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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 개그 캐릭터 여석개의 웃음 폭발 부활 장면

Shain 2012. 2. 5.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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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드라마 '광개토태왕'도 정통사극이기 보단 퓨전사극이고 꼼꼼히 사극이냐 창작극이냐를 따져봤을 땐 창작극에 가깝습니다. MBC '태왕사신기(2007)'처럼 판타지는 아니지만 사서에 적힌 내용이 워낙 적다 보니 대부분의 캐릭터와 내용이 작가의 상상력으로 구현되었죠. 책사 역으로 등장한 괴짜 하무지(윤승원)는 원래 덕흥리 고분의 주인인 '유주자사 진'이지만 아시다시피 유주자사 진의 확실한 정체나 업적은 미스터리입니다. 마찬가지로 삼국사기에 단 한줄 적힌 고무(김진태)도 실존인물이지만 그의 행적은 모두 허구입니다.

광개토태왕 담덕(이태곤)의 아내 약연(이인혜)도 사서에 적히지도 않은 담덕의 형 담망(정태우), 여동생 담주(조안), 그리고 담덕의 주변을 채운 무사들은 아예 실존인물도 아닌 허구의 인물들이다 보니 가끔 드라마 속의 묘사나 인물들은 사서에 있지 않노라 상기시켜줄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에 정통하신 분들 조차 하무지가 실제 있던 사람이냐며 검색을 하곤 하고 국상 개연수(최동준)와 후연 고운(김성수)의 관계를 사실인 양 착각하기도 하니 말입니다.

 

무갑에게 속아 군령을 어긴 여석개 고운은 그의 손으로 잡았지만.

 

그러나, 이런 창작 인물들 모두에게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아닙니다. 개중에는 무식하고 막무가내라 볼 때 마다 배꼽잡고 웃게 되는 여석개(방형주)같은 캐릭터도 있습니다. 하무지가 광개토태왕에게 가지 않겠다며 생고집을 부릴 때 장대에 하무지를 묶어 궁궐까지 끌고간 인물이 여석개입니다. 백제 아신왕(박정철)이 관미성주이던 시절 논리와 원칙을 내세워 포로 교환 조건을 협상할 때도 여석개의 감정을 앞세운 무논리를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무식이 용감, 저돌적인 행동력이 여석개의 장점(?)입니다.

본래 여석개, 황회(김명수), 돌비수(김정현) 등은 담덕이 노예시장에 팔려갔을 때 만난 사람들입니다. 잔인한 후연 황자 모용희(조인표), 노예장수 무갑(유종근), 말갈 대족장 설도안(김규철)도 그때 만난 인연들이죠. 어려울 때 만난 사이인 만큼 혈연 보다 굳은 의리로 뭉쳤지만 여석개는 처음 담덕과 마주쳤을 땐 저 하나 살자고 노예들을 배신할 만큼 신뢰가 가지 않는 캐릭터였습니다. 지금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담덕과 천군들을 배신하지 않는, 절대 충성 여석개지만 안타깝게 정치에는 능숙치 못한 바보라는게 약점입니다.



 

왕의 명령이라면 사약도 달게 받겠다는 여석개

 

여석개는 충직한 만큼 아둔한 타입이기에 종종 광개토태왕에게도 속습니다. 고구려 전역에 널리 소문낼 일이 있으면 담덕은 어김없이 여석개에게 털어놓습니다. 백제와 후연의 공격을 동시에 받던 고구려군이 요동성에서 고전하는 고무 장군을 지원하러 간다는 '거짓 소문'을 낼 때도 여석개를 이용했습니다. 백제의 스파이들은 마을 술집에서 여석개가 떠드는 소리를 듣고 아신에게 정보를 전했고 아신왕은 그 소식만 믿고 관미성 총공격을 감행합니다. 후연은 반대로 요동성에 곧 고구려군이 닥친다는 생각에 흔들리게 됩니다.

황회에게 열심히 글자를 배워도 여전히 까막눈이라 부하들이 서찰을 읽어줘야하고 각종 정보도 제일 늦게 전달받는 여석개. 자신의 군주 조차 그 똑똑함을 믿지 못하는 여석개인데 그 충성심 하나는 절대 의심치 않는다니 어찌 보면 명군을 만나지 못하면 도무지 쓸모가 없는 장수이기도 합니다. 지난주에 여석개는 어떻게든 고운을 잡고 고구려의 정보를 빼돌린 고구려 신하를 뒤쫓는다며 독단적으로 무갑을 따라 움직이고 그의 실책 때문에 고구려는 고급 군사 정보 일부를 후연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여석개와 담덕은 노예시장에서 전투사처럼 개싸움을 하며 만난 사이.

 

극중 고구려 출신이 아닌 것으료 묘사되는 군사 하무지는 책략에 능한 타입이면서 원칙을 추구하는 냉정한 사람입니다. 그의 정치철학은 한비자를 따른듯하면서도 법을 어긴자는 모두 참하라 간하고 군사작전을 세울 때도 사소한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반응할 때는 마치 법가가 고구려에 나타난 건 아닐까 느껴집니다. 담덕은 하무지를 군사로 채용한 당사자면서도 그런 하무지에게 냉철함과 잔인함은 구분하라며 경고의 말을 했을 정도입니다. 관미성을 공격하면서 사갈현(김철기) 등이 죽어야했던 일을 뼈아프게 생각하는 담덕이기 때문입니다.

여석개 부장의 죄를 두고 군부와 문신이 대립할 때 문신들은 군기를 세우라며 여석개의 참수를 주장했고 무신들은 목숨걸고 전쟁에 앞장서는 장수들의 어려움과 여석개의 전공을 알아달라 청원합니다. 군사 하무지가 그들의 주장에 '고구려군의 군기를 잡아야'한다며 확실한 선을 긋습니다. 아무리 여석개가 어리석고 단순하고 저돌적이란 걸 알고 있다쳐도 군율을 어긴 사실 만은 분명하기에 그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합니다.

 

 

광개토태왕에게도 여석개의 죄는 참으로 골치덩어리입니다. 노예시장에서부터 함께한 그의 본심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함께 전장을 누빈 동료들도 여석개의 성정을 알기에 크고 작은 잘못들을 모두 감싸줄 수 있었지만 정치에 발을 담그고 국가의 중신이 된 이상 그의 죄는 법대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담덕은 직접 사약 그릇을 들고 옥사로 찾아가 여석개에게 약을 내립니다. 정말 담덕이 자신의 충신 여석개를 직접 처벌할 것인가. 여석개까지 달게 벌을 받겠다니 절체절명의 순간입니다.

여석개가 담덕이 주는 약을 받아마시는 순간까지도 광개토태왕이 나라를 위해 절친한 친구이자 충신을 죽이는 일까지 하나 반신반의했습니다. 담덕이 너무도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살리느냐 분란을 일으키지 말라 애원하는 여석개를 위로했기 때문입니다. 이 드라마의 유일한 코믹 캐릭터, 개그 담당을 맡은 이 인물이 이렇게 가는구나 싶었습니다. 여석개는 비장하게 '대왕폐하 만수무강 하옵소서'라며 유언까지 남겼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모든 장면을 개그컷으로 만드는 유일한 인물이 사라지다니 아 정말 안타까운 순간입니다.

 

 

여석개를 둘러싼 드라마의 분위기도 자못 진지했습니다. 고운은 다시 광개토태왕을 속여 후연으로 돌아가고 후연은 모용보(임호)와 모용희의 경쟁으로 여전히 시끄럽습니다. 고창과 담덕은 고운에게 도광(박승호)을 붙여 감시하고 고운의 계략에 말갈이 위험에 처하지만 고구려는 오히려 말갈을 공격한 비려에 쳐들어가는 등 전체적으로 쉴새없이 역사가 전개되는 그 순간에 여석개의 죽음을 과연 거짓으로 처리할까 싶었습니다. 광개토태왕이 또다른 희생을 감수하는구나 싶었지요.

그랬던 긴장감이 천군 부장과 여석개의 부장이 여석개의 뺨을 내리치는 순간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정신을 차린 여석개는 대왕폐하가 내린 술이 어쩐지 달더라며 헛소리도 합니다. 결국 담덕의 계책으로 드라마 '광개토태왕'의 유일한 개그 캐릭터는 목숨을 건졌습니다. 허술한 장면처리나 어설픈 전투 장면 말고는 딱히 웃을 일이 없는 드라마가 이 드라마인데 여석개만 등장하면 웃음이 떠나질 않습니다. 무서운 하무지를 우습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캐릭터 여석개. 그의 부활 장면이 재미있었으니 다시 공을 세우고 국내성에 등장할 때도 만만치 않게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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