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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와라뚝딱, 최고 악역이 된 윤심덕 알듯 말듯한 그 심리

Shain 2013. 9. 1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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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방송이었는지 아니면 재방송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릴 때 '전설의 고향'에서 이런 이야기를 본 적 있습니다. 한 주막집 부부가 과거보러가던 남매의 노자돈이 탐나 남매를 죽였습니다. 갑자기 자식을 잃은 남매의 부모는 슬픔을 못 이겨 죽어버렸고 그 돈으로 부자가 되어 양반 행세를 하고 남매를 낳아 기르던 그 주막집 부부는 이십여년 뒤 아들이 과거급제를 하고 금의환향을 한 바로 그날 남매가 비명횡사하는 비극을 겪게 됩니다. 알고 보니 부부가 죽인 남매가 한을 풀기 위해 주막집 부부의 자식으로 환생한 것이었습니다. 생떼같은 자식 잃은 심정을 너희도 한번 느껴보라는, 생각해보면 오싹한 전설 이었죠.

윤심덕의 마음 한구석엔 시집살이와 돈벌이로 고생한 삶을 아들에게 보상받고 싶은 심리가 있다.

 

그런가하면 조카와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던 수양대군은 형수 현덕왕후의 악몽에 시달렸고 자식들이 일찍 죽는 불행을 겪었다고 합니다. 혈육을 죽인 수양대군의 죄책감이 가져온 대가인지 정말 자기 자식에 대한 원한으로 현덕왕후가 복수한 것인지 후세 사람들은 알 길이 없습니다만 확실한 건 남의 자식 괴롭히고 내 자식 잘 되길 바라는 건 욕심이라는 겁 니다. 소위 '자식을 위한다'는 말로 잘못된 욕심을 부리면 언젠가는 그 업보가 고스란히 자식이나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옛사람들의 말. 대부분 틀리지 않더라는군요.

 

'금나와라 뚝딱'은 지금까지 현실에서 보기 힘든 박순상(한진희) 가족의 처첩(?) 갈등을 묘사해왔습니다. 큰아들 박현수(연정훈)가 불륜으로 낳은 자신의 아들 현준(이태성)에게 방해가 된다는 생각으로 평생 괴롭혀왔던 장덕희(이혜숙)는 현준을 위해서 현수와 함께 죽으려했지만 오히려 목숨이 위험해진 것은 현준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잘못도 잘못이지만 그래도 가족인 현수와 아버지 박순상을 사랑하는 현준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장덕희는 아들이 혼수상태에 빠져 일어나지 못하자 자신의 잘못을 후회합니다.

현준의 사고로 도저히 화합할 것같지 않았던 박순상의 첩들이 본처 진숙(이경진)에게 용서를 빌고 진숙은 진숙대로 현수를 살리려고 사고를 당한 현준의 쾌유를 빕니다. 한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진지한 상황만 아니라면 본처와 첩이 화해하는 이 희한한 장면은 아무리 봐도 씁쓸하기만 하죠. 그런데 한가지 교훈 만은 확실히 전달이 됩니다. 내 자식 위하자고 남의 자식 눈에 눈물나게 하면 내 자식은 피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옛말이 딱 들어맞는 것입니다. 민영애(금보라)와 장덕희의 후회는 결국 자식위한다는 말로 잘못 살아온 엄마들의 눈물인 셈입니다.

그러나 '금나와라 뚝딱'에서 가장 지독한 악녀였던 장덕희가 아들의 위기로 개과천선하고 모두에게 용서를 비는 어머니로 변신한 반면 자식을 애지중지하며 가족들을 건사하던 윤심덕(최명길)은 여전히 지독한 시어머니의 얼굴을 벗지 못했습니다. 친정엄마 김광순(김지영)과 함께 집을 나가 험한 마음을 다스리며 돌아왔지만 여전히 고졸 며느리 민정(김예원)이 마음에 들지 않아 미칠 지경입니다. 볼 때 마다 눈엣가시같고 예쁜 구석이 없다며 눈을 홀기는 윤심덕은 장덕희를 제치고 '금나와라 뚝딱'의 최고 악역으로 등극했습니다.

윤심덕의 마음 한구석엔 시집살이와 돈벌이로 고생한 삶을 아들에게 보상받고 싶은 심리가 있다.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서 희생한다고 말하고 대부분의 경우 그 말이 맞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마음 한구석에는 '대리만족'이라는 심리도 자리잡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장덕희가 첩으로 살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세월이 억울하고 한스러워 아들 현준은 당당한 박순상의 후계자로 떳떳하게 살길 원했던 것도 윤심덕이 보석매장 직원으로 부유한 사람들에게 허리굽히고 살면서도 다이아 반지 하나 마련하지 못한 세월이 억울해 몽현(백진희)과 몽규(김형규)에게 최고의 학벌과 명품옷을 누리게 해준 것처럼 말입니다. 그들의 집착엔 분명히 이유가 있습니다.

윗세대들은 밥먹는 날이 못먹는 날 보다 더 적었던 전후세대가 많았기 때문에 굶주림에 익숙했습니다. 학교 다닐 여유가 없어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으로 만족해야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유난히 70, 80년대 생들 중에 대졸자가 많은 이유 중 하나도 부모들이 '나는 못했으니까 너라도 그렇게 살아달라'는 바람으로 자식들을 대했기 때문 입니다. 그 심리의 이면에는 자신의 욕망을 충족할 수 없던 세월에 대한 원망과 '윤심덕'이 아닌 잘난 '김몽규 엄마'로 살고 싶은 욕심이 담겨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못 배우고 없이 산다는 사회의 냉담한 눈길을 느끼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고졸에 홀어머니 뿐인 며느리라며 김필녀(반효정)에게 무시당하던 윤심덕은 보석 매장에서도 성은(이수경)이나 장덕희같은 사주 가족에게 무시당했고 나이어린 부유층 사람들에게 허리를 굽혀야했습니다. 그 모습이 바로 자식 먹여살리겠다며 돈벌고 아등바등살던 부모들의 모습 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먹여살리던 산업화 이전 사회의 자녀들이 그랬듯 자식들에게 베풀어주고 부모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해주면 나보다 더 잘 살고 더 대접받으리라는 마음에 자녀들에게 올인하는 마음. 보기에 불편한 윤심덕의 지독한 심술은 어떻게 보면 익숙한 부모세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엄마가 틀렸다'라고 지적하고 싶지만 엄마의 시간을 거슬러서 바꿀 수는 없다. 아픔을 달래고 기다리는 수 밖에.

윤심덕이 입양해서 키운 정몽희(한지혜)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도 짜증나지만 몽현이 시집살이로 피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았으면서도 민정에게 심술부리는 모습도 상당히 눈쌀찌푸려지는 모습이죠. 일각에서는 그런 윤심덕의 행동을 '악랄하다'고 말합니다. 분명 현대인들의 이성으로는 스스로의 삶을 자식들에게 투영하는게 불합리하고 잘못된 행동입니다만 지금의 30, 40대 중에는 그런 부모의 모습을 무조건 부정할 수만은 없는 그런 자식들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긴 벅차고 잘못이라 지적하긴 안쓰러운 그런 부모들 말입니다.

입바른 말로 윤심덕의 속을 긁는 김필녀나 딸의 과거를 잘 알고 있는 최광순의 말대로 세상 이치가 딱 부러지고 명명백백하면 좋겠지만 또 잘잘못을 따지고 흑백을 가리는 것도 좋겠지만 그런 부모를 편들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자식들의 고민도 있는 법입니다. 엄마 장덕희가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아버지에게 이를 수 없고 형과 함께 흉볼 수도 없던 현준의 심정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자식 세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픈 속을 달래주고 언젠가 제자리로 돌아오도록 기다리는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심한 말로 부스럼을 긁고 덧나게 하면 영원히 낫지 않는 상처가 되버릴 것입니다.

 

곧 추석이고 많은 가족들이 모여 밀린 이야기를 나눌 것입니다. 드라마 속 상황처럼 과장되고 복잡한 집도 있겠고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같은 갈등으로 얼굴을 붉힐 수도 있겠죠. 자식이 부모의 인생을 완전히 이해하고 그 속마음을 안다는 건 불가능한 일 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공을 들여 키워도 부모가 자식의 속내를 아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극단적인 상황설정으로 '막장'이라 불리던 '금나와라 뚝딱'이 부모 자식 간의 교훈을 직설적으로 보여준다는게 참 흥미롭더군요. 윤심덕도 자식잃고 후회하고 남의 자식 괴롭히는 것 보다 받아들이는게 낫다는 걸 알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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