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피노키오

피노키오, 로맨스 보다 더 흥미로운 기자의 직업세계

Shain 2014. 12. 4.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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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2007년 쯤으로 기억하는데 모언론사에서 선배 기자가 수습기자를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처음에는 선배기자 즉 이른바 '사수'가 회식자리에서 일방적으로 수습기자를 폭행한 것으로 알려져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았으나 나중에 작성된 기사를 보니 사수 쪽이 먼저 폭행을 당해 쌍방폭행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고 하더군요. 폭행 문제야 양측의 말이 다르니까 법적으로 해결할 부분이지만 당시에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수습기자들의 지독한 수련과정은 비난을 받기 충분했습니다. 데스크, 캡, 일진, 사수, 수습기자로 이어지는 기자들의 서열과 '까라면 까야'하는 군대 보다 더 무서운 수습교육, 경찰서와 지구대를 돌며 두 시간 마다 한번씩 보고하고 목욕탕에 있든 화장실에 있든 간에 선배기자의 전화를 받아야한다는 이른바 '수습기자 교안'이 떠돌기도 했죠.


다이어트 사망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자 최달포는 기자의 책임이 얼마나 무서운지 다시 한번 느낀다.


드라마 '피노키오'에서 보여준 수습기자들의 생활은 생각 보다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는 더러운 기자실에서 토막잠을 자고, 택시 타고 마와리 돌다가 형사들에게 사건없냐며 굽신굽신 대고, 며칠째 경찰서에서 숙식하느냐 머리도 제대로 못 감고 부시시한 차림새로 돌아다니는 모습이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진실을 말해줍니다. 폭행 사건의 경우처럼 비인간적인 대우는 생각해봐야할 문제지만 수습들에게 이렇게 혹독한 과정을 요구하는 건 사실 재빠르게 뉴스거리를 간파하고 근성있게 취재하며 취재한 내용을 육하원칙에 맞춰 보고하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입니다.


최달포(이종석)는 자신의 첫 취재에서 크나큰 실수를 했습니다. 사수가 요구하는 사건 개요도 정확히 파악했고 재주껏 헬스장의 CCTV까지 확보했지만 생활이 어려운 아주머니가 왜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했는지 그 진짜 이유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살인을 부른 다이어트'란 기사의 아주머니는 강경변 말기 딸에게 간을 떼주기 위해 다이어트를 한 것이지만 최달포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취재를 멈추었습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어서 빨리 선배들에게 기사거리를 제공하려는 욕심에 속사정까지 살펴보지 못한 셈이죠. 반면 피노키오라서 기자가 될 수 없다던 최인하(박신혜)는 장례식장을 찾아가 진짜 특종을 찾아냅니다.










드라마 '피노키오'에서 첫회부터 끊임없이 언론의 본질과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최달포의 기사 속 주인공은 목숨을 잃을 정도로 무리한 다이어트를 했던 한심한 아줌마 이야기였지만 최인하의 보도는 어머니가 죽고 간경변을 치료할 희망까지 사라진 딸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었습니다. 언론이 보도할 내용이 남들 입에 오르내리는 '가십'인가 아니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진실'인가 하는 문제는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죠. 언론의 잘못된 보도 때문에 가족을 잃어야했던 최달포는 그 문제를 뼈저리게 겪고 느낀 당사자이지만 자신도 똑같은 실수를 하고 맙니다. 반면 최달포의 깨달음은 수습기자 시절에 경험하지 못하면 다시는 배우지 못할 직업윤리이기도 합니다.


작업반장 문덕수(염동헌)와 공장직원들의 거짓말은 최달포의 아버지 기호상(정인기)을 부하들을 끌고 위험을 자초한 책임자로 만들었지만 반대로 물에 빠진 최달포를 받아준 최공필(변희봉)의 거짓말과 최공필을 살리기 위한 달포의 거짓말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됩니다. 본질적으로 진실 만을 보도해야하는 언론과 의도에 따라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거짓말이란 주제는 어렵고 진지한 문제일 수 있지만 최달포와 최인하의 이야기 그리고 살인자가 되어 복수하는 최달포의 형 기재명(윤균상)의 이야기는 드라마의 주제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줍니다.


기하명 가족의 비극적인 가족사는 다소 딱딱할 수 있는 언론 이야기를 보다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준다.


사실 방송사 기자들의 세계를 그린 드라마는 '피노키오'가 처음은 아닙니다. 현재 방송중인 '미스터백' 최윤정 작가가 손예진, 지진희, 진구, 조윤희 등과 함께 제작한 '스포트라이트'는 소위 1진과 2진, 수습 기자들을 주인공으로 순간순간이 급박한 방송언론사의 내부사정과 사회문제를 조명한 드라마였는데 매니아층을 형성했지만 생각 보다 시청률은 좋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로맨스가 지지부진하면 시청률이 저조하고 전문성을 살리면 외면당하는 공중파의 특성상 아무래도 '스포트라이트'는 최근에 방송되었으면 더 좋았을 드라마라는 평을 얻었습니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많은 기자들이 '기레기'라 비난받는 현대사회에서 기자들의 직업세계와 윤리, 가치관을 이야기하는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꼭 필요한 컨텐츠입니다. '피노키오'는 기자들에게 시청률이나 기사거리 보다 더 중요한 기자의 직업윤리, 언론사의 기사를 좀더 비판적으로 대해야하는 시청자의 의무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복수극, 멜로를 복합적으로 섞어놓은 드라마라 때때로 멜로가 좀 약했으면 하는 바람도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수습기자들의 혹독한 수련 과정을 지켜보다 갑자기 두 주인공의 멜로로 넘어가면 호흡이 깨지는 면이 있습니다.


애틋한 둘 사이의 멜로 보다는 기자들의 취재현장이 훨씬 더 흥미롭게 다가오곤 한다.


다만 최인하가 기자윤리가 바닥인 송차옥(진경)의 딸이고 최달포의 형 기재명이 최인하를 노릴 것으로 보이고 그 과정이 '기자 최달포'에게 중요한 성장과정이 될 것같으니 이 정도면 '기승전멜로'로 끝나는 공중파 드라마들 보단 많이 양호한 편이죠. 아쉽게도 멜로가 약하면 낮은 시청률로 조기종영 위기를 맞는게 공중파의 현실이더군요. '황금의 제국(2013)'은 재벌가 재산상속을 두고 벌이는 치열한 싸움을 묘사한 드라마였는데 주인공 장태주(고수)와 최서윤(이요원)이 언제 사랑에 빠지느냐고 묻는 인터넷 댓글이 제법 많았습니다. 살벌한 드라마 분위기상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설정인데 말입니다.


최근 방송중인 tvN '미생'을 처음 본 시청자들은 흔한 드라마의 공식에 따라 장그래(임시완)가 최전무(이경영)의 숨겨진 아들이라느니 안영이(강소라)가 알고 보면 사장딸이라는 등의 '예언'을 하기도 한다고 하죠. '피노키오'의 장점은 전문적인 기자들의 직업세계를 묘사하면서도 '기자'와 무관하지 않은 멜로, 복수극을 적절히 잘 엮었다는데 있습니다. 뭐 그런데도 최달포와 최인하의 로맨스, 서범조(김영광)까지 얽힌 삼각관계는 가끔씩 아쉬움을 주기도 합니다. 방송사 기자들의 이야기를 좀 더 치밀하고 현장감있게 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죠. '기레기'라 불리는 만큼 관심이 고조된 영역이 기자들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형을 알아봤지만 아는 척하지 않은 최달포. 수습기자 최달포와 형의 복수극은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가.


최달포는 안찬수(이주승)에게 문덕수의 통화내역을 얻어 조사하던 중 얼마전 트럭 범퍼 문제로 연락한 기재명의 전화번호를 찾아냅니다. 달포는 기재명을 보자마자 어릴 때 헤어진 형이라는 걸 알았지만 내가 기하명이라고 곧바로 털어놓지 못합니다. 동생이 엄마와 함께 죽어버린 것으로 알고 있는 형에게 어떻게 내 이름이 기하명이라 말할 것인가 미안한 마음도 들었을 것이고 어딘가 좀 수상한 살인사건 용의자 문덕수 형이 정말 공범일까 싶어 고민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혹시 문덕수 사건과 형이 관계있는 건 아닌지 불안한 마음도 들었겠죠. '사람을 살리는 말'과 '사람을 죽이는 말'에 대해 고민하던 수습기자 최달포가 형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해지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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