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짝패

짝패, 천둥이 미련없이 아래적이 된 이유

Shain 2011. 3. 22.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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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짝패'의 흥겨운 조연 배우들이 좋은 이유는 조선 시대의 민란은 단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도둑질이 손에 익은 거지패 꼭지도 소매치기로 밥멀어먹던 꼭지의 첩도 '쥐뿔도 모르지만' 세상살이가 팍팍하고 밥 빌어먹기도 힘들다는 것 정도는 깨닫고 있습니다. 아무 각오도 생각도 없는 몰락한 양반으로 투전판을 전전하는 상양아치 현감(김명수)도 자신의 초라한 몰골을 깨닫고 있습니다. 강포수(권오중)가 그들 보다 조금 더 빨리 '호민'이 되었을 뿐 모두들 때가 오면 항민의 분노에 동의하게 될 것입니다.

한번도 성공하지 못한 민란의 결과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부패한 세상을 바꾸려다 실패한 젊은이들은 그 댓가로 목숨을 걸어야할 지 모릅니다. 껍데기 만 남은 조선 후기 신분제의 허울 속에서 양반도 천민도 멍들어가고 있는데 세도가들은 그 썩어빠진 나라에 어찌 그리 미련이 많았는지 개혁을 원하는 백성들을 죽이고 또 죽였습니다. 녹두 장군 전봉준이 고문을 당하다 사형당할 때 울지 않은 백성은 없었습니다.


드라마 짝패의 OST가 얼마나 구성지고 구슬픈 가사인지 들을수록 느끼게 됩니다. 구름 만큼이나 바다 만큼이나 멀고 멀어 닿을 수 없는 무엇, 짧은 인생 동안 그리워하고 동경하다 다음 생을 기약한다[각주:1]는 그 가사, 살아 있는 동안은 그리워만 했고 다음 생에나 볼 수 있는 그것이 대체 무엇일까요. 이루지 못한 사랑인지 소망인지 그것도 아니면 이상인지 하여튼 동경의 대상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짝패의 주인공들은 똑똑하지만 착하고 이유없이 당하는 사람들을 버려두지 못하는 아이들이니다. 아기장수의 운명을 지고 같은 날 태어난 두 아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도갑(임현성)과 장꼭지(이문식) 부부를 도우려는 천둥(천정명)에게 세상물정을 모른다며 동녀(한지혜)가 나무라지만 착한 아이 천둥은 자기가 나갈지언정 부부를 버리지는 못 합니다. 얹혀 살면서 도둑질하는 장꼭지 부부를 감당할 수 없지만 그래도 천둥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거지였을 때부터 타고난 선비였다는 천둥은 세상을 향해 거칠게 소리지르는 일이 흔치 않은 남자입니다. 능청맞게 포도청의 상관들에게 덤벼드는 귀동(이상윤)은 생각이 깊고 배려할 줄 아는 듬직한 남자입니다. 속을 알 수 없는 동녀(한지혜)는 냉정한 장사꾼인 듯 과거를 외면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 아버지에 대한 원한을 잊지 않았습니다. 누구 보다 뛰어난 갖신 만드는 재주를 가진 달이(서현진)는 자신이 해야할 일을 금방 깨닫는 영리한 여자입니다.



아래적은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을까

드라마 짝패의 이야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천둥이 언제 의적이 될 마음을 먹고 활약하게 되느냐와 출생의 비밀을 모두가 알게되는 건 언제이냐 그리고 네 사람의 얽히고 섥힌 사랑이야기가 그것입니다. 동생처럼 아끼던 도갑의 부탁으로 강포수를 만나고 그들의 밀수입에 끼어든 천둥은 지금 양반을 사서 시류에 편승할 수도 있고 썩어빠진 세상을 일갈할 아래적(我來賊)의 일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착한 천둥이 타인들의 어려움을 도와주다 그들에게 가담하게 될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 아래적의 패거리가 어디까지 섞여 있느냐 하는 부분입니다. 객주와 시전을 호령하는 왈자패 왕두령(이기영)네와 어울려 밀수를 일삼는 공포교(공형진) 옆의 임포졸(김용희)은 분명 강포수와 아래적들을 보호해주는 내부첩자인듯 합니다. 공포교와 왕두령이 빈틈없이 도둑맞은 밀수품목을 단속해도 강포수는 유유히 검문을 빠져나갑니다. 포도청의 일거수 일투적을 정확히 알고 있기에 그렇게 귀신같이 물건을 가져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권포수를 아는 사람이라 아는척하는 임포졸


천둥의 어릴 적 친구이자 아래적의 부두목인 진득(임성규) 역시 수상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진득은 같이 거지패의 일원으로 구걸하러 다니던 천둥이 남다른 아이란 걸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도갑을 구하려고 나타난 복면의 사내가 천둥과 비슷하다는 걸 제일 먼저 알아볼만한 인물이 진득이지만 그는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비록 깡패의 부두목일지라도 천둥에 대한 의리만은 포기하지 않은 진득, 그냥 모른체 해준 것인지 아래적의 일원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무슨 생각으로 김진사와 친하게 지내며 귀동과 천둥의 마음을 떠보는 지 알 수 없지만 동녀는 천둥이 민란의 패거리들과 얽히는 걸 탐탁치 않게 여기는 듯 합니다. 착한 성품 때문에 이리저리 도우려 휘말리면 처신이 어려워지고 목숨이 위험해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겠지요. 동녀는 평소 양반 사회의 한계, 예전의 신분을 자신의 가치로 여긴다는 투의 발언을 자주 해왔습니다. 영리한 장사치로 누구와도 손을 잡을 수 있는 자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전혀 의외의 아래적인 도갑과 왕두령패의 진득


강포수의 뒷배를 봐주는 인물의 정체, 동녀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아직 배제할 수 없고(천둥은 일단 손을 떼겠다 선언했으니 빼야 할테지만) 다른 극중 인물들 중 하나가 은신처를 제공하거나 뒷돈을 대주는 역할을 할 지도 모릅니다. 천둥과 강포수가 연락하기 전에 그동안 훔쳤던 재물을 아래적들은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동학접주로 활약하던 강포수는 양반들과도 교류하는 발넓은 친분을 자랑하던 사람입니다.

물론 민란 이후 뿔뿔이 흩어졌던 15살 어린아이들이 숨겨진 의적패와 연결되기 쉽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단순히 그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예전의 순수한 동기 따위 이미 잊어버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왈자패로 거듭난 진득처럼 시류에 몸을 맡기고 있는 지 모릅니다. 이제는 귀동이 자신의 숨겨진 출생의 비밀을 알아버렸는데 이 아이들 앞에 놓여진 인생은 그닥 순탄치만은 않습니다.


동녀의 마음이 귀동을 향하고

막순(윤유선)에게 유모가 내 어머니냐고 묻는 귀동은 날카롭지만 단호합니다. 그는 직감적으로 자신과 천둥의 출생이 뒤바뀌었음을 알아채고 방황하기 시작합니다. 재주가 뛰어나지만 자신 보다 처지가 못했던 천둥을 매제로 삼아 곁에 두고자 했건만 금옥(이설아)에게 알맞은 짝으로 생각해왔건만 둘이 이복남매인 걸 알아버렸으니 일단 혼인을 막고 봐야 한다 맘먹습니다. 남몰래 남들을 배려하는 귀동의 성격답게 마음이 아픈데도 남들 먼저 챙기고 봅니다.

귀동이나 천둥이나 천성적으로 나쁜 마음을 먹기 힘든 타입의 아이들입니다. 모든 걸 바로잡아야한다고 믿는 귀동이 막순의 악행을 아버지 김재익(최종환)에게 고한다면 평지풍파의 상황이 되고 말 것입니다. 친어머니인 막순의 목숨 마저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입니다. 공포교에게 어떻게 탁류에 몸을 담글 수 있냐고 다그치던 귀동이 이 일을 계기로 세상에는 바로 잡기 보다 덮을 수 밖에 없는 일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귀동의 인생에 전환기가 오게 될 거란 뜻입니다.

막순과 귀동, 동녀에 의해 또 한번 휘둘리게 될 천둥의 인생


철부지 시절 자신에게 연서를 보내는 귀동을 내쳤던 동녀가 출생의 비밀로 인해 고민하던 귀동에게 숨겨온 마음을 고백합니다. 원수 집안인 김진사의 아들이라 멀리할 것만 같더니 동녀가 귀동을 선택한 것은 의외이지만 그녀의 선택으로 인해 천둥은 이제 자신이 뜻을 두었던 아래적을 향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귀동이 아무리 출생의 비밀 때문에 고민하고 천둥에 대한 미안함으로 힘들어한다해도 평생을 좋아한 동녀를 쉽게 거절할 수 없겠지요.

장사치로 동녀의 밑에서 일하던 것은 그녀를 향한 마음이고 스승을 위한 의리였는데 이제 더 이상 그럴 이유가 없어진데다 가장 절친한 짝패의 연인을 뺐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두 사람은 이렇게 잠시 헤어지게 될 것 같습니다. 민란을 봉기할 때는 세상을 바꾸고 싶단 순수한 마음이었고 마음 한구석에선 그 마음이 변한게 없지만 의적이 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역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인 듯하네요.


  1. 구름발치 아라만치 닿을 수 없이 애 닳아서 짧은인생 흐놀다 다음생 에 기약하오니 꽃보라가 흩날리는 봄이오면 만나려나 짧은인생 흐놀다 다음생에 온새미로 만나지려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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