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문제를 다룬 드라마에서 가장 흥미로운 연출 중 하나는 '부부의 진화' 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사실 부부 사이의 모습이 변하는 건 생물학적 표현인 '진화'라는 말보다는 '발전'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지만 정작 부부들 자신은 잘 느끼지 못하는새 서서히 성숙해진다는 점에서 '진화'라는 표현을 쓰고 싶더군요. 물론 그 과정 중에 이혼이나 별거로 '도태'되는 부부도 있고 나쁜 상황 그대로 늙어죽을 때까지 사는 부부도 있습니다. 몇몇은 불의의 사고로 짝을 잃기도 합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에는 젊은 커플부터 나이든 커플까지 여러 부부가 등장합니다.
은진(한혜진)의 어머니 김나라(고두심) 여사는 사위나 며느리나 똑같이 자식처럼 대해주려 애쓰는 어머니입니다. '헬리콥터 맘'이란 표현까지 쓸 정도로 자식을 애지중지하는 엄마라 은진을 위해 바람피운 사위 성수(이상우)에게 잘해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김나라는 다 큰 자식인 은진이 손녀를 업고 아파트에 올라가는 것까지 애틋해 합니다. 김나라와 나대호(윤주상) 부부를 보면 부부는 저렇게 늙어야하는데 싶죠.
건물 세입자들에게 월세를 받는 일 말고는 딱히 소일거리가 없는 그네 부부는 손주를 돌봐주고 자식들을 돕는 것으로 여전히 자식들의 믿음직한 기둥이 되어줍니다. 김나라는 종종 대기업을 은퇴한 남편 나대호가 소녀 감성이 되었다며 타박합니다. 젊을 때는 듬직했던 남편이 이제는 별것도 아닌 일로 서운해 하는 모습이 재미 있는가 봅니다. '우리 둘중에 누가 먼저 죽을까'라는 김나라의 질문에 서로 '내가 먼저 가겠다'고 하는 모습이 참 여운이 남죠.
그런가하면 아직 젊은 송민수(박서준), 나은영(한그루) 커플을 보면 부부의 탄생을 보는 듯 합니다. 나은영의 사귀자는 말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던 송민수는 나은영이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고객을 돕는 모습을 보고 사랑을 느낍니다. 나은영은 알콩달콩하게 혹은 지지고 볶고 사는 언니 오빠의 모습을 보면서 별로 결혼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캐릭터입니다. 송민수도 마찬가지로 부모의 불륜과 누나의 눈물을 보면서 결혼을 쉽게 생각한 캐릭터가 아니죠. 누구나 처음에는 엄마 아빠처럼 그렇게 살지 말고 바람피우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두 사람이 힘들고 외로운 삶을 살며 서로를 사랑하게 된 것은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부부는 서로 함께 하고 싶은 마음으로 맺어져 마지막에는 나대호, 김나라 부부처럼 같이 있기만 해도 의지가 되는 단단한 부부로 진화하는 셈 입니다. 결혼 10년차 부부인 나은진, 김성수 부부와 결혼 20년차 부부인 송미경(김지수), 유재학(지진희) 부부는 아직까지 완성된 부부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은진, 성수 부부는 부부의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불륜'을 겪게 되었습니다.
부부의 진화과정, 불륜은 성장통인가 결말인가
딸 은진을 걱정하는 김나라의 대사대로 불륜은 모르고 지나가는 게 가장 좋습니다. 처음부터 없던 일인게 바람직합니다. 그런데 많은 부부들이 한번쯤 유혹에 빠져 배우자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치밀고 올라올 때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륜에 빠지고 싶은 유혹과는 별개로 상대방의 불륜은 못 참습니다 . 그래도 일단 내가 모르면 같이 살 수 있다고 합니다. '바람 피워도 나한테 안 걸리게 피우라'같은 농담같은 진담이 유행하기도 했죠.
나은진은 김성수의 바람으로 고통스러워하다 허전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자신도 불륜을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고 성수와 이혼하려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성수의 노력으로 다시 정붙이고 살까 노력 중이고 성수에게 자신의 불륜을 고백하려 운을 뗀 적도 있지요. '판도라의 상자'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말입니다.
은진, 미경 부부의 공통점은 각자 자신의 배우자에게 불만이나 고통을 느끼고 있지만 그 문제를 서로를 통해 해결할 수 없었다는 점 입니다. 대화를 하면할수록 서로에게 벽을 느끼고 부딪히기만 하고 타인과는 잘 되는 대화가 배우자와는 싸움이 된다는 걸 절실히 느끼고 있죠. 완벽한 부부로 진화하기 위한 첫단계는 일단 세상에 완벽한 아내, 완벽한 남편은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것인데 두 부부는 이제서야 그걸 알게 된 것같습니다.
바쁜 직장인 성수는 산후 우울증에 걸린 은진 때문에 피곤했고 남자로서 불만족을 느끼며 살게 됩니다. 은진은 은진대로 아이를 낳고 생긴 변화로 고통을 느끼고 성수가 자신을 도와주고 배려해주길 바랐지만 성수는 듬직하기는 해도 감정 표현에 서툰 남자입니다. 마찬가지로 재학은 꼼꼼하게 자신을 내조하는 아내가 고맙기는 해도 혼자 모든 걸 감당한다는 삶의 무게에 외로움을 느꼈고 송미경은 남편 재학이 자신을 여자가 아닌 동업자 정도로 생각하는 것같아 쓸쓸해 하면서도 고통스런 시집살이를 버텼습니다.
김성수는 밖에서는 세련된 직장인이지만 아내에게는 양말도 아무대나 벗어던지고 술먹고 드러눕는 남편입니다. 나은진은 밖에서는 따뜻하면서도 부드럽고 딱부러지고 공평한 여자지만 남편에겐 따지고 툴툴거리며 투정만 부렸습니다. 재학은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친절하고 섬세한 남자지만 아내에겐 각종 수발을 들게하고 시어머니가 씹던 껌까지 받게 할 정도로 무신경 했습니다. 미경은 주부로서 완벽하게 재학을 챙겼지만 모든 걸 책임진 재학이 느끼는 외로움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김성수나 나은진이나 유재학은 배우자에게서 얻을 수 없는 것을 불륜을 통해 얻으려 했던 것 입니다. 그리고 불륜의 끝자락에는 타인에게 부족한 것을 얻는다고 해도 그것이 배우자에서 얻는 것과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이야 어떻게 되었든 두 부부는 서로를 사랑했기 때문에 결혼했고 지금도 마음 한켠에 그 사랑이 남아 있다는 걸 절절히 느끼고 있습니다. 불륜 상대자를 통해 배우자와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걸 더욱 더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한번 바람을 피워본 남자라면 부부 사이에 만족하지 못할 때 아내 역시 바람을 피울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역지사지라고 아내의 부정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같기도 한데 자신을 '촌놈'이라 부르는 김성수에겐 결코 쉽지 않은 일인듯합니다. 그러나 극중 캐릭터 설정대로 김성수가 촌놈이라서 마초라서 여자의 바람을 못 받아들인다고도 볼 수있지만 그것 보다는 불륜에는 절대 역지사지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 입니다.
집안 살림을 다 부수고 주민신고를 받을 만큼 격하게 분노하고 울부짖는 김성수. 한때 은진이 상간녀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행패부리는 모습에 놀랐던 성수는 자신도 똑같다는 점에 스스로 자책할지 모릅니다. 그가 모든 걸 알아버렸기 때문에 그들의 불륜은 두번째 국면을 맞고 말았습니다. 성수 역시 진짜 아내의 상처는 몰랐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숨겨진 모습을 몰랐다는 사실을 유재학과의 만남을 통해 깨닫게 될 지도 모르죠. 불륜은 직접 겪어보는 것과 저지르는 것이 다르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다릅니다.
전체 20부작인 '따뜻한 말 한마디'도 벌써 8부까지 방송되었습니다. 제가 첫회를 보고 느꼈던 대로 두 부부 중 그 어떤 사람도 진심으로 배우자와 헤어지길 원하지 않는 것같습니다 . 아직까지도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 있습니다. 필요 때문에 함께 산다고 착각했던 사람도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과연 두 부부가 김나라, 나대호 부부처럼 '진화'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갓 태어난 부부 보다 10년, 20년된 부부의 갈등이 더욱 힘겹습니다. 이번에는 김성수가 진실을 받아들일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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