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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코리아, 오지영의 불안한 선택이 아름다운 이유

Shain 2014. 1. 3.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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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도 미스코리아를 배출한 전통적인 미용실들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미스 유니버스 순위권에 들었던 87년도 미스코리아 진 장윤정은 유명 미용실에 갔다가 미스코리아로 발탁되었다고 합니다. (본인이 밝힌 이야기일 뿐이지만) 아직 아이티를 완전히 벗지 못한 17살의 어린 나이로 수영복 한번 입어보라는 미용실 원장의 말에 선뜻 응했다는 장윤정. 장윤정을 기억하는 팬들은 80년대 미스코리아들은 성형수술도 받지 않고 그렇게 예뻤다며 전설처럼 그 시대를 이야기하곤 합니다.

잘 나가는 마애리 대신 김형준과 미스코리아에 나가기로 한 오지영. 와이키키!

 

요즘 미스코리아 중에도 자연미인이 많지만 성형수술로 완성된 미인도 당연시되고 있더군요. 그렇지만 드라마 '미스코리아'에서 보여준 것처럼 미용실 내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워킹 훈련을 받고 관리받는 일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입니다.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지, 덕, 체를 겸비한 한국 최고의 미인을 훈련하는 전문 시설이 따로 있고 그 시설에서 웬만큼 비용을 지불해야 미인대회 참가 조건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성형수술도 그 조건 중 하나가 되었을 뿐이죠.

드라마 '미스코리아'의 캐릭터들이 살고 있는 90년대 후반은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많았습니다. IMF 외환위기와 함께 찾아온 배고픔의 공포는 돈 보다 귀한 가치를 인정하던 사람들이 돈으로 환산되는 가치를 쫓게 만들었습니다. 사채업자들이 사망보험금을 타겠다고 저지른 범죄도 진짜 있었고 카드빚 독촉으로 자살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인터넷 보급율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아날로그 감성이 디지털 감성으로 변하던 시대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오지영의 가슴 성형을 찬성하고 반대한다. 가치관이 공존하던 그 시대.

 

고등학생 김형준(이선균)과 오지영(이연희)이 보여준 80년대가 그립고 정겨운 과거였다면 드라마를 보고 있는 시청자들은 80년대의 아기자기한 감성을 다소 이해하기 힘든 현대에 살고 있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현재'인 90년대 후반은 80년대 감성의 잔재가 고소한 떡고물처럼 묻어나는 동시에 계산적이고 각박한 21세기의 정서가 함께 공존하는 시기입니다. 눈치빠른 이윤(이기우)과 달리 화장품 벤처기업을 운영하면서도 세련되지 못한 김형준 패거리처럼 그들의 정서는 어딘가 모르게 어정쩡하죠.

무시당하는 엘리베이터 걸 오지영은 인생을 확 바꿔놓을 수단으로 미스코리아를 선택 했습니다. 부자도 아니고 배운 것도 없고 공부도 잘하지 못했던 오지영에게 믿을거라곤 예쁘장한 얼굴과 몸매 말고는 없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일해서 혼자 힘으로 돈벌고 싶었는데 직장에서는 악마같은 박부장(장원영)이 매일 괴롭히고 이유도 모르고 헤어진 남자친구 형준은 싼티나는 여자라고 흉보고 다녔답니다. 한때 자신을 쫓아다니던 이윤은 지영을 싸구려 접대부 취급했죠.




 

 

퀸미용실 원장 마애리(이미숙)와 체리미용실 원장 양춘자(홍지민) 모두에게 러브콜을 받았던 오지영은 감귤아가씨 선발대회 소동으로 마애리에게 훈련받게 되었습니다. 한복과 정장 한벌 마련할 돈도 없어 정선생(이선생)과 고화정(송선미)의 금목걸이를 팔아먹는 형준이 걱정되지만 밑도 끝도 없이 형준을 믿었다간 죽도 밥도 안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퀸미용실 측에서 미스코리아 관리 비용을 위해 제시한 금액은 무려 천만원 이었습니다. 퇴직금 전부를 박부장에게 빼앗긴 오지영은 돈이 한푼도 없었죠.

성형수술비와 관리비용으로 천만원을 요구하는 퀸미용실. 돈없는 지영과는 다른 세계.

 

미스코리아가 유일하게 지영을 '업그레이드'시킬 방법이고 그 때문에 남들이 꺼리는 가슴확대 수술까지 하려는 오지영. 현대인들 중 다수는 그런 상황에서 무얼 망설이냐고 말할 것 입니다. 김형준처럼 인생에 보탬이 안되는 남자 따위 가볍게 버리고 가슴 수술을 한 다음 마애리에게 찰싹 붙는게 우리가 배운 세상질서입니다. 어린 시절 애인에게 미련 가져봤자 남는게 무엇이며 도움이 안되는 김형준을 선택해서 미스코리아가 될 수 있겠냐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게 우리에게 익숙한 계산법이죠.

오지영과 김형준의 애정은 뜨뜻미지근합니다. 모든 걸 올인할 만큼 뜨거운 사이도 아니고 서로의 감정을 모른체할 만큼 차가운 사이도 아닙니다. 가슴 두근거리는 기억을 함께 공유하고 있고 언제 눈이 맞아도 이상하지 않는 불씨가 있지만 기껏해야 요즘말로 '썸남', '썸녀' 정도의 온도입니다. 형준의 '여자 가슴은 그 자체로 설레고 아름다운 것'이란 한마디에 마애리를 포기한 오지영의 선택은 미련한지도 모릅니다. 1등이 될 수 있는 확실한 고속도로를 두고 멀리 돌아가겠다는 뜻이니까요.

'여자 가슴은 그 자체로 설레고 아름다운 것' 형준의 말에 오지영은 수술을 하지 않기로 한다.

 

오지영은 김형준이 미스코리아를 만들어주겠다고 말했던 그 순간부터 형준에게 다시 끌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박부장이 방귀뀌었다면서 함부로 말할 때도 뺨을 때리며 모욕을 줄 때도 '와이키키'라며 꿋꿋하게 웃던 여자가 오지영입니다. 남들은 다 싼티난다고 해도 오지영에겐 남들에게 없는 단단한 무엇이 있었습니다. 못되 쳐먹은 상사가 괴롭혀도 옛날 남자친구가 하찮게 취급해도 꿀리지 않고 당당할 수 있는 용기가 지영에게는 있었습니다.

김형준의 '아름다움'에 대한 개똥철학은 당장 돈이 안되고 보탬이 안됩니다. 한가지 분명한 건 이제부터 오지영에게도 '아름다움'에 대한 자신 만의 생각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형준 때문에 그만두는 거냐는 마애리의 질문에 오지영은 그건 아니라고 대답 합니다. 마애리가 갈고 닦은 미스코리아로 가는 길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죠. 천만원, 이천만원 들이는게 확실한 성공을 보장한다 해도 자신 만의 미스코리아를 도전하기로 마음먹은 셈입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선택한 지영과 형준. 그들의 웃음이 아름다운 이유는?

 

자신 보다 돈많고 많이 배운 사람들 사이에서 오지영은 기를 펴지 못했습니다. 못된 박부장에게는 당차게 따지고 들면서 마애리에게는 또박또박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신체 조건이라면 그 누구 보다 우수하지만 지영의 힘으로 마련할 수 없는 큰돈에 주눅이 들곤 했습니다. 가슴 성형수술 모델이 되어 공짜로 수술받겠다고 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습니다. 세상 사람들 따라 돈돈거리던 오지영이라도 퀸미용실 안에서 길들여지는 모습은 전혀 그녀답지 않았 죠. 구두굽이 부러져도 맨발로 춤을 추던 오지영인데 말입니다.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화장품과 규격화된 아름다움을 평가하는 미스코리아 대회.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아름다움이란 가치는 이미 돈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다소 불안하고 패기라기 보다는 객기일 수도 있는 그들의 도전 - 아니 속사정을 알고 보면 필사적이고 간절한 그들의 선택이 크게 성공한다는 자체가 판타지 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대는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했듯 다양한 것들이 함께 공존했으니까 - 와이키키, 하와이, 위스키, 오이지하고 웃으면서 용기내는 모습이 그래서 아름답다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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