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의 주인공이 경찰이지만 정로운 경찰의 속시원한 결말을 바란 건 아니었다. 뭐 이렇게 되고 보니 뒷맛이 약간 쓰다. 극 중 한주원(여진구)과 이동식(신하균)의 대립이 이렇게 결론나리란 건 예상 가능한 부분이긴 했다. 아버지 한기환(최진호)에 대한 원망으로 한때 망설이긴 했지만 한주원은 원래 더러운 걸 너무나 싫어하는 결벽증 캐릭터였으니까 아버지를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이동식은 연쇄살인의 범인을 잡기 위해 강진묵(이규회)의 살인 강민정(강민아) 살인 현장에 잘린 손가락을 가져다둘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었고 아무리 정상참작을 한다고 끔찍한 범죄는 틀림없다.
내가 정말 허탈하게 지켜본 장면은 한기환(최진호)을 지화(김신록)에게 인계한 두 사람이 서로 자수하겠다며 서로를 '죄없는 사람들'이라 지칭한 부분이다. '죗값은 죄지은 놈이 받는 것이다'라는 이동식의 주장 - 망설이면서 나는 그럴 자격이 없다는 한주원. 한 사람은 의도하지 않은 죽음 외엔 법적으로 전혀 죄가 없지만 결국 모든 죄의 원인인 한기환의 아들이고 한 사람은 21년 세월 동안 범죄 피해자이지만 강민정의 시체를 훼손했으므로 법적인 죄인이 된다. 한 사람은 도의적 죄인, 한 사람은 법적인 죄인 - 그렇게 두 사람의 입장은 정리되었다.
그들은 괴물을 잡기 위해선 괴물이 되어야 했다. 두 사람을 괴물로 만든 범인들은 사라지고 두 사람이 괴물이 되었다. 다방에서 기타나 치던 이동식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여동생 때문에 피의자가 되고 남상배(천호진)에게 추궁당하게 되고 지옥이 시작되었다. 아버지까지 죽고 주변 사람들이 용의자 이동식을 경계하던 그 시간이 벌써 20년을 넘어버렸다. 한주원은 함정 수사를 위해 이용했던 이금화(차청화)가 살해되면서 만양의 연쇄살인을 추적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수상쩍은 이동식을 의심했다. 파고 파도 의심스러운 주변 사람들 때문에 한주원 역시 괴물이 되었다.
그렇게 타의에 의해 괴물이 된 두 사람은 만양의 밝은 햇빛 아래 마주한다. 모든 것을 잊어버렸던 박정제(최대훈)는 항소를 포기했지만 그들을 괴물로 만든 세 사람은 아직도 자신들의 죄를 완전히 뉘우치지 못했다. 처음엔 사이코패스 진묵의 연쇄살인사건으로 보였던 이야기는 결국 정치인과 권력자 그리고 양아치가 얽힌 엄청난 사건이 돼버렸다. 사람 죽이는 사이코패스보다 더 무서운 그들의 침묵은 음울하고 어둡게 만양시에 깔려 있었고 사람들이 지역 개발의 이익을 위해 덮고 덮어주는 사이 어둠은 점점 짙어졌던 것이다.
다소 안타까운 부분은 자신의 이익에 눈이 멀어 범죄자 도해원(길해연)의 선택이다. 도해원은 아들의 죄를 덮는 일에 급급해 일단 박정제를 정신병원에 집어넣었고 아들이 이미 죽은 이유연(문주연)을 쳤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도해원은 이창진과 한기환에게 휘말려 돈을 주고 땅을 주고 사이코패스에게 협박까지 당했다. 그녀는 등장인물 중에 상대적으로 '직접 저지른 죄'가 가장 적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살인과 범죄를 덮어준 그녀의 범죄는 어쩌면 이 드라마의 전체를 관통하는 어둠의 정체 인지도 모른다. 쉬쉬 하고 모른 체하고 떡고물이나 얻어먹는 그 뒷거래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도해원은 아직도 모르는 것 같다. 역시 정치인 캐릭터인가.
전체적으로 이야기는 잘 짜였다. 드라마는 21년 전에 일어난 사건을 역순으로 파헤쳐 나가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처음부터 깡패 하나와 정치인 그리고 경찰청장 후보가 모였으니 세 사람 사이에 뭔가 있으리란 짐작을 했지만 저런 식으로 꼬여 있을 것이란 예상은 못했다. 특히 이창진과 도해원이 박정제의 교통사고를 덮어주는 그 장면이 한기환의 교통사고로 연결되리란 건 시청하던 순간엔 상상못했던 부분이다. 생각해보면 연결고리가 아예 없던 건 아니었지만 아차 싶었던 건 사실이다.
생각해보면 첫회부터 복선은 꽤 많이 깔려 있었다. 이 드라마의 첫 장면에 등장한 캐릭터는 누구나에게 무시당하는 젊은 강진묵이었고 만양 곳곳엔 개발을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20년 뒤의 만양 역시 허허벌판에서 갑자기 늘어난 빌딩으로 사건의 무대와 범인은 처음부터 한 화면에 담겨 있었는다. 꽤 섬세한 연출이다. 극속의 무대를 어두컴컴한 밤으로 설정한 것도 그렇지만 OST 역시 '부산에 가면'이라던가 'The Night'같은 노래가 적절하게 어울린다. 최백호라는 가수가 앨범을 냈다는 사실을 몰랐는데 대체 OST를 누가 선정했길래 이렇게 우울하고 독특한 노래를 골랐을까 싶다.
혹시 이 드라마가 첫회부터 얼마나 어둡게 진행되었는지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까. 이동식, 한주원이 모이던 정육점이나 그들이 치매 걸린 노인을 찾던 갈대밭까지 모든 장면이 어두컴컴했고 그 아래에서 미친 듯이 웃는 이동식의 모습은 광기에 빛났다. 범인들을 추궁하던 취조실은 또 왜 그렇게 어둡기만 한지 사이코패스의 연쇄살인과 세 괴물의 비밀을 숨긴 만양시는 늘 밤이었다. 그 음침한 도시가 마지막회에 그렇게 환한 곳인지 처음 알았다. 햇빛 아래 환하게 웃는 이동식의 표정. 죽은 사람들의 무게를 모두 짊어지고 무겁기만 했던 분위기가 21년 만에 그렇게 해소되었다.
캐릭터 역시 꽤 볼만했는데 두 주연배우는 물론이고 러시아어를 지껄이며 다리를 절뚝이는 척했던 이창진(허성태)나 배우로서는 낯선 얼굴이지만 말 더듬는 연쇄살인마 역할을 했던 강진묵(이규회), 사람 좋은 미소로 어머니에게 기죽어 교통사고를 까맣게 잊어버린 박정제도 자기 몫을 다 해냈다. 특히 사이코패스 강진묵이 정체를 드러내고 짜장면 먹는 장면은 정말 소름 끼치더라. 또 드라마의 마지막 빌런이자 도해원까지 속인 이창진의 살인 행각은 꽤 은밀하면서도 음흉했다. 이창진이 욕을 했단 것을 눈치채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한기환과 도해원 역시 흥미로운 캐릭터다.
무엇보다 잘 표현한 건 건 첫회부터 날서게 대립하던 한주원과 이동식의 캐릭터가 수사를 하는 파트너로 거듭나는 장면이다. 결벽증에 걸린 사람처럼 누구나 의심하고 대립하던 한주원은 어느 순간 이동식을 제일 먼저 믿을 만한 사람으로 고르게 된다. 이동식 역시 드라마 속 캐릭터지만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로 한주원을 경계했는데 두 사람은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마지막에 만양 식구가 된 것처럼 같이 밥도 먹고 같이 죽은 누군가를 찾아가기도 한다. 마치 만양 파출소에서 같이 출동하던 그 시절처럼.
그러나 웃으면서 주원을 배웅해줬지만 이동식은 한기환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다. 그들 피해자와 가해자의 은원 관계가 쉽게 풀릴 수 있는 일이었을까. 두 사람이 서로 마주칠 때마다 느낄 서로에 대한 죄책감 - 그 죄책감을 이동식의 환한 웃음과 한주원의 미소로 바꿀 수 있을까. 범인을 찾았지만 이우연의 죽음을 시작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남자의 웃음과 직권남용으로 인해 연쇄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된 한 남자의 웃음. 도의적 죄인과 법적인 죄인이 서로를 향해 웃는 그 장면은 밝은 장면이지만 참 가슴 아픈 설정 중 하나다. 연쇄살인마보다 더 무서운 괴물을 잡기 위한 두 남자의 공조. 두 외로운 남자는 친구도 함께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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