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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반짝반짝, 눅눅한 치킨같지만 한번쯤 생각해볼 이야기

Shain 2015. 2. 2.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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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눅눅한 치킨이라고 쓰기는 했지만 요즘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는 말대로 서민들에게 '치느님'이라고 불리는 치킨은 눅눅하든 냉장고에서 하루쯤 묵혔든 자취생들에게는 없어서 못 먹는 특별한 간식이다. 이왕이면 바삭바삭하게 갓 튀긴 고소한 치킨을 그 자리에서 바로 먹는게 좋겠지만 어느새 배달음식의 대명사가 되버린 치킨. 나에게도 어릴 때 부모님이 시장에서 사주신 옛날 치킨을 먹어본 기억이 있다. 단골 닭집 아주머니가 손수 손질한 닭을 튀김옷에 버무려 요령껏 튀겨낸 치킨은 요새 흔히 볼 수 있는, 간장치킨이나 양념치킨, 치즈 치킨과는 다른 특별한 맛이 있었다. 물론 수십년간 같은 자리에서 닭만 튀기던 아주머니는 당시 늘어나기 시작했던 각종 프랜차이즈 치킨집에 밀려 젊은 감각에 밀려 자리를 떠나야했지만 가끔씩 한번 먹고 싶은 맛이다.


어딘가 마음이 조금 불편한 눅눅한 치킨같은 주제를 꺼낸 드라마 '내 마음 반짝반짝'


'내 마음 반짝반짝'은 진심원조치킨이라는 한 치킨집 딸들의 이야기다. 순진(장신영), 순수(이태임), 순정(남보라)이란 세 자매는 배달을 하지 않고 프랜차이즈를 내걸지 않은 싸고 맛있는 수제 치킨을 내세운 아버지의 딸들로 자라며 가난의 아픔을 몸소 겪는다. 그런데 아버지 이진삼(이덕화)이 지은 딸들의 이름이 치킨집 이름 만큼이나 뭔가 구닥다리다. 진심을 내보이면 뒷통수를 얻어맞는 시대에 치킨집 이름이 진심인 것도 참 희한한데 딸들의 이름도 순진하고 순수하고 순정이라니 이것참 이 시대를 살아나가기 벅찬 캐릭터일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이름값을 하는지 첫회부터 4회까지 눈물바람이 멈추지 않는다. 아버지대부터 이어진 악연으로 이진삼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천운탁(배수빈)은 어릴 때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순진을 노리고 서울생활을 하던 순수는 감당할 수 없는 학비 때문에 룸살롱을 다니다 들켜 학교에서 제적당할 위기에 처한다. 아버지를 이어 치킨집을 한다던 순정은 운탁의 동생 은비(하재숙) 때문에 학교 생활이 고단한 것도 모자라 먹고 산다며 치킨집을 술집으로 만들어버린 고모(윤미라)와 아버지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로 하루하루가 위험천만하다. 말 그대로 이진삼이 내세운 진심이 시대에 휘말려 고난을 겪고 있는 것이다.










치킨은 갑자기 한번쯤 먹고 싶을 만큼 고소하고 바삭한 맛이 일품인 음식이다. 그런데 돈으로 횡포를 부리는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에 시달리는 세 자매의 운명은 눅눅하다 못해 축쳐져 있다. 거기다 두 언니들에게 손을 내미는 유혹의 손길은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모습이라 보는 사람들의 입맛을 쓰게 한다. 아버지가 천운탁의 회사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에 죽었다는 걸 모르는 이순진은 천운탁이 조금 무서운 사람이지만 이진삼의 장례나 순수의 퇴학을 도와주는 모습을 그저 고맙다고만 생각한다. 머리로는 이런 무한한 친절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한번씩 이대로 받아들여도 되는 것은 아닐까 고민한다.


순수 역시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피아노를 치기 위해서는 엄청난 학비가 필요하다. 좁은 고시원 방에 살며 휴학과 아르바이트를 반복하고 학과장에게 무시당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면 룸살롱 다니는 게 어떠냐고 생각했다. 이진삼의 죽음으로 덜컥 세 조카들을 떠맡게 된 고모 이말숙도 마찬가지다. 이진삼처럼 치킨 튀기는 재주도 없는 자신이 어떻게 돈을 버냐는 생각에 술을 팔기로 하고 집안을 소란스럽게 하면서 세상을 살자면 이런 것쯤 어떠냐고 생각했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 아니니 기댈 곳 없는 세상에서 발을 뻗을 곳이 있다면 그 어디든 가면 그만이었는데 고생한 만큼 보람이 있기는 커녕 그 대가가 컸다. 아무 손이나 막 잡다가는 헤어나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돈의 횡포와 돈의 유혹 그 눅눅한 치킨같은 이야기.


사실 치킨집 막내딸을 이순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긴 하지만 이 드라마의 전체적인 구조는 흔한 막장 드라마와 비슷하다고 들었다. 집요한 천운탁과 결혼해 지독한 시집살이를 하던 순진이 천운탁을 떠나 의류브랜드에 취직해 재기를 꿈꾸고 이순수가 계속 피아노를 치지 못하고 돈많은 사람들 사이를 오가는 내연녀가 되고 아버지의 대를 이어 치킨집을 꿈꾸는 순정이 삼각관계의 주인공이 되는 등 이후의 이야기는 치킨집 보다는 또다른 멜로 드라마가 될 가능성이 높다. 순진하고 순수했던 세 자매들이 고통을 겪으면서 어떻게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을 지켜나가느냐는 뒷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돈이면 뭐든지 되는 시대 - 이제는 사라져가는 시장 옛날치킨처럼 구닥다리 냄새가 나는 단어들 순진, 순수, 순정 또는 진심이라는 단어가 흔해빠진 멜로 드라마에서 쓰이는 값싼 수식어가 되버린 시대에 이 드라마 '내 마음 반짝반짝'의 이후 이야기에서 기름에 쩔은 눅눅한 치킨 냄새가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워낙 불편한 내용이라 그런지 시청률이 낮다 못해 아주 극악하던데(2.8%) 눅눅한 치킨도 좋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시청률을 의식하지 않고 진심의 진짜 의미를 담은, 고소한 치킨 냄새가 물씬 풍기는 진솔한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이 시대에 담기 힘든 그 주제 만큼은 충분히 칭찬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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