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이 드라마 '용팔이'가 과도한 PPL 때문에 '방팔이'로 불린다는 이야기, 그리고 또 만화작품 표절 의혹에 제기되었단 기사에 이번에도 한국 드라마 고질병이 도졌다는 생각을 했다. 희한하게 '용팔이'의 제작사 HB엔터테인먼트는 유난히 비슷한 시비에 자주 휘말린다. 물론 그런 의혹 제기와 상관없이 '용팔이'는 '별그대' 만큼은 아니라도 큰 성공을 거뒀다. 문제는 드라마가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이런 의혹 제기가 묻히고 또다시 다음 드라마에서 고질병이 재발한다는 점이다. 한국 드라마의 대중흥행 공식은 거의 비슷하다. 적당히 무게있는 문제의식, 호기심을 자극하는 화제성, 만능 키워드 사랑 거기에 언제나 열연을 선보이는 배우들까지 결합하면 대충 드라마는 볼만하게 만들어진다. 표절 의혹, CF 못지 않은 PPL, 생방송 제작같은 고질병이 하나도 나아지지 않고 다음 제작 때까지 문제가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일층의사 '용팔이'로 사람들을 움직였던 김태현은 마지막회에서 연인을 사랑하는 평범한 남자가 되버린다.
재미있게도 드라마의 PPL 논란은 이런 의료 현실과 맞닿아 있다. 드라마 제작은 돈없이 불가능하다. 비싼 배우도 섭외해야하고 돈들여서 복잡한 CG도 제작해야한다. 때때로 제작비가 모자라 스태프나 보조연기자들은 정당한 돈도 제대로 받지 못한댄다. 그 때문에 부지런히 PPL을 받아야하고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이야기 흐름상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장면을 연기하며 상품 로고가 아주 잘 보이는 위치에서 카메라 촬영을 한다. '용팔이'가 '방팔이'로 불린 이유는 드라마 보다 상품 간접광고가 훨씬 더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본래의 의무인 진료 보다 돈과 권력을 쫓는 의사와 드라마 보다 간접광고가 중요한 드라마. 굳이 날카로운 이슈를 드라마 소재로 삼은 이유도 돈 때문이었을까?
결국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공감할만한 많은 이슈 - 병원의 임무와 돈, 갑을관계, 의사의 윤리에 대한 주제를 두루뭉술하게 덮고 만다. 목숨이 위태로웠던 소현은 재벌가의 20억 돈으로 살 수 있었고 한신으로 인해 투신했던 김영미는 한여진을 살리기 위해 시신을 제공했고 김태현이 불법시술한, 위험천만한 조폭 두철(송경철)은 다행히(?) 사람좋고 인정베풀줄 아는 사람이었다. 거기다 미친듯이 용팔이를 뒤쫓던 이형사(유승목)는 마지막엔 김태현 편이 되어 한여진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덮을 수 있었던 이유는 김태현과 한여진이 서로를 너무너무 사랑했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의 고질병 아무리 참신한 주제도 모든 이야기는 사랑으로 마무리된다.
'용팔이' 속의 12층은 VIP '고객'만 이용할 수 있는 곳이지만 한마디로 지옥이었다. 막대한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여동생을 가둔 한도준(조현재)과 한도준 옆에서 멍청한 척 기회를 노리던 이채영(채정안), 의식이 있는 상태로 3년 동안 누워만 있는 한여진, 범죄를 저지르고 도피한 탑스타, 환자 한여진을 인형처럼 괴롭히는 황간호사(배해선), 다른 환자의 생명 따윈 안중에 없이 VIP만 대피시키는 병원, 위에서 시키는대로 한여진을 살해하려는 의사 박원장과 이호준, 높으신 고객들의 신원을 보호하며 뒷처리를 하러 가는 씬시아(스테파니 리) 등. 12층은 의료 기술이 돈있는 사람을 위해서만 존재할 때 일어날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김태현이 끝끝내 살릴 수 없었던 단 한 사람의 환자 김영미. 마지막회에 실종된 주제에 대한 고민이 아쉽다.
기본적으로 12층을 위한 의사가 아니라 일층 의사를 추구하던 김태현은 마지막에 사랑 밖에 모르는 의사로 돌변한다. 범죄자 조폭도 마다하지 않던 용팔이의 마지막 수혜자는 재벌 영애가 된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한국 드라마의 고질병 사랑병이라고 해야할지. 한여진을 살리기 위해 어머니가 죽고 한신이라는 거대 공룡 때문에 김영미라는 불의의 피해자가 생겼다는 걸 김태현은 한번쯤 고민이라도 한 걸까. 한여진은 자신을 위해 시신 노릇을 한 직원을 위해 무언가를 바꿨을까? 급박한 전개 탓이라고 하기엔 구멍이 너무 많다. 처음부터 흔한 멜로 드라마였다면, 김태현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사람살리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이런 기대는 품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병원은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일층' 병원이어야 한다. 전문의도 아닌 레지던트 출신 김태현이 어떤 환자든 가리지 않고 받아주는 모습은 의료기술과 의학이 지향해야할 궁극의 목표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용팔이'는 드라마 흥행공식의 고질병인 지독한 멜로가 의사 용팔이의 철학을 실종시킨 것은 아닌지. 의사 앞에서는 갑도 을도 없는 환자만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아쉽다. 총에 맞은 김태현이 최여진을 수술하는 동안 살리지 못한 한 사람 - 대기업 한신의 횡포에 투신 자살을 시도하고 가족들과 차단된채 죽어버린 김영미라는 환자가 마지막회까지 생각나는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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