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드라마를 보다/튜더스(The Tudors)

사극의 변신은 무죄 또는 유죄 - 장희빈에서 The Tudors까지

Shain 2007. 10. 10.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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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를 가릴 것 없이 역사에서 소재를 가져온 드라마가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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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왕과나 홈페이지. 인수대비

작년 방송된 주몽이라는 드라마는 파격적인 사극으로 몇번 도마에 오르내린 적이 있다. 역사 왜곡 논란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현대화된 부여의 왕권이라던지 중국의 의상을 연상시키는 세련된 의상, 또는 전해내려오는 전설과 다른 설정 등등. 거기다 원시 화약의 사용, 전투식량 감자와 20명 전투신으로 수모를 겪은 적도 있는 '화제의 드라마'였다.

최근 한국에서 방영되는 왕과나 역시 놀라운 구석이 있는데 중국을 연상시킬 만큼 화려한 복식이나 장신구들이 제법 시선을 끌고 있었다. 처선과 폐비 윤씨의 러브라인이라는 파격도 대단하다. 특히 황금빛, 핑크빛(절대 분홍색이 아니다!)이 도는 화려한 가채 장식물들은 기존 사극 복식을 벗어나 있음을 알려준다.

색색의 옷으로 단장한 사극의 출연진들이 우리에게 흔한 일이지만, 엄밀히 조선은 색의 제약이 심했던 사회인 것을 알고 있다. 왕의 용포가 노란빛이 될 수 없음은 잘 알고 있는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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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왕과나 홈페이지. 정희왕후.

대왕대비, 대비, 중전이나 후궁의 장신구와 옷의 색, 금박에도 제약이 심해서 첩지에 따라 몇겹 이상은 허용이 되지 않기도 하는 풍경이 있음을 잘 아는 시청자에겐 조금 당황스러운 일일 지도 모른다.

인기 드라마였던 대장금에서 등장하는 수랏간 문화에 대한 묘사나(마치 '최고상궁'이라는 직책이 있다는 듯이 드라마에서 그리고 있지만 수랏간 상궁은 있지만 최고상궁은 없다고 한다) 모든  여자 출연진이 저고리가 짧은 한복을 입고 나타나는 문제(조선은 중기 이후까지 여성의 윗저고리가 길었다. 아주 짧은 저고리가 나타난 것은 조선 후기, 서민층에서이다), 황진이의 의상의 옷감 무늬가 문제 되었던 일들.

그러나 대개의 시청자는 '드라마니까 그렇지'라고 넘기는 인심을 가지는 '바람직한' 사람들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태왕사신기' 는 판타지 사극이라고 넘겨버리는 넉넉한 여유를 가지는 거다(하핫).

사극이란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서 제재(題材)를 빌려 온 희곡 또는 연극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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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의 장희빈. 정선경.

실존의 인물이 등장하는 시대극(20세기 이후는 제외하기도 한다)은 모두 사극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이런 사극에 대한 세분화된 명칭이 생긴 지 제법 되었다. '아마데우스(Peter Shaffer's Amadeus, 1984)'나 '불멸의 연인(Immortal Beloved, 199)' 같은 팩션(Faction) 성격의 영화도 유행했지만 미스터리 사극, 멜로 사극, 판타지 사극, 퓨전 사극같은 복합된 단어도 생기곤 했다.
물론 주제가 다양해진 드라마나 극의 쟝르를 역사, 현대, 미스터리, 멜로 등으로 정확히 나눌 수 없기 때문에 파생된 명칭들이긴 하지만 우리가 흔히 시청해왔던 '정통 역사극'과 다른 면모를 가졌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The Tudors를 정통 역사극이라고 할 수 있다?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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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장희빈)과 유인촌(숙종)

지금까지의 사극은 (비교적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은 그대로 두면서 그 나머지 상황을 창작하여 구성하고 시청자를 만족시키는 드라마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의 재해석이라고 하지만 그 활용 폭이 좁았다.
우리 나라에서 여러번 리메이크된 '장희빈'이라는 사극의 소재는 주연이 바뀌고 고증된 의상이 바뀐 것도 여러번이지만 여전히 지독한 장희빈과 착한 인현왕후라는 '역사적 사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존의 사극에서는 사극이 기록된 역사를 바꿀 수는 없었다'
기껏 변형된 것은 정사가 아닌 야사를 묘사하는 정도. 국내에서는 특히 조선왕조실록의 장희빈이 이 역사로서의 장희빈에 몹시 충실했다고 생각된다. 상상력을 활용할 수 있는 폭도 무척 적었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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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빈(김혜수)의 긴 저고리.

'김혜수' 주연의 장희빈(2002.11.6~2003.10.23)은 동평군의 역할이 확대된 것이나 한복의 여성 저고리 길이가 길어진 것. 당시의 정치 세력 간의 갈등을 제법 정확히 묘사한 점 등이 기존의 장희빈과 달랐다고도 볼 수 있지만, 여전히 김혜수는 새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는 독한 여자였다.

한국에서 7번에 걸쳐 새로 만들어졌다는 조선 왕조의 스캔들 '장희빈' 만큼이나 외국에서 유명한 소재가 '앤블린'과 '헨리8세'이야기일 것이다. 'The Other Boleyn Girl'이라는 영화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앤블린이라는 동일한 소재를 가진 '천일의 앤(Anne Of The Thousand Days, 1969)'과 'The Tudors(2007)'는 이런 면에서 비교가 된다. 앤블린이 왜 이혼 대신 죽음을 선택했고 어떻게 사랑에 빠졌는 지를 역사의 에피소드 안에서 흥미롭게 해석한 천일의 앤과 헨리 8세와 앤블린의 젊고 활력있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그려진 튜더스는 극중 인물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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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의 앤. 목걸이가 초상화와 같다.

천일의 앤은 일단 역사 기록에 충실해서 당시의 헨리 8세의 초상화에 걸맞는 외모를 가진 배우와 앤블린의 초상화에 걸맞은 여배우를 기용했다. 40대의 헨리 8세와 10대 후반의 앤블린, 그리고 적당히 나이를 먹은 토마스 모어와 토마스 울지, 토마스 크롬웰. 그리고 대부분의 복식과 장면 묘사도 거의 역사와 차이가 없다.

특히 초상화에서 그대로 나온 듯한 드레스들은 보는 이를 놀라게 한다. 일단 세세한 당시의 상황은 생략하고(아라곤의 캐서린이 애원하는 상황도 다소 생략된 느낌이다) 헨리 8세와 앤블린의 사랑에 초점을 맞춰 영화를 채워나간다.

튜더스의 헨리 8세는 일단 청년이다. 외모 만으로는 20대라고 봐도 이상하지 않다. 앤블린 역시 그리 어리거나 하지 않고 적당히 나이를 먹은, 성숙한 아가씨이고 아라곤의 캐서린 만 40대를 바라보는 나이인 듯 하다.

상대적으로 헨리 8세의 활기와 젊음이 강조되고 캐서린의 나이든 모습이 부각되고 있다. 그리고 앤블린은 헨리 8세와 불타는 사랑은 나누는 동년배의 연인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몹시 적극적이고 영리하게 상황에 대처하는 앤블린의 해석은 둘째 치고 화려하고 밝은 의상에서 '앤블린'의 이미지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즉 역사에 맞춘 묘사가 아니라 '이미지에 맞춘 묘사'로 드라마를 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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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식 및 장신구를 그대로 재현한 The Tudors의 앤블린. 초반의 프로모션 이미지이다.


기존의 사극이 역사는 바꿀 수 없다는 한계를 가졌다면 최근의 사극은 이렇게 어디로 튈 지 모르는 해석의 가능성을 무한히 갖추고 있는 것이다. 김처선과 폐비윤씨, 공길과 연산군이라는 상상도 못했던 커플이 탄생될 수도 있고, 마가릿 튜더와 메리 튜더는 한 인물로 압축되서 표현될 수도 있다.

말 그대로 역사극이 아니라 '역사에서 소재를 가져온 그냥 드라마'의 시대로 옮겨왔다고 할 수 있을 듯. 튜더스나 왕과나, 그리고 이산에서 '고증되지 않은 사실'이 방송되는 것 쯤 이제 다들 흠잡지 않는 시기가 되었다는 뜻일까? 제작자가 원하는 이미지 그대로 그린다고 한들 실제 역사가 아닌 것쯤 웬만한 시청자는 다 알고 있는데 드라마가 다큐멘터리처럼 역사에 충실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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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udors의 앤블린. 사치를 즐기고 화려하며 권력이 승승장구함을 표현하기 위해서인지 드레스도 자주 갈아입고 티아라의 높이가 얼굴 크기 보다 클 듯 하다. 과장된 장신구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애니메이션 '슈발리에'에서 루이 15세와 기타 중세의 귀족들을 멋진 영웅으로 그렸듯이 실제 역사에서 고른 인물이되 실제와 상관없는 성격으로 그려지는 사극도 앞으로 자주 등장하지 않을까? 판타지 사극 또는 퓨전 사극이라는 이름으로. 그 이미지 만을 차용하는 드라마 말이다.

어쩌면 현대는 조선왕조실록을 그대로 따라 그린 전인화의 장희빈도 기록된 역사의 좁은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인물들을 재해석했던 '왕과비'도 초상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옷을 입고 발랄하게 뛰놀던 천일의 앤이 가진 매력도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시대이다. 유달리 '정통 사극'임을 내세운 '사육신'이 초라해 보이는 건 그 탓이겠지.

* 왜 그런지 "진정한 명품사극은 누구? 중간점검 ‘이산’, ‘태사기’, ‘왕과 나’ 순" 이라는 기사가 오늘은 좀 못 마땅해 보이네.



출처 :
네이버 포토앨범 1
네이버 포토앨범 2
http://royalstory.kbs.co.kr/report/photo.html
http://cbingoimage.naver.com/data/bingo_42/imgbingo_97/emha82/24252/emha82_56.jpg
http://home.cein.or.kr/~x2mupung/moon.html
http://tv.sbs.co.kr/eunuch/

* 극본이나 복식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가진 것은 아니다. 초상화나 기타 복식전문가들의 고증은 여러 사람이 알고 있는 수준과 거의 비슷하다. '사극의 변형'에 대한 관점으로 복식 이야기를 꺼낸 것이므로 오해가 없기 바람. '숙종과 장희빈 시대를 재해석하기' 등 역사의 새로운 해석도 많으나 그 논란 역시 배제한다.
* 외국 사극에서 Elizabeth 1나 ROME같은 드라마는 각기 따로 다루고 싶다.
* 모든 이미지는 크게 보입니다. 눌러서 크게 보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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