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한국 드라마 보기

풍문으로 들었소, 그들이 만드는 갑의 코미디와 을의 코미디

Shain 2015. 3. 11. 11:49
728x90
반응형

생각해보면 그랬다. 남녀공학을 다니던 시절에 한번쯤 들어본 소문이 있다. 옆반에 누가 갑자기 퇴학을 했는데 그건 남자친구랑 사고를 쳐서 아이를 가졌기 때문이고 그후에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다나 뭐라나 뭐 퇴학까지는 아니라도 졸업하기 전에 살림을 차리거나 졸업하자마자 결혼하는 커플은 대개 재학 중에 눈이 맞아 사고를 친 커플인 경우가 많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이런 일들은 종종 일어났다. 부모님들은 건너 마을에 누구네집 아들이 어린 나이에 자식을 낳아 급하게 도둑 결혼을 하는 바람에 축의금도 못 줬다며 한마디했다. 소문으로 들리는 말에 의하면 마땅히 직장도 없고 변변한 재산도 없는 그집 아들이 어린 여학생과 눈이 맞아 자식을 덜컥 낳아 그집 부모들은 창피해서 고개를 못 들고 다닌다고 하더란다. 생각해보면 사람사는 곳에서는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였고 어쩌면 어린 자녀들의 갑작스런 출산은 흔했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사돈 앞에서 드디어 폭발해버린 한정호. 풍문 때문에 늘 웃고 있던 한정호가 보여준 갑의 블랙 코미디.


서로 좋아서 차근차근 준비해서 이뤄진 결혼도 잡음이 생기고 문제가 생기게 마련인데 예상치 못한 결혼에 원치 않았던 인연은 그 얼마나 시끄러울까. 그런데 의외로 그 풍문이란게 무서워 그랬는지 남의 눈의 위력이 무서워 그랬는지 다들 그렇게 소리소문없이 잘 살고 잘 맺어지고 아니면 조용히 마무리되곤 했다. 따지고 보면 두 사람의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룬다는게 결코 쉬운 일도 아니고 가족들의 축복을 받아야할 행복한 일인데 그렇게라도 봉합이 된게 다행인지 아니면 크고 작은 잡음을 눌러버리는게 맞는건지 그건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 드라마는 결코 맺어질 것같지 않은 두 집안의 이야기가 꽤 코믹하게 엮어진다.


품위와 예의를 강조하는 한정호(유준상)의 집안과 도장파는 서형식(장현성)의 집안이 사돈으로 엮이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한인상(이준)과 서봄(고아성)이 어린 나이에 덜컥 아이를 낳아버렸기 때문이다. 두 집안이 갑작스런 임신과 출산으로 요란을 떠는 모습은 한마디로 코미디였다. 특히 대한민국 정계와 법조계를 좌지우지하며 남들에게 체면을 중시하는 한정호와 그 아내 최연희(유호정)가 속으로는 살림살이를 부술 만큼 분노에 치를 떨면서도 가식적으로 웃으며 서봄을 대하고 남들에게 손자가 태어나 기쁜 척 초콜릿이나 와인을 돌리는 모습은 상류사회의 속물의식이 그대로 풍자한 말 그대로 블랙 코미디였다.










한정호 부부는 손톱만큼도 엮이기 싫은, 신용불량자인 사돈이 남들 앞에 드러날까 무서워 처음에는 돈을 주고 서형식 부부를 떼어내려 했고 이번에는 그들을 아침식사에 초대해놓고 겉으로는 친절한 척 또다른 음모를 꾸민다. 큰딸 누리(공승연)를 취직시켜주고 과수원을 사줄테니 멀리 이사가라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제는 '작은 사모님'이 된 딸 서봄이나 외손주를 볼 생각도 말고 멀리 떨어져 살라는 말이다. 사돈은 사돈이지만 뭘로 봐도 똑같은 사돈이 아니라는 압력이고 같은 서열 아니니 주는 것 받아먹고 뚝 떨어지라는 친절한 회유였다. 아들 한인상은 아버지의 계략에 부끄럽다며 장인 서형식에게 사과하고 그 상황에 한정호는 폭발하고 만다.


아들 잡겠다며 그 높은 곳에서 부득부득 기어이 뛰어내리는 한정호나 사위잡는 한정호를 잡겠다며 기를 쓰고 따라잡는 서형식이나 그런 남편이랑 사돈 잡는 장모(윤복인)나 소리지르는 최연희나 상황을 구경하다 그 난장판 말리는 고용인들이나 이 모든 문제를 일으킨 아기 엄마 서봄, 아빠를 피해 도망가는 한인상이나. 남들 보는 앞에서 억지로 혼인신고까지 했어도 태어난 손자가 너무 예뻐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해도 당분간 해결하기 힘든 코미디가 이어질 것같다. 풍문으로 듣든 직접 구경하든 간에 이건 코미디가 분명하다. 억지로 받아들여야하는 상황을 봉합한다는 게 원래 이런 일이니까. 이게 어디 품위있게 폼잡고 할 수 있는 일이던가.


외할머니 부부는 보고싶은 손주를 사진으로만 보는데.


그런데 서봄네 가족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게 또 웃기는 코미디 만은 아니다. 가끔 결혼하는 커플 이야길 들어보면 결혼할 때도 갑과 을이 있다고들 한다. 서봄과 한인상 가족의 경우 서봄 가족은 '을'이 되버린다. 한정호는 손주를 잘 키워야한다며 서봄도 못 만나게 하고 보모한테 전적으로 교육을 맡기면서도 눈에 밟히는 손주를 보고 싶을 때 마다 찾아가서 아기를 안는다. 반면 외할머니 부부는 아기를 보고 싶어도 아기 사진을 보며 뽀뽀를 하고 안는 시늉을 한다. 사돈한테 아쉬운 소리 하기 싫다면서도 취직 못하는 큰딸을 생각하면 이력서 한번 부탁하고 싶고 남이 청탁하면 혹시 하고 마음이 흔들리는 그네 처지가 서봄의 가족을 자꾸 허리굽히는 '을'로 남게 만든다. 누군들 교양없이 '빤스' 타령하며 소리지르고 싶었을까? 까딱하면 내 딸처지 잘못될까 최연희에게 들이댄 엄마 심정이 다 그런거지.


물론 아버지 서형식도 서봄이 아이를 임신하고 자퇴를 했을 때 남들 눈이 무섭다며 할머니에게 내려 보내고 어머니 역시 산부인과에서 미혼모가 될 처지의 딸이 좋은 집에 시집갔다고 아무렇지 않게 소설같은 거짓말을 할 만큼 적당히 거짓말을 하는 타입이고 그 만큼 우리가 그 풍문을 두려워 하는 사회에 살고 있고 그 풍문이 많은 코미디를 만들고 그 풍문이 서봄과 한인상이 아이를 낳았다는 진짜 중요한 사건을 못 보게 만드는 것이지만 '갑'과 '을'이 만드는 코미디는 이렇듯 다르다는게 웃기고도 슬픈 것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없는 티 나서 아나운서 못된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듣는 서형식의 큰딸 서누리가 그렇게 당연하다니.


허리를 굽혀야하는 슬픈 을의 코미디와 정체를 알 수 없는 풍문이란 것으로 먹고 사는 듯한 사람들.


그러고 보면 한정호 가족의 코미디를 구경하고 지원하는 주변 사람들이 그들의 코미디를 만드는 조연이자 제작자들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잘난체하지 않는 한인상의 순수한 모습을 보면 정체모를 남의 눈, 풍문이란 것이 한정호같이 체면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남들에게 선생 대접을 받고 싶으면서도 한인상이나 박집사(김학선)에게 비굴하게 구는 고시 선생이나 소리지르는 최연희의 입을 막는 이비서(서정연)의 모습을 보며 이 갑과 을의 웃기고 슬픈 코미디로 적당히 먹고 사는 사람들도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풍문으로 듣는 말은 잠시일 뿐 의외로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남의 일에 관심없는 사람들도 많으니 말이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