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짝패

짝패, 그래 모두 죽어버린 것이구나

Shain 2011. 3. 1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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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세계적인 굵직한 이슈가 많아 뉴스를 보고 있자면 가슴이 답답하단 생각이 듭니다. 헤아릴 수 없는 인명을 앗아간 지진으로 일본의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간 것도 갑갑한데 그를 두고 오가는 악플이나 잔인한 말들은 왜 같은 사람이 이리 갈등해야하는지 고민하게 합니다. 그러나 일본의 죽음은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자연재해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완전히 막을 수 없고 어찌할 수도 없는 서글픈 죽음입니다.

반면 리비아에서 카다피에게 학살된 시민들의 죽음은 말 그대로 인간에 의해 저질러진 일입니다. 아랍 민주화의 열기를 타고 그들의 독재 정권이 타파되고 새로운 세상이 올까 했지만 카다피는 학살로 시민들의 기세를 꺾어버렸습니다. 시민군에게 총격을 거부한 군인들이 화형당했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가 진실인지도 확실치 않은 시점에 리비아의 시민들은 다시 숨죽이는 세월을 살아야할 지도 모릅니다.

민란의 중심에 있었지만 이제는 시류에 섞여 들어간 아이들.


드라마 '짝패'의 당차고 똑똑하던 아역들, 특히 정의롭고 반듯한 소년이었던 천둥(천정명)이 왜 동녀(한지혜) 아래서 일하는 장사치가 되었을까. 죽은 줄 알았던 강포수(권오중)의 등장과 함께 리비아의 죽음을 생각해 보니 그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조선의 민란은 단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관청의 화승총을 꺼내 백성을 겨누고 안핵사{按覈使)[각주:1]를 파견하여 현장의 소란을 수습할 지언정 백성들의 소망이 이루어진 적은 없습니다.

분연히 일어섰던 백성들을 몰려드는 관군을 피해 뿔뿔이 흩어지고 목숨을 잃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자신의 거주지를 떠나야했을 것입니다. 그들 중 일부는 강포수처럼 죽은 듯이 사라져가야 했을 것입니다. 현감(김명수)의 횡포에 맞서 모두 함께 일어선 민란이니 민란의 구심점도 목적도 뚜렷치 않은 그들이 달리 할 수 있는 일 따윈 없습니다. 민란으로 사그라든 목숨을 마음에 묻고 다른 곳에 섞이고 뿌리내려 예전에 그랬던대로 다시 열심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래적(我來賊)에 동참하는 천둥?

세계엔 여러가지 이유로 민란, 혁명이 일어났던 나라들은 많습니다. 유혈 사태가 벌어진 아랍권 국가들과 리비아도 그렇지만 가까운 중국에도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항의 시위로 끝나지 않고 시민들의 목숨이 희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져 보면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억울함을 호소한다는 것이 그리 잘못된 일도 아닌데 왜 죽어야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지만 유사 이래 그런 일이 없어진 적이 없습니다.

관아를 가득 메우고 현감의 폭정에 항의해야했던 그 시절, 천둥은 그때의 심정을 모두 잊은 것이 아니지만 부유한 상인으로 거듭난 지금 강포수의 아래적에 동참할 이유를 찾기 힘들 것입니다. 자신은 양반 족보를 사서 양반 사회에 편입할 수도 있고 동녀와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꿈꿔볼 수도 있습니다. 도갑(임현성)의 말대로 도둑질을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이로운 도둑질을 하고 싶다는 그 말에 동의하지만 끝까지 남아 관군과 대적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기는 힘듭니다.

사회가 썩어 부정부패가 일상이 될 때 공포교(공형진)의 말대로 어쩔 수 없이 탁류에 부응하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나날이 청류는 사라져 천둥처럼 정직한 상인에겐 척(수치)를 속이려는 장사꾼이 늘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직 천둥에겐 그들과 맞서 홀로 설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민란의 뜻을 함께 했던 강포수가 반갑지만 도갑처럼 착하게 남들을 위해 의적이 되겠다는 마음을 먹기 힘든 위치에 있는게 천둥입니다.


10년의 세월은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살기 힘들어진 거지패들은 어딘가로 사라져버렸고 거지패의 그 누구보다 꾀죄죄한 몰골로 끈질기게 구걸을 하던 진득(임성규)는 깡패인 왕두령패의 부두목입니다. 천둥과 함께 얻어온 팥죽을 한숟가락씩 나눠먹던 그 순진한 소년이 이젠 다른 사람들을 위협하는 그런 인물이 되었습니다. 공포교의 시류라는 건 그런 것입니다.

포도부장 귀동(이상윤)은 포도대장(심양홍)에게도 종사관에게도 공포교에게도 실망합니다. 정의를 구현하고 싶은 자신의 뜻은 세도가에서 세상 모르고 자란 철부지의 투정처럼 들릴 뿐입니다. 절개와 정의가 살아 있는 청류의 외침은 어디에서도 호응을 받지 못합니다. 천둥처럼 착하게 자란 아이는 금방 이 세상에서 서글픈 목숨을 구할 방법은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의적의 칼을 들 수 밖에 없겠지요.


무공해 드라마의 명성은 이어간다

드라마 '짝패'에서 보여주는 이야기들은 절대 자극적이지 않습니다. 담담하고 차분한 전개가 김운경 작가 드라마의 매력입니다. 입바른 소리,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를 보여줄 지언정 사람들의 시선을 찌푸릴 만한 이야기보다 보고 있으면 잔잔한 웃음이 나는 그런 장면을 보여줍니다. 천둥이 눈물짓는 장면이나 민중들이 봉기하는 장면에선 순수한 울분이 솟아오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따져보면 진짜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는 아무런 장식이 필요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MBC 로열패밀리'의 격하고 박진감 넘치는 전개도 마음에 들고 '욕망의 불꽃'에서 보여준 남다른 윤나영의 캐릭터도 시선을 끌지만 요즘 우리들에게 진정 필요한 이야기는 바로 이 서민들의 꾸밈없는 이야기입니다. 천둥 역의 천정명이 보여주는 어눌한 발음도 동녀의 한지혜가 보여주는 미숙한 느낌도 드라마 전체를 두고 보자면 그닥 큰 부분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큰년(서이숙)과 쇠돌(정인기)만 봐도 저절로 웃는 얼굴이 되는데 어쩌겠습니까.


왕두령패가 도갑의 뒤를 쫓아 아래적의 정체가 밝혀질 위기에 처합니다. 도둑질이라도 사람들을 위해 하고 싶다는 착한 아이의 마음을 모르지 않는 천둥이 도갑을 구하기 위해 복면을 씁니다. 착한 아기장수의 운명을 타고난 천둥은 민란으로 죽어간 사람들의 소원 그 무게를 짊어질 준비가 되지 않았는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몇번을 더 시청자들을 실망시킬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귀동은 막순(윤유선)을 찾아가 어릴 적 자신의 목에 붉은 점이 있었냐고 묻지만 막순은 잡아뗍니다. 유모에게 심상치 않은 비밀이 있다고 느낀 귀동은 캐묻지 않지만 수사를 담당하는 예리한 포도부장답게 천둥과 자신 사이에 숨겨진 비밀을 제일 먼저 눈치챌 인물이 될 듯합니다. 금옥, 동녀, 달이(서현진)의 눈길이 모두 천둥에게 쏠려 오늘 따라 귀동이 더욱 외롭게 보이는군요.


  1. 조선 후기에 지방에 발생한 사건을 조사하고 수습하기 위해 파견된 관직으로 민란 등이 일어나면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는 일 등을 맡습니다. 철종, 고종 시기에 자주 파견되었습니다. 관직을 대신 맡기도 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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