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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한 대한민국 기업드라마 '황금의 제국', 그 마지막 메시지는?

Shain 2013. 9. 18.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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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수 작가와 조남국 PD하면 그들의 히트작 '추적자(2012)'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평범한 아버지 백홍석(손현주)이 재벌 사위이자 인기 대통령 후보인 강동윤(김상중)을 법정에 세우는 모습은 현실에서 이뤄지기 힘든 판타지임에도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반면 박경수 작가는 모든 죄를 사주한 강동윤에게는 8년형을 철없는 재벌 2세 때문에 딸과 아내를 잃고 살인자가 된 백홍석에게는 15년형을 구형함으로서 피해자 보다 돈가진 가해자에게 더 관대한 현실을 여과없이 그려냈습 니다. 그렇지만 '투표'로 강동윤을 단죄한 국민들의 모습에서 국민이 바뀌면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었죠.

'장봉호의 아들은 면허증이 있어도 운전석에 앉으면 안됩니까' 섬뜩하지만 신랄한 장태주의 메시지.

'황금의 제국'은 '추적자'에서 두루뭉술하게 보여준 '돈'의 권력과 시스템을 좀더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어째서 서민이 재벌이라는 시스템을 이기는 것이 불가능한지 그리고 돈과 권력 인맥으로 촘촘하게 다져진 대한민국 경제의 맥, 세계에서 유일하게 혈연으로 상속되는 재벌이 어떻게 대한민국을 움직이는지 생생하게 표현합니다. 장태주(고수)의 입지전적인 성공과 도전이 판타지라면 장태주가 끝내 재벌후계자 최서윤(이요원)에게 지고 자살하는 과정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이었죠.

 

그러나 '추적자'가 그랬듯 대한민국의 경제사를 묘사한 '황금의 제국'에서도 박경수 작가는 잊지않고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황금의 제국'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이 등장합니다. 뒤늦게야 성진그룹이 진흙탕임을 깨달았다는, 모든 욕심을 다 버렸다는 최동진(정한용) 조차 달달한 양갱에 대한 욕심은 버리질 못했습니다. 한정희(김미숙)가 죽을 때가 되서야 아들 성재(이현진)와 좀 더 행복하게 살걸 그랬다고 후회한 것처럼 죽기전까지 많은 사람들이 돈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 삽니다. 못가진자부터 가장 많이 사람까지 촘촘한 돈의 계급이 욕망을 부추킵니다.

못가진자도 가장 많이 가진 자도 죽기전에는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욕망.

신림동 판자촌 장태주는 그 계급의 꼭대기로 가려했고 아버지 최동진이 큰아버지 최동성(박근형)의 마부로 대신 옥살이 해주는 희생양으로 살아가는게 지긋지긋하게 싫었던 최민재(손현주)도 서윤을 밀어내려했습니다. 최서윤은 따지고 보면 자기들 것이 아닌 성진그룹을 최씨가문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형제들을 감옥에 넣고 새어머니를 밀어냅니다. 굵직한 멜로도 그 흔한 신파도 없었던 드라마 '황금의 제국'은 최서윤이 그룹을 지키는 것으로 마무리 됩니다. 인간에게 돈에 대한 욕망이 타오르는 한 제국이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장태주 - 자살로 마무리된 서민의 무너진 욕망

장태주의 거침없는 도전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 욕구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능력도 자질도 최서윤이나 최민재 보다 못한 것이 없는데 성실한 아버지 장봉호(남일우)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죄로 성진그룹을 가질 자격이 없다는게 지겹도록 싫었습니다. 장태주는 재벌집 자식들에게만 주어진 그룹 상속 기회를 가졌고 그들과 똑같이 그들 보다 더 강력하게 질주합니다. 고고한 공주님 최서윤이 그에게 결혼을 제안하고 노련한 경영인 최민재가 그에게 손을 내밉니다. 많은 사람들은 장태주가 최동성처럼 재벌 시스템에서 성공할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런 장태주가 결국 최서윤에게 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결국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기로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최서윤이 성재와 큰오빠 최원재(엄효섭)를 감옥에 보내고 친아버지같았던 박전무(최용민)까지 페이퍼 컴퍼니의 죄값을 치르게 했지만 장태주는 윤설희(장신영)을 희생시키지 못했습니다. 사실 장태주의 자살이 의외였다는 사람들도 많지만 어쩌면 첫회부터 불안불안한 장태주의 폭주는 이미 죽음을 예고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최동성이 만든 세계에서 최동성이 만든 룰로 싸운다는 것은 목숨을 건 도전이었을테니 말입니다.

욕망이 있는 한 질 수 밖에 없는 세계. 장태주의 가장 큰 실수는 그들이 만든 세계에 뛰어든 것이다.

최동성의 세계로 뛰어든 서민 장태주의 도전은 많은 의미를 지닙니다. 거품경제 위에서 장태주와 최서윤, 최민재가 도박판을 짤 때 마다 많은 서민들이 다칩니다. 아파트 투기, 재개발, 카드 대란 등 서민들의 욕망을 부추키는 그들의 계획에 극히 일부의 서민들만 성공하고 나머지는 지옥같은 실패를 맛봐야합니다. 그들이 만든 판에 뛰어든다는 자체가 이미 '올 오어 낫띵'이었으니 불행한 최후는 당연한 것이었다는 말 이죠. 철거민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봐야했던 장태주가 도전해야할 것은 최동성의 후계자가 아니라 재벌의 붕괴는 아니었을까요.

어쩌면 돈에 대한 욕망이 끊임없는 한 최동성이 만든 돈의 계급은 영원이 유지될지도 모릅니다. 한강변에 서울의 지형을 바꿀 아파트를 짓고 누군가 그땅을 사서 부유함을 과시하고 서민들이 그 아파트를 바라보며 돈을 욕망하는 한 제 2의 장태주가 나타난다 해도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지도 모르죠. '장봉호의 아들은 면허증이 있어도 운전석에 앉으면 안되냐'는 장태주의 독한 외침 이 서글프면서도 현재의 경제 체제에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유리천장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요.




최민재 - 경영을 포기한 재벌의 영원한 마부

최민재에게 남겨진 성진개발을 건실하게 키웠더라면 최민재는 국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기업인으로 존경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건설회사를 키운 노하우와 현장에서 쌓은 경영능력은 재벌 2세 이전에 '전문경영인'으로서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최민재는 경영인이 아닌 성진그룹의 주인을 노렸고 최동성 집안에 식탁에 앉기를 원했 습니다. 최동성의 식탁에는 성진그룹의 일부로 영원히 남아있고 싶은 재벌 2세들이 우글거렸죠. 박은정, 최정윤(신동미), 손동휘(정욱), 한정희와 함께 최민재는 기업의 안녕 보다는 재벌 상속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했습니다.

존경받는 기업인이 될 수 있었지만 스스로 기회를 버린 재벌2세 최민재.

최민재는 아버지처럼 성진그룹의 마부가 되지 않겠다고 했지만 자신 역시 서초동으로 조사받으러 갑니다. 장태주에게 빌붙어 재개발과 한강변 개발의 이익을 봤던 그는 존경받기는 커녕 손가락질 받는 기업인으로 남게 되겠죠. 처음부터 끝까지 최민재의 설움은 공감할 수가 없었던 이유중 하나도 성진가에서 최서윤을 제외한 사촌형제들 중에 가장 가능성있고 능력있는 인물이 능력을 발휘하기 보다 진흙탕을 선택했기 때문 입니다. 장태주처럼 밑바닥에서 시작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 나라 기업인들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최서윤 - 국민 안주거리가 된 재벌이 외롭습니까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읽던 최서윤은 냉철한 판단력과 경영능력, 괜찮은 점이 있는 재벌가의 딸이었습니다. 아버지와 형제들을 사랑할 줄 아는 따뜻한 문학도이기도 했죠. 그런 최서윤 곁에 아무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박은정(고은미)을 최원재와 이혼시키고 완전히 혼자가 된 최서윤은 슬프게 울먹입니다. 끝까지 최서윤과 맞서던 장태주는 최서윤에게 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했습니다. '어째서 성진그룹이 최씨 집안의 것이냐'는 너무나 당연하고 근본적인 질문 말입니다.

최동성회장이 작은 기업을 합병하며 그룹을 키우고 최서윤은 지주회사인 성진시멘트의 주식을 통해 전체 기업을 경영합니다. 그룹의 계열사가 서로서로 주식을 순환출자하는 방법으로 운영되는 소위 '황제 경영'을 통해 아주 적은 양의 주식으로 계열사에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런 경영방식은 잘못된 지시를 내리거나 불법을 저질러도 책임지지 않을 수 있는 핑계까지 줍니다. 그 거대한 그룹이 어째서 최씨집안 것이냐는 장태주의 질문에 최서윤은 정확하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죽 그랬으니 당연하게 생각해왔고 세상 질서가 그렇기 때문 입니다. 

최서윤의 눈물이 안쓰럽다고? 성진그룹이 최씨집안의 것이라 생각하는 서윤이 가장 악역일지도.

최서윤에게는 최동성의 딸이자 큰오빠 원재나 언니 정윤 보다 경영능력도 나은 서윤이 성진그룹을 갖는게 너무나 당연합니다. 불법이 드러나 위기에 처하면 죄를 뒤집어쓸 사람을 구하고 자신을 방해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언론과 법조계을 움직입니다. 마치 최서윤 개인의 소유물처럼 계열사를 담보로 빚을 얻기도 하며  IMF 외환 위기와 국제 금융 위기 상황에서도 무리한 투자를 감행합니다. 최동성 회장이 만든 세계에서 최서윤은 하트의 여왕이고 아무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최서윤이 보여준 악랄한 경영방식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캐릭터에 대한 호감도가 높다고 합니다. 장태주와 비교될 정도로 타고나게 교양있고 부드러운 말투, 여성이라는 차별성 덕분이기도 하지만 최서윤의 가족이 붕괴되고 보여준 눈물 때문일 것입니다. 처음부터 주인이었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어쩌면 세 사람 중에 가장 지독한 악역은 바로 최서윤이고 가족들을 모두 내치고 흘리는 그녀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 임에도 최서윤이 혼자 지옥에 남겨졌다고 동정을 표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이 만든 영원한 지옥. 가장 훌륭한 기업드라마 한편이 완성되다.

최서윤의 눈물은 어쩌면 국민들과 괴리되어 고립된 재벌의 '배부른 투정'일지도 모릅니다. 가난한 우리 나라에서 기업을 일군 재벌 1세대들은 존경받았지만 그 기업을 자손에게 물려준 재벌 2세들은 오늘도 손가락질받고 있습니다. 그들의 장남이 재산 승계과정에서 자살하고 쫓겨나도 안됐다는 생각을 해줄 사람은 없습니다. 어쩌면 그들의 인맥과 돈과 권력으로 지켜진 최서윤의 성진그룹은 영원히 대대손손 최씨 집안의 것일지도 모르죠. 그러나 '성진그룹은 누구의 것이냐'라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면 외로움도 동시에 감당 해야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부 팬들 중에서는 재벌 딸인 최서윤과 장태주의 로맨스가 기대된다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엉뚱한 바람을 적은 분들도 있고 장태주가 남자 신데렐라이기 때문에 최서윤이 이겨야한다는 재미있는 의견도 보았습니다만 대한민국의 경제가 이렇게 신랄하게 표현된 드라마에서 어설픈 멜로와 승리는 처음부터 말이 안되는 일 이었습니다. 낮은 시청률이 신파와 멜로 없이 우리 나라 드라마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증거가 되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가장 훌륭한 기업드라마 중 한편으로 꼽고 싶습니다. 한사람의 팬으로서 출연진과 제작진 모두 수고했다는 말 꼭 하고 싶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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