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문화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침착하게 아이의 손가락을 찾는 송하영

Shain 2022. 1. 28.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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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이 비슷한 글을 봤는데 싶어서 한참 고민했는데 이제야 생각이 나네요. '레인코트 킬러 : 유영철을 추격하다'라는 제목이었습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범인들이라 쉽게 기억이 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들의 범죄를 기억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유명한 사건이고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일인데 유영철이나 정남규 같은 이름을 기억해도 그들 어떤 범죄를 저질렀던가 싶으면 까맣게 잊게 되더라고요. 그럴 만도 한 게 그 범죄들은 대부분 너무 잔인하거나 끔찍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애써 '잊어야 한다'며 넘기기 마련이었고 저 역시 그 과정을 통해 그 범죄들을 다시 떠올려봤을 뿐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지금도 비공개인 내용도 많고 한두 가지씩 뒷이야기로나 풀릴 뿐입니다. 지금도 세세한 상황보다는 왜 그 범죄가 일어났는지 알아봐야 한다는 '레인코트 킬러'의 주제엔 동감합니다.

 

21세기에 일어난 잔인한 시대의 사건은 일종의 전조 같은 것이었다

 

2000년대에 일어난 범죄들이 유난히 잔인하고 특징적이었는지 사람들은 잘 생각해보지 않습니다. 이 드라마는 그 시대를 재조명하면서 그 시대의 범죄들을 돌이켜보는 내용입니다. 왜 그 시대에는 유명한 범죄자들이 그렇게 많았던 것일까요. 사실 성범죄 피해자가 될 뻔한 일들은 누구나 한 번씩 겪고 누구나 한 번씩 위기를 넘기지만 90년대 후반엔 사람들이 꽤 성범죄에 둔했던 시기 같습니다. 그리고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예측하듯이 그른 그런 일들은 늘 예고가 있고 징후가 있기 마련입니다. 주변에 이중구 같은 인물이 흔해서 100명 가까운 사람들 중에 누가될지 모른다는게 어려움이었죠.

 

성범죄를 시작으로 국영수(진선규)는 새로운 방식의 수사가 필요하다는데는 생각은 합니다 '고인 물들이 나쁜 방식보다 더 치를 떠는 게 낯선 방식'이라 말은 하면서도 백준식(이대연), 허길표(김원해)의 말처럼 뭔가 필요하다는 생각엔 동의를 한 것입니다. '머지않아 우리도 미국처럼 인정 사정없는 놈들 나타난다'는 그의 말은 영향력이 1도 없어 보이지만 어쨌든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엔 동의를 할 수밖에 없었죠. 다만 여전히 박대웅(정만식) 같은 사람들은 증거도 없이 현장을 들쑤시고 방기훈(오경주) 같은 사람들은 그 증거도 없는 현장에서 사람들을 잡아가 두는 것입니다. 아직 21세기가 오지 않은 그때 그들은 성범죄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범죄의 첫번째 징조였던 성범죄자들 - 양용철의 등장

 

당시 성범죄는 '운없는 사람들'이나 당하는 이상한 범죄였습니다. 피해자가 수백 명이 되는데도 신고하지 않아서 처벌 못하는 범죄였죠. 흉흉한 이야기가 떠돌고 나면 100% 근처에 성범죄 피해자가 있다는 증거였죠. '발바리'라는 닉네임을 가진 성범죄자를 많이들 아실 것입니다. 20여 년 전만 해도 '발바리'라며 따져 부르는 사람이 없었지만 요즘은 성범죄자라며 바꿔 부르는 추세죠. 20여 년 전의 발바리를 요즘은 '빨간 모자'라 부르는 모양입니다. 사실 기사만 봐서는 저 드라마에서 묘사하는 범죄자가 '발바리'인지 혹은 다른 인물인지 파악이 안 되네요. 짐작이 맞다면 대전 동부경찰서를 떠돌던 '이중구'라는 인물일 텐데 그는 대전 지역에서 매우 유명해 많은 사람들이 경계했죠. 아무튼 당시 빨간 모자는 매우 유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방 범죄도 기승을 부렸으니까요.

 

송하영(김남길)은 의심은 가지만 증거가 없는 방기훈과 저놈 범인 아닌데라며 방기훈을 편드는 양용철(고건한)을 만나게 됩니다. 범인이 아닌 것 같다는 막연한 의심만 가지고 누군가를 함부로 잡아넣을 수도 없고 무조건 편드는 사람을 믿어줄 수도 없는 상황이 되면 사람들은 증거를 따져 물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가끔은 이상한 놈에게 엮여 사기를 당하더라도 물어보는 게 낫죠. 송하영이 도움을 청한 인물은 국영수(진선규)였고 국영수는 담당경찰에게 별소리를 다 들으면서도 꿋꿋이 범인을 캐보기로 합니다. 그때 국영수에게 송하영은 '프로파일러' 이야길 꺼내죠. '범죄행동분석관'이라는 낯선 명칭의 직업을 추천하는데 송하영은 별로 싫어하는 기색은 없습니다.

 

조강무는 미성년자였지만 진짜 빨간 모자였다.

 

사실 송하영이 추적하는 범인은 2명의 용의자가 있었습니다. 그중 한명은 방기훈이고 나머지 한 명은 조강무(오승훈)였습니다. 추적하는 용의자와 조강무는 모든 조건이 달랐는데 박대웅(정만식)은 잘못된 용의자를 쫓고 있었습니다. 방기훈은 용의자로 몰려 법원 판결까지 받았지만 조강무가 키가 작다는 사실을 눈여겨본 송하영을 눈여겨보기 시작합니다. 잡지 못한 범인을 '2'라는 숫자를 특이하게 쓰던 범인은 조강무였죠. 그는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단속에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송하영은 천천히 그리고 차분히 범인을 검거했고 조강무는 '어떤 집에서 나온 거냐'며 따져 묻습니다. 지문을 다 지웠다고 자신한 것이죠. 속칭 '발바리 사건'도 이상하지만 이 사건은 범인이 미성년자여서 그런지 신상정보가 공개된 것이 없습니다.

 

 

 

 

양용철의 마지막 한 숟가락의 밥

 

시대의 변화를 읽는 재미가 솔솔 한데 발바리 사건은 극 중 시기보다 좀 더 늦게 일어난 것 같은데 99년에 일어난 일로 묘사가 되더군요. 뭐 범죄의 흐름도 중요하지만 나름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선정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99년도 경에 성범죄가 많이 일어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요. 동료의 신체를 토막 살해하고 장기까지 나눠먹은 속칭 '영웅파' 사건은 아마도 현대 건설의 금강산 방문 때쯤 일어났을 사건이고 얼룩무늬 셔츠를 입은 신창원이 잡힌 것도 그때쯤 일 것입니다. 면회를 거부하던 양용철(고건한)은 영치금을 넣어주다가 양용철을 만납니다. 사귀던 여자가 죽었을 때는 '벗겨놓은 옷도 입히는 게 정상인'데 하던 놈들이나 하는 짓을 하는 양용철이 뭔가 이상했던 거죠.

 

부경동 연쇄 토막살인사건 용의자 - 장득호.

 

사건에 대한 감이랄까 범죄자들에고 분명 범죄에 대한 촉이 있습니다. 안 하던 짓을 하면 잡힌다같은 불문율이 있죠. 담배나 한두 가치 얻어 피우던 양용철은 더 주는 게 없나 싶어서 송하영을 떠보지만 범죄자를 다루려면 룰이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닫습니다. 원하는 대로 다 해줘도 안되고 밀당을 좀 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면회도 모자라서 영치금까지 받아먹은 양용철이 다음에 노릴 것은 조금 더 많은 영치금이겠죠. 송하영(김남길)은 까불지 말라 양용철을 단호하게 떼어냅니다. 이제는 조금 더 높은 단계의 범죄자를 만나야 할 때입니다. 조용하고 점잖던 송하영이 이런 식의 강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요.

 

 

 

 

안타깝게도 손가락 2개는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침착한 송하영의 장점은 대화를 할 때 잘 드러납니다. 감정의 변화가 없는 비슷한 높낮이의 음성과 뭔가 중요한 질문을 하고 있음에도 핵심적 내용만 골라 듣는 성격은 대화의 빈틈을 잘 짚어냅니다. 송하영은 건성건성 질문하는 조강무(오승훈에) 게 풀어달라고 조르며 대충 넘기려 했는데 송하영은 질문을 허투루 넘기는 법이 없습니다. 흉기로 나온 가위, 나이어린 미성년자, 어딘가에 눌린 머리의 헤어스타일의 흔적 무엇보다 키가 165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편이라는 건 집중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죠. 지문 감식 결과가 내일이면 나온다며 재촉하는 태도와 여유롭게 질문하는 태도에 조강무는 말하지 말아야 할 것도 말해 버립니다. 무엇보다 조강무가 놓친 것은 그의 글씨였습니다. 숨겨야햘 글씨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던 거죠. 

 

도저히 웃을 수 없는 그 현장에서 송하영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진다

 

문득 드는 생각이 왜 아이를 토막 내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일까요. 서서히 드라마는 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심리도 이해가 가지 않는데 누군가는 그 사람을 토막 내고 잘라냅니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초등학생을 토막 살해하는 범죄는 은근히 자주 일어나는 편입니다. 드라마에 등장한 배우는 초등학교 교사 역할입니다. 장득호(이종윤)는 살인의 이유를 말하면서 혀를 날름거립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이 처음 방문한 송아영(김남길)과 국영수(진선규)에게 겁을 주겠다는 의도로 목을 잡아 쥐려하는 송하영을 대면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장면을 찍으면서 송하영은 겁을 먹지도 놀라지도 않은 얼굴이었죠. 송하영의 말처럼 신을 믿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렇게 살인사건 그것도 상상하기도 싫은 토막살인이 일어날 때 사람들은 보통 대책을 고민합니다. 그리고 그 대책으로 또 연쇄 살인범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하죠. 한국의 프로파일링은 그렇게 토막살인범들이 판치던 그때의 험난한 환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죄책감에 대해 질문하는 온 장득호(이종윤)에게 '당신 눈동자가 익숙하다'는 말을 합니다. 은근슬쩍 살인행위와 그들의 범행을 동일한 것으로 떠넘기는 것이죠. 일부러 장득호는 '슥슥'이란 소리를 입으로 내며 송하윤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도발에도 송하윤은 꼼짝하지 않습니다. 그때쯤 시신을 왜 잘랐는지에 대해 장득호는 입을 엽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정말 담배가 피고 싶어 지더라고요. 저 긴장과 끔찍함 어떻게 표현이 되겠습니까.

 

이름없는 살인자 이춘재, 토막살인마 유영철

 

수사 기법이 발달하지 않은 당시에는 이 만큼만 생각해도 대단한 발전이었을 것입니다. 그들 세 사람이 힘들게 브레인스토밍 한 내용이 초기의 '프로파일링'이었습니다. 아직 대단한 동료의식도 없고 이렇다 할 수사의 기본도 없고 때로는 프로파일러인지 그냥 평범한 수사관 인지도 헷갈리고 이 팀 저 팀에 차출 나가며 그들은 존폐위기를 겪는 팀이 됩니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내 숟가락 지키라는 주변의 눈초리도 쉽지 않았겠죠. 여차하면 발을 빼겠지 싶어서 어정쩡하게 자신의 위치를 지키겠지만 그들의 취업 일기는 또 불편하단 말이죠. 아무튼 그 남자 흐리멍덩한 눈빛의 조현길(우정국)은 범인 최인구처럼 손가락 2개를 절단당한 인물이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아이의 손가락 2개도 찾지 못했다고 하죠. 답답하고 한숨이 나오더군요. '범죄 수법을 바꾸고 진화해버린다' - 이것이 다음편의 예고입니다. 화성연쇄살인과  사건이 다음 편인가봐요. 답답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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