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피노키오

피노키오, 송차옥에게 언론의 양심을 호소한 기하명의 선택

Shain 2015. 1. 9.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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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피노키오'의 송차옥(진경) 부장은 한때 MSC와 재벌 간의 야합을 내부고발하려다 승진을 약속하는 부장(임병기)에게 설득당해 포기했다. 송차옥은 내부고발이 가져다줄 현실적인 끔찍함과 딱 한번 눈감으면 화려한 미래가 보장되는 회유 사이에서 용기를 낼 수 없었다. 은행에서 과장으로 일하던 남편 최달평(신정근)이 내부고발자가 된 후 어떻게 망가지는지 직접 보았기 때문에 송차옥은 더욱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13년 동안 딸 최인하(박신혜)에게 연락하지 않고 자신의 기사로 피해입은 사람들에게 모질게 대했던 것도 어쩌면 송차옥의 마지막 양심인지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선택했다는 이해를 받는 바에야 차라리 '기레기'라고 비난받는 것이 더욱 마음 편하다는 그런 태도 말이다.


기하명이 건내준 핸드폰과 증거에 송차옥은 눈물흘린다. '짜증날 정도로 사람 쪽팔리게 하는' 기하명의 선택.


기자의 양심은 권력과 돈 앞에서 어디까지 자유로울 수 있을까. 흔히 사람들은 '펜은 칼 보다 강하다'며 언론의 양심을 요구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기자는 다양한 직업 중 하나에 불과하다. 과거에는 세상에 새로운 소식을 알리는 일 자체가 중요하게 여겨졌지만 돈을 벌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자들에게만 직업적 양심을 바라기는 힘들다. 언론은 부정한 권력이나 재물에 가장 쉽게 물들 수 있는 리트머스지다. '비판의 칼날은 위를 향할 수록 날카로워야 한다'지만 현대사회의 언론은 강자에게는 무딘 칼날을 약자에게는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는 지경이다. 지금도 사회에는 언론사의 정책에 반발하다 해고당한 여러 언론인들이 있다.


기하명(이종석)의 가족이 송차옥의 오보 피해자가 되고 그 때문에 기재명(윤균상)은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되었다. 기하명과 최인하의 친구 안찬수(이주승)는 언론의 여론몰이로 폐기물공장 화재 사건의 비난을 한몸에 받았다. '피노키오'의 수습기자들은 그런 언론의 폐해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고 언론의 책임을 뼈저리게 느꼈지만 막상 자신이 고발의 당사자가 되었을 땐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MSC 시경캡 김공주(김광규)와 이일주(김영훈)에게 송차옥과 박로사(김해숙)의 비리를 제보한 최인하는 내부고발 이후의 미래에 불안을 느꼈고 서범조(김영광)는 언론을 조종한 걸 전혀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는 어머니의 딱 부러지는 대답에 괴로워했다.









누구나 걸어가길 원치 않는 가시밭길과 화려한 미래가 보장된 편한 길 사이에서 가시밭길을 선택하긴 쉽지 않다는 것. 기하명을 사랑하고 기하명에게 죄의식을 느끼는 최인하는 기하명을 위해 자신의 미래를 포기했지만 기자의 양심을 지키는 일이 생각 보다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박로사의 말처럼 언론을 조정한 권력자나 기업이 벌을 받는 경우도 재기 불가능할 정도의 타격을 입는 일은 현실적으로 거의 없다. 그러나 비리를 고발하고 왕따가 된 내부고발자와 그의 가족들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힘든 고통을 겪어야한다.


송차옥과 박로사와의 문자메시지는 어쨌든 기호상(정인기) 소방관의 누명을 완전히 벗겨주고 부당한 기업과 언론과의 커넥션을 폭로할 수 있는 좋은 증거였다. 그러나 황교동(이필모)과 기하명은 최인하가 내부고발을 위해 MSC에 사직서를 냈다는 것을 알고 일단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기로 결정한다. 송차옥에 대한 복수를 기대하던 시청자들에겐 좀 답답할 수도 있겠지만 기하명이 처음 마음먹었던 것처럼 쉬운 길을 가는 것 보다 제대로 된 기자가 되는 것이야 말로 진짜 복수라는 면에서 옳은 선택일 것이다. 기하명은 송차옥에게 증거가 된 핸드폰과 문자 내역을 건내준다. '세상에 알리는 것이 송차옥이어야 한다'면서 말이다.


막상 자신이 내부고발자가 되기는 힘들다는 걸 알게 된다.


송차옥에게 폐기하고 입닦으면 그만인 증거를 건낸 기하명은 순진한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하명의 선택은 결국 기자의 양심은 기자가 지킬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16회에서 폐기물공장 화재사건이 소치올림픽이란 이슈에 묻힐 때 YGN은 '보고 싶은 뉴스'와 '봐야할 뉴스' 사이에서 '봐야할 뉴스'를 선택했다. 시청률 보다 기자로서의 책임감이 그들을 움직인 것이다. YGN 부장 이영탁(강신일)은 회식자리에서 기하명이 비꼰 언론에 대한 일침에 공감해 취재를 지시했고 그 보도는  안찬수의 누명을 벗겨주고 유가족들의 한을 풀어주었으며 책임자를 처벌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보여준 것처럼 뉴스는 억울한 현실을 비판할 수 있고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권력이다. 언론을 '기레기'라 욕하고 언론 보도를 믿지 않는 것은 쉽지만 현대 사회에서 언론 만큼 권력을 견제하기 좋은 수단은 없다.


기하명에게 증거를 받아들고 뒤돌아가며 최인하와 기하명이 '짜증날 정도로 무모하고 짜증날 정도로 사람 쪽팔리게 한다'는 송차옥의 말. 14년전에 버린 기자로서의 양심은 송차옥을 눈물흘리게 한다. 기하명은 송차옥에게 다시 한번 옛날의 내부고발을 하려던 그 기자가 되라 말하고 있다. 아무리 내부고발이 힘들고 언론이 권력의 영향을 받기 쉬운 상황이라 해도 기사는 기자들의 책임이다. '피노키오'의 기하명이 송차옥 기자의 선택을 요구한 것은 아무리 대중이 보고싶은 뉴스만 찾고 권력이 언론의 초점을 흐려도 그런 언론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 역시 기자들 뿐이란 이야기다. 물론 송차옥의 경우 이미 오래전에 잘못된 길로 돌아섰기에 보도 방향을 바로 잡으려 해도 쉽지 않다. MSC에서 보도를 방해할 것이고 박로사가 송차옥을 위협할 것이다.


송차옥에게 증거를 제공한 기하명. 그래도 언론을 믿고 지지할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의 현실이다.


송차옥이 김공주에게 취재를 지시하고, 예고편에서 기하명이 말한 '제보자'란 아마 서범조인 것으로 보인다. 서범조는 기자를 그만두겠다고 했지만 박로사와의 대화를 핸드폰에 녹음한 것같다. 서범조의 제보는 13년전 폐기물공장 화재사건 비리를 파헤칠 결정적인 증거가 되지 않을까 싶다.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가상의 증후군 '피노키오'를 통해 전개된 이 드라마도 마지막회가 얼마 남지 않았단 이야기다. 기자들은 거짓말을 할 때 마다 코가 자라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거짓말을 할 때마다 권력자에게 들이댈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은 무뎌지고 엉뚱한 사람들이 상처입는다. 언론의 양심을 송차옥에게 호소한 기하명의 선택은 그래도 언론을 믿고 지지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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