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금나와라 뚝딱' 출연진들이 나오는 한 통신사의 광고가 큰 인기를 끌고 있죠. CF 내용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뭘 광고하는지 모르겠지만 드라마 속 상황에 빗대 대사를 주고 받는 배우들 덕에 처음엔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CF 출연을 거의 하지 않는 배우였던 한진희, 이혜숙, 금보라같은 분들이 천연덕스럽게 '2배'라고하니까 저절로 드라마 속 장면이 떠오르더군요. 비슷한 시간에 방영되는 '스캔들'같은 진지한 분위기의 드라마였다면 부정적으로 보였을 CF인데 '금나와라 뚝딱'은 인물들의 심각한 관계 설정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가볍게 처리하는 매력 이 있습니다. CF가 드라마의 특징을 정확히 잡아내고 있었던거지요.
두 명의 첩을 둔 박순상(한진희)이 절대 권력을 누리며 엄마가 다른 세 아들들과 갈등하는 내용이나 입양한 딸 몽희(한지혜)를 희생시켜 두 자녀를 명문대에 보낸 윤심덕(최명길)의 이야기는 그 어떤 소재와도 비교하기 힘든 '막장'스런 설정이지만 '금나와라 뚝딱'은 이야기를 질질 끌거나 극중 상황에 몰입할 여운을 주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이야기의 속도감이 자극적인 설정을 상쇄한다는 뜻인데 어제는 수십년 세월의 앙금으로 슬퍼하다가도 오늘은 엄청난 사건에 분위기가 다른 방향으로 반전되곤 하지요. 아들 하나 낳았다고 귀한 며느리가 된 몽현(백진희)처럼 말입니다.
사실 이 드라마 초반부에 몽희와 얼굴이 똑같은 유나(한지혜)가 지금처럼 핵심인물이 될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소위 '생방송 드라마'의 특성상 한 배우의 1인 2역은 배우 본인 뿐만 아니라 촬영하는 제작진으로서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분장도 분장이지만 같은 장소에서 두 캐릭터의 감정에 이입한다게 말처럼 쉽진 않은 일이지요. 그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나는 잠깐 동안 등장할 캐릭터고 몽희가 드라마의 주축이 될거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유나가 다시 박현수(연정훈)의 아내가 되는 분위기고 몽희는 솔로로 굳혀가는 중 이죠.
저 역시 블로그에서 간단한 투표를 통해 의견을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만 초반에 '악역'이라 알려졌던 유나가 성실한 몽희 보다 시청자들 사이에서 호감도가 더욱 높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는 밝은 성격의 몽희가 드라마 초반부부터 가짜 유나 노릇을 하며 대활약을 펼쳤음에도 화끈하게 박순상 가족을 몰아부치는 유나가 더욱 인기를 끌었던 것입니다. 거기다 아무리 삼십여년을 떨어져살았어도 어떻게 처제인 몽희가 형부인 박현수와 맺어지냐며 유나와 박현수가 재결합해야한다는 의견이 꽤 많았죠. 처제와 형부는 아무래도 껄끄럽습니다.
그 동안 꽤 많은 드라마에서 소위 '무리수 커플'을 엮곤 했습니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연상 연하 커플이나 경제적 사회적인 이유로 반대하는 재혼 커플 혹은 겹사돈이나 선생님과 제자, 친구의 연인 등 복잡한 커플이 참 많았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나 사회적 인식 때문에 불편하게 여겨지는 커플로 대개는 두 주인공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행복하게 결합하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곤 했습니다. '금나와라 뚝딱'에서 선택한 형부와 처제라는 관계 설정은 법적으로 불허하는 커플이란 점에서 최악이라면 최악 입니다.
그런데 드라마 초반부터 몽희와 얽힐 수 밖에 없었던 박현수의 사연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걸 몰랐던 정몽희가 얼굴이 똑같은 유나를 쌍둥이라 의심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유나 쪽에서도 실종된 상태로 박현수를 떠나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와 장덕희(이혜숙)와 갈등하는 박현수가 몽희를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 때문에 유나는 없어지는 걸로 처리하고 몽희와 박현수를 맺어주지 않겠냐는 의견이 다수였던거 죠. 그러나 시청자들의 예상과는 달리 유나는 컴백했습니다. 그것도 높은 시청률과 함께 말입니다.
'금나와라 뚝딱'에는 드라마 초반에는 정규출연진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캐릭터가 몇 있습니다. 정판금(최주봉), 행자(조은숙), 정병달(김광규), 정두리(김단율)같은 등장인물입니다. 특히 아들 정병후(길용우) 때문에 길길이 날뛰던 아내 김필녀(반효정)와 반강제로 이혼한 정판금은 첫 증손주의 백일에도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치킨 때문에 간간이 얼굴을 비치던 정병달 조차 지난주는 출연하지 않았을 정도니 이 정도면 거의 '퇴출'이라 해도 될 정도입니다. 시청자 반응에 따라 이야기 흐름이 갑자기 바뀌었다는 증거인지도 모르겠구요.
즉 시청자들의 반응에 따라 이야기의 결말을 바꾸고 필요에 따라 등장인물들을 넣었다 뺀다는 추측이 가능한데 유나에 대한 호응이 높아지고 처제와 형부의 결혼은 안된다는 시청자 의견이 많아지자 유나 역할의 분량을 확대한 것이 아니겠냐 뭐 이런 이야기입니다. 덕분에 주인공이었던 몽희는 요즘 윤심덕과 정몽규(김형준)의 갈등을 조언해주거나 박현수에게 '형부'라고 불러주는 역할로 혹은 유나에게 연애코치나 상담해주는 역으로 간간이 등장할 뿐입니다. 러브라인의 주인공에서 이제는 바라봐주는 역할이 된 셈이죠.
자신의 아들 현준(이태성)을 첩의 자식으로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박현수를 적대시했고 죽이려했던 장덕희의 악행은 결국 현준의 교통사고를 유발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방영 4회 밖에 남지 않은 '금나와라 뚝딱'의 이야기도 조만간 끝날 때가 되었다는 신호입니다. 유나든 몽희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똑같은 한지혜니까 이왕이면 호감이 가는 유나가 박현수와 맺어지는 것도 좋겠다 는 생각이 듭니다. 윤심덕의 딸로 자라 자신의 쌍둥이 자매를 대신해 부자집 맏며느리가 될뻔했던 몽희의 기적같은 이야기는 이렇게 '신데렐라'가 아닌 가족들의 화해로 보기 좋게 마무리될 수도 있겠구요.
몽희가 박현수의 처제로 남길 자청하고 유나와 박현수가 다시 부부로 맺어지고 윤심덕 가족과 박순상 가족이 서로의 부족한 부모와 자식을 받아들이는 식의 결말. 김필녀의 말대로 '자식둔 죄와 부모를 둔 죄로 모자란 부모와 자식을 서로 받아들어야하는'게 인생인지도 모릅니다. 몽희의 일방적인 희생과 윤심덕의 욕심은 보는 내내 짜증이 났고 지금도 기세등등한 윤심덕이 싫습니다만 평생의 단 한번뿐인 사랑을 형부와 언니 때문에 포기하는 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양보가 아닌가 싶긴 해요. 어쨌든 마지막회는 작가 맘이겠습니다만 이대로라면 막장을 피했으니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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