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도면 수없이 거듭되는 반전에 지칠 만도 하다. 간신히 이태섭(이기영)의 살인으로 이태준(조재현) 검찰총장을 잡아넣나 했더니 엉뚱하게 조강재(박혁권)가 살인 혐의를 뒤집어쓰고 다시 윤지숙(최명길)이 위험에 빠지나 했더니 신하경(김아중)이 뺑소니 교통사고로 목숨이 위험해지고. 검사선서 따위는 이미 오래전에 잊어버린 검사들의 싸움은 이미 오래전에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드라마 '펀치'에서는 이렇게 티격태격 치열한 반전의 반전이 거듭되면서도 일종의 운명론같은 것이 읽힌다. 아무리 박정환(김래원)이나 이태준이 기를 쓰고 위로 올라가려 애를 써도 그들이 먹는 밥은 짜장면에 단무지 한조각을 벗어나지 않고 감히 270억을 욕심낸 이태준 검찰총장은 돈한푼 안남겨준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빈털터리 신세가 되기 직전이다. 연극배우의 딸 최연진(서지혜) 검사의 인생은 연극투성이다. 박정환은 더러운 때를 씻겨내는 세탁소집 아들이라 그런지 죽는 순간까지 이태준과 윤지숙에게 너희들이 저지른 죄는 직접 씻고 가라 한다.
뺑소니의 증거를 이호성의 블랙박스에서 찾아 나서는 박정환. 죽음을 앞둔 그의 마지막 메시지는 무엇일까.
박정환이 아내와 이혼하고 건강을 잃고, 이태준이 형을 잃고 박정환을 잃으면서 권력을 얻는 것과 달리 고대광실에서 태어난 윤지숙은 작은 것 하나 손해보려하지 않는다. 윤지숙의 아들 이상영(이중문)의 병역비리를 통해 똑같이 나쁜 짓을 저질러도 결과는 다를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되짚어진다. 이 나라의 법이란게 윤지숙이 주문처럼 입버릇처럼 중얼중얼하는 말처럼 누구에게나 평등할 수나 있는 것인지. 법이 있는데도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죄값을 받지 않는 현실은 비리를 더욱 눈덩이처럼 부풀린다. 더욱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 더욱 더 안전한 디딤돌을 다져야 윤지숙처럼 안전하게 전관예우도 받고 인맥의 도움도 받을 수 있는거다.
박정환이 좋은 성적을 갖고도 지방대에 가야했던 것처럼 검사가 될 때부터 세상은 공평하지 않았다. 그래도 검사가 되고 나면 세상이 두려워하는 칼의 권력을 갖고 나면 조금은 나아질 줄 알았는데 병역비리를 수사하던 도중 알았다. 권력자의 아들을 건드리면 내 밥줄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놈의 검사선서나 법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말이다. 어렵게 대학공부를 하고 검사실 창문에 위험천만하게 매달려 이태준의 손을 잡았을 그때부터 박정환에게는 위로 올라가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다른 세상이 열렸다. 그러나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죽음의 위기는 모든 걸 뒤바꿔놓았다. 죽는 것도 억울한데 박정환 게이트의 주인공이 바로 나라니.
'나는 내가 저지른 만큼만 죄값을 받고 싶다' 죽기 직전 박정환이 원한 것은 법의 정의도 아니고 대한민국 법조계의 개과천선도 아니고 딱 그것 하나 뿐이었다. 아들의 병역비리를 덮기 위해 박정환을 위기로 몰고간 윤지숙도 죄값을 치르고 비자금 270억을 써먹고 그 뒷감당을 박정환에게 시킨 이태준도 그 책임을 지기를. 내가 버린 오물은 내가 치울테니 네가 버린 오물은 네가 치워라. 같이 밥을 먹는다는게 간단한 것처럼 법이란 것도 알고 보면 사실 그렇게 간단한거다. 그런데 죄값을 치러야할 때 마다 윤지숙과 이태준은 미꾸러지처럼 다른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빠져나간다. 짜장면과 스파게티같은 음식을 나눠먹을 때는 화목했지만 그 오물을 치울 때는 하나같이 외면했던 것이다.
첫회부터 마지막회까지 등장인물들의 식사는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이태준과 박정환이 나눠먹는 소박한 짜장면은 비리를 저지르고 간간이 나눠먹는 떡고물과 의리를 의미했고 윤지숙과 이태준이 나눠먹는 비싼 한정식이나 홍어는 권력의 결속과 야합을 의미했다. 수많은 횟집이나 고기집, 술집이나 바에서 마시던 폭탄주는 또 어떤가. 그들이 식사를 나눠먹을 때 밥을 나눠먹을 때 권력을 나눠먹을 때는 즐거웠다. 누구나 밥을 함께 먹고 나눌 때는 즐겁고 행복해 한다. 그런데 그 밥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리에는 아무도 떳떳하지 못하다. 고개 숙여 당당히 걷지 못하고 언론을 외면하고 어떤 경우 환자 흉내를 내거나 진실을 부정하며 뒷문으로 드나들기도 한다.
음식을 먹을 때는 함께였지만 오물은 치우려하지 않았던 그들.
일반 서민들에게는 가족들과의 식사 한끼가 하루의 가장 행복한 시간일 때도 많다. 어떤 사람들은 직업상의 문제로 가족과 식사한끼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뇌물로 받은 김밥집을 신하경의 증언을 위해 내줘야 했던 어린이집 승합차 기사 아내의 김밥은 생계를 위한 수단이고 세탁소집 박정환의 엄마(송옥숙)가 아들을 위해 차려내는 식사는 따뜻한 엄마의 정이고 아끼는 동생을 위해 손수 캐준 이태섭의 칡뿌리는 동생을 위한 사랑이다. 그러나 권력자 이태준이나 윤지숙이 나눠먹던 식사는 달랐다. 그들은 자신의 오물을 타인들이 치우길 바랐다. 때로는 권력이란 이름으로 때로는 정의라는 핑계로 말이다.
이태준은 박정환이 죽는다는 걸 알게 되자 어차피 죽을 사람이니 자신의 270억 비리를 정환에게 덮어씌우고 박정환 게이트로 만들려 했다. 그게 그의 삶의 방식이었고 그렇게 정환을 잃었다. 이제는 이태섭과 조강재도 곁에 없다. 그런식으로 자신의 밥값을 타인들이 치르게 했기 때문에 이제는 아무도 없는 것이다. 그런 그가 검찰총장을 퇴임하며 정적이자 원수같던 윤지숙을 끌고 내려가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원한도 원한이지만 자신이 자신의 밥값을 치른 이상 윤지숙이 밥값을 치르지 않으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짜장면까지 사먹이며 이렇게까지 지독하게 마지막 메시지를 전한 박정환을 위한 길일 것이고.
나도 내가 먹은 만큼 죄값을 치를테니 당신들도 그래라.
친구들을 버리고 윤지숙의 아들을 뺑소니 사고범으로 체포한 이호성(온주완) 검사의 선택은 어쩌면 '펀치'의 마지막 반전이 될 수도 있고 또다른 반전의 연속이 될 수도 있다. 드라마는 아직까지 마지막회가 남았기 때문이다. 특별검사 자리를 지키는 윤지숙이 체포되는 것이 박정환이 바라는 마지막 소원이고 그가 딸 예린이(김지영)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지막 메시지다. 나는 내가 이태준과 함께 먹은 짜장면 만큼 죄값을 치를테니 당신들은 당신들의 죄값을 치르라고. 당신들이 먹은 밥, 당신들이 버린 오물을 직접 치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법의 의미라는 뜻이다. 현실에서도 밥은 같이 잘 먹지만 때되면 사면되고 무죄로 풀려나고 꼬리자르고 덮어지는 사건들이 워낙 많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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