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켜고 보면 요즘 자주 볼 수 있는 표현이 있죠 - 원빈 자가 같은 호칭). 요즘 웬일로 궁중 사극에서 쓰는 표현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특히 소매 고운 끝동'같은 드라마에서는 성격이 불같은 정조(이준호)때문에 평소보다 버럭 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죠. 평소에는 다정하진 않아도 무뚝뚝함 정도는 유지하던 사람이었는데 요즘 화낼 일이 많아서 그런가 더욱 격해진 것 같습니다. 물론 곳 정조도 결혼을 하면 달라지겠지만 당분간은 계속 그 모양일 것입니다. 그 와중에 정조가 성덕임(이세영)과 결혼을 발표합니다. 이거 웃기만 할 일은 아닌 게 성덕임은 그 때문에 화살받이가 될 것 같습니다. 화빈(유연지란 배우더군요 - 예전에 궁인 역할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은 첫날부터 회초리를 치고 빨래를 시키는 등 사람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성덕임은 효의왕후가 입궁한 후 맞은 첫 아내였습니다. 그 후에 원빈(정서경)과 화빈이 줄줄이 입궁했는데 두 사람 모두 정조에겐 못마땅한 인물이었습니다. 원빈은 너무 일찍 죽어버렸고 화빈은 구설에 자주 올라 마땅치 않았죠. 그때 맞아들인 후궁이 바로 성덕임입니다. 원빈은 입궁하고 거의 곧바로 죽은 셈이지만 화빈은 거의 바로 입궁했기 때문에 소위 '투기'할 사간적 여유가 있었죠. 그러나 성덕임이 임신 후 바로 회임하자 화빈의 입지는 하루아침에 몰락하고 맙니다. 1824년까지 살아있었지만 그 뒤로 뚜렷한 기록이 없죠.
효의왕후는 첫 번째 후궁인 원빈 임신도 못하고 이후 급사에 가깝게 죽습니다. 원빈의 죽음 이후 효의왕후가 원빈을 암살했다는 누명에 시달리다 죽은 것은 앞에서 이야기 한 대로입니다. 그리고 원빈을 냉대했던(인사도 안 받아준) 화빈이 죽습니다. 그때 놀랍게도 효의왕후 역시 상상임신을 겪은 상태였습니다. 효의왕후는 그 부분을 남들에게 말했고 그 덕분 효의왕후의 가짜 임신은 해프닝으로 끝이 납니다. 그렇지만 화빈은 도저히 가짜 임신을 꾸며낼 수가 없는 상태였고 '윤빈의 산실청은 30개월이 넘도록 아이를 생산하지 못했다' 화빈 윤씨의 가짜 임신은 그렇게 끝이 나고 맙니다..
사실 저는 여전히 화빈이 불쌍하다고 생각합니다. 임금을 속인 셈이지만 화빈의 회임 이후 화빈이 받았을 스트레스는 상상 초월했을 것입니다. 중전을 제외하고도 화빈이 사람이 모셔야 할 둘이니 말니다. 왕대비 김씨, 효의왕후, 혜경궁까지 예법을 따지는 효의왕후에게 얼마나 불편한 상황이었을까요. 화빈은 결국 그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하고 맙니다. "화빈 윤씨는 중궁을 분수에 지나치게 질투했고 성빈을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저주했다. 이로 인하여 죄를 얻었고 대궐 안에 엄히 가뒀다. 의논하여 대궐에 방을 내렸다"라는 글 있습니다(이재난고). 살아있으나 아무도 거론하지 않던 화빈은 그런 처지가 된 것이지요. 죽이지도 내보내지도 않고 작호를 거둔 셈이죠. 결국 화빈의 생사는 한참 뒤인 1824년 2월에 밝혀집니다. '병환이 중했지만 연령이 그리 많지...'라는 글이 있습니다.
결국은 모두의 눈물 바람이려나 - 안타까운 그들의 이야기
화빈(유연지)은 극 중에서 성덕임에게 회초리를 맡고 세답방 빨래를 도맡아 한 것으로 설정되었습니다. 극중에서 찬물에 세답방 빨래는 시키지 않는다고 했는데 덕임이는 남들 다 보는데 빨래를 합니다. 물론 이는 극 중 성덕임을 내보내고 새로운 사람을 화빈 옆에 두기 위한 편법이었을 것입니다. 원래 이 드라마는 16부작이었는데 최근에 17부로 만들어졌으니까요. 화빈은 층층층 시하에서 미쳐버린 것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화병으로 분통이 터진 것일까요. 이후 화빈의 이야기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증세가 좋지 않았던 것은 확실합니다. 드라마 설정을 빌리자면 화빈은 수발을 들던 성덕임의 수발을 받다가 임신했고 투기를 하다 '미쳐서' 죽은 듯합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의빈 성씨는 결혼을 하고 정조의 아이를 낳습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이 바라던 출산인데 의빈 성씨의 출산은 행복하게 그려질 것 같지 않아요. 궁중에서 누군가 죽습니다.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죽고 의빈도 임신 중에 죽습니다. 아이 둘을 잃고 어떻게 살아가나 싶지만 처음에는 잘 버텼던 것 같아요. 의연하고 침착하게 대처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나 싶지만 당시엔 영아 사망률이 굉장히 높던 시기니까요. 어떻게 자식을 모두 잃은 슬픔을 버텨낼 수 있을까. 다른 집 아이들은 태어나서 잘 자라는 애들도 많던데 어떻게 정조의 아이들은 하나도 아니고 셋 모두 죽을 수 있을까 정조에게 일어난 크나큰 슬픔입니다.
옷소매 고운 끝동에 눈물을 적시고
일단 드라마가 해피엔딩이 되기는 힘들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해피앤딩일 때 드라마가 딱 끝났으면 좋은데 16회였으면 좋았을 텐데 정조의 전체 인생을 다룬 이상 힘든 이야기겠죠. 아니 전체 인생을 다룬다고 쳐도 사형 장면 한 번도 보여주지 않는 드라마에서 험악한 설정은 무리인 것 같습니다. 임신중독증으로 죽은 것으로 알려진 의빈 성씨가 나긋하고 조용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두 사람은 어떻게든 죽음으로 헤어질 수 밖이 없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아이가 모두 죽은 의빈이라니 상상하기 힘들죠. 아이를 안고 행복하게 웃는 모습만 상상하고 있었는데 이대로라면 그 모습은 못 보겠죠. 누가 또 죽을 것 같긴 한데 지금으로선 안타깝기만 하네요.
초반에 크게 징을 울리는 소리가 퍼졌습니다. 그 소리는 누군가 죽었을 때 울리는 소리라고 했습니다. 영빈이 죽었을 때도 같은 소리를 들었고 어린 세손은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릴 때는 동무들과 함께 그 징소리를 들었지만 이젠 궁을 울릴 만큼 징소리가 퍼져도 같이 들어줄 누군가는 없겠죠. 앞으로 누군가 더 죽지 않았으면 하고 남아있는 누군가가 정조와 의빈의 친구가 되어 주었으면 하지만 지금은 살아있는 누군가도 거의 없습니다. 기껏해야 무관인 강태호(오대환) 정도만 살아남아 홀로 남은 정조를 지킬 것입니다. 살아 있어도 외롭고 힘들고 누군가의 원망을 듣는 자리가 주상의 자리였습니다.
궁녀들이 입는 옷은 끝자락이 붉은색입니다. 머리를 조아린 궁녀들은 그 옷자락으로 눈물을 훔치거나 닦아내곤 하죠. 옷자락이 붉다는 것은 적잖이 그 슬픔이 담긴 표현입니다. 늘 웃을 일도 없고 잘 웃지도 못하는 궁녀가 눈물을 닦아내려면 몰래 훔치는 수밖에 없죠. 고개는 늘 엎드리고 몰래 대답만 하니 운다고 해도 눈치채기 힘들겠죠. 팔을 내치고 거절하는 상대를 눈물로 붙잡을 때도 비슷한 모양이었을 것입니다. 왕의 여자들은 그렇게 매일매일이 눈물 바람이었었을 것입니다. 홍수(紅袖)도 비슷한 의미의 단어입니다. 그들은 대부분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들은 찾기 힘듭니다. 왜 붉은 영빈의 옷자락을 영조(이덕화)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을까요. 제조상궁 조씨(박지영)은 왜 그렇게 원한이 맺혔던 것일까요.
배우 이순재가 알려지지 않은 역할로 특별출연을 한다고 합니다. 평소 술을 즐기고 심각한 골초였다는 정조는 어느 날 세상을 뜨게 됩니다. 이순재는 아무래도 촌로 역할을 하게 될 것 같아요. 뭐 등장인물 대부분이 죽었기 때문에 적절한 역할도 없지만 정조가 죽기 전에 잘 자라던 '벼 포기가 갑자기 하얗게 말라 죽우 노인들이 그것을 보며 슬퍼하며 말하기를 "이것은 이른바 거상도다"라고 하였는데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대상이 났다'는 글이 있습니다. 촌로가 아니라면 전혀 상관없는 역할을 할 누군가 일 텐데 수원성을 지은 정약용도 후보지만 그는 나이가 정조보다 훨씬 어리기 문에 아닐 것입니다. 혹은 옛이야기처럼 누군가 전설 속 인물이 되어 죽은 정조의 역할을 대신하게 될까요. 어느 쪽이든 죽게 되는 건 사실일 테니 안타까울 밖에요. 그래도 '봄이 되면 다시 꽃이 피겠지요'란 말을 남긴 덕임에게 희망을 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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