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련 작가가 드라마 '피노키오'를 쓸 때 어떤 사건을 모티브로 했는지는 본인에게 물어봐야만 알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이 드라마를 처음 볼 때부터 소방대장 기호상(정인기)과 그 가족들에게 일어난 일이 어디서 본 것같단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고 현장에 시장에서 사온 아이 신발을 가져가 촬영했다는 송차옥(진경)은 유사한 케이스를 읽어본 적 있지만 기호상 가족 이야기는 그 모티브가 선뜻 떠오르지 않더군요. 그러다 세월호 관련 뉴스를 읽을 때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비극적인 선박 침몰사고이자 최악의 오보 사건이었던 93년 서해 페리호 사건 때 도주했다는 누명을 썼던 선장이 있었습니다. 사고 며칠 뒤 서해페리호 안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故 백운두 선장 이야기입니다.
1993년 10월 10일 발생한 서해페리호 침몰 사건은 29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선박사고로 최근 전국민을 슬픔에 빠트린 세월호 사건 만큼이나 여파가 컸습니다. 인터넷이 없던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TV나 신문을 통해 유가족들의 아픔을 애통해 했습니다. 사고 원인이나 선박회사의 책임, 미숙한 구조에서도 유사한 점이 있는 사건이었으나 선장, 기관장, 갑판장 등 승무원이 배에서 내리지 않았다는 점에선 세월호 사고와 달랐습니다. 그들은 끝내 사고 5일째인 10월 15일 통신실 안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죠. 그들은 시신이 발견될 때까지 살아있는 사람으로 언론보도되어 안타깝게도 많은 국민들의 미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선장 백운두씨 살아있다'는 내용의 이 기사에는 사고 발생 당일 구조작업 중 '서해페리호 선장 백운두씨가 소맷자락 하나 젖지 않은 채 구조어선에서 내리는 것을 보았다'는 목격자 증언, 인터뷰가 실려 있습니다. 목격자는 10일 어선을 타고 서해페리호 승객들을 구조하던 인근 섬의 어부 중 한 명이었습니다. 당시 33살의 목격자는 백씨가 그 마을에 살고 있어 그 마을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며 자신의 목격담에 신빙성을 더해줍니다. 목격자와 같은 배를 탄 어선의 선원들도 똑같이 백운두 선장을 봤다고 증언했으니 이 정도면 백운두 선장이 살아 있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었죠.
그 때문에 검경합동수사본부는 10월 13일 사고 수사에 결정적 열쇠를 쥔 백운두 선장을 비롯한 선원 7명을 전국에 지명수배합니다. 경찰은 백선장과 선원들이 벌금이나 처벌이 무서워 도주했을 것이란 결론을 내리고 백선장이 목격된 섬과 근처 무인도를 수색합니다. 하루 아침에 백운두 선장은 승객을 두고 도망친 파렴치한이 되어버렸습니다. 수사팀이 큰 아들을 비롯한 가족들에게 자수를 종용했다는 기사도 있습니다. 사고 이후 선장과 통화를 했다느니 어느 섬에 내려줬다, 일본에 밀항했다 같은 제보도 이어졌죠. 일부 주민은 경찰이 너무 소문에만 의지한다고 지적했으나 묵살되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 뒤의 이야기는 여러분들이 드라마 '피노키오'에서 본 장면들을 떠올리시면 될 것입니다. 선장과 선원들은 끝까지 배를 지키며 통신을 시도하다 탈출하지 못하고 배와 함께 가라앉았습니다. 그들의 시신이 15일날 발견되었고 그동안 떠돌던 풍문은 모두 잘못이었습니다. 어쨌든 살아 있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다시 보길 기대했던 가족들, 백운두 선장의 아내와 딸은 '살아 있다고 했으니 우리 아버지를 살려내라'며 울부짖었습니다. 수사관과 기자들이 찾아와 백씨의 행방을 다그칠 때 마다 평소 책임감있고 성실했던 아버지가 파렴치한으로 몰리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고도 했습니다. 그동안 유가족들의 원망을 모두 떠안아야했던 승무원 가족들의 슬픔이 시신 발견과 함께 폭발해버렸습니다.
지금은 예전 보다 조금 나아졌지만 90년대까지의 수사 관행과 취재 풍경은 지금 보다 훨씬 더 살벌했습니다. 용의자의 가족도 범죄자 취급하며 윽박지르기 일수였고 사생활의 개념이 희박하던 시절이라 사건과 상관없는 가족일 뿐인데 허락없이 마구 촬영하고 모자이크 처리도 하지 않았죠. 요즘 기자들도 말조심하지 않고 아무 말이나 하는 편이지만 그때는 기호상 가족의 상처를 마구 헤집는 송차옥처럼 무례한 질문도 많이 하던 시절입니다. 드라마 속에서는 10여년전 상황이지만 서해페리호 사건은 무려 20여년전 사건이니 말입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며 죽음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건 비난 뿐이었습니다.
이 오보를 작성한 언론사는 놀랍게도 한겨례신문(동아일보도 쓰긴 했습니다)입니다. 원문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육하원칙에 따라 목격자가 구술한 증언을 간결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절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는 피노키오 증후군 환자의 목격담으로 표현했지만 셋 이상의 사람이 '봤다'고 증언하면 없던 사실이 갑자기 진실이 되기도 합니다. 증인의 수가 많고 경찰 마저 확신하면 언론은 특종을 터트릴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드라마 속 기호상 소방대장과 가족의 이야기가 완전히 허구 만은 아닌 셈이죠. 그러나 목격자와 증인이 있음에도 이 기사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준 최악의 오보가 되고 말았습니다.
최달포(이종석)와 최인하(박신혜)가 어렵게 시험을 치르고(물론 달포는 가볍게 통과했지만) 잠못자며 마와리를 나가는 기자들은 나름대로 전문직의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그들 만의 전문적인 은어도 있습니다. 송차옥의 말투는 차갑고 냉정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신감과 엘리트 의식이 뚝뚝 뭍어납니다. 뭐 그럴만 합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건을 자신있게 전국민에게 보도하려면 웬만한 확신과 배짱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런 똑똑한 기자들이 왜 기레기가 되고 오보의 주범이 될까요. 합리적인 의심이 아닌 상상을 하기 때문에?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통찰력이 부족해서일까요?
최달포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봅시다. 전교 꼴지 최달포는 '올빵'이란 별명을 가질 만큼 바보인 척 살아왔습니다. 아무도 최달포가 도서관 책을 모두 읽었을 정도로 똑똑하다는 걸 모릅니다. 최달포는 퀴즈쇼에 나가기 위한 시험에서 백점을 맞고 주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안찬수(이주승)를 비롯한 선생님들이 최달포가 시험지를 훔쳤다고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죠. 현실세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1993년 폭로된 적 있습니다. 91년 내신 10등급이고 고교시절 꼴지만 하던 학생이 삼수 만에 모 대학 의예과에 수석입학한 일이 있었습니다. 학력고사를 보던 때이니 내신 10등급이면 공부를 아예 안했다는 뜻입니다.
당시 부유했던 그 학생의 가족은 대학입학학력고사 정답지를 구해(장학사가 유출시켰다고 합니다) 딸에게 외우게 했고 그 덕에 두 딸 모두 의예과에 합격시킬 수 있었습니다. 딸들은 입학 후에도 성적이 썩 좋지 않았지만 91년에 입학해 93년이 되어서야 그들의 대입비리는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어떻게 내신 10등급이 수석입학할 수 있었는지 '합리적인 의심'을 했던 사람들이 그 증거를 밝혀낸 것입니다(지금 큰 딸은 모 대학 교수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피노키오'의 안찬수는 합리적인 의심이지만 증거없는 의혹을 퍼트렸습니다. 기자로 치면 최달포의 자세한 상황을 알아보지 않은채 기사를 낸 것입니다.
다시 서해페리호 사건의 선장생존 오보 사건을 생각해봅시다. 기자들은 다수의 목격자들이 증언했기 때문에 선장의 생존을 확신했음이 틀림없습니다. 엄청난 사망자 때문에 유가족과 국민들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정보를 얻길 원했고 사고의 큰 책임이 있을지도 모르는 백운두 선장을 추적한다는 정의감도 조금쯤 있었을지 모릅니다. 비탄에 빠진 사고 현장에서 그 정도의 감정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을테니 말입니다. 당시 기자들에게는 안찬수처럼 근거없는 의심만 한 것이 아니라 증거도 충분했습니다. 수습 기자 달포와 윤유래(이유비), 인하와 서범조(김영광)가 마주친 한 여성의 급사 사건도 어쩌면 그런 상황입니다. 지금까지 습득한 정보면 '지나친 다이어트로 사망한 여성' 이란 기사를 만들기 충분합니다.
그러나 갑자기 딸국질을 하는 인하와 헬스장에서 몰래 녹화한 동영상을 보며 생각에 잠긴 달포, 화재사고로 사망한 두 명의 살인사건을 고민하는 안찬수의 '감'처럼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합리적인 의심'에 또다른 '합리적인 의심'을 더해야하는 순간인거죠. 백운두 선장 생존 오보 사건이 단지 '소문'이라 판단한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은 목격자 이외에 현장에 있었던 다른 사람들의 말이 달랐거나 목격자의 증언을 착각이라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세세한 사정을 파악해야 진짜 기자가 되는 것이니 MSC와 YGN, 두 팀의 수습기자가 보내준 정보를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김공주(김광규)와 황교동(이필모)의 역량이 드러나겠죠.
시청자들은 쉽게 기자들을 '기레기'라 부르지만 기자들 만의 치열한 속사정도 있을 것입니다. 짐싸들고 경찰서에서 노숙하는 모습은 웃기다기 보단 찌질해보였습니다. 그렇지만 '피노키오'의 회가 거듭될수록 어렵고 힘든 만큼 책임이 무서운 직업이 바로 기자라는 것을 곱씹게 됩니다. 현상을 단순히 겉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발로 취재하라'는 당연한 원칙이 왜 지키기 어려운 지도 알 것같구요. 기자가 되어 형을 찾고 아버지 사건을 파헤치고 싶은 최달포와 최달포가 퀴즈쇼 출연으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는 모습을 보며 언론의 본질을 알게 된 최인하. 언론이 '쓰레기'가 되어버린 시대라서 그 모습이 더욱 신선하게 다가오는 듯합니다. 1993년의 서해페리호 사건에 있었던 일들이 최근에 똑같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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