 광해군은 괴롭힌 기록이 더 많지 않나 생각됩니다. 특히 임진왜란 때 광해군은 선조에게 무려 15번의 석고대죄를 했습니다. 당시 선조는 신의주 쪽으로 피신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인빈 김씨는 귀한 쌀로 인절미를 만들다 욕를 먹기도 하고 선조는 반찬투정을 하며 도루묵 타령을 하기도 했습니다. 전쟁 중에 왕실 사람들이 그 꼴이니 신하들이 속터져서 이런 저런 잘못을 지적하고 나섭니다. 왕보다 나은 공을 세운 장수들과 일선에서 활약중인 광해군을 칭찬하니 선조는 속이 뒤틀렸나 봅니다.
이건 뭐 다섯살 짜리 어린이도 아니고 걸핏 하면 내가 물러나 세자에게 양위하겠다며 생떼쓰는 선조 때문에 광해군은 한참 바쁜 와중에도 양위의 말을 거둬달라며 석고대죄를 하러 달려가야했습니다. 진짜 양위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형식적인 석고대죄와 양위의 말을 물러달라는 간청을 하는게 당시의 법도였습니다. 선조는 양위할 생각은 조금도 없으면서 자신을 나무라는 신하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계속 이런식으로 못살게 군 것입니다. 대신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전쟁터에서 뛰어다니는 아들 광해군은 대체 무슨 죄로 괴롭힌건지 답답할 정도죠.
극중 인빈 김씨(한고은)는 아들 신성군을 몹시 사랑합니다. 선조가 1552년생이고 선조의 정비인 의인왕후와 후궁 인빈 김씨는 1555년 생으로 동갑이었습니다. 인빈은 의인왕후 보다 먼저 선조의 후궁이 된 여인으로 선조의 실질적인 조강지처였습니다. 인빈 김씨는 어릴 때부터 궁생활을 했기 때문에 궁중의 질서를 누구 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왕이 되지 못한 왕자의 운명이 얼마나 참혹한지 말입니다. 선조가 방계 출신 왕으로 자신의 안위를 걱정했다면 인빈 김씨는 한 사람의 어머니로서 아들을 걱정했습니다.
선조가 미친 아들 순화군을 그리 대놓고 보호할 수 있었던 것은 순화군이 선조의 왕권에 거의 있으나 마나한 존재였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반면 광해군은 임진왜란으로 인기가 높아져 왕권에 위협이 된다고 여겼을지도 모르죠. 실제 역사 속 선조가 어떤 인물이었든 간에 연기자 정보석씨라면 '불의 여신 정이'의 왕 선조를 밉지만은 않은, 괜찮은 캐릭터로 만들어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왕으로서의 우유부단함과 고민은 어느 정도 이해를 해도 권력 때문에 아들까지 질투하고 괴롭히는 역할을 어떻게 설득력있게 표현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동시에 아쉽기도 하네요.
임진왜란이 아니었으면 명종의 직계가 아닌 방계 출신 왕이던 선조가 광해군을 세자로 삼았을 리는 없었을 거라 합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선조가 평소 총애하던 인빈 김씨의 소생 신성군(일찍 죽지 않았다면)이나 새로운 중전에게서 얻은 영창대군이 선조의 다음 왕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광해군이 세자가 된 것은 평소 '미친 놈' 취급받던 형 임해군과 어린 동생 왕자들 보다 광해군이 훨씬 낫기 때문이었습니다. 전국에서 군사를 모으고 전쟁을 지휘하려면 멀쩡하고 나이많은 왕자가 필요했던 것이죠.
정이와 유을담, 광해군의 죄를 모두 용서해준 선조. 선조는 광해군을 살리고 싶어한 것으로 그려진다.
어제 방송된 '불의 여신 정이'에는 아버지 유을담(이종원)을 구하기 위해 그릇을 만들어 선조(정보석) 앞에 나서는 유정(진지희)의 이야기가 묘사되었습니다. 임해군(이인성)이 고의로 태조대왕의 그릇을 깨고 그 죄를 뒤집어쓴 동생 광해(노영학)는 그릇을 몰래 붙이려 정이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정이는 무사히 그릇을 붙였으나 분원난청 이강천(전광렬)과 그의 아들 이육도(오승윤)의 계략으로 유을담은 목숨이 위험해집니다. 선조는 유을담에게 죄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왕의 권위와 광해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유을담을 죽이기로 한 것이죠.
이에 정이는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신문고를 울리고 선조에게 그릇을 만들어오겠다 약속합니다. 선조는 조악하고 엉성하게 만들어진 정이의 그릇을 보며 타박하지만 아버지를 구하고자 하는 정이의 마음과 자신도 벌해 달라 나서는 광해를 보며 모두의 죄를 용서해줍니다. 어차피 모든 것이 자식을 구하고 싶어하는 부성애에서 시작된 일이니 명분이 있다면 대왕의 권한으로 사건을 무마할 수 있는 법입니다. 광해를 살리고 싶었던 선조가 딸을 살리고 싶어하는 유을담의 마음을 이해하고 정이의 효심도 납득했기 때문에 가능한 처결이었습니다.
광해를 살리려는 선조와 정이를 살리려는 유을담의 마음. 선조는 모두를 용서한다.
그렇다면 실제 선조는 광해군에게 이런 부성애를 보인 적이 있었을까요. 상대적으로 다른 왕들에 비해 자기애가 넘쳤던 것으로 보이는 선조에게는 기록상으로 '미친 놈' 취급을 받던 두 아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극중에서 계속 광해군을 괴롭히는 임해군이고 또다른 하나는 삼십여명 이상의 사람을 죽인 것으로 알려진 순화군입니다. 진짜로 미쳤다 아니면 미친척한거다 말은 많지만 하여튼 임해군은 후에 광해군이 즉위한 후 죽임을 당합니다. 임해군은 거의 선조의 관심을 받지 못한 왕자입니다. 반면 순화군은 엄청난 죄에 비해 과분한 선조의 보호를 받았죠.
선조가 신성군과 영창대군을 사랑했다는 기록은 있으나 어떻게 보면 광해군은 괴롭힌 기록이 더 많지 않나 생각됩니다. 특히 임진왜란 때 광해군은 선조에게 무려 15번의 석고대죄를 했습니다. 당시 선조는 신의주 쪽으로 피신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인빈 김씨는 귀한 쌀로 인절미를 만들다 욕를 먹기도 하고 선조는 반찬투정을 하며 도루묵 타령을 하기도 했습니다. 전쟁 중에 왕실 사람들이 그 꼴이니 신하들이 속터져서 이런 저런 잘못을 지적하고 나섭니다. 왕보다 나은 공을 세운 장수들과 일선에서 활약중인 광해군을 칭찬하니 선조는 속이 뒤틀렸나 봅니다.
실제 역사 속의 선조는 유을담같은 아버지와는 거리가 먼 자식에게 질투하는 아버지였다.
이건 뭐 다섯살 짜리 어린이도 아니고 걸핏 하면 내가 물러나 세자에게 양위하겠다며 생떼쓰는 선조 때문에 광해군은 한참 바쁜 와중에도 양위의 말을 거둬달라며 석고대죄를 하러 달려가야했습니다. 진짜 양위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형식적인 석고대죄와 양위의 말을 물러달라는 간청을 하는게 당시의 법도였습니다. 선조는 양위할 생각은 조금도 없으면서 자신을 나무라는 신하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계속 이런식으로 못살게 군 것입니다. 대신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전쟁터에서 뛰어다니는 아들 광해군은 대체 무슨 죄로 괴롭힌건지 답답할 정도죠.
극중 인빈 김씨(한고은)는 아들 신성군을 몹시 사랑합니다. 선조가 1552년생이고 선조의 정비인 의인왕후와 후궁 인빈 김씨는 1555년 생으로 동갑이었습니다. 인빈은 의인왕후 보다 먼저 선조의 후궁이 된 여인으로 선조의 실질적인 조강지처였습니다. 인빈 김씨는 어릴 때부터 궁생활을 했기 때문에 궁중의 질서를 누구 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왕이 되지 못한 왕자의 운명이 얼마나 참혹한지 말입니다. 선조가 방계 출신 왕으로 자신의 안위를 걱정했다면 인빈 김씨는 한 사람의 어머니로서 아들을 걱정했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지 않을까 싶지만 선조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선조가 미친 아들 순화군을 그리 대놓고 보호할 수 있었던 것은 순화군이 선조의 왕권에 거의 있으나 마나한 존재였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반면 광해군은 임진왜란으로 인기가 높아져 왕권에 위협이 된다고 여겼을지도 모르죠. 실제 역사 속 선조가 어떤 인물이었든 간에 연기자 정보석씨라면 '불의 여신 정이'의 왕 선조를 밉지만은 않은, 괜찮은 캐릭터로 만들어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왕으로서의 우유부단함과 고민은 어느 정도 이해를 해도 권력 때문에 아들까지 질투하고 괴롭히는 역할을 어떻게 설득력있게 표현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동시에 아쉽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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