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피노키오

피노키오, '다행이다 하명아' 언론에 농락당하는 안타까운 기재명의 인생

Shain 2014. 12. 5.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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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눈이 내리면 길에 빙판이 생기고 해마다 방송사는 걷다가 넘어지는 사람을 보여주곤 했습니다. 힐신고 미끄러운 길을 걸어 출근하는 고통도 알고 빙판길에서 넘어져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 된 어르신도 많다는 걸 알기에 사고가 나도 그냥 보고만 있는게 기자들의 할 일이라는 김공주 시경캡(김광규)의 말을 무조건 찬성하진 않습니다. 이미 많은 기자들이 기사 본래의 목적 보다 방송분량을 위해 보다 많은 행인들이 넘어지길 바라고 있고 때로는 그런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빙판길 행인 보도가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노약자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촬영에선 범주(김영광)나 인하(박신혜)처럼 손잡아 주는 일도 해야하고 도와주는 장면 역시 좋은 방송거리가 된다고 생각할 뿐이죠.


'다행이다 하명아' 빙판길에서 넘어진 학생을 동생으로 착각한 기재명은 아이를 구하기 위해 트럭으로 돌진한다.


빙판길 촬영 보다 넘어질 사람들을 위해 연탄재를 뿌려주는게 낫다는 인하의 고집에 김공주는 크게 야단을 쳤습니다. 송차옥(진경)에게 짤릴 위기에 처한 송차옥의 딸 인하가 안쓰러웠던 건지 아니면 평소 송차옥의 기자윤리에 정말 반발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김공주의 말은 인하를 설득시켰습니다. MSC 방송사의 인하, 범조, 카메라 담당 이주호(윤서현)은 밤늦게까지 빙판길 행인 촬영을 위해 기다립니다. 그들은 목발을 짚고 길을 건너려는 어린 학생을 보았고 그 학생이 미끄러지면 좋은 장면을 뽑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경찰 음주 단속을 피해 도주중이던 트럭 때문에 학생은 위험해졌고 MSC 방송팀은 학생에게 달려갔지만 상황을 찍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학생은 넘어지고 트럭은 질주하다 쓰러져 학생쪽으로 미끄러져오는 위험천만한 상황. 그때 자신의 생수트럭을 안에서 학생을 지켜보던 기재명(윤균상)은 그 어린 학생을 동생 하명(남다름)으로 생각했고 음주트럭 쪽으로 돌진해 트럭을 막았습니다. 자신이 더 다쳤지만 학생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는 기재명의 선행에도 불구하고 기재명의 또다른 비극이 시작되고 말았습니다.


세 건의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안타까운 기재명.


박혜련 작가의 전작인 '너의 목소리가 들려(2013)'의 민준국(정웅인)은 기자와 병원의 협잡으로 아내를 잃고 복수를 하다 남은 가족들까지 잃고 무서운 살인마가 되었습니다. 그의 살인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지만 가족을 잃었음에도 아무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던 과거는 분명히 연민을 느낄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피노키오'의 기재명은 세 명을 살해한 살인자이고 이제는 송차옥에게 복수하고 싶어하는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첫회부터 지금까지 안쓰럽기 그지 없습니다. 기재명에게 소중한 모든 것은 언론과 거짓말에 의해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13년전 폐기물처리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소방대장인 아버지 기호상(정인기)은 공장 직원들을 구하러 갔지만 폭발로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작업반장 문덕수(염동헌)와 직원들은 소방대장을 말렸지만 들어갔다며 거짓말을 했고 한 피노키오 증후군 환자는 살아있는 기호상을 봤다고 증언했습니다. 언론은 그들의 잘못된 증언을 그대로 방송했을 뿐만 아니라 기호상이 승진을 위해 무리한 화재 진압을 시도하고 혼자 도주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유가족들은 울부짖으며 기재명과 엄마(장영남), 기하명을 비난했고 고통을 참지 못한 엄마는 하명을 안고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기자 보다 훌륭한 일을 했지만 이미 살인자가 된 기재명


아버지가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이라 위안하며 홀로 생수 배달을 하며 살아가던 기재명은 어느 날 모든 진실을 알게 됩니다. 아버지는 공장 화재 당시 사망했고 그날 화재 현장에 있었던 공장 작업반장과 직원들이 거짓말했다는 걸 술자리에서 모두 듣게 된 기재명은 아버지가 당했던 그대로 되돌려주겠다며 복수를 시작했습니다. 직원 두 사람을 창고 화재로 불태워 죽이고 문덕수를 맨홀 아래에 가둬 문덕수에게 모든 혐의가 가도록 조작한 것입니다. 세 사람의 거짓말을 경찰에 증언한다고 해도 가족들이 겪은 고통을 되돌려줄 수 없는데다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었겠죠. 거짓말에 놀아난 언론의 무책임은 더욱 처벌이 불가능합니다.


기재명은 착하고 의젓한 큰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누명을 쓰고 비난받을 때도 기자를 만나겠다며 방송국을 찾아갔고 가족을 모두 잃은 후에도 아버지를 찾으러 전국을 떠돌았습니다. 범퍼를 망가트렸다는 최달포(이종석)의 쪽지에 그 정도는 안 물어줘도 된다며 손사레쳤던 기재명입니다. 성실하게 일하며 가족을 그리워했던 그가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가 살인을 저지른 이유는 자기 자신의 이익이나 잔인한 욕망을 위해서도 아니고 억울하게 죽어버린 가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비극을 떠안고 홀로 살아남은 고통이 그를 범죄자로 만들었습니다.


달포는 자신이 하명이고 기자란 사실을 말할 수 없었고 기재명은 달포가 거짓말을 했다며 비난한다.


최달포는 기재명의 단 하나뿐인 동생이지만 13년 만에 만난 형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못합니다. 기재명의 핸드폰 번호를 문덕수의 휴대폰 통화내역을 점검하다 찾았기에 혹시나 형이 살인사건에 가담한 것은 아닌지 불안한 마음에 반가움을 표현하지 못하고 형이 얼마나 언론을 싫어하는줄 알기에 기자라는 말도 못합니다. 기재명은 자신의 주변을 떠도는 최달포를 의심했고 달포가 기자라는 걸 알게 되자 '기자들은 다 끔찍하고 역겹다'며 화를 냅니다. 기재명의 복수를 막을 유일한 존재가 있다면 그건 동생 최달포 뿐일텐데 잠깐의 망설임이 형을 더욱 외롭게 만든 것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목숨걸고 어린 학생을 구한 기재명의 선택이 더욱 더 큰 비극을 불러올 것이란 점입니다. MSC 방송사 카메라맨 이주호는 기재명이 학생을 구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방송사로서는 보기 드문 특종이 터진 것입니다. 이주호는 기재명이 폐기물공장 화재사건 때 기재명을 만났고 10년이 지나 만난 기재명을 '어디서 본거 같다'며 기억해냈습니다. 언론이 한 가족을 파멸로 몰아간 사건이니 한 사람의 언론인으로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겠죠. 기재명이 기호상 소방관의 아들이란 사실은 언젠가 알려져도 알려질 일이란 것이죠.


MSC는 기재명을 영웅으로 만들 것이 틀림없다. 10여년전 만난 기재명을 기억하고 있는 카메라맨 이주호.


MSC 송차옥은 YGN과 시청률 경쟁을 하고 있고 단독보도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목숨을 잃을 뻔한 학생을 인터뷰하고 미끄러지는 트럭을 막은 기재명을 목숨을 구한 영웅으로 만들 것입니다. 선행 당사자로 알려질 기재명은 이미 살인을 저질렀는데 동생 최달포가 기재명의 범죄 의혹을 알고 있는데 그의 인생이 다시 언론에 농락당하게 된 것입니다. 아직도 가족을 그리워하는 기재명 - 아이를 구하는 순간에도 '다행이다 하명아'라며 죽어버린 동생을 걱정하는 착한 장남. '판을 키워볼만 하다'는 송차옥은 다시 기재명을 언론의 희생양으로 만들지도 모릅니다. 아이를 구한 영웅이 3건의 살인을 저지른 살인자로 드러나는 비극이 되버리는 거죠.


또 기재명의 사고는 송차옥, 최인하와 가까워질 기회가 될 것입니다. 기재명은 최인하와 송차옥을 상대로 복수할 뜻을 비친 적이 있습니다. 인하에게 위험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뜻이죠. 인하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최달포는 형에게 일어난 일을 모두 알게 되면 지난 13년 동안 왜 형의 곁에 있어주지 못했는지 자책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무엇 보다 슬픈 것은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임에도 기재명이란 캐릭터를 비난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언론이 그 거짓말을 키우고 대중이 그 거짓말에 동요하는 세상에서 그 누구 보다 큰 고통을 겪은 캐릭터이기에 그의 희생이 더욱 슬프고 안타까웠던 것같습니다.


어렵게 만난 동생 마저 기자라며 의심하는 기재명. 살인까지 저지른 그의 복수가 안타깝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기재명이 미끄러지는 트럭으로 돌진하는 그 순간 울컥했던 사람이 저 뿐만은 아닐 것같습니다. 그는 촬영만 하는 언론 보다 훌륭한 선택을 했습니다. 저렇게 동생을 끔찍하게 생각하던 기재명이 최달포가 기하명이란 걸 알게 되면 얼마나 비참해할까요. 동생을 위해 또 희생을 선택할까요? 문덕수를 맨홀에 가두며 울부짖고 분노할 때도 무섭다기 보다는 연민의 정이 느껴졌던 기재명입니다. 가족이 모두 죽어버린 이상 기재명을 위로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세상에 기재명이 선택할 수 있는 복수가 별로 없다는 걸 알기에 더욱 불쌍해보였던 것같습니다. 드라마 '피노키오'의 기재명 형제는 언론의 비윤리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둘의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건 이 이야기의 모티브가 어디선가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겠죠. 그 부분이 기재명을 더욱 안쓰럽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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