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피노키오

피노키오, 기하명 생각 보다 쉽지 않은 언론에 대한 복수

Shain 2014. 12. 26.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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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일이 어려운 건 '사실'과 '진실'이 다르다는 이유 때문이다.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하나 뿐이라도 그 사실에 숨겨진 '진실'은 여러가지일 수 있다. 기사는 육하원칙에 따라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기술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에 대한 '이유'도 함께 기술해야한다. 그 이유를 얼마나 제대로 파악하느냐에 따라 편파적인 기사가 되거나 오보가 되기도 한다. 사건 당사자들의 입장이나 기자의 관점에 따라 진실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사는 객관적으로 써야 한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드라마 '피노키오'는 언론의 오보로 가족을 잃은 기재명(윤균상) 형제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첫회부터 지금까지 MSC의 송차옥(진경)은 작된 오보로 기재명과 기하명(이종석)의 운명을 바꾸어놓은 밤의 여왕이었다.


정체를 드러낸 진짜 밤의 여왕 박로사. 기하명은 송차옥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는 박로사에게 복수해야할까?


기재명은 아버지 기호상(정인기)에게 누명을 씌운 폐기물공장 작업반장 문덕수(염동헌)와 그 동료들를 죽였다. 그들의 거짓말은 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웠을 뿐만 아니라 엄마와 동생도 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복수는 살아서 성인이 된 기하명을 만나면서 더욱 드라마틱해진다. 송차옥이나 그녀의 딸인 최인하(박신혜)를 통해 복수를 완성하려던 재명은 기자가 된 하명에게 기자로서 복수를 완성하라며 자수한다. 언론 피해자가 언론을 통해 기자를 망신주고 언론의 헛점을 증명하는 내용은 한편으론 비극이고 한편으론 충격적이다.


박혜련 작가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2013)' 때도 그랬지만 무거울 수 있는 진지한 주제를 가볍게 접근하는데 천재적이다. 살인이 벌어지는 상황은 극단적이지만 드라마가 추구하는 메시지 전달에는 확실한 효과를 보인다. 언론에 의한 죽음과 진짜 살인, 그리고 언론에 의한 복수 - 검은 거짓말과 하얀 거짓말을 구분하는 것만큼이나 어떤 것이 더 나쁜지 쉽게 판단할 수 없다. 물론 세상 사는 일이 언제는 딱 부러지게 정답이 있었을까 싶지만 기재명 캐릭터에게 동정이 쏠리고 송차옥에게 비난이 쏟아지는 것만 봐서는 사람들은 진짜 살인 보다 언론에 의한 살인에 더욱 분노하는 듯하다.









그런데 언론에 대한 복수는 결코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언론이라는 마술피리를 통해 세상사람들을 움직이는 밤의 여왕 송차옥은 알고 보니 거대자본의 꼭두각시였다. 기호상 소방관에 대한 오보는 박로사(김해숙)의 비리를 덮기 위한 물타기 뉴스였고 경찰 안찬수(이주승)를 위기로 몰아간 기사 역시 박로사의 부탁을 받고 보도한 기사였다. 송차옥은 600원 때문에 해고당하고 자살한 한 버스기사 뉴스로 상까지 받았지만 그런 목적있는 오보 때문에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송차옥은 시청자에게 뉴스는 하나의 마케팅이자 쇼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팩트에 이팩트를 더하는 것이 중요하고 뉴스를 대중이 원하는 취향에 맞춰줄 필요도 있다는 송차옥의 생각은 어딘가 모르게 현실적이다.


오보로 인해 한 가족을 비극으로 몰아넣은 송차옥은 드라마 '피노키오'에서 가장 악한 캐릭터 중 하나지만 뉴스에 대한 그녀의 가치관은 단순히 드라마가 아니다. '잘 팔리는 뉴스'를 만들기 위해 연예인의 뒤를 쫓고 별것 아닌 내용을 과장해서 보도하는 언론을 어디 한두번 보았는가. 박로사의 명품 가방 에피소드처럼 비싼 물가를 비난하는 듯하면서 오히려 유명제품을 홍보하는 기사도 익숙하다. 소위 '노이즈 마케팅'이라 불리는 언론의 술수로 고가의 제품이 광고비 하나 없이 유명세를 타는 현상은 소비자들 역시 잘 알고 있다.


송차옥의 행태는 현실에서도 익숙한 언론의 모습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랬는지도 모른다. 기재명은 자신의 가족에게 악랄한 질문을 던지며 기호상을 죄인으로 몰아간 송차옥에게 분노했고 복수하려고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언론에 대한 복수는 어딘가 모르게 애매하다. 기호상이 무리한 진압을 시도했다고 거짓말한 폐기물공장 직원들처럼 아예 거짓말쟁이들이라면 차라리 복수가 쉽겠지만 송차옥이란 이름으로 대변되는 '언론'은 알고 보면 한 사회의 권력과 분위기를 모두 포괄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송차옥을 뒤에서 조작한 박로사라는 사업가가 있고 송차옥의 보도를 통해 반사 이익을 취하는 권력자가 있다. 기재명 형제는 그들에게도 복수해야하는 것일까?


무엇 보다 황교동(이필모)과 기하명의 깨달음처럼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 역시 본질 아닌 분위기에 휩쓸리는 사람들이란 점이다. 기자도 사람인 이상 휩쓸리지 않기가 쉽지 않다. 황교동은 13년이 지나서야 폐기물공장 화재 사건이 사고 원인과 책임자를 추궁하는 본질에서 벗어나 어느 순간 소방관 기호상에게 초점이 맞춰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조그만한 팩트를 거대하게 키운 '물타기 뉴스'에 기자들도 휩쓸린다는 말이다. 안찬수에게 비난이 쏠린 화재사건도 마찬가지였다. 폐기물 공장의 책임자는 따로 있다. 폐기물 공장 화재와 부탄가스 폭발 때문에 출동한 안찬수의 공무집행이 화재와 도대체 얼마나 큰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기자들 역시 때로는 본질과 벗어난 이슈에 휘둘린다.


송차옥과 박로사의 부적절한 야합은 한가지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제는 뉴스의 소비자인 시청자도 언론의 본질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기호상 소방관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 화재사고 책임자 보다 기호상에게 비난의 무게가 훨씬 더 쏠렸다는 점을, 그 비정상적인 무게추를 대중 역시 고민해야했다. 기호상에게 무차별적인 비난을 쏟아낸 시청자에게는 잘못이 없을까? 기하명 형제의 가슴아픈 비극 보다는 '동생이 형의 살인을 고발했다'는 사실에 더욱 관심을 보이는, 말초적인 흥미를 가진 대중은 잘못한 것이 없을까? '피노키오'에서 묘사되는 시청자는 언론이 교묘하게 뒤바꾼 가해자에게 무분별한 돌을 던지는 어리석은 사람들일로 보일 뿐이다.


따지고 보면 기재명 형제의 복수는 송차옥에서 끝난게 아니었다. 복수의 대상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송차옥의 뒤에는 박로사라는 거대자본이 있었고 그 연결고리가 어디까지 이어져 있을지 쉽게 가늠이 되지 않는다. 박로사가 누군가의 부탁을 받았다는 것으로 보아 백화점 재벌이 정치계 거물과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다. 돈이든 정치든 권력의 본질이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돈과 권력이 뉴스를 쉽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기재명 형제의 복수는 어쩐지 허무해질 수 밖에 없다. 도대체 누굴 콕 집어 응징하고 누구에게 복수할 것이란 말인가? 박로사가 서범조(김영광)의 어머니가 아니라도 이건 어려운 일이다.


언론에 의한 비극은 대중 역시 책임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한다.


이것은 황교동이나 기하명처럼 '본질'에 가까운 기사를 고민하는 기자도 있어야 하지만 대중 역시 송차옥의 조작에만 분노할 것이 아니라 좀더 기사를 현명하게 받아들여야한다는 뜻이다. 언론에 의한 비극에 대중 역시 가해자로 동참하고 있다. 송차옥이 사라진다고 해서 언론과 자본의 부정적인 야합은 없어지지 않는다. 시청자가 왜 '송차옥'이란 이름의 기자가 '기레기'의 유혹에 빠졌는지 언제부터 자본과 권력이 언론을 조종하게 되었는지 생각해보지 않는 이상 - 사건의 겉만 보고 분노하는 이상 기레기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기하명 형제가 전국민을 상대로 복수극을 펼칠 수야 없는 노릇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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