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드라마에서 강단(에리카신)이 강솔A(류혜영)와 쌍둥이라는 설정 때문에 대부분 배우 류혜영이 강단 역할을 1인 2 역을 것이란 추론이 대세였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걸려온 에리카신의 목소리는 분명히 류혜영이었고요. 그 때문에 강단이 미국에서 돌아왔을 것이란 시청자의 예상과 다르게 강솔이 고형수(정원중)를 만났으리라는 것은 전혀 짐작 못한 일이었죠. 어차피 같은 배우라는 것을 아니까 대부분 그러려니 했던 것입니다. 똥머리라 불리며 양종훈(김명민)에게 집중포화를 받던 강솔은 어디 가고 딱 부러지는 느낌의 강단이 나타났을 땐 엄청난 화제였습니다. 그랬는데 이제는 그 강단이 진짜 강솔이었다니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제 강솔은 초기에 좌충우돌하는 그 강솔이 아닙니다. 한준휘(김범)와 동밀한 수준으로 김은숙(이정은) 교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법적인 전문가 냄새도 납니다. 이제는 제법 양종훈이 교수가 말하던 실체적 진실을 그릴 수 있는 법조인이 될 것 같습니다. 드디어 로스쿨 학생다워진 것이죠. 이대로라면 강솔B(이수경)와 함께 하는 경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누명 쓰고 손가락질당하던 강솔의 반격 - 똥머리 강솔이 드디어 반격에 나서나 봅니다.
아무튼 지난번 '로스쿨 13회'에서 양종훈은 배심원들을 앞에 두고 실체적 진실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법적 문제에서 실체적 진실에 대한 탐구는 매우 중요하죠. 양종훈은 법대 교수답게 퍼즐을 이용해 효과적으로 설명해냅니다. 그리고 그 퍼즐은 코끼리 퍼즐이었습니다. 첫회부터 양종훈의 손가락엔 항상 퍼즐이 있었고 그 퍼즐 조각을 떨구거나 만지면서 사건의 단서가 미스터리라는 걸 표현하곤 했습니다. 근데 양종훈이 완성한 퍼즐은 전체적인 모습은 대개 코끼리 퍼즐이죠. 지금 맞추고 있는 단 하나의 퍼즐을 제외하면 모두 맞춰진 코끼리 퍼즐이 액자에 넣어져 있습니다. 서병주(안내상) 뺑소니 사고가 유일한 미제사건이라고 늘 말했으니 그 사건 빼면 다 퍼즐을 맞췄단 이야기겠죠.
코끼리 퍼즐 드디어 완성되나
강솔의 반격은 정말 화끈하고 충격적이었습니다. 평소 유급이나 당하고 강솔B와 다르게 야무지지 못해서 혼나던 강솔A가 그렇게 훌륭하게 강단 역할을 해낼 것이라곤 상상을 못 했겠죠. 당연히 배우 류혜영의 능력이야 믿고 있지만 드라마 속 캐릭터와 배우는 별개의 인물이니 말입니다. 고형수가 가짜 뉴스 때문에 강단에게 고소당했다는 것은 드라마 초반부에서 자주 언급되던 내용이지만 시청자들은 대부분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서병주 사건과 관계가 없어 보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서병주, 이만호(조재룡)는 단단히 얽혀 있었습니다. 진형우(박혁권)는 절대 파악할 수 없는 연결고리입니다.
뺑소니 사고를 일으킨 서병주가 이만호 사건을 심신미약으로 덮고, 그때 고형수와 김교수가 개입해 이만호의 아들 제임스가 미국에 갑니다. 가짜 뉴스로 강단에게 고발당한 고형수는 강단 자매 의붓아버지의 이혼을 조건으로 강단과 합의하고 그때 강단도 미국으로 건너가 에리카신으로 개명합니다. 이만호는 출소해서 아들의 행방을 찾는 동시에 고형수와 접촉해 서병주가 수상하다는 것을 알리고 서병주를 살해합니다. 같은 시기 고형수의 지지자이자 돈줄인 라이벌 완구회사 조태영 사장 때문에 진형우는 발암물질 의심이라는 피의사실을 언론에 유포합니다. 서지호(이다윗)의 아버지는 그때 자살하죠.
그리고 비슷한 시기 서병주는 뺑소니 때문에 협박받고 공짜땅을 받아 그 땅을 조태영 사장에게 팝니다. 그 땅에서 최재천은 카페를 열어 가짜 뉴스 공장을 운영합니다. 이 가짜 뉴스 공장은 고형수 편을 응원하고 상대방 후보를 비방하고 각종 사건을 뒤집는데 이용되죠. 최재천은 그때부터 고형수의 조력자로 이만호의 전자발찌를 종종 대신 차고 다니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양종훈에게 미끼로 살인에 사용된 도구를 전해주기도 하죠. 이외에도 감옥 안에서 양종훈을 죽이려 했던 기두성, 법무법인 형설의 변호사 송기준(이석준)이 고형수 관련자인 동시에 범죄를 털어 노을 사람들이고 퍼즐을 완성할 조각들이 되겠네요.
양종훈, 소크라테스 그리고 체격이 큰 코끼리
알고 보면 코끼리는 법조계에서 꽤 많이 사용되는 비유 중 하나라고 합니다. 어떤 것의 실체를 명백히 알 수 없을 때 '장님 코끼리 만지듯'이란 표현을 쓰곤 하죠(장님이란 표현은 바꿔쓰더라도). 코끼리라는 동물은 요즘도 동물원을 가기 전엔 쉽게 볼 수 없는 동물인데 예전에는 더 보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법으로 유명한 한비자(韓非子)와 관련된 이야기 중에 코끼리에 관한 것이 있습니다. 코끼리 상(象)이라는 단어는 코끼리를 본떠 만들어진 상형문자인데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옛사람들이 코끼리 뼈를 보고 코끼리 모습을 그려본다란 뜻으로 '상상(想像)'이란 단어를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살아생전 매우 좋아했고 죽을 때까지 읽었다는 이솝 우화에도 코끼리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때 이솝이 아프리카 대륙 출신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었다죠. 다만 그 '장님과 코끼리'라는 이야기는 이솝 우회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힌두교, 불교 등 여러 종교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로 아프리카에 사는 코끼리는 꽤 오래전부터 부분 만으로 전체를 가늠할 수 없는 '큰 동물'의 상징이었던 모양입니다. 양종훈의 코끼리처럼 퍼즐 조각 하나로는 대체 어떤 동물인지 알 수 없는게 코끼리입니다.
조반에 서지호는 아버지의 죽음을 두고 서병주가 피의 사실을 흘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조각 삼아 서병주를 둘러싼 여러 사실들을 주워모았고 그 과정에서 한준휘가 서병주의 친아버지임을 또 서병주가 마약에 중독된 것도 알게 됩니다. 만약 서지호가 퍼즐 조각을 거기까지만 모았다면 그는 끝내 코끼리는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준휘는 서지호에게 진형우, 최중혁(김중기)이란 퍼즐을 하나 더 보태주었고 서지호는 끝끝내 코끼리를 찾았습니다.
흥미로운 건 고형수가 몰래 숨겨 놓은 이 큰 그림이 코끼리가 될 때까지 그 '가짜뉴스'에 대해 눈치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김은숙 교수나 양종훈 한준휘가 가짜 뉴스에 대해 정보를 확인하고 전체를 짜 맞출 동안 그 퍼즐 조각들은 각각 움직이는 별개의 사건으로 보였죠. 사건은 이만호와 김은숙, 이만호와 서병주, 고형수와 강단, 고형수와 전예슬(고윤정) 같은 식으로 전체 사건은 이해되곤 합니다. 아니 코끼리가 되고 난 후에도 퍼즐 조각들은 따로 도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가짜 뉴스 사건은 드라마 속에서도 강솔A와 양종훈의 성추문, 서지호 아버지의 황령 사건 조작 등으로 다양하게 그 영향을 끼칩니다. 어느새 사람들은 코끼리 따위는 기억하지 못하고 당사자 주변의 추문만 기억하겠죠.
큰 그림은 따로 있다 - 그럼에도 사람들은 주변적인 것들을 더 많이 보고 기억합니다. '로스쿨'이라는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가짜 뉴스라는 코끼리보다는 강솔A의 소년원, 전예슬과 양종훈의 성추문, 유승재(현우)의 해킹, 한준휘의 친아버지, 서지호 아버지의 횡령, 강솔B의 표절 같은 키워드를 더 기억할 것입니다. 그중 몇 가지는 사실이 아닌 것도 있죠. 퍼즐은 전체가 완성되면 그 완성된 그림을 보며 즐기는 맛인데 코끼리 퍼즐과 다르게 현실의 가짜 뉴스는 전체보다는 그 한 가지를 물고 늘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드라마지만 드라마 속 댓글에 나온 비아냥과 비난이 어쩐지 눈에 많이 익습니다. 어디서 또 눈에 안 보이는 코끼리라도 풀어놓은걸까요.
코끼리처럼 보인다고 부분만 놓고 판단하기는 쉽지만 전체 그림이 코끼리인지 알려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죠.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잊고 조각에 집중하며 전체를 보지 않기도 합니다. 가짜 뉴스는 대부분 그 조각을 강조한 경우가 많습니다. 양크라테스는 그 자체로 로스쿨 학생들에게 좋은 교재가 되었고 드라마 속 스터디 그룹의 학생들은 좋은 변호사가 될 수 있겠죠(개인적으로 어쩐지 강솔B는 교수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네요). 뭐 그 자체가 판타지겠지만 요즘처럼 가짜 뉴스 때문에 시끄러운 시절에는 더욱 '실체적 진실'이란 단어에 집중하게 됩니다. 드디어 오늘 그렇게 기다리던 마지막회가 방송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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