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만지고 아끼던 물건에는 귀신이 붙는다고 합니다. 오래된 물건에서 밝고 따뜻한 기운이 아닌 음산하고 무거운 기운이 느껴질 때는 가까이 두는게 아니라고 하죠. 굳이 '물령(物靈)'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의 나쁜 마음이 담긴 물건은 기분이 썩 좋지 않습니다. 죽음을 부르는 호프 다이아몬드같은 물건이 대표적입니다. 보통 '귀신'하면 죽은 사람의 혼령을 생각하지만 어제 '주군의 태양'에 등장한 도자기 귀신이나 호텔에 머물던 아줌마 귀신(김희정)은 꼭 죽은 사람만 귀신이 되는 건 아님을 보여줍니다. 흔히 말하는 '유체이탈'로 산 사람의 영혼이 돌아다닐 가능성도 있긴 있다 는거죠.
주중원(소지섭)은 15년전 차희주(한보름)가 교통사고로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차희주를 조사하던 주중원의 아버지(김용건)는 희주가 죽은지 일년 뒤에 외국인 친구와 영국에서 찍은 사진을 찾아냈습니다. 태공실(공효진)이 주중원의 요청으로 죽은 차희주와 대화를 했다는 걸 아는 강우(서인국)는 사진에 찍힌 그 여자가 차희주의 쌍둥이가 아닐까 추측한 반면 중원의 아버지는 그동안 추적한 행적으로 보아 차희주는 살아있고 주중원 가까이에 있을 것같다는 의견을 내놓습니다.
과연 강우와 주중원 아버지의 추측 중 어떤 것이 맞을까. 도저히 진실을 판가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주중원과 중원의 고모 주성란(김미경)이 사는 아파트에는 낯선 여자가 나타납니다. 빨간 운동복을 입은 그 여자는 얼마전에 새로 이사왔다는데 차희주의 영혼은 그 여자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주군 아버지의 말대로라면 그 여인은 주중원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희주의 쌍둥이거나 차희주 본인이란 뜻입니다. 주중원을 납치한 공범은 차희주의 쌍둥이였을 가능성이 높고 둘 중 하나가 살아남았다는 거죠.
차희주가 쌍둥이라면 주군의 기억 속에서 따뜻하게 웃는 차희주가 주군이 납치된 그 순간에는 그 누구보다 냉정하고 차가운 표정으로 주군을 응시했는지 그 이유도 풀리는 셈입니다. '미안하게 됐다'며 줄에 묶인채
몸부림치는 어린 주군(엘)을 바라보던 희주는 냉정한 성격의 또다른 쌍둥이였고
불타는 차안에서 눈물흘리며 죽어간 것은 차희주였을 것입니다. 주군이 벌벌 떨며 읽었던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있다는 면에서 반쯤 정확했던 셈이죠.
이제부터는 과연 그 동생이 누구인지 그리고 주군의 주변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차희주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는지를 알아내야 합니다. 차희주가 자랐다는 고아원에서도 알려주지 않았던 차희주의 쌍둥이. 그녀는 무슨 이유로 주군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을까요. 소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복수에 올인한 '미치광이'는 아닌지 앞으로 3주 밖에 남지 않은 '주군의 태양' 나머지 이야기에서 그 미스터리를 밝혀야합니다. 이거 잘 하면 흥미로운 추리소설 한편이 완성될 것같군요.
주중원 아버지와 차희주의 비밀
아버지의 추측에도 불구하고 어린 중원이 직접 목격한 폭발사고도 그렇고, 태공실이 만나 태공실의 몸에 빙의되었던 영혼은 죽은 차희주가 맞단 생각이 듭니다. 또다른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중원의 아버지가 뒤쫓던 차희주는 죽은 차희주의 쌍둥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흥미로운건 어떻게 중원의 아버지가 외국에서 차희주를 찾아낼 생각을 했느냐입니다. 마리아의 사진첩에서 우연히 희주의 사진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중원의 아버지는 그전에도 자주 외국을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주중원의 납치범이 요구한 목걸이는 어머니의 물건으로 가족이 아니면 알기 힘든 비싼 보석인데다 쉽게 처분하기도 힘든 물건입니다. 주군의 아버지는 차희주가 평소에 자주 하던 말, '마음이 정직하게 굴지않을때 통증이 답'이라는 알고 있었고 주중원과 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등 뭔가 차희주와 관련이 있단 느낌을 자주 풍겼습니다. 일부에서는
차희주와 공범이 꾸민 납치극을 중원의 아버지가 시킨 것 아니겠느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 예상이 맞다면 쌍둥이 자매가 아버지의 사주를 받고 중원을 납치했는데 약속이 잘못되거나 일이 틀어져 차희주가 죽어버렸고 쌍둥이 자매는 죽은 차희주의 복수를 위해 주중원 곁을 맴돌고 있다는 시나리오도 가능 하겠죠. 중원의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자신이 차희주와 도모한 일이 있으니 나쁜 예감이 들어 강우를 고용하는 등 신경을 곤두세우고 쌍둥이 혹은 차희주는 모종의 이유로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입니다. 죽은 차희주가 자신의 자매와 주군 모두를 위해 15년 간이나 영혼으로 떠도는 것도 그렇다면 납득이 갑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주군의 아버지가 납치극을 사주할만한 이유는 없어 보입 니다. 아버지와 주중원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고 주중원이 무언가 문제있는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은 확실한 듯한데 굳이 '납치극'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어딘가 좀 이상하죠. 주군의 어머니가 관련되어 있다는 심증만 있는 상황입니다. 납치되었다 돌아온 아들을 보고 냉정하게 웃는 아버지나 백억 안준거 아니냐고 따지는 아들이나 오십보 백보같긴 합니다만 어쨌든 아버지가 아들을 걱정하는 건 사실인듯한데 말이죠.
주성란, 김귀도와 차희주는 모르는 사이일까
차희주인지 차희주의 쌍둥이인지 모를 그 여자는 주군 주변에 있을 거 같다는 아버지의 추측대로 근처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주군은 차희주 비슷한 사람도 본적이 없는 듯합니다. 귀신도 아니고 15년 동안 잊지 못한 얼굴인데 주군이 못 알아볼 리가 없을텐데 단 한번도 들킨 적이 없습니다. 거기다 더욱 특이한 것은 주성란이 그 여자의 얼굴을 모른다는 겁니다. 도석철(이종원)이야 차희주를 모를 수 있지만 주성란은 중원에게 관심이 많고 차희주가 자란 고아원에 돈도 보냈으니 얼굴을 알만한 사이입니다.
이건 주군과 마주친 적이 없고 주성란도 얼굴을 모른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주성란이 차희주 혹은 그 쌍둥이를 숨겨준다는 이야기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차희주의 쌍둥이로 추정되는 그 여자가 성형수술이라도 했다는 뜻일까요? 고아원에서 못 찾은 '쌍둥이'의 존재는 납치사건 이후 단한번도 뚜렷이 드러난 적이 없습니다. 주중원에 대한 정보는 어디서 얻었으며 다소 비싸다면 비싼 주군의 아파트로 어떻게 이사올 수 있었을까요.
덧붙여 중원의 아버지는 강우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외국을 떠돌던 주중원을 따라다니는 듯 차희주로 추정되는 그 여자도 같은 곳을 돌아다녔고 주중원이 한국으로 돌아오기전 그 여자도 한국에 들어왔다고 말입니다. 어쩌면 주중원이 한국에 들어온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거나 누가 알려줬다는 추측이 가능한 이야기 입니다. 태양의 일정을 줄줄이 꿰고 있다가 주군에게 알려주는, 어릴 때부터 주군을 보살펴왔다는 김귀도(최정우) 역시 차희주와 연결된 인물 중 하나는 아닐지 의심스러운 부분입니다.
사실 고모 주성란은 돈에 대한 욕심이나 가끔씩 무섭게 남편을 째려보는 태도 덕분에 초반에 가장 많은 의심을 받던 캐릭터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가면갈수록 도석철과의 콤비가 코믹하다 못해 귀엽기까지한게 영 범인과는 거리가 멀어보이고 김귀도가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주군을 누구 보다 잘 알고 차희주가 왜 저주가 아닌 상처인지도 아는 인물인데다 주군을 위해 태양을 적극 권장하는 사람 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따뜻한 마음으로 볼 때 '악역'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작은 비밀 하나는 숨기고 있지 않을까요.
태양의 사고는 주군과 관련이 없을까
지난주까지는 차희주와 공범의 관계를 추정할 수 있는 큰 증거가 없었기에 옆모습만 가지고 차희주의 공범이 태공리(박희본)와 참 닮았다고 생각했는데(태공리의 나이도 얼추 주군이나 차희주 또래입니다) 중원아버지가 가져온 여러 증거는 차희주의 쌍둥이가 공범일거 같단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렇다면 태양이 귀신을 보게 만든 사고는 정말 차희주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일까 요. 태공실은 그 사고가 어떤 사고였는지 한번도 자세히 말한적이 없고 다만 그때 태공리가 결혼자금으로 모아둔 돈을 모두 써버렸다고 했습니다.
'주군의 태양' 4회에서 주중원이 납치사건 당시 자신의 몸값이 백억이었다며 어깨를 으쓱하자 태양은 자신은 언니의 돈으로 살아난 귀한 몸으로 몸값으로 치면 천억도 넘는다고 대구 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언니가 들인 돈은 백억 보다 더 귀한 전재산이었다는 뜻입니다. 돈돈거리면서 목걸이의 행방을 뒤쫓고 태양을 '백억짜리 레이다'라고 부르는 주중원에겐 돈보다 가족이 더 비싸다는 태양의 이야기가 신기하게 들렸을 수도 있지만 주군의 많은 돈이나 값비싼 물건도 하찮게 여기는 태양의 태도는 주군과 묘하게 연결되는 구석이 있습니다.
'주군의 태양'은 앞으로 방영분이 6회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태양이 자신의 사고를 설명할 기회가 있을지 아니면 그냥 '사고'로 처리하고 넘어갈지 알 수 없으나 태양이 주군에게 '캔디'가 되고 주군이 태양에게 '방공호'가 된 이상 서로의 사연도 중요 한 이야기죠. 주군도 태양에게 어쩌다 희주를 사귀게 되었는지 또 아버지와 무슨 일이 있었기에 서로 으르렁거렸는지 한번도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즉 주군과 태양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설정된다 해도 이상하진 않은 상황이란 것이죠.
'주군의 태양'에 등장한 많은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그들의 마음을 악의로 때로는 선의로 착각하곤하지만 숨겨진 비밀은 상상과는 전혀 다르게 단순하고 따뜻한 것일 때가 많았습니다. '최고의 사랑(2011)'에서 인공심장이 단순한 보조장치에 불과했듯 주군과 태양을 둘러싼 비밀들은 정말 별거 아닐 수도 있습니다. 조금씩 수상한 주군의 주변인물들이 감추고 있는 마음을 털어놓으면 의외로 갈등은 쉽게 해결될 수 있겠죠. 결국 어린 주군을 만지며 '네가 많이 아팠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차희주의 발언에 해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주군과 태양은 서로의 마음에 '통증'을 느끼며 사랑이라는 감정을 깨달았습니다. 김귀도는 세상 모든 일이 돈으로 계산하던 주군에게 태양이란 통증이 찾아온 걸 축하하는 분위기입니다. 어쩌면 차희주도 차희주와 주군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잃고 상심한 주군에게 보여주려던 '과격한 통증'일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추측하는 재미를 잃고 싶지 않은 기분인데요. 분명한 건 우리 캔디와 방공호의 아기자기한 사랑이 꽤 보기 좋고 차희주 귀신이든 고모든 아버지든 그 둘을 한동안 말릴 수 없을 것같다는 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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