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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오면, 치매 할아버지 서대사가 건낸 녹슨 칼 낚시냐 복수냐

Shain 2012. 2. 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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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방영된 '내일이 오면'은 신경쓰이는 내용이 참 많더군요. 남을 업신여기며 살다 나락으로 떨어진 손정인(고두심)은 치매 노인 서대사(남일우)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재기를 꿈꾸고 서인호(최종환) 교수의 딸 서유진(박세영)과 친해진 일봉(이규한)은 점점 더 유진에게 마음이 기울어집니다. 반면 일봉과 사고를 쳤던 보쌈집 종업원 현숙(서유정)은 재취 자리에 시집가라는 사장님 김보배(이혜숙)의 권유 때문에 서글픈 마음을 감추지 못합니다. 일봉은 그 문제로 이귀남(임현식), 보배에게 자기 딸이면 그런 자리를 권하겠냐고 화를 내죠.

그러고 보면 드라마 내용 중엔 처지가 다른 여성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서인호의 딸 유진도 그렇지만, 건설기업의 딸로 명품만 즐기며 살아온 윤은채(서우)는 돈무서운 줄 모르고 살아 가끔씩 자존심 굽히고 급전을 빌려야하는 영균(하석진)을 이해못합니다. 서민이긴 하지만 막내딸 이지미(유리아)도 자기 밖에 모르는 귀한 딸로 자랐고 손정인은 사업하느냐 늘 자신을 대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살아왔습니다. 남몰래 '첩살이'를 하던 김순정(김혜선)은 비정상적이긴 하지만 사모님 대접을 받고 있죠.

 

사장님 부부가 이혼남을 소개해주자 속상한 현숙.

 

보쌈집 종업원인 현숙, 오빠가 이혼하며 맡긴 조카 다정(김소연)을 데리고 문간방에 얹혀 사는 그녀는 가족처럼 챙겨주는 귀남의 가족 덕에 착실하게 돈도 모았고 조카도 잘 건사할 수 있었습니다. 큰 아들 진규(박수영)를 비롯한 형제들은 현숙을 누나처럼 친구처럼 잘 챙겨주며 지미도 현숙을 친언니처럼 대합니다. 33세가 되도록 일 밖에 몰랐고 성실하게 자기 처지에서 최선을 다했는데 세상 사람들은 생각처럼 그녀를 귀하게 여겨주지 않나 봅니다. 조카 딸린 노처녀이니까 당연히 공무원 이혼남이 짝으로 적합하다 생각하는 사장님 부부가 그렇게 서운할 수 없습니다.

재취 자리에 선을 보게 하냐며 화를 낸 일봉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진이 키스해보고 싶다며 조를 땐 유리그릇 다루듯 망설이고 조심조심 하더니 현숙과는 술먹고 자연스레 사고를 쳤습니다. 남의 것을 탐내며 허황된 꿈을 꾸는 순정 보다 세상 물정 모르는 은채나 유진 보다 철없는 지미 보다 야무지고 아름다운 가치관을 가진 현숙인데 왜 그런 그녀를 아무도 귀하게 여겨주지 않는 걸까요. 세상사가 늘 그렇게 공평하지 만은 않은가 봅니다.


 

'오기(吳起)'의 진짜 뜻을 알려준 서대사

 

은채는 영균의 회사에 인턴으로 취업하고 성룡(인교진, 이 분이 선덕여왕에 나오던 도이성이더군요)은 다정이랑 지하철을 타고 인천에 다녀오다 소동이 벌어지고 윤원섭(길용우)과 윤원자(이경진)이 순정의 많은 돈을 의심합니다. 윤원건설의 직원들도 순정의 철면피같은 행동과 수상한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순정의 간사한 혀에 휘말려 그녀에게 동조했던 사람들이 서서히 순정의 정체를 눈치채게 된 것입니다. 반면 많은 일을 겪고 의기소침했던 손정인은 서대사와 함께 지내는 동안 자신의 옛일을 돌이켜 보게 됩니다.

서대사의 말대로 정인은 그랬습니다. 남에게 속은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속았고 모든 것을 잃은게 아니라 딸과 자기 자신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사회경험이 많은 서대사는 한눈에 정인이 사업하던 여자란 걸 알아보고 정인에게 '오기(吳起)'에 대한 책을 숙제라며 읽어보게 합니다. 많은 회사에 고문으로 일했다는 서대사는 한눈에 정인의 문제점이 뭐였는지 간파한 것입니다. 치매 증세를 보이며 정인을 정임이라 부르곤 하던 이 노인네는 가끔 제정신이 돌아와 입바른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윤원자의 의심에도 의뭉스럽게 속여넘기는 김순정.

 

'내일이 오면'의 초반부는 굶고 자라 돈밖에 모르고 오만하며 남에게 함부로하는 손정인, 사업한다는 이유로 동료가 아닌 적을 만드는 그녀의 몰락을 중점적으로 그렸다면 후반부는 그녀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룰 것같습니다. 그녀에게는 왜 자신이 실패했는지 깨달아야하는 숙제가 있습니다. 간병인으로 일하는 동안 자신이 얼마나 남을 함부로 대했는지 깨달았지만 서대사는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서대사가 읽으라 권해준 '오기'는 '오기부리다'의 유래가 된 인물의 이름입니다. 오기도 병서를 썼지만 사마천도 '오기열전'을 기술했습니다.

전국시대 위나라 사람인 오기는 병법에 능한데다 병사를 잘 부리고 병사들과 똑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곳에서 잠을 잤다고 합니다. 대신 정치적 능력은 없었는지 부당한 권력을 누리는 귀족들을 제거하고 각종 개혁을 실시하면서 정적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또 집요한 성격으로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도에 넘는 독한 행동을 하곤 했습니다. 노나라에 등용되기 위해 제나라 출신 아내를 죽이기도 했고 자신을 비웃는 마을 사람 30명을 죽이고 달아나기도 했다고 하죠. 한마디로 기본적인 인재의 자질을 갖춘 사람이지만 뭔가 한가지 부족했던 인물입니다.

손정인에게 '오기'를 읽으라 권해주는 치매 노인 서대사.

 

극중 손정인이 마치 이 '오기'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자신이 굶지 않기 위해 타인들을 업신여겼고 가족들과 자기 사람들에게는 뭐든지 다 해줬지만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만나는 타인들에게는 약간의 인정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서대사가 그런 그녀를 시험하듯 '녹슨 칼'을 주겠다며 꽤 많은 자본이 담긴 통장을 건냅니다. '오기'라는 책을 읽으라 한 것이 얼마전인데 이렇게 많은 돈을 쥐어주다니 손정인을 버린 사람들에게 복수라도 하라는 뜻일까요 아니면 그 단계를 넘어서란 뜻일까요.

손녀 유진의 말대로 할아버지 서대사는 돈으로 사람을 시험해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극중 서인호는 디자이너면서도 영균이 일하는 주방가구 회사에 투자하는 대주주이고 윤원섭이 월급 사장으로 일하는 윤손건설의 리조트 사업에도 투자하고 있습니다. 서대사나 서인호나 돈에 그리 구애받는 사람들이 아니고 이미 한번 부도를 겪은 윤원섭 쯤이야 얼마든지 무너트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손정인이 그들에 기대어 속시원한 복수를 하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내일이 오면'은 최근 자신의 비밀을 감추기 위해 슬립 차림으로 윤원섭을 유혹하는 김순정 때문에 비난을 받았습니다. 정인의 모든 걸 빼앗기 위해 없는 죄까지 덮어씌우고 은채까지 괴롭히는 김순정이 그에 응당한 벌을 받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철면피에다 욕심많은 모사꾼 김순정, 이 정도로 과한 비난이 가해지는 캐릭터여야 '악인'으로 평가받던 손정인의 복수가 정당해지는 것이겠죠. 그런데 인생의 모든 이치를 달관한듯한 서대사는 손정인이 복수하고 싶어하는 그 마음에 동조해줄까요 아니면 그 마음까지 버려야 다시 설 수 있다고 할까요.

서인호의 파트너로 원섭과 순정 앞에 나타나는 손정인은 보기만 해도 속이 시원합니다. 원섭과 순정이 경악하는 모습도 '깨소금'입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독해서 스스로 적을 만드는 성격이었던 손정인이 복수에 성공하면 다시 같은 불행이 반복될 지도 모릅니다. 과연 서대사가 건내준 '녹슨 칼' 즉 천천히 갈고 닦아 자르면 언젠간 무기가 되지만 섣불리 쓰다간 자신을 베게 하는 '녹슨 칼'을 잘 다루게 될까요. 아니면 치매 할아버지 서대사는 통장만 건내주고 정인의 성장을 시험하는 걸까요. 드디어 이야기에 속도가 붙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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