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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나르샤, 김명민과 조재현의 정도전 어떻게 다를까

Shain 2015. 10. 7.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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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쯤 박상연 김영현 작가가 정도전과 이방원을 주인공으로 '파천황'을 제작 준비중이란 기사를 읽었다. 나중엔 주연배우들의 이름과 MBC에서 2014년 방송 예정이란 기사도 올라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무렵 KBS에서 '정도전'이란 제목의 정통사극을 먼저 방송하기 시작했다. 같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비슷한 시기에 제작한다는 것은 방송사로서도 부담이 됐는지 '파천왕'은 그대로 묻히고 말았다. '뿌리깊은 나무(2011)'에서 가상조직 밀본과 세종의 대립을 선보였던 두 작가의 후속작, 그것도 정도전을 다룬 드라마라는 점에서 꽤 관심이 갔는데 드디어 '뿌리깊은 나무'의 프리퀼 형식으로 뉸 '육룡이 나르샤'가 방송되기 시작했다. 사대부 신권과 강력한 왕권의 대립을 이야기하던 밀본의 탄생배경과 밀본의 정신적 지주인 정도전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낼 생각이었을까?


양 쪽 모두 상거지 복장으로 등장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했던 두 사람의 정도전. 그러나 캐릭터 해석은 많이 다르다.


그러나 프리퀼에 대한 기대 보다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정도전'이란 캐릭터다. 원래 사극은 실존인물이 있고 그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가상의 캐릭터를 창조한다. KBS '정도전'같은 정통사극은 될 수 있으면 정사를 기반으로 캐릭터를 만들고 '육룡이 나르샤'같은 일종의 퓨전 사극은 가상의 설정을 보태어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같은 이름을 갖고 있다고 비슷한 캐릭터가 나오진 않는다. 두 사극 모두 지향하는 목적이 다르고 이야기의 초점도 다르니 같은 역사를 배경으로 했었도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 '정도전'의 주인공은 정도전과 이성계지만 '육룡이 나르샤'의 메인은 정도전과 이방원이다.


그 때문에 두 드라마의 첫장면은 비슷한듯 하면서도 다르다. KBS '정도전'의 첫장면은 유배에서 돌아온 정도전(조재현)이 북방의 이성계(유동근)를 만나는 장면이다. 정도전은 이성계를 만나러 가는 동안 전쟁에 지친 백성들과 황폐해진 고려땅을 본다. SBS '육룡'의 정도전(김명민)은 굶어죽는 백성들의 삶을 주먹밥을 훔쳐먹다 전해 듣고 숲속 은밀한 공간에서 이방원(유아인)과 이방지(변요한)를 만난다. 두 장면의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양쪽 다 정도전이 상거지 행색을 하고 있다는 점과 이야기 도입부로 삼았다는 점이다. 정도전을 이야기하자면 유배를 떠난 이유를 말하지 않을 수 없겠지.









아무튼 두 가상 캐릭터는 이렇게나 다르다. 특히 '정도전'의 정도전은 첩을 단 한명도 두지 않고 과격한 액션과는 거리가 멀며 조선을 설계했으되 비밀조직을 은밀히 움직이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그러나 '육룡'의 정도전은 한명의 첩(연희)을 두고 이방지와 삼각관계를 형성하며 원나라 영접사 시절부터 검은 옷을 입고 은밀히 함께 움직이는 무리가 있었다.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이성계(천호진)와 이인겸(최종원)에게 밀지를 전하고 사이를 은밀히 조율하는 인물도 정도전이 아닐까 짐작될 정도. '고려제라블'이라 불리는 노래를 부르며 강력하게 원나라와의 수교를 반대하는 모습만 봐도 이 캐릭터가 상당히 드라마틱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허당 정도전의 모습도 간간이 볼 수 있을 것같고.


거기다 '육룡이 나르샤'의 초점은 정도전 보다는 이방원에 맞춰져 있는 듯하다. 정도전과 이방원이 결국 서로 등을 돌리게 된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 때문에 '정도전'에서 이방원(안재모)과 정도전의 만남은 충돌의 연속이었다. 정도전이 유배 시절 알고 지내던 천복을 왜군으로 오해해 활을 쏘고 고통을 줄여준다며 칼로 숨통을 끊는 이방원에게 불같이 화를 낸다. 이방원과 정도전은 처음 만날 때부터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그 때문에 서로 입장과 선택이 달랐다는 것이다. 그런데 '육룡'의 정도전과 이방원은 첫 만남이 상당히 우호적이다. 어린 이방원은 정도전을 잔트가르라 칭하며 유배에서 돌아온 정도전을 찾아가 스승님이라 부른다. 첫만남에서 뜻이 맞았다는 것이다.


아들들에게 북방 사투리와 몽고말을 쓰지 못하게 하는 이성계.


허당 모습도 보여주며 정도전을 따르는 젊은 이방원.


도방의 일원으로 고려를 좌지우지하는 이인겸.


임견미가 길태미로 태어난 건 어떻게 보면 놀랍다.


더불어 '정도전'에서 존경할만한 무장이자 권문세족을 증오하는 북방의 촌뜨기로 묘사되던 이성계는 아버지 이자춘(이순재)가 쌍성총관부 만호 출신인데다 아버지의 명에 따라 조소생(안길강)을 배신한 자신의 약점이 알려지자 이인겸에게 무릎을 꿇고 북방으로 돌아간다. 양쪽 이성계의 공통점은 무장으로선 완벽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정치적으론 딱 부러지지 못하고 무능한 캐릭터란 점이다. 또 '정도전'의 이성계가 북방 사투리를 완전히 고치지 않았던 것과 달리 '육룡'의 이성계는 아들들에게 사투리와 몽고말을 쓰지 못하게 하고 자신 역시 능숙한 개경말로 권문세족을 대한다. 개경에 입성하고 싶은 정치적 야심이 있다는 말.


그외에도 '정도전'의 노련한 정치가였던 이인임(박영규)이 가상의 인물 이인겸으로 이인임의 무리이자 무장이었던 임견미(정호근)가 여성스런 복장을 좋아하는 무인 길태미(박혁권)로 신진사대부를 배신한 염흥방(김민상)이 홍인방(전노민)으로 등장한다. 정도전과 조선 건국이란 같은 역사를 배경으로 전혀 다른 무대가 만들어졌다. 더불어 '뿌리깊은 나무'에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무휼, 이방지의 과거 이야기까지도. 이미 방송된 '정도전'의 주제가 백성의 고달픔을 직접 보고 느낀 정도전의 민본주의였다면 '육룡이 나르샤'는 왕권과 신권의 대립을 이야기할 것이라니 '뿌리깊은 나무'에 이어 조금 더 강렬한 메시지가 나올 것도 같고.


조재현이나 김명민이나 연기로는 뒤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두 연기자의 해석도 해석이지만 완전히 다른 배경을 갖춘 이야기다 보니 전혀 새로운 형태의 정도전이 탄생할 것같다. 물론 양쪽 모두 개혁적이고 열정적인 인물이란 점에서는 동일한데 원접사를 돌려보내기 위해 신진사대부들과 백성의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길태미에게 진압당하면서도 눈물과 웃음이 뒤범벅이 된채 노래를 부르는 '육룡'의 정도전은 어쩐지 서글픈 영웅이다. 조재현의 정도전이 보여준 민본주의가 알아서 백성을 위해 정책을 세우고 정치를 잘하는 것이었다면 김명민의 민본주의는 아마도 백성을 직접 감동시키고 이끌어나가는 모습이 되지않을까 싶은 부분. 마치 현대의 민중가요 한편을 듣는 듯했다.


어린 이방원은 '무이이야'를 부르는 정도전에게 잔투가르라 부른다. '정도전'과 다르게 두 사람은 처음엔 우호적인 관계일 듯.


2회 방송에서 김명민이 백성들과 직접 불렀던 노래의 제목은 '무이이야(無以異也)'이다. '정도전'에서도 거론된 맹자에 그중에서도 '양혜왕장구'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밥버러지 운운하며 맹자를 필사하고 양지의 이름을 지으며 역성혁명을 부르짖던 '정도전'과 달리 '육룡이 나르샤' 정도전은 맹자의 가르침을 노래로 구현하고 있다. '무이이야'는 양혜왕과 맹자의 이야기중 '사람을 칼로 죽이나 정치로 죽이나 다름이 없다'는 뜻이다(마침 SBS 홈페이지에 자세한 가사와 내용이 올라와 있다). '아비는 칼 맞아 쓰러지고 자식들은 세금에 찢겨죽고'란 가사가 앞으로 김명민의 정도전이 나아갈 길을 확실히 보여준 듯하다. 어쩌면 눈물샘을 몹시 자극할 역할이 될 듯하다.


개인적으로 사극에서 연륜있는 배우를 보는 편이 좋다. 아무리 퓨전이라도 사극이란 장르는 다른 어떤 장르 보다 대사의 무게가 실린다. 물론 1, 2회만 봐도 '육룡이 나르샤'는 정통사극을 추구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김명민이 그렇게 가벼운 배우도 아니고 왕권과 신권, 민본주의의 구현도 결코 쉽진 않은 주제다. 같은 인물을 주제로 드라마를 만들다 보니 차별화에도 꽤 많은 신경을 썼을테고. 사서에 실린대로 묘사했다간 어디서 본듯한 느낌이 드는 건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정통사극으로 노련한 배우들의 '정도전'을 보았으니 이번 '육룡이 나르샤'에선 또다른 의미의 묵짐함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한다. 정도전이과 이방원의 대립은 여러 각도로 해석할 수 있는 좋은 주제인 것만은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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