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철퇴란 무기는 있었습니다. 빙빙 돌려서 그 힘으로 휘두르는 형태의 무기였죠. 정확한 이름은 '플레일'이라고 하는데 원래는 이런 형태가 아니었다고 하네요. 휙휙 돌리는 형태는 고구려 시대에 존재했고 그 뒤에 나온 철퇴가 빙빙 돌리는 형태의 무기였겠죠. 예전에 각종 전쟁 드라마에서 빙빙 돌리는 형태의 철퇴를 본 것 같은데 그 형태의 철퇴는 요즘 보기 힘듭니다. 아무튼 굳이 이 무시무시한 철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정몽주(최종환)가 휘두른 당사자이기 떼문입니다. 정몽주가 포은의 앞길을 막아선 것은 이성계(김영철)에게는 적잖이 충격이었나 봅니다. 원래 당시의 이성계는 빠른 정권 탈환보다 천천히 개혁하는 길을 가고자 했습니다.
그것이 백성들에게는 충격이 덜 심하고 무력으로 백성을 도륙하는 것을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겠죠. 이미 고려는 위화도 회군 때 꽤 많은 사람들을 잃었습니다. 최영(송용태)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죽었거든요. 정몽주는 결국 선죽교에서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정몽주가 어떻게 죽었느냐에 대해선 여러 가지 이견이 있습니다. 얌전히 맞아 죽기를 기다렸다는 사람도 있고 맞을 때 저항하다 죽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확한 기록은 어떤 쪽이었을까요. 대부분은 정몽주의 충심을 강조하기 위해 과장된 이야기라 볼 수 있고 정사인 조선왕조실록에선 이야기에선 정몽주는 도망도 쳤고 저항도 했습니다.
당시 고려를 천천히 개혁하기 위해서는 빠른 개국과 새 왕조 건립이 필수였습니다. 그 반대파가 정몽주였고 당시의 개국 공신들은 정몽주를 하루빨리 쳐야 한다는 쪽으로 합의를 본 상태였죠. 물론 한때는 정몽주도 개혁을 주도하는 쪽의 인물이었으나 어느새 삼봉 정도전(이광기)과 의견이 틀어진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하루라도 빨리 이성계 쪽을 치지 않으면 위험한 건 이성계 일파였죠. 말에서 떨어져 위문을 받던 정몽주는 누군가 암살 위험을 알렸으니 상황을 엿보러 정몽주를 방문하게 됩니다. 이방원(주상욱)과 그의 무리들은 정몽주를 죽이고 싶었지만 먼저 정몽주를 치지 말라고 명한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냐 먼저 나서는 사람이 없었죠.
그때 이방원이 이런저런 지시를 받으며 정몽주를 공격하게 됩니다. 정몽주의 추격전은 생각보다 살벌하게 진행됩니다. 정몽주를 뒤쫓던 사람들은 조영무(김법래), 이부, 고여 등인데 달려 정몽주를 따라갑니다. 정몽주는 말을 달리고 그 말을 쫓아 철퇴를 든 무사들이 사람들이 뒤쫓습니다. 말이 쓰러지고 그때도 몽주는 달아납니다. 그리고 그 철퇴에는 동그란 무기가 달려있죠. 정몽주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그 원형의 철퇴입니다. 당시 이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사람들이 왈가왈부한 걸로 아는데 사람들이 추정한 시간대는 오후 시간대가 아닐까 한답니다. 역사적인 정몽주의 죽음은 그렇게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출처:태조실록 1권, 총서 131번째기사).
정치적이며 의미 있는 사건이 된 정몽주 테러
어쩔 수 없게 된 이성계는 공양왕(박형준) 등을 불러 일의 뒤처리를 논의하게 됩니다. 말에서 떨어진 이후라 회복에 신경 쓸 때이기도 했고요. 태조 이성계는 역적으로 정몽주는 충신으로 내세우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때의 시점으로 보아 정몽주는 다른 무엇보다 철퇴를 들고 사람을 처단했기 때문에 더욱 비난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몽주는 그래도 이성계가 나에겐 위협을 가하지 않으리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람들을 처형하고 처벌하는데 집중했더라도 정몽주는 귀양을 보내거나 사사하더라도 직접 죽이진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죠. 정몽주 사건은 역사적으로 야만의 역사를 되돌러 놓았다는 점이 가장 큰 비난을 받습니다. 이는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다는 이성계의 생각과도 반대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애초에 이성계는 역성혁명을 꿈꾸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정몽주를 배신했다고 한들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지 싶지만 그들에겐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역성혁명은 왕조를 바꾸는 혁명을 뜻합니다. 역성혁명이냐 아니냐는 그에게 큰 차이였던 거죠. 방우(엄효섭) 유자가 어떻게 그렇게 배신을 하느냐며 비난하지만 이방원 사람들에겐 목숨을 건 싸움이었습니다.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죽고 떨어져 나가는 세계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죠. 정몽주의 '충절'은 그렇게 여러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여러 사람들에게 칭송받던 일이었습니다. 꽤나 똑똑한 사람이고 문무에 두루 능했다고 하는데 그의 명성은 꽤 오래 회자될 듯합니다.
5년여의 시간 만에 드라마가 다시 제작되었는데 '정도전'은 전체적으로 짧게 제작된 편이라 정몽주와 이성의 갈등을 자세히 묘사하는 편이 아닙니다. '태종 이방원'과 다른 점이 많을 것 같더군요. 특히 '왕자의 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드라마라 분량 차이가 꽤 클 것 같습니다. 확실한 건 '정몽주가 죽었다'는 사실뿐이죠. 반대파 중에는 정몽주가 죽기를 원하는 사람이 다수였습니다. 아무리 태종 이방원의 선택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해도 당시 전쟁에 지쳐있던 이성계에게 정몽주는 싸우고 싶지 않은 상대,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은 인물이었던 모양입니다. '유자'인 이방원의 선택은 그렇게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역사는 정몽주 보다는 이방원, 이성계에게 우호적인 편입니다. 다 죽은 마당에 무슨 편싸움이냐 하겠지만 명분을 지키는 시대와 그렇지 않은 시대는 결과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입씨름하며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게 훨씬 나았다는 것을 이성계와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럴 시간이 없다는 게 그들의 문제라면 문제였죠. 그래서 정몽주의 충절은 여전히 칭송받고 따르는 사람들도 많은 모양입니다. 물론 유난히 충절과 '효(孝)'를 강조하던 문화권에서 차근차근 순리대로 처리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겠지만 어쨌든 정몽주는 역사적 승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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