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그러니까 내년부터 65세 이상 인구가 14세 이하 인구 보다 많아진다고 한다. 한국 전쟁 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와 그 베이비붐 세대가 낳은 에코 세대의 숫자를 생각하면 한국 사회의 고령화는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것은 어쨌든 이미 태어난 사람이 앞으로 태어날 사람 보다 많으니 젊은 것들에게 아기 낳으라 목소리 높일게 아니라 당분간 나이많은 사람들끼리 아웅다웅 살아가야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시대 분위기를 제대로 읽은, 두편의 TV 드라마가 방송중이다. SBS의 '그래 그런거야'와 tvN의 '디어 마이 프렌즈'다.
이제는 우리가 주인공이다 - 어느새 TV 드라마의 한 부분을 차지한 '꼰대'
'그래 그런거야'의 등장인물 나이를 모두 합치면 천살이 넘는다고 한다. '디어 마이 프렌즈'의 고현정은 연기생활 28년차지만 주요 등장인물들 중에선 제일 어리다. 아직 2017년은 오지 않았는데 두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이미 고령화 시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세상은 젊은 사람들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같지만 그들도 역시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세상에 안 늙는 사람은 없다, 너도 한번 늙어봐라, 딱 너같은 자식 낳아 길러봐라, 내 나이 되면 다 그렇다 -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당연한 진실이지만 누구나 늙기 전에는 그 말들의 진짜 뜻을 모른다. 어린 아이들의 생각을 말 잘 하는 중년층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듯 늙기 전엔 젊음이 영원할 것같고 늙으면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두 편의 드라마는 젊은 사람들의 사랑을 그리던 TV 드라마판의 새로운 유행을 만들고 있다. 드디어 '꼰대'가 TV 드라마 컨텐츠의 일부가 된 것이다.
과거에도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가족 드라마들은 있었지만 대개는 노인들이 주인공이라기 보단 가족의 한 사람으로 주인공들의 주변인물 노릇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위에서 언급한 두 편의 드라마처럼 캐릭터의 반이상이 60대(그래 그런거야)라던가 등장인물 평균 나이가 70세(디어 마이 프렌즈)인 경우는 없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꾸며진 다른 드라마들과는 기본부터 확 다르다. 생각해보면 너무 늦은 일이다. 그네들 역시 살아있는 사람들이기에 주인공이 되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물론 두 드라마의 이야기도 젊은층에 맞춰 조금은 손질되고 조금은 양념이 뿌리진 건 사실이다. 여지없이 이들 TV 드라마도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같은 면이 있다. 이들 드라마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지적되는 노년층의 빈곤, 소외, 고독이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진 않는다. 그들은 다수 시청자들 입맛에 맞추듯 코믹하거나 품위있는 묘사를 선택했다. 젊은이들의 연애담을 적절하게 섞어두었다. 빈곤한 노년층이 쓸쓸하고 무기력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싶어하는 시청자는 별로 많지 않을테니 말이다.
'그래 그런거야'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한마디로 점잖고 존경받을 만한 어르신들이다. 뭐 부인에게 아무 말이나 막 퍼붓는 독재자 둘째아들 유경호(송승환)나 남의 험담 좋아하는 이모 김숙경(양희경)은 눈쌀을 찌푸리게 하지만 자식들의 분란을 덮고자 노력하고, 막내 며느리와 친근하게 지내는 유종철(이순재)이나 김숙자(강부자) 할머니의 모습은 이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성숙하다. 걸어다닐 힘도 부족한 노인들이지만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고 어른답게 살아가는 모습엔 존경할 수 밖에 없는 무엇이 있다.
함께 늙어가고 존경받는 어르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가족드라마 '그래 그런거야'
반면 '디마프'의 노인들은 유쾌하고 귀엽기까지하다. 젊은 사람들 눈에는 별나고 귀찮은 노인네들이지만 그들의 고민은 젊은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사랑에 애달파하고 가족 때문에 눈물짓는 박완(고현정)의 일상처럼 그들 역시 자신의 인생을 치열하게 버텨내고 있다. 다만 견뎌내야할 고통의 종류가 약간 다를 뿐이다. 젊지 않은 그들은 성큼 눈앞으로 다가온 '죽음'의 공포에 맞서야하고 살아온 세월 만큼 늘어난 잘못들을 정리해야한다. 젊은이들이 나이든 사람들을 '꼰대'라며 외면하는 순간에도 그들의 삶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한쪽 드라마는 짐짓 무게를 잡고 한쪽 드라마는 제법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확실한 것은 두 드라마 모두 '늙음'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자식들이 자신들 때문에 다툰 것을 알고 울음짓는 김숙자(강부자) 할머니의 눈물, 요양원에 모셔둔 늙은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는 문정아(나문희)의 눈물, 외로워서 힘들어하다 치매까지 앓게된 조희자(김혜자)의 울분, 뒤늦게 이혼하자는 정아의 요구에 '내가 뭘 잘못했냐'며 억울해하는 김석균(신구)의 분노까지. 누구나 언젠가는 겪게되는 늙음의 과정을 드라마는 담고 있다.
또 한가지 재미잇는 것은 나이든 배우였기 때문에 주연급으로 활약하지 못했던 명품배우들이 두 드라마에서는 자신들의 역량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드라마에서 노인들의 역할은 말그대로 이야기 전개를 위한 '병풍'이나 '장식'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면 시어머니 전문배우 박원숙처럼 악역을 맡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젊었을 때는 충분히 주연을 하고도 남았던 그들의 연기를 이런 식으로 다시 볼 수 있다는 점은 몹시 반갑다.
마음 한편이 불편하지만 그네들의 이야기도 삶의 한부분임에 틀림없다. 애써 외면했던 '꼰대'들의 삶.
물론 이런 이야기들이 젊은 세대들이 환영할만한 내용은 아닐 수 있다. 한편으론 그네들의 이야기는 불편한 쪽에 가깝다. '우리 세상 모든 자식들은 눈물흘릴 자격도 없다'며 자기 뺨을 치는 박완의 염치없음이나 기운없어 산책도 제대로 나가지 못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과 부모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너무 어린 사람들에겐 '꼰대'가 멀게만 느껴지고 조금 더 자란 어른들에겐 바쁜 일상을 변명삼아 애써 뒤로 밀어둔 부모에 대한 연민을 똑바로 직시할 용기가 없다.
어쩌면 그런 현실 때문에 드라마 속으로 다가온 '꼰대'들이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꼰대'라는 말은 나이든 사람들 특유의 딱딱함을 비꼰, 나쁜 뜻의 은어다. 불편하고 마뜩치 않은 딱딱함이 때로는 삶의 연륜이 되고 나이테가 될 수 있음을, 자신의 부모에게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진실을 TV 컨텐츠가 깨닫게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네들 보다 더 좋은 모습으로 늙어갈 자신이 있을까. 그들을 '꼰대'라 부르는, 이런 친근함이 나이든 세대들을 진정한 '친구'로 만들 수 있을까. 모처럼 사람살이를 보여준 두 드라마가 묵직한 질문을 던져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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