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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엔 드라마틱한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웃지 못할 연정으로 '구린' 곳에서 아이를 임신하고 낳게한 남자가 있는가 하면 미녀의 남편이 죽기를 기다려 미녀와 연인이 된 왕도 있다. 어떤 소재를 드라마의 중심인물로 삼아도 꽤 재밌을 만한 이야기가 등장하는게 화랑세기다. 그 구린 곳에서 가지게 된 아이, '구리지'의 아들 사다함은 삼국사기에도 기록된 진흥왕 때의 화랑이다. 그는 나이가 어려 대가야 출정을 왕이 허락하지 않자 사사로이 낭도를 이끌고 가야를 정복하러 갔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5세 풍월주의 지위에 있었다는 사다함은 대가야를 멸망시키고 그 전공으로 얻은 노비 300명을 양민으로 풀어 주고 농사를 짓게 했다. 아름다운 화랑만이 차지할 수 있다는 풍월주의 자리를 차지했으니 당연히 미모가 뛰어났을 것이고 대가야로 뛰어들 만큼 용맹했으니 군인으로서도 충성스럽고 최고였을 터이고 노비를 풀어준 것으로 보아 욕심이 적은 소박한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꽤 괜찮은 인격을 수양한 화랑이었을 것이다.
TV 드라마, MBC 선덕여왕에서도 이 사다함이란 인물을 놓치지 않았다. 꽤 많은 욕심으로 다양한 이야기 전개를 펼치는 선덕여왕은 미실이 과거에 사다함으로부터 받은 '무엇(사다함의 매화)' 때문에 기우제에 비를 내리게 하고 절대권력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고 설정했다(물론, 지금까지 말해온 대로 드라마의 설정 대부분은 기록과 어긋난다). 지금으로서는 그 '무엇'이 책력 - 초반에 덕만이 가지게 된 정광력(正光曆, 위나라 시대의 달력) - 이 아닐까 짐작되는데 천문 관측에 관심을 보였다는 시대상과 어울리는 설정이다.
연기는 처음이라는 애프터스쿨의 유이가 미실의 어린역을 맡고, 신인연기자였던 박재정이 사다함 역할을 맡았으나 어제는 잠깐 등장했다. 애틋한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미실이 권력을 잡는 동기가 되고 원인이 될 것인데 신인인 두 사람이 역할을 소화할 수 있을 것인지를 두고 많은 사람이 염려했다. 나무 아래에 선 미실은 정인인 사다함과 영원히 함께할 것을 약속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음을 한탄한다.
절대권력자 '미실'이 어린 시절 흠모하고 다정하게 지낸 남자로도 유명한, 명실공히 미실의 첫사랑 사다함은 모자랄 것이 없는 남자였지만 알고 보면 여복이 있었던 거 같지는 않다. 미실이 궁으로 들어가 세종 전군의 아내가 되었다 쫓겨나고 사다함과 사랑에 빠져 두 사람이 영원히 해로할 거 같았지만 세종전군의 상사병이 지독한 관계로 사다함이 전쟁에 나간 사이 미실은 세종과 다시 부부 사이가 된다. 세종은 미실이 첩으로는 갈 수 없다 우기자 원비로 삼아버린다.
고대에는 (참으로 당연하지만) 청소년기란 게 없었다. 어린 시절이 지나면 바로 남자가 되거나 여자가 되는게 그 시절의 법칙이다. 대무신왕이 10세 이후에 직접 전쟁을 지휘하였단 기록이 있는데 당시의 문화와 사회적 성장이 요즘과 같지 않고 인간의 수명이 짧았음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내용이다. 사다함과 미실이 첫사랑을 알게 된 나이 역시 그만큼 어리고 풋풋했다. 그래서 더욱 서로를 잊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미실이 사다함을 전쟁터로 떠나보내며 부른 향가와 돌아온 사다함이 미실이 궁으로 갔음을 슬퍼하며 부른 향가가 전한다 하는데 그 내용이 애절하다. 사다함을 배신하고 간 미실에겐 어떤 뜻이 있었던 것일까? 알 수는 없지만 지소태후와 사도왕후의 관계가 그 답인듯하다. 왕가에게 사랑받아야할 대원신통 여인의 운명일 수도 있겠지만 '풍랑가(風浪歌)'와 '청조가(靑鳥歌)'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이렇듯 열렬한 사랑을 나누던 사다함과 미실도 대가야 정복과 세종전군과의 결혼으로 헤어지게 된다. 사다함이 몹시 상심했음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미실 이전에도 사다함이 여자에게 받은 상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어머니 '금진낭주'의 행실 때문이었다. 구리지와 금진 사이엔 토함, 새달, 사다함이라는 세 자녀가 있었는데 후에 설성과도 관계해 설원랑을 낳기도 했던 금진낭주는 남자를 몹시 밝히는 편이었다.
옥진궁주가 대원신통의 종(宗)으로 권력을 누렸음에 비해 동생 금진은 원화가 되려는 뜻 조차 이루기 힘들 정도로 핵심 세력에서는 벗어난 인물이었다. 금진이 구리지와 헤어져 궁에서 진흥왕을 잠시 모시다 무품인 설성을 계속 곁에 두려 하자 사다함은 그를 탐탁히 여기지 않는다. 금진은 사다함이 어려 전쟁에서 곤란할 것을 염려해 설성에게 따르게하고 아들은 전쟁을 승리한다. 풍월주가 된 사다함은 설원랑을 부제로 삼는다. 옥진의 후계자 미실이 금진의 아들들 사다함, 설원을 곁에 두게 된 것은 어느 일면 혈연의 결집 차원도 있으리라.
어머니를 몹시 사랑하던 사다함은 마음의 들지 않는 계부도 받아들이고, 아버지가 다른 동생도 부제로 삼는 등 어머니의 행실이 주변에 지적받아도 어머니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진 않았는데 미실과 헤어져 상심한 사다함에게 금진낭주는 결정타를 날린다. 바로 그의 무관랑과의 대형 스캔들이다. 금진이 불러 금진의 연인이 된 무관랑은 사다함이 알게 되자 그만 두려 하지만, 어머니인 금진은 무관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친구의 어머니를 거부하던 무관랑은 결국 월성해자에 떨여저 죽는다.
미실에게 배신당하고, 평생 복장을 태우던 어머니가 가장 절친한 친구와 바람이 나고, 친구는 그로 인해 목숨이 끊어지니 애통해하고 여위어 무관랑이 죽은 지 7일 만에 사다함은 죽고 만다. 나 때문에 아들이 죽는다며 슬퍼하던 금진을 보고 사다함은 '죽고 사는 것은 운명'이라며 '죽어서 저 세상에서 어머니의 은혜를 갚겠다'고 이야기한다. 여인들 등쌀에 마음 고생하던 남자 사다함은 그렇게 정인들을 하나둘 잃고, 끝까지 거친 소리 한번 하지 않고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은 것이다.
지난 포스트에서 썼던대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칠거지악'으로 며느리가 쫓겨나듯 왕의 사위들이 버려지고 세종이 투기하지 않고 미실에게 정절을 지키는 모습처럼 자유분방한 미실과 금진, 그리고 태후들과는 대조적으로 사다함은 자신의 순정을 바쳐 연인을 지킨다. MBC 드라마 선덕여왕 역시 그 부분을 강조하고 '사다함의 매화'를 드라마의 핵심 모티브로 삼을 예정인 듯하다.
신라시대의 문란한(?) 혹은 자유분방한 성관계와 화려한 문화에 놀라는 것은 가까운 조선 시대의 문화가 상대적으로 억압적이고 금기가 많았던 까닭인지 모른다. 그런 조선 시대 사람들의 입으론 차마 어머니의 바람기와 애인의 바람기 때문에 속병을 앓다 죽었다고는 민망해서 말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더더욱 사랑스러운 남성 친구의 죽음으로 그 속병이 폭발했다는 건 그들의 관점으로 묘사하기 힘든 내용이 아닌가 싶다.
MBC의 드라마 선덕여왕이 상대적으로 다른 사극에 비해 화랑세기에 입각한 관점을 취하고 있기에 애인이 많은 미실을 묘사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나 왕 중심의 후계 구도를 옹호하고(일개 잉첩으로 국정을 장악하고 있는 미실은 조선시대의 관점으로 보아 상대적으로 악의 축이다)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모계 사회를 묘사하기엔 많은 부분 부족하다. 아마도 드라마 역시 사다함과 미실의 순정을 강조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5세 풍월주의 지위에 있었다는 사다함은 대가야를 멸망시키고 그 전공으로 얻은 노비 300명을 양민으로 풀어 주고 농사를 짓게 했다. 아름다운 화랑만이 차지할 수 있다는 풍월주의 자리를 차지했으니 당연히 미모가 뛰어났을 것이고 대가야로 뛰어들 만큼 용맹했으니 군인으로서도 충성스럽고 최고였을 터이고 노비를 풀어준 것으로 보아 욕심이 적은 소박한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꽤 괜찮은 인격을 수양한 화랑이었을 것이다.
TV 드라마, MBC 선덕여왕에서도 이 사다함이란 인물을 놓치지 않았다. 꽤 많은 욕심으로 다양한 이야기 전개를 펼치는 선덕여왕은 미실이 과거에 사다함으로부터 받은 '무엇(사다함의 매화)' 때문에 기우제에 비를 내리게 하고 절대권력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고 설정했다(물론, 지금까지 말해온 대로 드라마의 설정 대부분은 기록과 어긋난다). 지금으로서는 그 '무엇'이 책력 - 초반에 덕만이 가지게 된 정광력(正光曆, 위나라 시대의 달력) - 이 아닐까 짐작되는데 천문 관측에 관심을 보였다는 시대상과 어울리는 설정이다.
연기는 처음이라는 애프터스쿨의 유이가 미실의 어린역을 맡고, 신인연기자였던 박재정이 사다함 역할을 맡았으나 어제는 잠깐 등장했다. 애틋한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미실이 권력을 잡는 동기가 되고 원인이 될 것인데 신인인 두 사람이 역할을 소화할 수 있을 것인지를 두고 많은 사람이 염려했다. 나무 아래에 선 미실은 정인인 사다함과 영원히 함께할 것을 약속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음을 한탄한다.
MBC 선덕여왕, 미실을 기다리는 사다함(박재정 분, 출처: MBC).
절대권력자 '미실'이 어린 시절 흠모하고 다정하게 지낸 남자로도 유명한, 명실공히 미실의 첫사랑 사다함은 모자랄 것이 없는 남자였지만 알고 보면 여복이 있었던 거 같지는 않다. 미실이 궁으로 들어가 세종 전군의 아내가 되었다 쫓겨나고 사다함과 사랑에 빠져 두 사람이 영원히 해로할 거 같았지만 세종전군의 상사병이 지독한 관계로 사다함이 전쟁에 나간 사이 미실은 세종과 다시 부부 사이가 된다. 세종은 미실이 첩으로는 갈 수 없다 우기자 원비로 삼아버린다.
고대에는 (참으로 당연하지만) 청소년기란 게 없었다. 어린 시절이 지나면 바로 남자가 되거나 여자가 되는게 그 시절의 법칙이다. 대무신왕이 10세 이후에 직접 전쟁을 지휘하였단 기록이 있는데 당시의 문화와 사회적 성장이 요즘과 같지 않고 인간의 수명이 짧았음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내용이다. 사다함과 미실이 첫사랑을 알게 된 나이 역시 그만큼 어리고 풋풋했다. 그래서 더욱 서로를 잊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미실이 사다함을 전쟁터로 떠나보내며 부른 향가와 돌아온 사다함이 미실이 궁으로 갔음을 슬퍼하며 부른 향가가 전한다 하는데 그 내용이 애절하다. 사다함을 배신하고 간 미실에겐 어떤 뜻이 있었던 것일까? 알 수는 없지만 지소태후와 사도왕후의 관계가 그 답인듯하다. 왕가에게 사랑받아야할 대원신통 여인의 운명일 수도 있겠지만 '풍랑가(風浪歌)'와 '청조가(靑鳥歌)'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이렇듯 열렬한 사랑을 나누던 사다함과 미실도 대가야 정복과 세종전군과의 결혼으로 헤어지게 된다. 사다함이 몹시 상심했음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미실 이전에도 사다함이 여자에게 받은 상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어머니 '금진낭주'의 행실 때문이었다. 구리지와 금진 사이엔 토함, 새달, 사다함이라는 세 자녀가 있었는데 후에 설성과도 관계해 설원랑을 낳기도 했던 금진낭주는 남자를 몹시 밝히는 편이었다.
옥진궁주가 대원신통의 종(宗)으로 권력을 누렸음에 비해 동생 금진은 원화가 되려는 뜻 조차 이루기 힘들 정도로 핵심 세력에서는 벗어난 인물이었다. 금진이 구리지와 헤어져 궁에서 진흥왕을 잠시 모시다 무품인 설성을 계속 곁에 두려 하자 사다함은 그를 탐탁히 여기지 않는다. 금진은 사다함이 어려 전쟁에서 곤란할 것을 염려해 설성에게 따르게하고 아들은 전쟁을 승리한다. 풍월주가 된 사다함은 설원랑을 부제로 삼는다. 옥진의 후계자 미실이 금진의 아들들 사다함, 설원을 곁에 두게 된 것은 어느 일면 혈연의 결집 차원도 있으리라.
MBC 선덕여왕, 사다함을 찾아온 어린 미실(유이 분, 출처: MBC).
어머니를 몹시 사랑하던 사다함은 마음의 들지 않는 계부도 받아들이고, 아버지가 다른 동생도 부제로 삼는 등 어머니의 행실이 주변에 지적받아도 어머니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진 않았는데 미실과 헤어져 상심한 사다함에게 금진낭주는 결정타를 날린다. 바로 그의 무관랑과의 대형 스캔들이다. 금진이 불러 금진의 연인이 된 무관랑은 사다함이 알게 되자 그만 두려 하지만, 어머니인 금진은 무관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친구의 어머니를 거부하던 무관랑은 결국 월성해자에 떨여저 죽는다.
미실에게 배신당하고, 평생 복장을 태우던 어머니가 가장 절친한 친구와 바람이 나고, 친구는 그로 인해 목숨이 끊어지니 애통해하고 여위어 무관랑이 죽은 지 7일 만에 사다함은 죽고 만다. 나 때문에 아들이 죽는다며 슬퍼하던 금진을 보고 사다함은 '죽고 사는 것은 운명'이라며 '죽어서 저 세상에서 어머니의 은혜를 갚겠다'고 이야기한다. 여인들 등쌀에 마음 고생하던 남자 사다함은 그렇게 정인들을 하나둘 잃고, 끝까지 거친 소리 한번 하지 않고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은 것이다.
지난 포스트에서 썼던대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칠거지악'으로 며느리가 쫓겨나듯 왕의 사위들이 버려지고 세종이 투기하지 않고 미실에게 정절을 지키는 모습처럼 자유분방한 미실과 금진, 그리고 태후들과는 대조적으로 사다함은 자신의 순정을 바쳐 연인을 지킨다. MBC 드라마 선덕여왕 역시 그 부분을 강조하고 '사다함의 매화'를 드라마의 핵심 모티브로 삼을 예정인 듯하다.
신라시대의 문란한(?) 혹은 자유분방한 성관계와 화려한 문화에 놀라는 것은 가까운 조선 시대의 문화가 상대적으로 억압적이고 금기가 많았던 까닭인지 모른다. 그런 조선 시대 사람들의 입으론 차마 어머니의 바람기와 애인의 바람기 때문에 속병을 앓다 죽었다고는 민망해서 말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더더욱 사랑스러운 남성 친구의 죽음으로 그 속병이 폭발했다는 건 그들의 관점으로 묘사하기 힘든 내용이 아닌가 싶다.
MBC의 드라마 선덕여왕이 상대적으로 다른 사극에 비해 화랑세기에 입각한 관점을 취하고 있기에 애인이 많은 미실을 묘사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나 왕 중심의 후계 구도를 옹호하고(일개 잉첩으로 국정을 장악하고 있는 미실은 조선시대의 관점으로 보아 상대적으로 악의 축이다)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모계 사회를 묘사하기엔 많은 부분 부족하다. 아마도 드라마 역시 사다함과 미실의 순정을 강조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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