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피노키오

피노키오, 서로 다른 복수를 선택한 형제의 불안한 미래

Shain 2014. 11. 27.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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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타인의 마음이 들리는 초능력을 통해 살인의 가해자,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보여준 드라마였습니다. 주인공의 초능력이란 설정은 법의 모순과 이기적인 세상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동시에 누구의 목소리든 들어주는 판타지 역할을 했습니다. '너목들' 박혜련 작가의 이번 드라마인 '피노키오'는 피노키오라는 가상의 증후군을 통해 언론과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더군요. 주인공 최달포(이종석)는 기자들의 거짓말로 부모를 잃고 형을 잊어야했지만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인하(박신혜)와 함께 기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살아 있을 것이라 믿었던 아버지의 시신이 발견된 것을 알게 되자 기자가 될 수 밖에 없는 다른 이유가 생겼습니다.


최달포는 황교동에게 자신의 본명이 기하명이란 사실을 털어놓는다. 살인자 형과 마주쳐야할 최달포.


최달포는 기하명이란 진짜 이름이 있지만 스스로 그 이름을 버렸습니다. 소방관이던 아버지 이호상(정인기)가 동료 소방대원들을 무리하게 화재 현장에 투입시켰다는 누명을 쓰고 실종된 후 세상은 정확한 증거도 없이 그들 가족을 비난하기 시작했고 엄마(장영남)은 바다에 몸을 던져 세상을 떠났습니다. 특종을 뽑고 싶었던 MSC 송차옥(진경)과 언론인들은 그들 가족을 박살낸 거짓말쟁이들입니다. 반면 최달포는 자신을 감싸준 최공필(변희봉)의 거짓말로 인하, 달평(신정근)이란 또다른 가족을 얻었고 그 덕분에 아슬아슬했던 어린 시절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달포를 어릴 적 죽은 아들로 믿고 있는 최공필이 발작을 일으킬까봐 바보인 척하며 학교를 다니고 인하를 위해 대학을 포기하는가 하면 그들 가족을 위해 택시기사까지 한 달포가 모든 걸 희생하는 듯했지만 달포는 구역질을 하는 자신을 위해 약을 사다주는 최씨네 가족이 아니었다면 세상 살아갈 의미를 찾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최달포는 이렇듯 무조건 거짓말을 부정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따뜻한 거짓말도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는 동시에 언론의 거짓말을 증오하는 인물입니다.











달포의 형 기재명(윤균상)도 달포와 비슷한 삶을 선택했습니다. 아버지의 억울함을 밝히려 기자를 만나러 방송국을 찾아간 사이 엄마와 동생은 자살했습니다. 하명은 집나간 형이 도망갔다고 생각했지만 하명은 장남의 책임감으로 언론에 진실을 요구하러 찾아간 것이었습니다. 그 사이 재명은 진짜 혼자가 되버린 것입니다. 누구 보다 장래가 유망하던 재명은 자신의 미래를 버리고 생수 배달을 하며 아버지를 찾아다녔습니다. 피노키오 증후군을 가진 사람이 아버지를 목격했다고 했으니 아버지가 살아 있을 것으로 믿었고 화재사고 이후 아버지가 나타나지 못한 이유가 있으리라 믿으며 힘든 시간을 버텼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술자리에서 알게 된 진실은 재명의 희망을 단숨에 깨버렸습니다. 아버지가 위험한 화재현장에 무리하게 대원들을 투입했던 이유는 공장작업반장(염동헌)과 직원들의 거짓말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화재를 일으켜놓고도 기호상이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단 것을 알면서도 거짓말을 했습니다. 집요하게 그들의 가족을 공격했던 기자들 보다 더 나쁜 사람들입니다. 기재명의 가족이 죽고 자신이 화재가 발생한 공장 주변을 떠돌게 된 것은 모두 그들 때문이었습니다. 공장터에서 아버지의 유골을 수습했지만 세상 어느 누구도 아버지의 누명을 벗겨주지 않았습니다.


최달포는 자신을 감싸준 최공필 가족 덕에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똑같이 세상 사람들의 거짓말로 상처를 입었지만 달포가 최공필 가족으로 인해 상처를 위로받는 동안 재명은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는 생각으로 끔찍한 절망을 겪었습니다. 달포가 아버지의 죽음을 알고 YGN 기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송차옥의 딸인 인하가 기자가 되어선 안된다고 독설하는 사이 또 황교동(이필모)에게 자신의 진짜 정체를 밝히며 기자가 된 목적을 털어놓는 사이 재명은 끔찍한 살인자가 되버렸습니다. 화재사건을 거짓으로 증언한 공장직원 두 명을 태워죽이고 함께 거짓을 증언한 작업반장을 맨홀 속에 가둬 부하직원 두 사람을 살인한 죄를 덮어씌우기로 합니다. 아버지가 당한 고통을 그대로 되돌려주기로 마음 먹은 것입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살인을 결심한, '너목들'의 민준국(정웅인)처럼 기재명은 살인을 저지르고 그 죄를 덮어씌우는 끔찍한 복수를 선택한 것입니다. 이기적인 거짓말로 가족을 잃어버린 그 심정은 공감하지만 그의 살인을 알게 되면 가장 슬퍼할 사람은 재명의 유일한 혈육인 최달포일 것입니다. 기재명은 기하명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동생이 마음 아플까봐 최소한 그런 범죄를 저지르진 않았겠지요. 동생이 곁에 있다면 최달포처럼 공정한 방법으로 사건을 파헤치고 떳떳하게 사건의 진실을 공개하겠노라 마음 먹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버지가 당한 만큼 돌려주겠다는 기재명은 살인을 저지른다.


그러나 두 형제가 서로 다른 방법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밝히기로 한 이상 언젠가 대립하는 일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이미 최달포는 수습기자로 기재명이 죽인 두 사람의 부검현장을 방문한 상태입니다. 거기다 자동차 범퍼 문제로 연락처까지 주고 받았으니 두 사람의 죽음과 작업반장의 실종을 자세히 캘 가능성이 높아진 것입니다. 사회의 책임있는 언론인, 기자라면 말의 책임을 져야한다고 믿는 최달포가 형의 범죄를 놓고 갈등하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모든 걸 알게 되면 사랑하는 인하와 송차옥의 모녀 관계 보다 훨씬 더 판단하기 힘든 일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살인을 저지른 형의 심정에 누구 보다 공감하는 사람이 바로 최달포이기 때문이죠.


드라마 속 상황처럼 두 형제의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달래려면 기호상 소방관의 유골이 발견되었을 때 10여년전 오보를 냈던 것을 반성하는 언론이 필요하고 또 그들 가족의 누명을 벗기위한 절차도 필요한 법인데 언론의 또다른 속성은 터트리는데는 공을 들이고 집착해도 정정 보도에는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는 점이죠. 아무리 드라마지만 책임있는 사람들의 진심어린 사과가 있었다면 기재명이 살인까지 저지를 정도로 분노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살해당한 세 사람은 자신들의 거짓말을 죽어도 밝히지 않을 사람들이긴 하지만요.


거짓말이 팔리는 이 시대. '피오키오'는 무슨 이야길 할 것인가.


해마다 언론에 의한 피해자 2차 피해 사건은 생각 보다 자주 발생합니다. 아동 성폭행을 당한 피해가정이 언론의 부분별한 보도로 붕괴될 위기에 놓인 사건은 언론을 '기레기'라 부르기 충분했습니다. 그들이 책임있는 조치와 사과를 내놓았단 이야기도 들리지 않지만 정정보도는 당연히 대서특필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는 어쩌면 커다란 거짓말과 함께 살아가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곳인지도 모르죠. 피노키오 증후군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 없지만 진실을 보는 눈과 판단력이 모자란 기자와 운명적으로 사랑하는 여자의 엄마와 형제의 잘못을 파헤쳐야하는 기자의 이야기. 거짓말로 상처를 입고 사는 우리 사회의 현실 때문에 더욱 더 빠져들 수 밖에 없지 않나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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