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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아치아라의 비밀, 어쩌다 '엄마'는 무서운 사람이 되었나

Shain 2015. 11. 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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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입양되어 자라다 교통사고로 양부모를 잃고 동생 한소윤(문근영)과도 헤어져 혼자 살아온 한소정(장희진). 애틋하다 못해 괴이하기까지 한 그녀의 엄마찾기는 결국 죽음으로 끝이 났다. 김혜진이란 이름으로 살다간 한소정의 친엄마는 과연 누구였을까. 나는 아치아라 마을 출신이라는 한소정의 엄마는 윤지숙(신은경)이 아닐까 생각했다. 김혜진(한소정)과 윤지숙은 서창권(정성모)이라는 망나니를 사이에 둔 불편한 관계고 두 사람의 나이차이가 많이 나지 않지만 윤지숙은 김혜진이 오랫동안 찾아온 '엄마'와 많은 부분 일치하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친엄마를 찾고 싶은 마음에 유령아기 엄마를 만나고 딸을 잃은 한 여인의 의붓딸이 되고 마침내 아치아라까지 찾아왔던 김혜진이 갑작스레 윤지숙에게 증오를 뿜으며 서창권의 내연녀가 된 이유는 납득되지 않는다.


따뜻함과 섬뜩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김혜진의 그림. 이 그림 속 엄마는 윤지숙과 마을 아치아라를 닮았다.


많은 사람들이 '엄마'라는 단어를 들으면 막연한 따뜻함, 안정감을 느낀다. 그 어떤 경우에도 내 편이 되고 날 지켜줄 것같은 존재가 엄마다. 그렇기에 한소윤도 김혜진이 살던 방에서 아기를 안은 엄마의 그림을 발견하고 '참 따뜻한 그림'이라 말했다. 김혜진이 찾아헤맨 엄마도 그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소윤의 외할머니에게 버림받고 고아원에서 자란 소정이 평생 얻고자 했던 것은 그런 따뜻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나(안서현)를 찾아온 죽은 김혜진의 모습에서 그런 감정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거기다 갑자기 남의 가정을 파괴하는 내연녀라니 김혜진의 모성에 대한 그리움은 알 수 없는 비밀로 인해 증오로 변해버린게 틀림없다.


아치아라의 다른 아이들을 외에도 자기 딸까지 불법입양시켰다는 뱅이 아지매(정애리)는 윤지숙과 강주희(장소연)의 어머니였다. 뱅이 아지매는 아마도 김혜진이 소윤의 가정에 입양된 비밀을 알고 있다. 소윤은 뱅이 아지매의 정체를 마을 사람들에게 수소문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녀가 누군지 입을 다문다. 서창권이 방송 제작자의 입을 막고 뱅이아지매에 대해서 말하던 정육공장의 노인이 비참한 모습으로 발견된 것으로 보아 외지인 김혜진이 자신의 엄마를 찾을 때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혹시나 자기 딸도 입양시켰다는 뱅이 아지매의 친딸이 김혜진이었을까? 어머니가 아이를 죽이려는 그림을 그린 김혜진의 생각과 뱅이 아지매는 많은 부분 일치한다. 어쩌면 윤지숙이나 뱅이 아지매 둘 중 하나는 김혜진의 엄마일 것이다.








어쩌다 김혜진의 친엄마는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 되었을까. 이 드라마의 제목은 원래 '마을'이었다고 한다. 임팩트가 약하다는 이유로 '아치아라의 비밀'이 덧붙여졌다고 하는데 아치아라는 70, 80년대 소설에 등장했을 법한 폐쇄적인 마을이다. 사건이 벌어지면 온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마을의 유지가 절대적인 권력자고 마을 사람들을 쥐락펴락하며 때로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똘똘 뭉쳐 비밀을 숨기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따뜻하고 어떻게 보면 잔인하고 섬뜩하다. 마치 칼을 쥐고 아이를 안고 있는 평화로운 엄마의 그림처럼 말이다. 소설가 하성란의 소설 중 1982년 우순경 총기 난사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파리'를 보면 이런 분위기가 잘 묘사된다. 그들의 단결은 외지인 한 사람을 미치게 만들 수도 있고 수상쩍고 무시무시한 비밀을 꽁꽁 숨길 수도 있다.


누구든 그 정체에 대해 입을 다무는 뱅이 아지매 - 윤지숙, 강주희의 어머니와 마을 아치아라는 어딘가 모르게 닮아있다. 누구든 품어주는 어머니같은 고향이지만 마을의 낯선 외지인들에게는 날카롭고 사납기만 하다. 가영(이열음)에 대한 뽀리네집 경순(우현주)의 집착, 서창권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며느리 윤지숙의 말을 듣는 노모(김용림), 물에 빠져죽은 딸을 잊지 못해 소정을 의붓딸로 들인 진짜 김혜진의 엄마, 거리를 떠돌며 잃어버린 아기를 찾는 유령아기 엄마, 의붓아들 기현(온주완)에겐 따뜻하지만 죽음을 보는 딸 유나에겐 냉정한 윤지숙 등. 어머니같은 고향이 김혜진에게 상처만 주었듯 그곳 어머니들의 모성도 따뜻하고 온정적이지만은 않다.


아치아라의 어머니들은 하나같이 수상하고 의심쩍다. 자식을 위해 혹은 자신을 위해 감추고 있는 어머니들의 비밀.


동시에 눈에 띄는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자매'들이다. 이 드라마의 대표적인 자매는 입양으로 맺어진 한소윤, 한소정(김혜진)이다. 소윤은 어릴 때 언니가 죽지 않았었다는 것도 피한방울 안 섞인 남이라는 것도 서른이 다 되어 알게 되었지만 김혜진의 죽음을 누구 보다 슬퍼한다. 두번째 자매는 아버지가 다른 윤지숙, 강주희다. 마을에서 손가락질받고 천대받던 집안의 딸에서 마을 제일 부자의 사모님이 된 지숙과 눈총을 받고 자라 비밀리에 음모를 꾸미는 강주희는 어쩐지 언니와 적대적이다. 한소윤을 캐나다에서 불러들이고 수상한 미술교사 남건우(박은석)와 연인 관계인 강주희는 어쩐지 엄마와 윤지숙의 비밀이 세상에 드러나길 원하는 사람같다. 두 자매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만약 윤지숙의 딸이 김혜진이라면 유나와 김혜진도 아버지가 다른 자매가 된다. 마찬가지로 뽀리네집 가영의 아버지가 서창권이라면 유나와 가영도 엄마가 다른 자매가 된다. 가영의 엄마는 한때 서창권을 좋아했다고 했고 가영의 아버지가 누군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분명 경순과 강주희에게는 파출소 한경사(김민재)에게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고 그 비밀은 뱅이 아지매 가족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김혜진은 유나의 꿈에 나타날 정도로 유나와 우호적이지만 가영은 유나와 그리 관계가 좋지 않다. 아치아라에서 '자매'라는 혈연은 언제든 적대적 관계가 될 수 있고 그 관계를 꼬이게 만든 당사자들은 그네들의 엄마다.


엄마로 인해 파생된 관계인 자매. 자식에게 권력자인 엄마와 상처받는 자매들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이제 전체 16부작인 이 드라마의 절반이 방송되었다. 주인공 소윤은 언니의 행적을 중심으로 사건을 캐고 있지만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비밀이 상당수다. 드러나는 내용이 따라 후반부의 내용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상황이다. 경기도와 강원도를 오가는 연쇄 살인범의 정체와 리조트 개발과 관련된 서창권, 큰손의 비밀 등 김혜진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어떻게 풀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같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드라마가 표현하고 있는, 친근한 관계의 이중성 - 자매, 모녀 간의 관계 등 - 이 점점 더 무르익고 있다는 점이다. 기현의 새엄마 윤지숙이 따뜻한 어머니인 동시에 자신의 필요에 의해 자식들을 이용하고 버릴 수 있다는 섬뜩함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고보면 윤지숙은 정말 무서운 엄마다. 유나가 본 동생의 영혼은 또 딸이라서 지워버린 아이일테고 어린 기현에게 손편지까지 써가며 살갑게 군 것은 입지가 불안한 자신을 위해서였다. 유나가 아들도 아니고 자신의 앞길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쫓아내려한다. 지독한 가난과 천대로 독한 성격을 갖게 되었다고 했지만 목적을 위해 친자식까지 버릴 수 있는 그녀의 집착은 어머니인 뱅이 아지매 때문에 갖게된 성격일까. 먄약 윤지숙이 과거에 몰래 낳은 딸이 김혜진이라면 3이다. 점잖고 고상하고 착해보이는 윤지숙이 독하고 무서운 여자로 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유나의 말대로 그림의 주인공은 윤지숙이다 - 그녀의 모성은 왜 그리 일그러졌을까.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인간은 어느 정도까지 쓰레기가 될 수 있을까' 엄마를 찾아헤매던 김혜진의 증오.


서창권 집안의 압력에 따라 마을 사람들이 똘똘 뭉쳐 입다물고 외지인을 쫓아내려는 속셈에 아이들까지 동조하는 모습은 어쩐지 숨이 막힌다. 비밀을 감춘 아치아라와 드라마에서 표현되는 '엄마'의 속성은 아주 많이 닮아있. 순박하고 착하지만 때로는 필요나 목적에 따라 맹목적이 될 수 있는 그들. 김혜진이 그린 엄마와 아기의 그림처럼 따뜻하지만 무섭다. 어쩌면 정체를 전혀 알 수 없는, 그러나 어쩐지 여성들을 아주 많이 증오하는 듯한 연쇄살인범의 범행동기가 혹시나 그런 숨막힘에서 출발한 것은 아닌지. 요즘같은 시대에 어쩌다 '그녀들'의 모성은 증오와 쓰레기로 불리게 되었고 비극과 슬픔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는지. 엄마와 아기의 그림에서 칼 보다는 따뜻함을 찾고 싶은 인간의 믿음이 흔들리게된 이유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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