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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원작을 몰라도 적당히 매력있는 드라마 먹방

Shain 2015. 8. 3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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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어느 채널을 시청하든 소위 '먹방'이 대세다. 예전부터 인기를 끌었던 맛집 탐방, 레시피 전수같은 프로그램은 기본이고 유명인들의 냉장고를 뒤져 쉐프들이 요리를 만들어내는 '냉장고를 부탁해'나 강원도 정선, 만재도같은 오지에서 툴툴거리며 음식을 해내는 '삼시세끼'같은 프로그램까지 등장했다. 이제는 몇 년 전처럼 게스트가 음식을 게걸스레 먹는 '먹방' 보다는 이야기가 있고 주제가 있는 '먹방'이 대세다. 왜 TV에서 남들 먹는 걸 지켜봐야하나를 싶었던 나에겐 이런 변화가 반갑다. 더운 지방 사람들과 추운 지방 사람들이 먹던 음식이 다르고 시대에 따라 즐겨먹던 먹거리가 다른 것처럼 음식은 맛이 전부가 아니다. 크게는 국가별로 작게는 집집 마다 각자 다른 음식 문화가 있고 진정한 '먹방'은 음식에 담긴 사연까지 담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 원작을 잘 살리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한국판 '심야식당'. 그러나 끊을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은 한번도 본 적이 없다. 한밤중에 문을 여는 식당과 그 식당의 마스터와 식당을 찾아오는 손님들 이야기라는 정도만 대충 주워들었는데 꽤 독특한 분위기가 있는 드라마인 모양이다. 그외의 정보는 거의 읽어본 적이 없다. 드라마의 원작만화, 주인공이나 에피소드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 도대체 이 드라마가 어떤 내용이길래 화제가 된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때마침 한국에서 로컬라이징한 '심야식당'을 방송한다니 궁금증이 생겼다. 평소같으면 원작 드라마를 먼저 보고 리메이크를 보았을 텐데 이번에는 그럴 여유가 전혀 없었다. 한마디로 드라마에 대한 선입견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는 뜻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이 정도면 토요일 심야시간에 방송되는 '먹방 드라마'로 꽤 괜찮지 않나 싶다는 것. 드라마는 최근 TV에서 유행하는 '먹방'과 이야기거리를 제법 잘 접속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공중파를 비롯한 어느 채널이나 토요일 12시를 타겟으로 방송되는 드라마는 없다. 일부 채널에서 심야 시간대에 한번씩 실험적으로 드라마를 편성한 적이 있으나 시청률이 낮거나 호응도가 높지 않아 대부분 일찍 종영되곤 했다. 제작비가 많이 투자되는 시간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정 시청자가 생기기 쉬운 시간대도 아니다. 프라임타임 드라마로는 조금 부족할지 몰라도 잔잔한 느낌의 드라마를 원한다면 꽤 괜찮다는 평가가 내려졌다.










물론 아쉬운 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 생각없이 드라마를 보다가도 종종 이 드라마가 일본 원작이 맞긴 맞구나 싶을 때가 있다. 아마 이 드라마는 일본 정서와 한국 정서를 융합시키기 꽤 힘든 타입이다. 음식이라는 것이 문화와 정서를 포함한 추억거리다 보니 원작의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오기는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몇몇 캐릭터는 이런 성격은 참 일본인스럽다는 생각도 종종 든다. 로컬라이징 실패라기 보다 원래부터 맞지 않는 설정들이 종종 있다. 찬물에 밥말아먹는 식사는 아마도 오차즈케였을테고 메밀전 같은 음식은 일본의 오코노미야키 비슷한 요리였을테지. 일본 사람들이 공감하는 정서를 를 우리 나라로 그대로 옮겨오기는 꽤 힘들지 않았을까.


그리고 남의 일에 개입하지 않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일본인들이 도시의 후미진 가게에서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는 컨셉 자체가 한국에선 꽤 낯설지 않나 싶다. 일본은 예전부터 아는 사람만 아는 작은 가게들이 많은 나라다. 단골 가게를 동네 주민들의 아지트처럼 활용하는 풍경은 한국의 도시에선 생소하기까지 하다. 거기다 한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엔 그 사람만의 기억이 있는 법인데 한 사람의 기억은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묻어있기 마련이다. 일본의 어머니들이 아이들에게 해주던 가정식과 한국의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위해 마련해준 밥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밥그릇을 들고 먹는 일본식과 밥그릇을 놓고 먹는 한국의 음식문화 차이는 또 어떻고.


음식은 분명 한국의 음식인데 가끔씩 일본 원작이 맞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심야식당'


마찬가지로 한국판 '심야식당' 손님들이 한사람에게 한병씩만 판다는 술을 자기 옆에 두고 먹는 모습 조차 낯설게 느껴지곤 한다. '심야식당' 뒤뜰에 놓인 장독에서 장을 푸고 연탄재와 연탄불로 가자미나 가래떡을 굽는 모습은 한국적인데 식당의 음식 문화와 컨셉 자체는 어딘가 모른게 일본스럽고 원작을 살리려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리메이크가 된 경향이 있다. 특히 주인공 마스터(김승우)의 나레이션은 과묵하지만 속정깊은 원작의 캐릭터를 많은 부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보니 원작을 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도 이 오묘하고 껄끄러운 느낌은 어쩔 수가 없다. 단골식당하면 '마스터' 보다는 보통 입담좋고 사근사근한 사장님을 연상하기 마련이니까.


한가지 더 이 드라마는 일종의 '먹방'이다. 종종 해물파전이나 메밀전을 보며 입맛을 다시다가도 이 드라마가 선택한 음식들이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음식은 아니다 싶을 때가 있다. 지금처럼 낯선 향토음식, 각자의 사연이 있는 음식도 좋지만 이 음식이라면 누구나 어린 시절과 엄마를 떠올릴 것같은 그런 평범한 음식도 좋지 않을까? 30, 40대 중장년층이라면 누구나 학교 앞에 쪼그리고 앉아 뽑기에 열을 올린 기억이 있을 거고 엄마가 해준 된장찌개나 김치찌개에 허기를 채운 기억도 있을 것같다. 김치전을 부쳐먹고 싶게 만드는 주말의 '먹방' 드라마 - 한국판 '심야식당'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원작을 이미 시청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중에 읽어보니 '최악의 리메이크'라는 평가까지 얻고 있는 듯하다. 원작에는 스트립퍼 등 한국 공중파에서는 등장하기 힘든 캐릭터들이 다수 있었고 '심야식당' 만의 색깔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의 리메이크로서는 그 색깔을 찾아보기 힘들다. 차라리 원작의 설정만 빌려와서 도시 뒷골목의 식당에서 벌어지는 차별화된 에피소드와 캐릭터를 개발해 냈으면 어땠을까 싶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국판 '심야식당'의 매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원작이 있는 리메이크 드라마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타입인 이 드라마에도 장점은 있다.


한국판 '심야식당'의 최대 장점은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담백한 퓨전요리같은 맛이다. 딱히 잘 만든 리메이크는 아닐 수도 있고 시선을 사로잡는 강렬함은 없다. 화려하고 비약적인 전개는 기대도 하면 안된다. 그렇지만 오지호, 심혜진, 지진희, 전소민, 안재욱 같은 다양한 배우들이 꾸미는 각각의 에피소드와 귀를 파고드는 좋은 음악은 이 드라마의 맛을 살려주는 최대 장점이다. 짧은 에피소드 하나를 위해 등장하는 특별출연 배우들은 '심야식당'이라는 드라마의 최고 매력이다. 비록 일본 정통 '요리'의 맛도 한국 정통 '요리'의 맛은 아닐지 몰라도 싸구려 인스턴트같은, 한결같이 자극적인 막장 드라마들에 비해 신선한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완벽한 리메이크는 아니라도 이런 담백한 '먹방' 드라마가 꼭 필요했던 한국 드라마. 토요일밤에 가장 잘 어울리는 선택 아닐까.


한국 드라마 시장에선 수많은 일일 드라마가 만들어지고 장르극도 만들어지지만 대부분 재벌가 이야기거나 소위 '막장'으로 불리는, 질리는 내용들이 훨씬 더 많다. 어떤 날은 어떤 채널을 돌려도 그 내용이 그 내용일 때가 있다. 그런 드라마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은 웬만한 소재로는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고들 한다. 죽이고 살리고 다투는 내용에 TV를 끄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드라마가 있다면 때로는 짜고 맵지 않은 심심한 드라마도 만들어져야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토요일 밤의 잔잔한 먹방 드라마 '심야식당'을 응원하고 싶다. 비록 원작은 잘 살리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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